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족이 남긴 세계문화유산
흉노의 땅, 내몽골 오르도스를 가다⑥: 가장 유명한 것은 제20석굴의 大佛. 北중국에 군림했던 선비족 황제의 존엄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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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最古 목탑 응현塔

 

 우리 일행은 호화호특 박물관을 둘러본 뒤 산서성 대동시로 이동했다. 앞에서도 썼지만, 대동에는 흉노의 모돈 선우가 漢고조 유방을 위기에 몰아넣었던 평성과 백등산의 소재지이고, 중국의 5악 중 항산(恒山)과 북위 때 조성된 운강석굴(雲岡石窟)도 교외에 위치해 있다. 우선, 대동시 교외에 위치한 응현 목탑을 보러갔다. 이 목탑은 요나라 때 건설된 목탑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요는 중국사상 두 번째로 기마민족정복국가를 세운 거란족의 나라다.

 

▲중국사상 두번째의 기마민족 정복국가 遼(요)나라 때 세운 應縣(응현) 목탑. 세계 목탑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세계문화유산이다. 大同市 응현 소재.

 

 목탑을 대충 둘러본 후 갈증 때문에 생수를 사 마시려고 요대가(遼代街)에 있는 초시(超市)에 들렀다. 초시란 슈퍼마켓의 중국식 표기이다. 한강물에 길들어져 온 필자에게 중국제 생수는 왠지 역겨웠다. 대신에 캔 맥주를 구입하니 미지근했다. 캔 맥주를 냉장고에 집어넣어 급속 냉동을 시켜 놓고 기다리면서 냉장고 옆 의자에 앉아 응현목탑을 응시했다. 매우 우아했다. 초시에서 치약과 수건을 구입했다. 중국의 경제발전에 따라 생필품의 질도 크게 향상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친절한 초시 종업원은 필자가 구입한 수건을 얼음물로 차게 해 필자의 목에 둘러주었다. 몹시 시원했다.

 응현목탑을 뒤로 하고 대동시의 동남 62km(渾源縣)에 위치한 항산(恒山: 표고 2016m)을 찾아갔다. 수목이 거의 없는 바위산이다. 암벽에 매달아 지은 현공사(懸空寺)의 모습은 교묘하다. 지급터 1400여년 전인 북위 말기에 창건했다고 한다. 석가모니·노자(老子)·공자(孔子)를 1실에 모신 특이한 사찰이다.

 

 ▲秦漢시대의 五岳 가운데 북악이었던 恒山과 암벽에 매달아 지은 懸空寺. 북위 말기에 창건되었다. 산서성 大同市 渾源縣 소재. 

 

 후세엔 바로 남쪽 흔주시에 있는 오대산이 더 유명하지만, 한대엔 항산이 5악 중 북악이었다. 진시황 및 한무제 일행은 이 항산에 올라와 토지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항산에서 북상하여 대동시내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다음날, 서쪽 교외에 위치한 운강석불로 향했다. 가는 길에 시가지의 교통표지판을 보니 평성대로(平城大路)라고 씌어 있다. 평성은 한 고조 때 중진(重鎭)이었고, 선비족의 정복국가 척발위의 두 번째 수도였다.

 현장에 도착해서 앞산을 바라보니 중턱에 40여개의 석굴이 파여 있고, 그 위 산등성이에는 明代에 축조한 보(堡)가 운강석불을 보호하는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북위 때는 태무제(太武帝) 때 잠시 탄압하기는 했지만, 불교문화의 전성기였다. 그를 이은 문성제(文成帝)는 불교 부흥의 방침을 확실히 하고, 승려 담요(曇曜)를 사문통(沙門統)으로 삼고, 그의 발의로 운강석굴을 조성했다. 운강석굴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 大同市 서쪽 운강석굴의 제20굴의 석가모니像. 선비족 북위 때 건설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석존상의 얼굴은 그의 부조(父祖) 5帝를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대불의 크기는 15m 전후이다. 운강의 제16 석굴로부터 제20 석굴의 대불이 바로 그것이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제20 석굴의 대불이다. 오전 10시, 햇빛이 잘 받는 제20호 석굴부터 다가갔다.

 

▲ 제20 석굴의 大佛

 

 대불에서는 北중국에 군림했던 선비족 황제의 존엄성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느낌을 주면서도 눈에 검은 색의 玉을 끼워 넣어 생동감이 넘친다.

척발위의 불교가 어떤 성격의 것이었는지는 불상과 불사를 조영할 때의 원문(願文)과 당시에 가장 존숭된 불경의 내용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당시 가장 존숭된 金光明經(금강명경)은 황실의 상복(祥福)와 국가의 진호(鎭護)·안태(安泰)를 기원하는 의식이 가득 차 있다.

 

 漢族·漢字라는 용어의 起死回生

 

 운강석굴에서 나와 평성의 유적을 답사하러 나섰다. 대동시내 서북부에 평성의 토성과 봉수(烽燧)의 유적이 산재해 있다. 漢代의 제도에서는 소규모 봉수라면 대개 3-4명, 큰 봉수에는 10-15인의 병사가 숙영하도록 되어 있다. 봉수는 적 침입 등 긴급사태가 발생하면 경보를 발령하는 제1선이다. 봉수대는 자체 방벽을 갖추었다.

 대동은 주위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큰 분지이다. 한고조 유방이 흉노의 모돈 선우에게 포위당했던 백등산은 이름이 바뀐 데다 관광지에서 제외된 탓인지 지도에도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백등산 아래에‘大白登鎭’이란 동네 이름만 남아 있을 뿐이다.

 북경으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에 진입,官堡(관보)라는 이름의 휴게소에 들렀다. 이곳 육교에 올라 서북방을 보면 백등산의 전모가 드러난다. 크기는 하나 봉우리가 편평한 산인데, 초목이 자라지 않아 허옇게 보인다.

 

▲ 한고조의 한군 10만 명이 모돈 선우의 흉노군 40만명에게 포위되었던 白登山. 大同-北京간 고속도로 휴게소 인근 다리에서 촬영.

 

 지형을 보면 지리멸렬한 모습의 흉노군을 얕보고 추격전을 벌인 한고조의 부대 10만이 대동벌판에서 모돈의 흉노 기병에게 역습을 받고 퇴로마저 끊어져 엉겁결에 별로 험하지도 않은 백등산으로 도주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만약 그때 모돈 선우가 한고조의 도주를 묵인하지 않았다면 중국의 운명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모돈 선우로서는 일생일대의 실책이었고, 한족으로서는 기사회생의 순간이었다.오늘날 중국 민족을 漢族, 중국 글자를 漢文이라 부를 만큼 漢은 중국역사를 대표하는 존재이다. 후세의 漢族 왕조인 宋과 明은 주변 기마민족에게 억눌려 전혀 국위를 떨치지 못했다.

 반면 신라김씨와 가야김씨는 東아시아사에서 대단한 역할을 담당했다. 우선 신라김씨 아버지와 가야김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문무왕은 삼국통일을 완수하였고, 그 자손은 오늘날 한국 최대의 성씨가 되었다. 또 가야김씨인 수로왕(首露王)의 일곱 아들은 일본에 건너가 천황씨(天皇氏)의 선조가 된 것으로 보인다. <金史>세기에 따르면 신라 멸망 후 신라왕족 김함보(金函普)는 북상하여 여진족(女眞族)의 추장이 되었는데, 그의 6대 후손인 아골타(阿骨打)가 바로 정복국가 금(金)의 태조로 피어났다. 만주족(여진족의 후신)의 정복국가 청(淸)의 황족 애신각라(愛新覺羅)씨는 신해혁명(1911년)으로 멸망 후 그들의 성씨를 김씨로 회복시켰다.

 그렇다면 흉노 출신 김일제의 후손이 왜 신라까지 내려왔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BC 87년 한무제는 71세의 나이로 죽었다. 무제는 임종 때 봉거도위(奉車都尉) 곽광(藿光: 곽거병의 동생), 부마도위(駙馬都尉) 김일제, 태복(太僕) 상관걸(上官桀)에게 어린 소제(昭帝)를 보필하라는 유촉을 내렸다. 그러나 소제 즉위 후 1년반 남짓해서 김일제가 병사함으로써 곽광과 상관걸이 득세했는데 두 사람은 불화했다.

 곽광과 상관걸의 정권 다툼에서는 곽광이 이겨 정권을 독점했지만, 곽광이 죽으면서 그의 일족도 피의 숙청을 당했다. 반면 김일제의 후손은 7대를 이어가며 투후의 작위를 누렸다.

 무제의 사망 후 90년 만에 한나라는 외척 왕망에게 찬탈당했다. 김일제의 후손은 왕망의 新나라에 복무한 것으로 보인다. 新은 창업 15년만에 망하고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가 후한(後漢)을 세웠다. 왕망에게 협조적이었던 김일제의 7대손은 도주하거나 피의 숙청을 당했다. 사방으로 흩어진 김일제의 후손 중 일파가 김알지로 보인다.

 김알지가 서라벌로 들어오면서 배를 타고 왔는지, 말을 타고 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 경로는 어느 것이나 가능하다. 그 시절엔 인구가 조밀하게 살지 않았고, 또 오늘날과 같은 철책선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사의 뿌리를 이루는 신라김씨와 가야김씨의 뿌리 찾기는 계속 연구해야 할 과제이다. (끝)

[ 2009-08-05, 17:5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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