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반란의 小考
사법부에 들어오지 말고 노동운동이나 NGO의 시민활동을 하면 알맞은 사람들이 저렇게 포진해서 내일에 중견 판사들이 된다는 것을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김영일(회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김영일
  
  광우병 난동으로 본 사법부 파동
  
  
  
   요즘 사법부 내의 단독판사로 칭하여지는 소장 판사들이 명분이야 사법부 발전을 위한 워크샵이 되었든 말든, 소위 ‘判事會議’라는 집회를 통하여 집단적으로 벌이고 있는 실상은 사법부의 수뇌부가 신 대법관의 문제를 처리해 온 과정에 대해서 불신을 표하고, 나아가 이미 공식적인 기구를 통해 모두 끝난 특정 대법관의 진퇴를 새삼스럽게 물고 늘어지는 것은 사법부 전체에 혼란과 무정부 상황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憲政에 전체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은 달리 표현하면, 사법부 내의 골치 아픈 문제들이 앞으로 발생하면, 이해관계 당사자로서의 집단 내지 노조들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집단적인 힘을 과시하려는 世俗的인 양상과 비슷한 일이 사법부 내에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누구 말마따나 그들이 벌이고 있는 일이 어떤 파장을 미칠 것인지를 모르고 저지르는 것인지, 알고 떠벌이고 있는 일인지 지금으로서는 전혀 판단이 미치지 않는다.
  
  
  
  
   법을 누구보다 가장 현실적으로 잘 아는 가운데 법적용을 하는 집단의 일부이긴 하지만, 자신들이 소속해 있는 정부의 상층부를 를 ‘사용자’ 집단쯤으로 여기지 않고서는 어떻게 노동조합이 하는 것과 비슷한 만행(蠻行)을 자행하는지 한 마디로 사법부가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는지 통분을 금할 수 없는 지경이다.
  
  
  
  
   듣자 하니, 서울 동부지법과 북부지법의 ‘판사회의’도 남부지법과 중앙지법처럼 비슷한 결론(“신 대법관의 업무계속은 부적절하다”-이 말은 신 대법관이 물러나는 게 옳다는 것으로 신문 방송은 풀이하고 있다)이 났으며, 18일 경에는 부산지법과 인천지법 가정법원에도 비슷한 판사회의가 열릴 예정으로 있는 것으로 보아 전국적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잘난 단독판사들이 이 나라 헌법 제 106조를 헌신짝처럼 유린하고 있는지 여부를 이번 기회에 한번 알아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헌법 제 106조는 ‘法官의 身分保障’을 명기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刑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 하고는 파면되지 아니 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 하고는 停職 또는 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 한다.
  
   2. 법관이 중대한 심신상의 장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퇴직하게 할 수 있다.“
  
  
  
  
   이상의 헌법 조항 가운데 “신 대법관의 신분보장”에 불이익을 받을 만한 구석이라곤 눈을 닦고도 찾을 수 없다. 그런데도 ‘떼법’을 좋아하는 사이비 내지 돌팔이 판사들이 집단적으로 신대법관의 명예와 신분보장을 헌짚신처럼 유린하고 있는 것이 차라리 드라마라면 좋겠는데, 현실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란 점에서 그 심각성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인권의 마지막 보루”라고 일컬어지는 사법부에 몽을 담고 있는 구성원들의 일부가 동료 내지 상층부에 자리하고 있는 ‘대법관’의 명예, 인권, 신분보장 등등을 마구 헐뜯어 물고 늘어진다면, 사법부라고 칭할 최소한의 건더기도 없는 것이 아닌가? 지난날 공산권의 세계처럼 無法과 無時로 ‘미운 오리 털’을 불러다 온갖 욕을 보이며 숙청을 하려는 행동거지(行動擧止)가 새삼 머리에 떠오르게 되는 것이 여간 불쾌하지가 않다.
  
  
  
  
   학생 데모나 각종 사회적 이해단체들의 시위 내지 집단행동과 얼마나 다른지 도저히 가름 할 수 없는 단독판사들의 ‘集團的 意思表示’의 배경과 그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그 전모가 밝혀지기 전에 무엇이라 단언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신 중앙지법원장과 개별 단독판사들 간에 전적으로 ‘법률적 理解’를 둘러싼 순수한 견해차이 만으로 사법파동을 불러올 만큼 문제가 불거졌다고 판단하는 것도 상당한 무리가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아무튼 문제의 발단은 “광우병 난동”(촛불시위로 인한 國家的 危難)이라는 정치-사회적 地平에서 주어진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外交的 未熟을 인정한다고 해도, 광우병이라는 실체를 전혀 제시 못하면서 그 위험성을 極大化시키는 좌익 데마고구와 아지테이션 (MBC 미디어가 그 앞잡이다) 앞에 “광우병 난동”(혹자는 ‘난동’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가질지 모르지만 사회질서가 밤이고 낮이고 마비될, 그런 상황을 뭐라고 하겠는가?)이라는 國家的 危機를 치러야 했다.
  
  
  
  
   작금에 이 광우병의 후유증으로 사법부가 도마 위에 오른 물고기 모양으로 마지막으로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는 모양새라고 느껴진다. “法官의 獨立性”(헌법 제 103조에 보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고 명문화 되어 있다) 운운하면서 소장 단독판사들이 내거는 문제제기는 어디까지나 그럴듯한 헌법적 법률적 명분이 아닐까? 라고 하는 의문도 드는 것이다.
  
  
  
  
   제 103조의 명문 그대로 해석한다고 하면, ‘사법적 행정‘이란 설 땅이 전혀 없는 것이다. 사법부도 엄연히 하나의 정부이기 때문에 재판은 ’독립적으로‘ 행한다고 할지라도 화이트 범죄의 양형(量刑) 문제라든지 사건의 배당에 있어서 얼마큼의 차별성은 판사 개개인의 ’능력‘과 ’판결 성향‘을 고려해서 제대로 해결할 판사들에게 배당하는 정도의 자율적 권한은 지법원장에게 있다고 본다. 保釋도 엄한 기준에 입각해 달라는 당부도 국가적 위난시대에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결국 그런 법률적 시각에 따라 재판상에 ‘개입’ 또는 ‘간여’를 받았으므로 ‘판사의 독립성’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겉으로 내거는 명분이자 모두일까? 하는 것이 본인의 의문이다. 그 정도의 문제이면, 내부적으로 대화를 통해서, 어필을 통해서 자율적으로 조정될 수 있다고 본다. 그렇게 어필하거나 대화를 걸 자신도 배짱도 없는 사람들이라면 뒷구멍에 숨어서 이러쿵저러쿵 언론 플레이를 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문제는 법률적 시각의 차이에서 오는 필연적인 갈등이라면, 어디 ‘촛불시위’ 때만 그렇겠느냐? 그 이전에도, 훨씬 이전에도, 즉 사법부가 존재해 온 이래로 그런 갈등은 비일비재였다고 보는 것이 온당한 상식인지 모른다. 그런 법률적 시각보다 신 대법관의 평소 “보수적 인생관”에 대한 젊은 판사들의 혐오성(?)이 얼마만큼 이번 파동에 작용했을 가능성은 없었을 것인가? 본인 개인적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입장이다.
  
  
  
  
   작년에 그렇게도 극성을 떨었던 촛불시위를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 들인가에 대해서는 나이 많은 세대들과 빈곤한 계층에서는 미국 산 쇠고기의 수입을 환영하는 눈치였으며, 젊은 세대들과 부유층 주부층에서는 반미, 반FTA 등 온갖 좌익 급진세력들의 선동에 의하여 미국 산 쇠고기가 마치 “광우병(mad cow)소”로 세뇌됨으로써 심한 거부반응을 냈던 것으로 기억된다. “OUT 이 명박, 너나 먹어”라는 피켓이 바로 그 상징이 아닌가 싶다.
  
  
  
  
   광우병 난동의 대열에 MBC PD들이 앞장을 서서 미국 산의 “앉은뱅이 소”(downers)의 동영상을 구해다가 그 앉은뱅이 소를 마치 광우병 소로 둔갑시킴으로써 광우병 난동을 유도해 온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농촌에서도 탄저병 걸린 소들이 지난날 많았다. 일어나지도 못 하는 앉은뱅이 소들은 미국의 전유물이 결코 아니다.
  
  
  
  
   듣자 하니, 검찰 내부에 MBC PD들에 대한 전담 조사팀이 오래 전에 구성되었지만, 그 조사팀장인 모 부장검사는 역시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우려를 표하는 인물인지는 몰라도 담당 피디를 체포-구속하는 일에 반대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비록 앉은뱅이 소라 할지라도 ‘광우병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데 기여한 면도 있기 때문에 양심적으로 MBC PD들에게 손 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결국 사표를 내고 부장검사 직을 떠난 것으로 전한다. ‘광우병에 대한 엉터리 경각심’이 국가적 위난으로 발전하고 국민 간에 심각한 갈등과 대립을 조장한 악질적인 선동에 매우 호의적인 반응을 나타낸 것은 법조계 안에도 비단 그 혼자라면 문제의 심각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여겨진다.
  
  
  
  
   그래도 그는 소장 판사처럼 상관에게 법률적 시비를 음성적으로 걸고넘어지지 않고 깨끗이 자리를 비우고 떠나갔다. 그런 면에서 ‘비겁한 부장검사’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이번 사법부의 파동도 ‘촛불시위’에서 그 단초(端初)가 주어진만큼 법률적 시비와 ‘촛불시위’를 바라보는 人生觀 문제가 혼재(混在)되어 있을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 없는 일인지 모른다. 앞에서 얘기한 모 부장검사처럼 문제의 단독판사들이 젊은 세대로서 미국 산 쇠고기를 광우병의 위험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는 선입견과 편견에 빠져 미국 산 쇠고기를 배척하는 정서를 세대적으로 공감하는 정서적 공감대를 공유하고 있는지 어쩐지를 지금으로서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만의 하나 그런 情緖的 共感帶 위에서 작금에서 보는 사법부 파동을 일으켰다면, 이는 참으로 예사 문제가 아니란 느낌이 든다.
  
  
  
  
   광우병 난동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가장 흔들림이 없어야 할 사법부 본연의 立地에서 볼 때(사법부의 기능은 ‘가치 창조’의 타 정부의 역할과 달리 ‘이미 확보한 가치’를 수호한다는 의미에서 3정부 가운데 가장 보수적으로 사회의 동요에 초연해야 한다) 3정부 가운데 가장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사법부를 위하여, 이 나라 헌정의 균형 잡힌 발전을 위하여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바꾸어 말하면, 가장 초연(超然) 해야 할 ‘권위와 보수’의 사법부가 사회변동의 한 가운데 서 있으면서 갈팡질팡하는 것은 바로 대한민국이 표방하는 正體性과 正統性의 위기를 가리키는 적신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법부에 들어오지 말고 노동운동이나 NGO의 시민활동을 하면 알맞은 사람들이 저렇게 포진해서 내일에 중견 판사들이 된다는 것을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지금의 위기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아도 소장 단독판사들의 집단적 행동으로 사법부의 수뇌부가 불신을 당하고 대법관의 身分保障이라는 憲法 條項이 누구 말마따나 휴지조각이 된다면, 도대체 이것이 반란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 2009-05-17, 09:4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