李明博 정부가 反軍 교육을 하고 있는 셈
여전히 북한군의 학살을 美化, 국군을 폄하 . 달라진 게 없는 2009년판 금성출판사 교과서.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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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지난 60년사를 거의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북한정권의 同族 학살까지 비호하는 금성출판사의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하여 작년에 교과부가 수정지시를 내렸고 著者들이 반대하자 출판사가 수정하였다. 새로 나온 이 교과서를 읽어보고 절망하였다. 6.25 전쟁중 있었던 공산주의자들의 학살은 미화, 축소하고 국군의 이른바 민간인 처형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킨 문제 부분은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였다. 李明博 정부가 하는 일이 이 정도라면 안심하고 자녀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다.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로만 이야기하면 李明博 정부는 지금 학생들에게 국군을 미워하는 교육을 시키고 있는 셈이다.
  
  
   2009년판 금성출판사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는 여전히 이렇게 적고 있다.
  
   〈전쟁 초 승리를 거둔 북한군은 점령 지역에서 토지개혁이나 노동법령의 개정과 같은 북한식 개혁을 하면서, 지주나 공무원 등에 대한 숙청을 감행하였다〉
   개혁에 반대한 사람들을 숙청했다는 뜻이다. 개혁은 좋은 의미를 띤다. 즉 좋은 일을 하는 데 방해가 되는 사람을 숙청했다는 것이다. ‘숙청’은 肅淸으로서 ‘엄하게 다스리어 잘못이나 그릇된 일을 치워 없앰’이라는 뜻이다 ‘감행’이란 표현은 좋은 일을 용감하게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 교과서는 결국 북한군에 의한 양민학살에 대해서 북한군의 학살을 숙청이라 美化하여 기술하고, 더 심했던 남한 내 좌익에 의한 집단학살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이 교과서는 국군에 대해선 어떻게 기술하나?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탈환하게 되자 반대로 북한군에 협력한 사람들에 대한 처형이 뒤따랐다〉
   북한군의 학살을 ‘숙청’이라고 美化한 이 교과서는 국군과 유엔군의 행동에 대해선 ‘처형’이라고 표현했다. 국군을 폄하하고 敵軍을 비호하고 있다. 구체적인 학살 건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도 이 교과서는 국군에 불리하게 기술했다.
  
  〈남한에서는 보도연맹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처형이 있었고, 경남 거창과 충북영동의 노근리 등 여러 곳에서 주민들이 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후퇴하는 북한군도 대전 등지에서 많은 주민을 죽였다〉고 하여 국군에 의한 처형에 대해서 더 자세히 길게 적었다. 학생들은 이 교과서를 읽고 남침집단인 북한군에 대해서보다는 국군에 대해서 더 나쁜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6.25전쟁중에 있었던 민간인 학살의 1차적 책임자는 전쟁을 일으킨 북한군과 이들에게 협조한 남한 좌익들이었다. 보도연맹원들에 대한 처형은 불행한 일이었으나 북한군이 서울에 들어오자 좌익들이 들고 일어나 경찰과 군인가족들을 잡아 죽이기 시작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名簿로 확인되는 수치에 의하면 북한군과 남한 좌익은 8만661명을 납치해갔고 5만9964명을 학살했다.
  
  
  
  
   [자료] 납북자 8만661명 피살자 5만9964명
  
  
  
   〈월간조선〉金成東기자가 2002년에 찾아낸 문서가 있다. ‘대한민국정부’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있는 〈6.25사변 납치자명부〉에 이어 6.25전쟁당시의 참상을 보여주는 피살자 명단도 발견됐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李美一)가 납북자 명부를 찾는 과정에서 함께 발견됐다. 총 4권으로 이어진 이 명부에는 5만9964명의 피살자명단이 실려있다. 작성일은 1952년 3월31일 이다.
   명부는 성명, 성별, 연령, 직업, 피해연월일, 피해장소, 본적, 주소 등 총 8개항목으로 피살자들의 신원을 기록해 놓고 있다. 명부는 피살자들을 크게 각 시.도별로 구분한 다음 군이나 구별로 세분화해 피해가 많은 성씨 순으로 기록해 놓았다.
   범예에 “6.25사변중 공무원 및 일반인이 잔인무도한 괴뢰도당에 피살당한 상황을 조사 편찬하였다”면서, 대상을 군경을 제외한 비전투자에 한하였다“고 밝혀, 인민군 등 좌익에 의해 피살된 사람들의 명단만 실려 있음을 알 수 있다.
   5만9964명의 피살자 가운데 전라남도 지역에서 피살된 사람이 4만3511명으로 전체의 72.6%를 차지하고 있다. 다음으로 전라북도 5603명 충청남도 4680명 경기도2536명 서울시 1383명 강원도 1216명 순이었다. 그 외 경상남도689명, 충청북도 633명, 경상북도 628명 제주도 23명 철도경찰 62명이 좌익에 의해 피살된 것으로 기록됐다. 전체 피해자 가운데 남자가 4만4008명, 여자가 1만5956명이었다.
   여성 피살자 1만5956명 가운데 1만3946명이 전남 지역에서 피살됐다. 피살자가 집중된 전남 지역에서도 특히 영광군의 피해가 가장 컸다. 전남지역 피살자 4만3511명 중 절반에 가까운 2만1225명이 영광군에서 피살됐다. 영광지역 여성피살자는 전국 여성 피살자의 절반에 가까운 7914명 이다.
   영광군 인근지역의 피해도 컸다. 전북지역 피살자 5603명 중 2364명이 피살된 고창은 행정구역은 전북에 속해 있지만 영광과 이웃해 있는 지역이다. 전남지역에서도 영광과 이웃한 군인 나주 3596명 장성4306명 함평1954명 등에서 피살자가 많았고 영암 지역에서도 7175명이 피살됐다.
   6.25당시 전남 영광군의 피살자 2만1225명의 명단은 A4용지 772장 분량이었다. 피살자명단을 꺼내 훑어보았다. 명단을 입수했을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점이 보였다. 한 살, 두 살, 세 살...아이들의 죽음이 다른 지역에 비해 유난이 많았다. 열 살이하 어린이가 영광군 전체 피살자 2만1225명의 12%에 달하는 2500여명 이었다. 전국 여성피살자의 절반 가까운 7914명이 이 지역 여성들이라는 사실과 아이들의 죽음. 그것은 일가족이 학살된 경우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6.25당시 인민군이 후퇴할 때 미처 지리산으로 못 들어간 빨치산들이 영광 지역에 많이 모여서 빨치산 활동을 했습니다. 그 사람들에 의한 민간인 피살자가 많았던 곳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구수산 주변 백수면과 염산면에서 민간인 피살자가 많았습니다. 영광지역의 또 다른 특성은 해방후 사회주의 색채를 가진 인사들이 많았던 곳이라는 점입니다. 좌우 갈등이 심했던 곳이라는 뜻입니다. 좌익이나 우익진영 모두 그로 인한 희생도 컷을 겁니다”
  
[ 2009-04-08, 17:2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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