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安艦(천안함)의 격침
이젠 대한민국의 沈沒(침몰)을 막아야 한다.

李長春(정치평론가․ 전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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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26일은 대한민국의 위대한 건국 영웅 李承晩의 탄신 135주년이었다. 그를 위한 국가 차원의 추모가 없었던 바로 그날 저녁에 104명의 한국 해군이 탑승한 天安艦(천안함)이 백령도 부근에서 격침된 참사가 발생했다. 국가 차원의 비탄을 금할 수 없는 불상사이다.
  
   軍艦(군함)은 외교관과 마찬가지로 국가를 상징하며 그 지위가 국제법상으로 인정되는 중요한 국가기관이다. 軍艦의 격침은 충분한 전쟁이유(casus belli)가 된다. 천안함의 침몰은 지극히 엄중한 사건이다. 國家의 威信(위신)과 명예를 걸고 대처하지 않으면 國家의 存在를 위태롭게 하는 事端(사단)이 될 수 있다.
  
   누가 무엇으로 天安艦을 격침시켰는지의 객관적 진상 규명은 永久未濟(영구미제)가 될 公算(공산)이 크다. 이런 사건은 재판 등에 의한 제3자적 해결이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 대통령의 목숨을 앗아갈 뻔했고 그 각료 4명 등 21명을 살해한 1983년의 아웅산 테러와, 1988년의 서울올림픽으로 가던 1987년 11월 버마 인근 상공에서 폭발한 KAL-858機 테러는 - 下手者의 증언에 따라 - 그 진상을 밝힐 수 있었다. 그 주범은 둘 다 北韓정권이었고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平壤을 강하게 규탄했다. 그 후 몹시 멍이 든 北韓은 東西冷戰의 종식을 따라 죽을 고비를 넘기며 死地를 헤매고 있다.
  
   天安艦의 침몰을 平壤의 소행으로 단정할 수 있는 確定的 직접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事件의 본질로 볼 때 객관적으로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증거를 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니깐 六感으로 平壤을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사건에 관련된 狀況的 간접증거와 사건에 대한 李明博정권의 괴이한 對應(대응)이 平壤의 소행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지난 40여년에 걸쳐 平壤은 여러 번 爆破(폭파)테러로 南韓을 괴롭혔다. 그 때마다 그 배후를 平壤으로 지목했던 六感은 모두 틀리지 않았다. 남북관계를 다루는 데 필요한 상식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六感은 대단히 중요하다.
  
   平壤의 金正日이 내려 보낸 잠수함정이 쏜 魚雷의 공격을 받아 天安艦이 침몰되었다고 볼 수 있는 狀況的(상황적) 증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김태영 국방장관은 4월 2일 國會에서 天安艦이 북한의 잠수정에 의한 [魚雷] 공격으로 침몰했을 가능성에 대해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답변했다. 그는 또한 “지난 달[3월] 24일부터 27일까지 북한의 군항 중[의] 한 곳에서 잠수정 2척이 보이지 않은 적이 있다”고 말했으며 북한의 사라진 잠수정들이 天安艦의 침몰과 관련이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한국의 最高국방당국자가 행한 深重한 證言이다.
  
   둘째 天安艦의 함장 최원일 중령은 그의 배가 두 동강 난 직후 ‘피격 당했다’고 2함대사령부에 보고했다. 가장 중시해야 할 증언의 하나이다.
  
   셋째 3월 26일 저녁에 남북은 상당한 규모의 군사작전을 벌인 것이 분명하다. 한국 해군의 초계정 束草艦은 동일 23시 경 레이더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미확인 물체를 발견하고” 76mm 주포 130여발을 5분간 퍼부었다. “自衛權 차원”에서 그랬다고 군의 고위당국자가 말했다. 그래놓고 그 미확인 물체가 새[鳥類] 떼이었다고 나중에 해명하는 것은 의혹을 증폭시킬 뿐이다.
  
   넷째 2010년 3월 26일 21시 21분 58초 백령도의 事故 해역에서 리히터 지진계로 震度 1.4 내지 1.5의 지진파가 관측되었다. 天安艦이 침몰하기 시작한 시간이 정확하게 나왔다. 北敵에 의한 고의적 폭발이 아니었다면 그런 지진파를 생성한 원인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한편, 李明博정권의 얄팍한 對應은 金正日의 지령 하에 天安艦이 격침되었다는 心證을 불식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굳혀 준다.
  
   청와대는 애초 “北이 연관되지는 않은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랬던 것이 얄팍한 대응을 자아낸 禍根(화근)이다. 權府의 그런 반응을 받들어 - 가장 개연성이 많은 魚雷에 의한 격침 가능성을 배제하고 - 각종 억측이 난무하게 되었다. 내부 폭발설․ 암초 충돌설․ 기뢰 폭파설․ 금속마모 파열(fatigue fracture)설 등으로 구구하다. 남한의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나타난 國論의 첨예한 분열처럼 平壤을 따르는 從北(종북)세력이 떼를 쓰는 모습이 꼴사나울 정도이다.
  
   天安艦의 通信기록과 열상카메라(TOD)로 찍은 그 최후의 映像(영상) 전부를 공개할 수 없다고 하여 疑惑(의혹)을 샀고 생존한 승조원들을 모두 軍병원에 입원시켜 놓은 바람에 그들의 재갈을 물린다는 비난의 소리가 나왔다. 처음부터 北敵이 연관되었을 개연성에 무게를 두었더라면 군사기밀의 공표 압력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李明博 대통령은 이상의 상황적 證據를 무시하며 청와대의 괴이하고 얄팍한 對應이 빚어낸 국민적 不信을 경시한다. 그는 기본적으로 天安艦의 침몰을 적당히 덮고 조용히 넘어가고 싶다. 사건 발생 후 1주일이 지난 어제 4월 1일 그는 “북한이 개입된 증거나 情況이 아직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공격까지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조사하겠다고 말하면서 “만에 하나 섣불리 북한의 소행이라고 단정지을 경우”를 우려한 것에 비춰 보면 그의 스탠스는 여전히 안이하다. 그가 말하는 대로 “과학적으로 정밀하게 조사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회담을 위한 회담에 불과한 ‘北核6자회담’과 소위 남북정상회담의 괜한 드라마 및 G-20정상회담 등의 ‘이벤트外交’를 핑계로 북한의 “反撥“과 외교적 파장을 걱정한다.
  
   한국의 最高指導部가 예사로 거짓말을 하고 다랍게 비겁하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처음부터 天安艦의 침몰이 ‘北의 소행으로 感知된다’는 식의 운을 띄우고 사태를 수습하는 데에는 상당한 고통과 부담이 따른다. 그러나 그것을 피하고 于先(우선) 안이한 길로 가면 나중에 비싼 代價를 치러야 한다. 天安艦의 침몰을 따라 비등해지는 국민적 憤怒(분노)와 국가안보상의 危害보다도 ‘이벤트外交’가 더 중요한가? 대통령은 國軍최고사령관이다. 북한의 反撥(반발)이 두려워 專門직업 집단인 軍의 指導部를 허수아비로 만들어야 하는가?
  
   李明博정권은 형사 피의자로 조사를 받던 자가 자살했을 때 國民葬을 치러주고 北韓의 핵무장을 방조한 자가 노환으로 죽었을 때 國葬을 베풀어주었다. 멀쩡하게 국가의 體統(체통)을 갉아먹고 국민의 心氣를 괴롭히더니 이번에는 - ‘햇볕’의 亞流로 - 그 정체성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天安艦의 침몰을 적당히 덮고 조용히 넘어가면 큰 國難(국난)을 자초할 수 있다. 그것을 따라 초래될 수도 있을 大韓民國의 沈沒을 막아야 한다. - 끝 -
  
  
[ 2010-04-02, 23:5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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