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時(전시)엔 야전병원…戰後(전후)엔 ‘국립의료원’ 건립에 기여
의료지원국 참전비(부산 영도구 동삼동 산14), 스웨덴군 참전비(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503), 노르웨이군 참전비(경기 동두천시 상봉암동 산 38-1), 이탈리아군 참전비(서울 영등포구 신길4동 210)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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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구 동삼동에 위치한 태종대는 영도의 남동쪽 끝 구릉지역으로, 울창한 숲과 기암 괴석으로 된 海蝕(해식) 절벽 및 푸른 바다 등이 조화를 이루는 전국적으로 소문난 명승지다. 태종대 입구의 왼쪽 낮은 언덕엔 ‘의료지원국 참전비’가 있다.
  
  
  
  
  
  
  이 기념탑은 한국전쟁시 유엔의 결의와 적십자정신에 의거 의료지원단을 파견하여 유엔군과 한국군의 전상자 치료 및 난민구호에 공헌한 덴마크, 인도, 이탈리아, 노르웨이, 스웨덴 등 다섯 나라의 숭고한 업적을 찬양하고 길이 기념하기 위하여 1976년 9월22일 건립됐다. 조각가인 李逸寧(이일영) 전 남산미술원장의 작품이다. 碑文(비문)은 아래와 같다.
  
  ‘한국전쟁 시 유엔의 결의와 적십자 정신에 의거 의료지원단을 파견하여 유엔군과 한국군의 전상자 치료 및 난민구호에 공헌한 덴마크, 인도, 이탈리아, 노르웨이, 스웨덴 다섯 나라의 숭고한 업적을 찬양하고 길이 기념하기 위하여 이 비를 세운다.’
  
  
  
  이 참전비 뒷면에는 의료지원단을 보낸 다섯 나라의 派韓(파한) 略史(약사)와 역대 지휘관들의 이름이 나라별로 새겨져 있다. 6·25 전쟁 기간 중 스웨덴은 160명 규모의 적십자 병원, 인도는 제60야전병원, 덴마크는 병원선 1척과 의료진, 노르웨이는 60병상 규모의 이동외과병원, 이탈리아는 제68적십자병원 등 의료지원단을 파견했다. 참전기간 중 전후방 각지에서 부상병 및 한국민들을 위한 진료와, 휴전 후 전후 복구를 위해 서울에 국립의료원을 설립하는 등의 지원을 했다. 의료지원국의 인명피해는 노르웨이의 경우 3명이 사망했으나 그외 국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참전 다섯 나라의 활약상을 소개한다.
  
  
  1. 스웨덴
  
  
  
  
  
  스웨덴은 영세중립국이었으나 최초로 의료지원단을 한국에 파견한 국가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6월 28일 한국 군사원조를 결의하자 7월 14일 1개 야전병원단의 파견을 유엔에 통보하였고, 스웨덴 적십자사는 보름도 채 못 되는 단기간에 의사 10명, 간호원 30명, 기타 기술행정요원을 포함한 160명으로 구성된 야전병원을 편성하여 1950년 9월 28일 한국에 파견하였다. 스웨덴 적십자병원은 초기에는 美제8군에 배속되어 200병상 규모의 이동 야전병원으로 운영될 계획이었으나 부상자의 숫자가 급증하자 10월 초 450병상 규모의 후방병원으로서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이 병원은 전쟁기간 중 부상 군인의 치료를 담당하였으며, 전선이 소강 상태에 있을 때는 민간인 환자의 진료와 한국 의료진에 대한 의료기술 지원을 실시하였다. 스웨덴 의료지원단은 휴전 후에도 계속 임무를 수행한 후 1957년 4월에 귀국하였다.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503, 서면 로터리의 롯데백화점 코너에 스웨덴 참전비가 있다. 인근의 장사하는 사람들도 위치를 잘 모를 정도로 구석에 박혀 있다. 병원이 있던 이 자리에 1971년 10월1일 스웨덴 야전병원협회 및 스웨덴 한국협회가 이 비석을 세웠다. 碑文(비문)은 스웨덴어, 한글, 영어로 새겨졌다.
  
  ‘1950년 9월23일 이곳 부산에 설치되었던 유엔군 산하의 스웨덴 야전병원은 대한민국의 자유수호를 위해 1950-1953년간 한국전쟁에 참가했다. 이를 기념하고 스웨덴 왕국과 대한민국 양국 국민간의 영원한 친선을 위해서 이 기념비를 바치노라’
  
  스웨덴 의료지원단은 휴전 후에도 계속 임무를 수행한 후 1957년 4월에 귀국하였다.
  
  
  2.덴마크
  
  덴마크는 1951년 3월 7일에 의사, 간호원, 그리고 의료종사원으로 구성된 100명 규모의 병원선 유틀란디아호를 한국에 파견하였다. 이 병원선은 최초에는 부산항에 위치하면서 수시로 전방을 이동하여 환자진료를 실시하였으나, 1952년 가을부터는 인천항에서 의료지원을 실시하였다.
  
  부산항에 입항한 후 2회에 걸쳐 승무원의 교대와 의약품의 수령을 위하여 본국까지 왕래하였으며, 이 병원선이 승무원의 교대차 본국으로 귀환시에는 벨기에·이디오피아·프랑스·그리스·네덜란드·터키·영국 등에 기항하면서 해당국의 戰死傷者(전사상자) 및 송환된 포로를 후송하였다. 이 병원선은 휴전 후인 1953년 8월 16일에 복귀하였다
  
  3. 인도
  
  인도는 1950년 11월 20일에 의사 14명, 행정관 1명, 보급관 1명, 위생병 329명으로 구성된 제60야전병원을 한국에 파견하였다. 이 병원은 인도 공수사단 편제상의 부대로서 공수훈련을 받은 장병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므로 공수작전 지원능력도 보유하고 있었다.
  
  부산에 도착한 제60야전병원은 2개 제대로 나뉘어, 본대는 영연방 제27여단에 배속되어 영국군을 직접 지원하였으며, 분견대는 대구에 주둔하면서 한국 육군병원을 지원하는 한편, 한국 민간인에 대한 진료도 실시하였다. 이 병원은 1951년 7월 28일에 영연방 제1사단이 창설됨에 따라 이 사단의 야전병원으로 그 임무를 수행하였다. 특히, 인도 야전병원의 1개 공수의무분대는 1951년 3월 23일 문산에서 실시된 미 제187공수연대전투단의 공수작전에 참가하여 이 부대에 대한 의무지원을 제공하였다.
  
  휴전 후, 제60야전병원은 한국에 파견된 인도군의 포로송환관리단에 통합되어 이들을 지원하였으며, 1954년 이들과 함께 귀국하였다.
  
  
  4. 노르웨이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산 38-1 자유수호평화박물관 내 야외공원에 위치한 노르웨이군 참전비는 유엔군 참전비 가운데 유일하게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봐야 하는 곳이다. 원래 이 참전비는 동두천시 하봉암동 298번지 신천변에 있다가 1998년 水害(수해)를 입어 2000년 11월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이다. 국철 1호선 소요산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다. 차로 갈 경우 소요산입구 주차장에 주차료를 내고 다시 박물관 입장료를 내야 비석을 볼 수 있다. 매주 월요일은 박물관이 휴무라 야외의 이 참전비도 관람 불가다. 기단 1m, 비석 높이 1m로 비석엔 노르웨이 국기와 ‘놀웨이 참전비’란 글만 새겼다. 기단의 동판에 이 비석을 세우게 된 경위가 적혀있다.
  
  ‘이 비는 놀웨이 정부가 서기 1951~54년까지 6·25 당시 수많은 부상장병과 민간 전쟁고아를 구원의료 사업으로 봉사하여 양국간 우정을 증진했고 우리나라에 깊이 공헌을 하였기에 함께 일하였던 종업원 70명이 당 병원 입구에 정성을 모아 비를 세움. 1972.3.30. 종업원 대표 정상철’
  
  노르웨이는 1950년 당시 안전보장이사회의 비상임 이사국으로 유엔이 의료지원 부대의 파견을 요구하자 적십자사를 통하여 의료지원 부대의 파견을 계획하였고 1951년 6월 22일에 의무 및 행정요원 83명으로 구성된 60병상 규모의 이동외과 병원(장교 5명, 사병 74명, 군의관 15명, 간호원 14명, 의사 2명)이 한국에 도착하였다. 그후, 6·25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하여 병력이 추가로 보충되어 근무 인원이 106명으로 증가되었다. 공식 명칭도 노르웨이 육군 이동외과 병원(NORMASH)이었다.
  
  이 병원은 미 제8군 사령부의 계획에 따라 미 제1군단 지역인 서울 북방 19km에 위치하여, 미 제1군단 예하 각 사단에 대한 의무지원을 실시하였다. 이 병원은 그밖에도 여유가 있을 때는 주변 한국 민간인을 진료하였으며, 휴전 후에는 귀국 시까지 주로 민간인 진료를 실시하였다. 이 병원요원은 6개월 단위로 교대되었으나 100여명이나 연장 근무를 지원하였으며, 延(연) 근무 인원은 623명이었다. 1954년 10월18일 귀국했다.
  
  
  5. 이탈리아
  
  
  
  
  
  서울 지하철 1호선 노량진이나, 대방역에서 507번 버스를 타면 신길동 우신초등학교 건너편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영등포역 2번출구로 나와 15분쯤 걸어 우신초등학교 4거리 방향으로 오면 된다. 사거리 바로 옆쪽 육교 부근에 학교가 있어 찾기 쉽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4동 210번지에 있는 우신초등학교 校庭(교정)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념비가 있다.
  
  ‘1951년 10월16일부터 1955년 1월30일까지,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한국 국민들을 구급하기 위하여, 이탈리아 적십자사의 68 야전병원이 국제연합군의 일원으로, 이 장소에서 인본주의적 활동을 전개하다. 이를 기념하여, 1989년 6월 2일, 그라치엘라 심볼로띠 주한 이탈리아 대사가 이 비를 설치하다’
  
  당시 駐韓(주한) 이탈리아 대사가 만든 이 비석은 우신초등학교 西館(서관) 벽에 붙어있었는데 1999년 7월 그 건물을 철거하게 되자 국가보훈처에서 지금의 자리로 이전 건립했다.
  이탈리아는 6·25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유엔 회원국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1950년 8월 국제적십자연맹이 6·25전쟁의 전상자 치료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것을 각국 적십자사에 호소하자 이탈리아는 의료지원 부대의 파견을 결정하였다.
  
  이탈리아 적십자사는 의무 장교 6명, 행정관 2명, 약제사 1명, 군목 1명, 간호원 6명, 사병 50명으로 구성된 제68적십자 병원을 편성하여 1951년 10월16일 대량의 의약품과 부수기재를 가지고 수송선편으로 이탈리아를 출발하였고, 1개월 동안의 긴 항해 끝에 11월16일 부산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 속에 부산에 입항하였다. 이로써 이탈리아는 6·25전쟁에 전투 및 의료지원 부대를 파견한 국가 중 마지막 국가로 기록되었다. 이 병원은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하여 유엔군 장병에 대한 진료 활동과 한국 민간인에 대한 진료도 실시하였다. 휴전 후에는 민간인 진료 및 구호업무를 실시하였다.
  
  이 병원은 1952년 8월에 근무 교대가 있었으며 연 근무 인원은 128명이었다. 1955년 1월 2일에 귀국하였다.
  
  6.25전쟁 당시 의료지원단을 보낸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3국은 환자 진료와 의료요원의 교육 훈련을 목적으로 한국 정부, UNKRA(국제연합한국재건단)와 함께 종합병원을 세우기로 합의하여, 1958년 10월 서울 증구 을지로6가 17~18번지에 국립의료원(National Medical Center)을 개원하였다. 1958년 서울 증구 을지로6가 17~18번지에 메디컬센터(현 국립중앙의료원)을 개원한다. 1968년 한국정부로 이양되기까지 국립의료원은 외국의 유수한 의료진과 근대적인 장비를 갖춘 현대적인 병원으로서 한국의학사의 전환기를 이루었음은 물론, 온 국민의 신뢰와 명성을 갖춘 의료기관이었다.
  
  
  [1958년 10월2일 국립중앙의료원(서울시 중구 을지로)에서 열린 낙성식]
  
  
  
  
  
  
   글: 金東鉉(조갑제닷컴 기자)
   사진: 金永勳(프리랜서)
[ 2010-04-07, 15:1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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