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 “인생 걸고 정치 버린다”
역사를 위한 기록 : 소위 진보인사 문제발언록 (32)

金成昱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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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 강원도지사. 18대 민주당 국회의원
  
  ▲“북한인권법은 북한주민들의 실질적인 인권 증진에 기여하기는커녕 오히려 이 법 제정으로 인한 남북관계 경색의 장기화, 체제위협을 의식한 북한주민들에 대한 통제 강화 등을 초래하여 북한주민들의 실질적 인권을 억압할 수 있는 反북한주민법...이 법은 ‘뉴라이트 지원법’이다. 북한인권 증진이라는 미명 아래 대북 삐라·풍선 살포단체들을 지원하기 위한 것”
  
  ※ 출처 : 2010년 2월11일 ‘북한인권법 외통위 전체회의 날치기 처리 규탄 성명서’. 이 성명에는 민주당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인 김충조, 박상천, 박주선, 송민순, 신낙균, 이광재, 이미경, 정동영, 정세균 등이 참가했다.
  
  ▲“재판 결과든 실체적 진실이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 새 인생을 위해 정치를 떠날 것이고 인생을 걸고 정치를 버리겠다”
  
  ※ 2009년 3월26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정대근 前농협회장으로부터 2억2000만원 상당의 不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을 때 나온 발언. “인생을 걸고 정치를 버리겠다”는 약속은 반 년 가까이 이행되지 않았고, 이광재氏는 1심 선고 직전인 같은 해 9월9일에 가서야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다. 그는 “의원직을 버리겠다는 당초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봉하마을로 내려가 자원봉사 활동을 하며 지낼 것”이라고 밝혔었다.
  
  이광재氏의 결백주장은 법정에서 인정되지 않았다. 서울 중앙지법은 2009년 9월24일 李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억4814만원 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날 박 前회장이 베트남 회사와 서울 모 호텔에서 건넨 美貨(미화) 10만 달러와 정대근 前농협중앙회장이 건넨 2만 달러 수수혐의에 대해 供與者(공여자)들의 구체적 진술이 나왔고, 식당 신용카드 전표, 朴회장 여비서의 다이어리 등 여러 정황 증거가 있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이광재氏는 선고 직후 “朴회장으로부터는 돈을 받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지금도 결백하다고 생각한다.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李씨는 “인생을 걸고 정치를 버리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지만 2010년 6·2지방선거에 출마해 강원지사에 당선됐다. 李씨는 강원지사 당선과 별개로 1심, 2심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민주당 최철국 의원이 주도하는 ‘수소 등 특정고압가스를 풍선 및 애드벌룬에 주입해 용도에 맞지 않게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는 고압가스 안전관리법 개정안 발의에 참가할 것”
  
  ※ 출처 : 2008년 11월24일 보도자료. 탈북자단체의 對北전단 살포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한 ‘對北전단 살포 처벌’ 법안 공동발의하며 나온 주장.
  
  ▲“全斗煥 정권은 철권을 휘둘렀다. 저항의 강도도 더해갔다. 주변의 선배와 친구들이 하나씩 죽어갔다. 학생회관에서 떨어지는 학생도 있었고, 제 몸에 불을 지르는 학생도 있었다. 1986년 신림동 4거리에서 서울大 김세진과 이재호가 분신을 시도했다. 몸에 불이 붙어 비틀거리면서 구호를 외쳤다. 떨어진 간판에 살점이 녹아 내렸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나도 투신과 분신을 생각했다. 그 생각은 망령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그러나 나는 죽을 용기가 부족했다. 죽지는 못하지만 사는 한 포기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태극기 하나를 샀다. 손가락을 잘라 태극기에 혈서를 썼다.
  
  ‘절대 변절하지 않는다’
  
  나는 그 피 묻은 태극기를 이화여대 선배에게 건넸다. 나를 지켜봐 달라고”
  
  ※ 출처 : 자서전 ‘우통수의 꿈’ 中. 이광재氏는 주사파, 즉 김일성주의 조직인 연세대 ‘구국학생동맹’ 핵심간부로 활동했었다. 그는 대학시절 스스로 오른손 둘째손가락을 잘랐고 이로 인해 군대를 면제받았다. 그는 1985년 身檢(신검)을 받고 2급 현역입영대상 판결을 받지만1986년 입대한 뒤 ‘右手(우수) 제2수지 지절결손’으로 곧바로 귀가 조치됐다. 그는 이듬해인 1987년 11월18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입건돼 1988년 3월11일 징역2년,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2년 刑이 확정됐지만, 같은 해 12월21일 특별 사면된다.
  
  이광재氏의 斷指(단지)사건을 특종 보도한 2005년 6월호 월간조선은 이광재氏와 경쟁했던 한나라당 金龍學(김용학) 후보의 증언을 싣고 있다. 내용은 이렇다.
  
  “여러 후보들이 ‘당신 손가락이 왜 없느냐’고 따져 묻자, 李의원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계속 질문이 이어지자 李光宰 후보는 ‘우울해서 잘랐다’고 짧게 대답했다. 하도 어이가 없는 답변을 해서 다른 후보들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 2010-10-05, 10:0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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