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선, “북한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역사를 위한 기록 : 소위 진보인사 문제발언록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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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통일시대민주주의국민회의 공동대표(1994), 16, 17대 국회의원. 17대 국회 정무위원장(2007).
  
  “PSI에 따른 해상 검문, 검색과 해상봉쇄는 원치 않는 물리적 충돌을 불러올 위험성이 있다. 무력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대북제재나 봉쇄와 같은 강경정책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일방적인 봉쇄와 압박은 제2, 제3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북핵사태의 해법은 대화와 협상이며 하루속히 미국과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마주앉기를 촉구한다. 포용정책은 과거 50년 간의 냉전과 대결 정책의 실패로부터 얻은 값진 교훈의 성과물이다. 포용정책의 성패는 위기 상황에서도 대화 창구를 열어놓고 있느냐의 여부로 판단하는 것이지 위기 상황의 발생 여부로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2006년 10월 13일 프레시안, PSI 반대 성명)
  
  “10월 15일 금강산을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북한의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사업 등 경제협력과 인도적인 지원을 비롯한 대북포용정책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국정감사라 의원들이 모두 바쁘지만 민족의 생사가 달린 문제라 시간을 내기로 했다” (2006년 10월 13일 프로메테우스, 핵실험 직후 금강산 방문 일정 발표)
  
  “현재 軍장성들이 과거 군부정권 아래서 지도력을 키운 사람이기 때문에 큰 문제” (2004년 7월 19일 연합뉴스, 북한 경비정의 북방한계선(NLL) 침범 보고누락 논란 관련 발언)
  
  “해방이후 지금까지 한국의 학생운동은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노력해왔다. 때때로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고 국민여론과 유리되기도 했으나 그 비판의 열정과 변화의 에너지는 이 나라를 전진시키는 추동력이 되어왔다. 한총련 대학생들의 모습에 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격려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때이다. 한총련은 1997년 이적단체로 규정된 이래 매년 수백명의 대학생이 정치수배자가 되는 고통을 겪어왔다. 그동안 대학생들을 옭아매던 이적규정의 굴레를 벗고 미래지향적 학생운동의 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이제 국가와 사회가 문을 열어져야 한다” (2003년 4월 18일 프레시안, 한총련 합법화 촉구 성명서)
  
  “대한민국 국민이 사망한 중대사건임에도 불구, 한국정부가 사법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불평등한 SOFA 규정은 다시 개정돼야 한다. 특히 1차 형사재판 관할권을 미군측이 갖고 있어, SOFA 개정없이는 신효순.심미선양 사건의 판결같은 부당한 재판결과를 막을 수 없다” (2002년 12월 3일 연합뉴스, 여중생 장갑차 사건 관련 미국 대사관에 항의서한 전달)
  
  ※ 여중생 장갑차 사건은 미군의 ‘공무중 과실치사’였다. 비공무중 범죄가 아닌 공무중 과실치사에 대해서는 주둔군측에서 자체 재판권을 가지는 것이 보편적이다.
  
  정리 : 김주년
[ 2010-10-19, 23:0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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