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제막식엔 하일레 셀라시에 皇帝가 참석
에티오피아 참전비(강원 춘천시 근화동 371-3)를 찾아…春川市(춘천시)에선 전국 최초로 참전기념관까지 건립

金東鉉(조갑제닷컴)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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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군 참전비는 강원도 춘천시 근화동 공지천 유원지 입구에 있다. 서울에서 갈 경우 새로 생긴 경춘고속도로를 타고 춘천IC에서 나와 춘천시청 방면으로 6km쯤 거리에 있다. 청평·가평을 거쳐 갈 경우도 춘천시내로 진입, 공지천 유원지 방면으로 가면 에티오피아 참전비 안내판이 나온다.
  
  
  
  에티오피아 참전비는 멀리서 보면 깃대를 세워놓은 듯 보인다. 높이 16m인 이 탑의 중앙엔 에티오피아를 상징하는 사자像이 형상화돼 있다. 탑엔 ‘자유 수호를 위하여 한국전쟁 중 이 땅에서 공헌한 영웅적인 이디오피아 제국의 용사들에게 바친다’는 碑文(비문)이 적혀 있다.
  
  참전비는 유엔참전국협회와 춘천시가 1968년 5월에 건립했다. 제막식에는 訪韓(방한)중이던 하일레 셀라시에 에티오피아 황제가 서울에서 헬기편으로 이동해 참석했다.
  
  
  
  그는 제막식 연설에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지만 한국과 이디오피아의 우정은 역사에 기록되어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셀라시에 황제는 당시 75세로 38년째 황제 자리에 올라 있던 현대사의 전설적 인물이었다. 그날 셀라시에 황제가 심어놓은 기념식수는 42년이 지난 지금은 5m 이상 자라 참전비와 어깨를 견줄 만큼 자랐다.
  
  
  
  에티오피아 참전비 길 건너편엔 춘천시에서 2007년에 11억원을 들여 세운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 기념관’이 있다. 참전국을 기리기 위해 기념관을 세운 곳은 전국적으로 춘천이 처음이다. 에티오피아군의 전투 장소가 춘천 인근이었기 때문이다.
  
  
  
  연면적 160평, 지하1층 지상 2층 규모다. 1층 참전기념전시실엔 에티오피아군의 6·25 전쟁 참전배경, 주요 전투내용, 戰後 복구사업 지원 내역 등이 소개돼 있다. 전쟁 당시 에티오피아 대대원들이 입었던 군복, 각종 훈장 등이 함께 전시돼 있다. 한켠 벽엔 한국전에서 전사한 121명 장병들의 이름이 새겨진 패널이 걸려 있었다. 2층에는 에티오피아의 역사, 문화, 종교, 생활풍습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풍물전시실과 그동안 춘천시와 에티오피아 수도인 아디스아바바市와의 교류활동 상황을 소개하는 교류전시실로 구성되었다. 총 79종, 218점의 전시물품이 전시돼 있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열고 월요일은 休務(휴무), 입장은 무료다.
  
  춘천시는 2004년 5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市와 자매결연을 체결한 바 있다. 시는 그동안 보훈사업의 일환으로 컴퓨터 1020대, 소방차 40대 등을 지원했으며, 국가보훈처의 일부 재정지원을 받아 2006년 아디스아바바市 아픈쵸버르 공원內에 참전용사회관 및 기념탑을 각각 건립했다.
  
   에티오피아는 6.25전쟁에 지상군을 파견하였다. 1950년 8월에 1개 대대를 새로이 편성하여 1951년 4월까지 영국군 교관의 지도하에 전투 훈련을 실시하였다. 당시의 에티오피아군은 황실 근위대의 역할만 수행하고 있었으므로 野戰(야전) 전투 능력은 갖추고 있지 못하였다. 영국군으로부터 훈련을 마친 이 대대는 ‘카그뉴 대대’라고 命名(명명)된 후 1951년 5월 6일에 부산에 도착하였다. 7월11일 경기도 가평으로 이동하여 美 제7사단에 배속된 후 적근산 전투에서부터 전투에 참가하였다. 이후 화천 문동리와 김화 일대에서 큰 戰功(전공)을 세워 美대통령으로부터 부대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요전투는 다음과 같다.
  
  *적근산 삼현 전투(700ㆍ602 고지, 1951. 9. 21~22)
  이 전투는 에티오피아 대대가 적근산 동쪽에서 주 저항선을 방어하고 있던 중, 대치중이던 중공군 제200사단의 前哨(전초)진지인 700고지와 602고지를 공격한 전투이다. 이 대대는 첫날의 공격에서 700고지는 점령하였으나 602고지는 탈취하지 못하였으며, 두 번째의 공격에서 치열한 격전을 치른 끝에 602고지를 점령한 후 이 두 고지에 구축해 놓은 방어 시설물을 파괴하고 복귀하였다.
  
  *삼각고지 부근 전투(598고지, 1952. 10.21~25)
  이 전투는 全전선에서 고지 쟁탈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을 때, 이 대대가 김화 북쪽 삼각고지 부근에서 중공군 제45사단과 치른 전투이다. 이 대대는 10월14일부터 실시한 김화 북쪽 고지 쟁탈전에서 삼각고지-상감령 일대를 점령한 美 제7사단의 삼각고지 방어 계획의 일환으로, 10월21일부터 삼각고지 서쪽 지역과 그 후방에 배치되어 동 고지의 방어력을 보강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이때, 삼각고지에는 美 제7사단 제32연대의 2개 대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 후, 삼각고지를 점령당한 중공군이 10월23일 야간에 2개 연대 병력을 투입하여 역습을 감행함으로써 이 고지에서 격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 대대는 이 전투에서 중공군 대대 규모의 공격을 격퇴하여 사단이 삼각고지 방어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 대대는 10월 25일 이 전투 지역을 한국군 제2사단에 인계하였다.
  
  *요클ㆍ엉클 고지 전투(연천 서북쪽, 1953. 5. 19~20)
  이 전투는 에티오피아 대대가 연천 북쪽 천덕산(477m) 전방의 주 저항선을 방어하던 중, 그 전초 고지인 요클·엉클 고지에서 중공군 제23사단과 치른 전투이다. 이 대대는 5월19일과 20일 야간에 대대 규모의 중공군으로부터 양 전초 고지와 주 진지 일부에 대한 공격을 받고 한때 전초 고지 일부분이 점령되었으나, 포병 지원 화력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고 백병전으로 적을 격퇴하여 진지를 회복하였다.
  
   휴전 후, 에티오피아 대대는 단계적으로 철수를 실시하여 1965년 1월에 철수를 완료하였다. 참전기간 중 전사 121명, 부상 536명 등의 인명 피해를 입었다. 참전 16국중 유일하게 포로가 없었을 정도로 끝까지 싸웠다. 에티오피아는 1951년 5월6일 한국에 들어와 1965년 1월 철수 때까지 평균병력 1170명 규모의 1개 보병 대대를 1년 단위로 교대 참전했다 1953년엔 동두천에 보화교육원을 건립, 1956년까지 한국인 고아들을 돌보기도 했다.
  
  
   글: 金東鉉(조갑제닷컴 기자)
   사진: 金永勳(프리랜서)
[ 2010-03-25, 14:1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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