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의 유일한 참전국…휴전 직전까지 중공군과 血戰(혈전)
콜롬비아군 참전비(인천광역시 서구 가정동 529)를 찾아…“미군 사단에 배속돼 중부전선 곳곳서 高地戰”

金東鉉(조갑제닷컴)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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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서구 가정동 529에 위치한 콜롬비아군 참전 기념비는 경인고속도로변에 붙은 콜롬비아 공원 내에 있다. 경인고속도로 인천 방면 서인천 IC에서 나와 가정 5거리 방면으로 500m 쯤 가면 가정 지하차도가 나온다. 그곳에서 6번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1km 정도 가면 길 왼편에 콜롬비아공원이 나온다. 공원 입구엔 주차장이 없다. 공원 건너편 인천참사랑병원 주차장이나 인근 주택가에 주차해야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1호선 전철 제물포역에서 하차해 시내버스 70,70-1번을 타고 체육공원 앞에서 내리면 된다.
  
  
  
  1974년에 우리 정부가 건립한 참전비는 이 공원 중앙에 있다. 측면에서 이 참전비를 보면 배를 형상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뱃전에 칼을 든 勇士(용사)와 기도하는 여인이 조각됐고 그 뒤로 돛을 연상케 하는 흰 벽이 펼쳐진다.
  
  
  
  
  
  참전비의 碑文(비문)엔 ‘카리브 바다의 정기를 타고난 콜롬비아 용사들! 국제 연합의 깃발을 높이 들고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우다가 마침내 611명의 고귀한 생명이 피를 흘렸다. 우리는 그들을 길이 기념하고자 여기에 비를 세운다’는 글귀가 새겨졌다. 참전비 앞에는 1987년 9월9일 바르힐리오 바르코 대통령의 訪韓(방한) 기념으로 라미로 삼브라노 駐韓(주한) 콜롬비아 대사가 세운 碑文(비문)이 한글과 스페인어로 새겨져 있다.
  
  이 공원에는 농구대가 하나 있고 가벼운 운동시설과 산책로, 벤치, 어린이 놀이터가 있다. 주말 오후에 가보니 동네 노인들 40~50여 명이 곳곳에 모여앉아 있었다. 이 공원을 소개한 한 블로거의 사이트에 보면 ‘한여름 밤 잔디 위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가족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가족단위의 나들이장소로 추천할 수 있다. 또한 잔디 위로 난 산책로는 애인과 함께 사랑을 속삭이며 걷기에 아주 좋은 장소이다.’란 글이 있었지만 실제 공원은 쓰레기가 널렸지만 청소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화장실도 문을 잠가 놓아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콜롬비아는 6.25전쟁에 지상군과 해군을 파병하였다. 콜롬비아 해군은 프리킷함 1척을 1951년 5월 8일에 한국 해역에 파견하여 미 해군의 작전 통제하에서 해상 작전을 실시하게 하였다. 지상군은 콜롬비아 보병 제1대대라는 이름으로 1086명으로 편성한 1개 보병 대대가 1951년 6월 15일 부산항에 도착하였다. 지상군으로서는 한국에 마지막으로 도착한 부대이다. 이 대대는 1951년 8월 1일에 강원도 화천으로 이동하여 미 제24사단에 배속되어 전방 지역 작전에 참가하였다. 참전규모는 작았지만 라틴아메리카의 유일한 참전국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콜롬비아군의 대표적인 전투로는 김화 400고지 전투, 불모고지 전투 등이며 참전기간 중 전사 163명, 포로 28명, 부상 448명의 피해를 입었다. 주요 전투를 소개한다.
  
  *금성 진격작전(1951. 10. 13~21)
  이 전투는 콜롬비아 대대가 미 제24사단에 배속되어 금성 진격전에 참전하여 중공군 제67군 예하 제119사단 및 제200사단과 치른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이 대대는 전방 대대로 운용되어 10월 13일에는 흑운토령 전방 570고지와 10월 21일에는 금성 남쪽의 회고개를 공격하여 사단의 금성 진격에 기여하였다. 이 대대는 이 두 지역의 공격에서 중공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쳤으나 많은 희생을 무릅쓰고 목표를 점령하였다. 570고지 전투 때는 정상부근까지 진격한 콜롬비아군이 백병전을 벌여 중공군 1개 중대를 궤멸시키기도 했다. 중공군 중대장을 포함 4명을 포로로 잡았다.
  
  *김화 400고지 전투(1952. 6. 21)
  이 전투는 콜롬비아 대대가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와수리에서 예비 임무를 수행 중 적의 前哨(전초) 진지인 400고지를 기습한 전투이다. 이날 이 대대 A중대의 1개 소대 규모로 편성된 정찰대는 우군 전초 진지 500m 북쪽에 위치한 공산군의 전초 진지를 새벽 4시에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5시30분께 이를 점령했다. 견고하게 구축된적의 벙커 11개를 파괴한 후 복귀하였다. 콜롬비아군은 이 전투에서 2명이 죽고 15명이 부상을 입었고 중공군은 28명이 죽고 2명이 포로로 잡혔다.
  
  *볼모고지 전투(1953. 3. 23~25)
  이 전투는 콜롬비아 대대가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연천 북쪽 덕은동의 주 저항선 방어 임무를 인수받은 후, 전초 진지인 볼모고지(275m)에서 중공군 제141사단 제423연대와 치른 전투이다. 이 대대는 불모고지에 배치된 A중대가 계속된 공산군의 폭격으로 많은 손실을 입자, A중대와 B중대를 교대시키기로 하였다.
   3월 23일 야간에 A중대와 B중대가 교대를 하고 있는 사이 중공군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이때, 중공군은 부대 교대간 경계가 취약한 틈을 이용하여 진지 앞까지 접근하였으며, 콜롬비아 대대는 진지 안으로 진입한 중공군과 백병전까지 치렀으나 衆寡不敵(중과부적)으로 그 고지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뒤이어 연대와 사단이 예비대를 투입하여 역습을 실시하였으나 피해만 가중되어, 이 고지 탈환 작전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 전투의 결과로 후에 불모고지는 휴전선 북방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콜롬비아군은 미군과 더불어 600여명의 적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콜롬비아군의 피해도 컸다. 戰死(전사) 95명, 부상 97명, 실종 30명 등 참전 후 단일전투로는 가장 큰 손실을 입었다.
  
  휴전 후, 콜롬비아 지상군은 1954년 10월, 해군은 1955년 10월에 철수하였다.
  
  
  
  글: 金東鉉(조갑제닷컴 기자)
  사진: 金永勳(프리랜서)
  
[ 2010-03-24, 13:2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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