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의 名物 수오멘리나 요새
스웨덴, 러시아, 핀란드의 역사를 느낄 수 있고, 평화로운 바다를 향해 있는 녹쓴 대포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고, 전망 좋은 음식점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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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머문 세 번째 날 아침 호텔 프론트 근무자에게 "오늘 어디를 구경 갔으면 좋은지 추천해줄 곳이 없느냐?"고 물었다. 여직원이 반문하였다.
  
  "수오멘리나 요새를 가 보셨어요?"
  안 갔다고 하자 그는 "자신 있게 권합니다"라고 했다. 더구나 유네스코 문화 유산에 등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증수표이다.
  
  헬싱키 항구에서 배를 타니 15분 만에 요새에 닿았다. 짧은 항해이지만 헬싱키를 바다에서 바라보는 재미가 있다. 스칸디나비아 4개국의 수도는 모두 항구이다. 헬싱키, 스톡홀름, 오슬로, 코펜하겐. 이들 도시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야 제대로 보인다. 바다에서 바라본 헬싱키 시가지의 풍경 속에서 視野(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루터교회와 러시아正敎 교회 건물이 마주 보면서 兩立(양립)하고 있는 모습이다. 루터교회는 스웨덴의 영향, 正敎 교회는 러시아의 영향을 상징한다.
  
  수오멘리나 요새는 1748년 핀란드가 스웨덴 속국일 때 러시아를 막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북쪽의 지브랄탈이란 별명을 얻었다. 두 섬으로 구성된 요새를 구경하면서 한 바퀴 도는 데는 하루가 걸린다. 벙커, 포대, 잠수함, 박물관, 兵營(병영), 교회 등 볼 것도 많고 쉴 곳도 많다.
  
  러시아의 알렉산더 1세는 1808년 나폴레옹과 우호조약을 맺은 뒤 스웨덴을 공격, 이듬해 핀란드를 빼앗아간다. 이 스웨덴 요새는 그때 러시아 군대로부터 수개월간 포위된 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항복하였다. 그 뒤 러시아는 터키를 상대로 한 크리미아 전쟁 때 프랑스와 영국을 敵(적)으로 돌린다. 1854년 8월9일 英佛(영불) 연합함대는 이 요새를 향하여 2만1000발의 함포 사격을 퍼부었다. 요새의 대포는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고 얻어맞기만 하였다. 英佛軍은 상륙작전을 하지 않고 물러났다. 1906년 7월30일엔 요새 수비군이 러시아와 핀란드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을 받아 군사반란을 일으켰다가 즉시 진압되었다. 78명의 반란군이 피살되고 처형되었다. 핀란드가 1917년 12월에 독립을 선언한 직후 벌어진 內戰이 끝나자 이 요새는 포로로 잡힌 공산주의자들을 수용하는 감옥 역할도 했다. 1만 명에 육박하는 포로가 수용되었다. 그 가운데 10%는 수용중 질병 등으로 사망하였다. 2차 대전중엔 단 한 차례 러시아 공군의 폭격을 받았을 뿐이다.
  
  러시아군이 만든 正敎 교회는 언덕 위에 있다. 바다쪽에서 요새를 보면 가장 눈에 뜨이는 건물이다. 핀란드가 독립한 후엔 루터교회로 개조되었다. 이 교회는 등대로도 쓰인다. 교회가 등대로 쓰이는 세계에서 유일한 경우라고 한다. 헬싱키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곳이다. 스웨덴, 러시아, 핀란드의 역사를 느낄 수 있고, 평화로운 바다를 향해 있는 녹슨 대포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고, 전망 좋은 음식점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 2010-11-07, 16:5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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