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이 맥아더를 자른 진짜 이유
대통령들의 우스개.“나한테 당해보지도 않은 기자들이 나한테 특히 유감이 많더라.”(全斗煥).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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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들의 우스개/트루먼, 고르비, 레이건, 존슨, 全斗煥
  
  
   freedom of speech와 freedom after speech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대학교를 안 나온 미조리의 촌사람이었다. 그는 결단의 사나이였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原爆을 투하하기로 한 결단을 비롯하여 6.25 파병 결단, NATO 설립과 마셜 플랜의 결단, 그리고 맥아더 원수 해임의 결단. 당시 그의 결단은 논란거리가 되었으나 세월이 지나 역사적 평가는 아주 높아졌다. 트루먼과 레이건이 소련 帝國을 무너뜨리는 데 알파와 오메가의 역할을 했다.
  
  두 사람은 농담을 잘 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 원수를 극동군 사령관직에서 해임한 데 대해서 질문을 받고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맥아더가 대통령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임한 것이지 그가 바보 같은 자식이라고 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실은 맥아더는 그런 자였지만 바보스럽다는 것을 가지고 장군들을 처벌할 순 없다. 만약 그런 法이 있다면 절반에서 4분의 3 가량의 장군들은 감옥에 쳐 넣어야 할 것이다.'
  
   로널드 W. 레이건 대통령은 미소를 지으면서 소련 제국을 내부로부터 해체해간 마음이 따뜻한 사나이였다. 그는 평생 反共투사의 삶을 살았으므로 공산주의의 본질과 약점을 잘 알았다. 그는 '공산주의자는 마르크스와 레닌을 읽는 사람이고, 반공주의자는 마르크스와 레닌을 잘 아는 사람이다'고 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소련 헌법은 발언의 자유(freedom of speech)와 집회의 자유(freedom of gathering)를 보장한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의 헌법은 발언 후의 자유(freedom after speech)와 집회 후의 자유(feedom after gathering)를 보장한다.'
  
   이 레이건이 물었다. '소련 농업의 네 가지 잘못 된 점은 무엇인가?'
   레이건이 自答(자답)했다. '봄, 여름, 겨울, 그리고 가을.'
  
  
  정치인과 사형수
  
  
   고르바초프 시절의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상점 앞에 물건을 사려는 시민들이 줄을 지어 섰는데 하루가 다 지나도록 줄이 짧아지지 않았다.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신경질이 난 한 사람이 '이건 모두 고르바초프 때문이야. 죽이고야 말겠어'라고 소리치더니 어디론가 달려 갔다. 24시간 뒤 그는 다시 줄로 돌아왔다.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한 사람이 물었다. '고르바초프를 죽였습니까?'
   시민이 대답했다.
   '못 했습니다. 그쪽 줄은 두 배나 더 길더라고요.'
  
   이 농담은 고르바초프가 레이건 대통령에게 한 것을 레이건 대통령이 퍼뜨렸다고 한다. 레이건은 공산주의와 관련된 농담을 잘 만들어서 했고, 소련 사람들의 우스개를 자주 인용하였다. 그는 측근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소련에선 자동차를 사려면 10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돈은 10년 먼저 선불해야 한다. 예약을 하는 절차가 무지무지하게 복잡했다. 한 청년은 여기 저기 다니면서 절차를 밟아갔다. 드디어 마지막 관청에서 결재 도장을 받았다. 도장을 찍어준 관리는 차값을 받고는 말했다. '10년 뒤에 와서 차를 찾아가시오.' 이 청년이 물었다. '오전입니까, 오후입니까?'. 관리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10년 뒤인데 오전이면 어떻고 오후면 어때요?' 청년이 대답했다. '그게 아니고요. 10년 뒤 그날에 배관공이 오전에 오기로 되어 있거든요.'>
  
   린든 B 존슨은 대통령으로서보다는 민주당의 상원 대표로서 더 유명했다. 그는 설득력이 좋아 의회를 지배하다시피 했다. 이야기도 잘했다. 그가 주변 인물들에게 들려준 이야기 한 토막.
  
  <내가 어렸을 때 한 정치인이 공개 교수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보안관이 사형수에게 말했다. '당신은 州法에 의하여 5분간 무슨 이야기든지 할 수 있다'. 사형수는 '나는 아무것도 할 말이 없습니다. 빨리 끝내주십시오'라고 했다. 이때였다. 구경꾼 저 뒤쪽에 있던 한 사람이 뛰어올라오더니 외치는 것이었다. '보안관님, 저 사형수가 5분을 쓰지 않겠다면 제가 그 5분을 쓰면 안 될까요? 저는 선거 운동중인 국회의원 후보랍니다.'>
  
   1990년 겨울 소련을 방문하여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러시아의 옐친을 만났던 盧泰愚 당시 대통령은 이런 인물평을 했다.
   “고르비는 공립학교의 장학생이고, 옐친은 시골학교의 苦學生(고학생)이다.”
   닉슨 전 대통령은 두 사람을 만나보고 비슷한 평을 했다.
   '고르비는 월스트리타에 살고, 옐친은 메인 스트리트에 산다.'
   고르비는 모범생이지만 예친은 러시아의 전통을 대표하는 土種이란 뜻이었다. 土種은 생명력이 길다.
  
   지난 해 4월9일 총선 때 全斗煥 전 대통령이 투표를 한 직후 기자들과 만났다.
   “나라가 참 좋아졌어요. 이제는 헌법을 개정해서 정권을 연장하려는 간 큰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내가 이렇게 좋은 말을 해도 텔레비전에 나올 때 보면 나쁜 인상만 내보내요. 젊은 기자들이 나한테 유감이 많은 모양이야.”
   기자들이 웃으니 그는 한 마디를 보탰다.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말이야...”
  
[ 2009-07-26, 21:0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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