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구, “北, 사회주의 택해 민족정통성 충족”
역사를 위한 기록 : 소위 진보인사 문제발언록 (34)

金成昱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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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姜禎求) : 동국대 명예교수. 통일연대 지도위원. 한국전쟁당시민간인학살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한국전규명위) 대표. 베트남전민간인학살진실위원회(베트남위원회) 대표
  
  “6·25는 통일전쟁이자 내전...집안싸움인 통일내전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한 달 이내에 끝났을 테고 우리가 실제 겪었던 그런 살상과 파괴라는 비극은 없었을 것...전쟁 때문에 생명을 박탈당한 약 400만 명에게 미국이란 생명의 은인이 아니라 생명을 앗아간 원수...맥아더는 남의 집안싸움인 통일내전 사흘 만인 27일 한국전선을 시찰하고, 미국 정부에 개입을 요구하고, 곧바로 소사 등에 폭격을 감행한 전쟁광이었다...맥아더 동상도 함께 역사 속으로 던져버려야 한다” (2004년 7월27일 인터넷매체에 올린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
  
  <“南은 외세종속, 北은 자주와 주체의 나라”>
  
  “(국가정통성 문제에 대해) 북한이 남한을 능가한다...북한의 김일성 정권은 높은 수준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이승만 정권은 정통성은 물론 권력행사정당성도 부재했다”(2002년 출판 ‘민족의 생명권과 통일’)
  
  “(북한의 공산화 숙청을 가리켜 ‘완벽한 일제잔재숙청’으로 표현하며) 이로써 북한은 권력뿌리정당성에서 남한을 훨씬 능가했다...(북한이) 사회주의를 사회구성체로 채택한 점은 민족정통성을 충족한 것으로 볼 수 있다”(2002년 출판 ‘민족의 생명권과 통일’)
  
  “사회주의 지향성이 해방공간 조선사회의 보편적 현상이고 민족사의 필연에 가까운 것임을 확인하였다...그러나 이 내재적 역사행로는 미군정의 거대하고 야만적인 억압에 의해 남쪽에서는 좌절됐다. 그리고는 종속적 자본주의로 강제됐다. 이 과정에서 조선인의 엄청난 희생이 따랐고 민중의 생존권은 처참하게 짓밟혔으며 민족사적 핵심과제는 실종돼 반역사적 행로를 걷게 됐다...그렇지만 북한에서는 조선사회 고유의 내재적 민족사행로를 걸어갈 수 있었다”(2002년 출판 ‘민족의 생명권과 통일’)
  
  “한국전쟁에서 침략개념은 바로 미국이 타국의 순수내전에 무력개입한 행위에서 찾아야 한다. 이러한 미국의 침략행위로 한국전쟁은 대량의 파괴와 살육이 난무하는 민족재앙으로 치달았다...미국이 개입하지 않았을 경우 몇 주 이내 북한주도로 민족통일이 이뤄졌을 것임을 입증한다...김일성에게 전쟁발발 책임을 지우는 것은 한국전쟁의 총체적 구도를 포착하지 못한 것....민족해방전쟁에서 민족해방세력이 몰락의 위기에 몰린 10월 말 중국인민군이 참전하여 완전히 새로운 전쟁이 돼버리고...”(2002년 출판 ‘민족의 생명권과 통일’)
  
  “미군과 이승만정부의 군과 경찰 및 비정규무장대에 의해 100만이 넘는 민간인이 학살됐다...인민군, 빨치산 및 지방좌익에 의한 피학살자는 주로 친일파, 친미파, 민족반역자, 경찰관, 반공연맹원 등 주로 우익반동분자로 분류된 사람들이다. 남한정부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12만 9천명이 학살됐다...남한 내 민간인학살은 대부분 이승만정부의 주도 아래 이뤄졌으며 소규모적으로 미군과 북한군에 의해 이뤄졌다...북한이 통일과 민족해방을 성취하려는 애초의 전쟁성격에는 학살과 만행, 파괴행위 등 전쟁범죄는 배제돼 있었다. 김두봉은 눈물을 흘리면서 인민군 군관에게 제한무력에 의한 통일전쟁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며 국방군에게 적대행위를 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
  
  ※ 姜교수의 이 같은 주장은 완전한 거짓이다. 6.25 당시 양민학살은 인민군 치하 ‘바닥빨갱이’로 불리는 빨치산들에 의한 「인민재판」형태로 진행됐다. 빨치산들이 6·25당시 인민재판을 통해 학살한 양민의 수는 13만으로서 남경대학살, 바르샤바 게토(Warsaw Getto)의 유태인학살과 함께 20세기 세계적 학살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다. 소위 미군과 국군 등에 의한 100만 학살설은 좌익이론가들 사이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선동논리에 불과하다.
  
  <“6.25는 민족해방전쟁, 미군은 침략군”>
  
  “만경대 정신으로 통일을 이루자”(2001년 8·15 축전행사 당시 남측 대표단 일원으로 방북해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 방명록에 남긴 글)
  
  “主體思想(주체사상)은 단순한 사상이 아니라 이론과 방법, 실천이 통합된 삶의 방식에 대한 지침...북한사회의 지도원리이고 동시에 사회조직원리인 主體思想은 인민대중을 중심에 놓고 혁명과 건설의 주체는 인민대중이며 이들을 추동하는 힘이 인민대중에 있다는 인민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바탕으로 두고 있다. 따라서 인민대중의 이익과 권리가 실현되는 것이 원리적으로 가장 우선시된다...비록 지금 이러한 어려움이 있지만 이것 때문에 主體思想이 지향하고 있는 인민성이나 주체성 등 목적성과 지도적 원칙 그 자체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96년 출판 ‘통일시대의 북한학’)
  
  “해방이후 반세기 南北(남북)을 비교할 때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가 外勢從俗(외세종속)의 나라와 自主(자주) 또는 主體(주체)의 나라라는 대비”(96년 출판 ‘통일시대의 북한학’)
  
  “주한미군은 주권과 자주권을 침해하는 결정적 요소...주한미군의 철수쟁취는 마치 난공불락의 성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패배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베트남민족해방전쟁에서 민족해방전선(NLF 베트콩)이 구정공세(Tet Offensive)로 미국여론을 자극하여 反戰(반전)운동에 불을 지핌으로써 미국의 군사력을 무력화시킨 역사적 교훈을 거울삼아야 할 것이다”(칼럼 ‘주한미군 철수를 위하여’)
  
  
[ 2010-10-06, 04:2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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