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병사에게는 어머니가 있다”(T.G.PAGE)
유엔기념공원(부산광역시 남구 대연 4동 779번지)을 찾아/‘2300基(기)의 무덤과 세 분 대통령의 기념植樹(식수)’

金東鉉(조갑제닷컴)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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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한유엔기념공원’은 유엔군 묘지의 최신 명칭이다. 이전 명칭은 ‘재한유엔기념묘지’, 그 이전엔 ‘유엔군 묘지’다. 처음 이름이 가장 짧고 정확한 표현인 듯하다.
  
  기념공원의 입구로 들어가면 바로 앞에 지붕이 거의 땅에 닿을 듯한 모양의 집, 추모관이 보인다. 자원봉사자인 듯한 60대 남성이 “처음 오셨으면 비디오를 한 번 보시라”고 권해서 추모관 내부로 들어갔다.
  
  
  
   30~40명이 모여 앉을 수 있는 크기의 깔끔하고 아담한 방이었다. 작은 교회당 같기도 한 이 집은 駐韓(주한) 프랑스대사관, 삼일빌딩을 설계한 건축가인 金重業(김중업) 선생의 작품이다. 사진기자와 둘이서 15분 가까이 유엔기념공원 안내 비디오를 보았다. 한글 자막으로 시작하는 첫 장면을 여자 聲優(성우)가 읽어내려가는데 뭉클했다.
  
  “모든 병사에게는 어머니가 있다. 병사들의 희생은 그들 어머니의 가슴 속에 아직도 고통과 슬픔으로 남아있다. T.G.PAGE”
  
  서울에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니 스물둘의 아들을 이곳에 묻은 호주인 어머니 페이지 여사가 이곳을 몇 번 다녀간 뒤 남긴 글이었다. 비디오의 내용은 6·25남침전쟁의 발발과 유엔군의 參戰(참전) 경위를 소개하고, 세계 21개국에서 175만 4400명의 군인이 참전해 4만896명이 죽은 사실을 소개했다. 이어 4만5000여 평 공원의 각 구역별 안내를 한 뒤 ‘내가 한참을 생각하게 만든’ 말로 마무리했다.
  
  “역사는 시간과 함께 달려가고 세월과 더불어 사라져 갑니다. 그러나 지울 수 없고 지워지지 않는 그늘, 피와 눈물로 젖어야 했던 그늘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나는 21개국 참전 기념비를 대충 다 돌아본 뒤 부산의 유엔기념공원을 찾았었다. 그간 숱한 碑文(비문)을 접한지라 이 공원에서 뭐 새로운 감동을 받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두어 시간 동안 공원 곳곳을 보면서 이 마지막 말 ‘지워지지 않는 그늘, 피와 눈물로 젖어야 했던 그늘’이란 말을 곰곰 씹었다.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관리소에 들어가 추모관에서 본 비디오를 한 장 사서 서울로 가져와 다시 들었지만 내용이 틀림없었다. 墓域(묘역)에 안장된 사람들을 ‘피와 눈물로 젖어야 했던 그늘’로 표현했다면 나는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陽地(양지)의 삶’을 산 셈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엔기념공원의 홈페이지(www.unmck.or.kr)에는 이 공원의 조성역사가 상세히 실려 있다. 일부를 요약한다.
  
  <이곳 유엔기념공원은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로, 유엔군 전몰 장병들이 잠들고 있다. 이곳 묘지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듬해인 1951년 1월 , 전사자 매장을 위하여 유엔군 사령부가 조성하였으며, 같은 해 4월 묘지가 완공됨에 따라 개성, 인천, 대전, 대구, 밀양, 마산 등지에 假埋葬(가매장)되어 있던 유엔군 전몰장병들의 유해가 안장되기 시작했다
  
  1955년 11월 대한민국 국회는, 유엔군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이곳 토지를 유엔에 영구히 기증하고, 아울러 묘지를 성지로 지정할 것을 결의했다 . 1955년 12월15일, 한국정부로부터 국회의 결의사항을 전달받은 유엔은, 이 묘지를 유엔이 영구적으로 관리하기로 유엔총회에서 결의문 제 977호를 채택하였다. 그후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에 의해 관리되었으나, 1974년 언커크가 해체됨에 따라, 관리업무가 11개국으로 구성된 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 위원회(Commission for the UNMCK)에 위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7년 10월24일엔 근대문화재로 등록(등록문화재 제359호)됐다.
  
  1951~1954 년 사이에 이곳 유엔기념공원에는 21개국 유엔군 전사자 약 1만1000여명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었으나, 벨기에,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그리스, 룩셈부르크, 필리핀, 태국 등 7개국 용사의 유해 전부와 그외 국가의 일부 유해가 그들의 조국으로 移葬(이장)되어 현재는 유엔군부대에 파견중 전사한 한국군 중 36명을 포함하여 영국(885), 터키(462), 캐나다(378), 호주(281) 등 11개국 2300具(구)의 유해가 잠들어 있다.
  
  가장 많은 전사자가 발생한 미국의 경우, 전쟁 중 전사한 3만6492구의 유해는 모두 본국으로 이장되었으나, 휴전 후 한국에 주둔해 있던 유엔군(미군) 중에서 이곳에 안장되기를 희망한 이들 중 36명이 현재 이곳에 안장되어 있다.>
  
  
  
  공원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뉜다. 언덕 제일 위에 상징구역이 있고 그 밑으로 2300基(기)가 배치된 主(주)묘역, 그 아래로 ‘유엔군 위령탑’ 등 顯忠(현충) 시설들이 모여 있는 공간으로 나뉜다. 상징구역은 참전 21개국과 대한민국 국기, 유엔기가 年中(연중) 게양되어 있으며, 상징적인 의미로 11개국 유해의 일부 또는 전부의 묘역이 있다. 유엔 기념공원 사진에 늘 나오는, 각 나라 국기가 펄럭이는 공간이다.
  
  
  
  
  
  主(주)묘역은 호주, 캐나다, 네덜란드, 터키, 영국, 미국 등 7개국 병사들의 유해가 안장된 묘역이다. 각 나라별로 구역이 나뉘어 있다. 무덤마다 故人(고인)의 기록을 담은 묘비가 놓여 있다. 군번 밑에 이름을 적고 부대명과 계급, 죽은 날짜와 당시의 나이만 적어놓았다. 나라별로 모으다 보니 대게 나라별로 기념물도 별도로 만들어 놓았다. 1998년 11월 호주 조각가가 기증한 호주 기념비는 서편 호주묘역, 캐나다 한국참전 기념사업회가 기증한 캐나다 기념동상은 2001년 11월 캐나다 묘역에 설치되었다.
  
  
  
  
  
  터키 여단은 묘역 서편에 2개의 기념비를 세웠으며 그 중앙에는 그리스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하였으나 항공기 사고 등으로 유해를 찾지 못한 386명 용사들을 추모하는 英연방 위령탑은 1965년 5월 영국정부가 건립하였으며 묘역 낮은 동편에 위치하고 있다.
  
  
  
  유엔군 위령탑,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 등 현충시설들은 主묘역 아래쪽에 만들었다. 1978년 한국정부가 건립한 ‘유엔군 위령탑’의 題號(제호)는 朴正熙(박정희) 前대통령의 친필이다. 흰색 탑의 탑 내부에는 한국전에서 전사한 유엔군 전몰장병들의 명부가 소장되어 있다. 정면엔 비둘기 문양이, 벽면엔 각국별 전투지원 내역과 전사자 숫자가 동판에 새겨져 있다.
  
  
  
  2006년 유엔데이 날인 10월24일 개장한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에는 6·25남침전쟁 당시 사망한 4만895명의 전사자(실종자 포함)의 이름이 알파벳 순서 국가별, 개인별)로 새겨져 있다. ‘우주를 뜻하는 원형수반에는 전몰영혼들이 머무는 하늘과 명비 그리고 보는 이들이 담겨 있으며 수반 안에는 전쟁을 상징하는 철모가 맞은편에서 평화로운 연꽃으로 승화하는 뜻을 표현하고 있습니다’는 설명이 붙었는데 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쟁기념관에 이미 있는 사망자 명부를 왜 이곳에 다시 써놓아야 하는지 의아했다. 내겐 感動(감동)이 없는 조형물이었다.
  
  
  
  主묘역과 현충시설이 있는 녹지지역의 경계 도로에 폭 0.7m, 길이 110m 가량의 水路(수로)가 있다. 도은트 수로로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전사자 중 최연소자(17세)인 호주병사(J. P. DAUNT)의 성을 따서 지은 것이다. 수로 안에는 200여 마리의 물고기와 수련 등의 수생식물이 있다. 이 수로가 삶(녹지지역)과 죽음(묘역) 사이의 경계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6·25남침전쟁 60주년을 맞는 올 6월25일에는 유엔기념공원에서 대규모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이 방문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유엔기념공원을 찾은 역대 대통령은 李承晩(이승만) 尹潽善(윤보선) 朴正熙(박정희) 前대통령 등 세 분이다. 그분들의 기념식수는 지금도 잘 자라고 있다.
  
  
  
  3월 초순의 쌀쌀한 오전, 墓域(묘역)을 구경하고 나오는데 입구 한켠에서 묘역內 造景(조경)을 마치고 온 10여명의 인부들이 웃통을 반쯤 벗고 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쉬고 있었다. 이들의 땀 덕분에, 부산에 멋진 공원이 하나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글: 金東鉉(조갑제닷컴 기자)
   사진: 金永勳(프리랜서)
[ 2010-04-05, 11: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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