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元帥도 戰線에 부인 동반 금지"
아이젠하워의 동반 요청을 거절한 트루먼은 "다른 사병들과 비교하여 공평하지 못하다"는 이유를 댔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제2차 大戰 때 연합군 사령관으로서 유럽에서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을 파멸시키고 승리한 사람이다. 그는 계급이 元帥였지만 가족과 떨어져 런던 근교 사령부에서 살았다. 당시 미군은 海外 파병 사병들에게 가족 동반을 허용하지 않았다. 아이젠하워는 1944년 1월, 18개월만에 처음으로 미국에 돌아가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는 등 公務를 보고 돌아왔다. 그 사이 시간을 내어 호텔에서 부인을 만나야 했다.
  
  아이젠하워는 유럽 전쟁이 끝난 뒤 1945년 6월 미국으로 돌아와 勝戰 퍼레이드에 참석하는 등 바쁘게 보내다가 다시 런던으로 돌아갔다. 그 사이 잠시 부인을 만났다. 아이젠하워는 그 전에 미국 정부에, 독일을 점령하여 관리하게 될 미군들은 가족을 데리고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건의하였다. 6월4일 그는 상관인 마샬 육군참모총장에게 편지를 썼다.
  
  요지는 <아내가 신경쇠약에 걸려 있고 최근엔 감기로 입원하여 몸무게가 45kg으로 줄었습니다. 아내를 데리고 갈 수 있도록 허가해주십시오>였다. 당시 미국에선 元帥가 마셜, 아이젠하워, 아놀드, 맥아더 네 사람이었다. 아이젠하워를 빼곤 전쟁기간중 모두 부인을 곁에 두고 살았다. 맥아더는 허가를 받지 않고 그렇게 하였다.
  
  마셜은 이 편지를 갖고 대통령을 찾아갔다. 보고를 받은 트루먼 대통령은 아이젠하워의 요청을 거절하였다. "혼자 있는 다른 사병들과 비교하여 공평하지 못하다"는 이유였다. 아이젠하워 사령관은 이 통보를 받은 뒤 다시 마셜 장군에서 편지를 써서 개인적인 일로 불편을 드려서 죄송하다는 사과를 하였다.
  
  그때 아이젠하워는 55세였다. 아들 존은 장교로서 유럽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아들은 유럽전쟁이 끝났으므로 태평양 戰線으로 보내달라고 했으나 아버지는 "내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하여 사령부 근처에 있는 부대에서 계속 근무하게 되었다. 1952년 11월 말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한국전선을 시찰하였을 때 아들은 한국에서 근무중이었다.
[ 2010-02-13, 11:4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