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꾼, 장사꾼, 재주꾼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이야기.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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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유엔개발기구(UNDP)가 발표한 2010년 세계 '삶의 질' 국가별 순위에서 한국은 스위스, 프랑스, 덴마크 같은 서방 선진국들을 젖히고 169개국중 12등으로 수직상승하였다. '삶의 질'(Human Development Index) 평가는 교육수준, 평균수명, 국민소득(구매력 기준)을 합산하여 생활 수준을 채점하는 방식이다. 法治나 安保 같은 요소는 직접 반영되지 않는다. 아시아 국가로선 한국이, 11위인 일본 다음이었다. 노르웨이가 올해도 1등이었다. 한국은 오스트리아,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 싱가포르, 영국보다도 앞섰다. 작년보다 14등이나 올랐다. 이는 금융위기로 유럽 나라들이 곤란을 당하고 있는 데 비하여 한국이 빠르게 회복했고, 국민소득을 구매력 기준으로 계산한 덕분인 듯하다. 구매력 기준 한국인의 1인당 소득은 2만9618 달러로 평가되었다.
  한국이 높게 평가 받은 가장 큰 이유는 교육열이다. 국내에선 교육亡國論이 드세지만 외국에선 한국의 교육열을 부러워한다. 외국에선 공부를 안해서 걱정이고 한국에서 너무 많이 해서 문제가 생긴다. 행복한 고민일 수 있다. 구매력 기준으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8등인데, 삶의 질 랭킹은 12등이었다. 이는 한국이 소득수준에 비하여 교육과 의료가 좋다는 뜻이다. 북한은 통계부족으로 조사대상에 들지 못하였다.
  
  
  
  삶의 질 순위에서 늘 上位에 오르는 나라는 바이킹을 조상으로 하는 스칸디나비아(핀란드는 바이킹 나라가 아니지만 지리적으로 인접, 같은 문화권에 포함) 5개 국가이다. 이번에도 1등에 노르웨이, 9위에 스웨덴, 16등에 핀란드, 17등에 아이슬란드, 19등에 덴마크가 올랐다. 20등 안에 5개국이 다 들어감으로써 超一流국가임을 다시 한번 實證한 것이다.
  
  지난 8월 뉴스위크가 선정한 '태어나면 성공 가능성이 높은 나라 랭킹'에서도 北歐 4國이 10 등안에 들었다.
  
   1. 핀란드
   2. 스위스
   3. 스웨덴
   4. 호주
   5. 룩셈부르크
   6. 노르웨이
   7. 캐나다
   8. 네덜란드
   9. 일본
   10. 덴마크
   11. 미국
   12. 독일
   13. 뉴질랜드
   14. 영국
   15. 한국
   16. 프랑스
   17. 아일란드
   18. 오스트리아
   19. 벨기에
   20. 싱가포르
   21. 스페인
   22. 이스라엘
   23. 이탈리아
   24. 슬로베니아
   25. 체코
   26. 그리스
   27. 포르투갈
   28. 크로아티아
   29. 폴란드
   30. 칠레
  
  
  세계에서 1인당 資産(자산)보유액이 가장 많은 나라는 노르웨이이다. 행복도가 가장 높은 나라는 덴마크. 고급문서 해독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스웨덴, 2등은 덴마크, 3등은 노르웨이, 6등은 핀란드. 국가경쟁력 순위는 덴마크가 5등, 스웨덴이 6등, 핀란드가 9등, 노르웨이가 11위. 공무원들의 청렴도는 덴마크가 세계 2위, 스웨덴이 4위, 핀란드가 6위, 노르웨이 11위. 남녀평등 지수는 1위가 아이슬란드, 2위 핀란드, 3위 노르웨이, 4위 스웨덴, 7위 덴마크. 민주주의 성숙도는 1위가 스웨덴, 2위 노르웨이, 3위 아이슬란드, 5위 덴마크, 6위 핀란드이다. 정치, 경제, 교육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北歐 4개국이 늘 10位圈에 든다.
   스칸디나비아, 특히 노르웨이 이민자들은 미국에서도 사는 곳마다 좋은 환경을 만든다. 미국의 노르웨이 移民者들은 약460만 명으로 本國 인구와 같다. 본국 인구보다 많은 미국 이민자를 낸 나라는 아일란드뿐이다. 노르웨이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주는 미네소타(16%), 노스 다코타(30%), 사우스 다코타(16%), 몬타나(12%), 위스콘신(9%)이다. 미국에서 만나는 백인 50명중 한 명은 노르웨이 사람이다. 이들은 주로 中北部 지방에 많이 산다. 스칸디나비아 4개국 출신 이민자는 약1200만 명이다.
  
   미네소타주는 노르웨이를 포함한 스칸디나비아 출신들이 32%, 독일계가 38%이다. 미네소타는 주민들의 건강상태가 52개주 중 1등이라고 한다. 범죄발생율은 52개주 중 14번째로 낮은 편이다. 미국에서 미네소타주 출신이라면 모범생으로 통한다.
   노르웨이 사람들이 많이 사는 노스 다코타는 범죄발생률이 52개주중 중 세번째로 낮아 안전한 곳이다. 사우스 다코타도 9등, 위스콘신이 8등, 몬타나는 7등이다.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미국에 와서도 本國처럼 호수가 많고 추운 주에 모여 산다. 미네소타주는 별명이 '1만 개의 호수를 가진 땅'이다. 노르웨이 이민자들은 모여 살면서 문화적 전통을 이어가고 本國과 연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칸디나비아 3국은 6.25 남침 전쟁 때 우리에게 의료지원을 해준 나라이고 국립의료원을 지어주었다. 그뿐이 아니다. 1953년부터 2008년 사이 이루어진 海外입양 중 미국으로 입양된 아동의 수는 총 10만8222명으로 전체의 3분의 2를 구성하고 그 다음이 프랑스 1만1165명, 스웨덴 9297명, 덴마크 8702명, 노르웨이 6295명 순서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 다음으로 해외입양을 많이 수용하는 나라는 스웨덴으로 세계 130개국에서 4만5000명을 입양하였는데, 인구 비율로 보면 세계 최대 입양국이다. 미국 내에서도 스칸디나비아系 미국인들이 해외 입양을 많이 받아들이는데, 미네소타주에는 1만5000-2만여 명의 한국아동이 입양되었다. 이 수치는 미네소타주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절반 수준에 달한다고 한다.
   스칸디나비아 3國의 인구는 합쳐서 2000만 명 정도이다. 이들이 '새 아들 딸'로 받아들인 한국의 고아들은 2만4300여 명이다. 노르웨이는 약400명의 탈북자들을 받아들였다. 아직도 고아들을 외국으로 入養시키는 우리 한국인으로선 머리가 숙여질 따름이다.
  
  
  분단, 전쟁을 겪은 세계 最貧國이던 한국이 60여년만에 '삶의 질' 세계12위국으로 올라선 것은 세계사에 남을 만한 기적이다. 1000년 전에 유럽에서 가장 낙후되었던 바이킹族이 超一流국가를 건설한 것도 경이로운 일이다. 야만과 文明의 한 척도는 높은 사람이 죽으면 노예나 종을 죽여 같이 묻는 殉葬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지증왕은 서기 502년에 殉葬을 금하는 명령을 내렸다. 바이킹은 유럽에서 가장 늦게까지 순장을 했다. 기독교를 가장 늦게 받아들인 것과 관련이 있다.
  
  이들의 殉葬풍습에 대한 기록을 남긴 이는 이븐 파들란이라는 아랍인이다. 그는 992년 볼가江邊(강변)에서 목격한 러시아 부족장의 장례식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러시아는 스웨덴 바이킹이 슬라브族을 정복하여 그 기초를 놓은 나라이다. 러시아란 말은 '루스'라는 스웨덴 말에서 나왔다.
   한 바이킹 部族長이 죽자 가족이 남녀 노예들(아마도 슬라브族이었을 것이다)을 모아놓고 "누가 따라 죽을래?"라고 묻는다. 한 여자 노예가 殉葬을 자원한다. 그때부터 다른 노예들은 이 여자를 감시한다. 생각이 바뀌어도 봐주지 않는다. 장례식까지 여인은 매일 술을 마시면서 노래를 부른다. 좋은 일을 기다리는 듯하다.
   장례식 날, 사람들은 배를 강변에 끌어올려놓는다. '죽음의 천사'란 별명을 가진 비대한 여자가 장례식을 주재한다. 땅에 묻어두었던 부족장의 屍身(시신)을 다시 꺼내와 옷을 입힌다. 배에는 천막을 치고 그 안으로 屍身을 가져가 安置(안치)한다. 마치 산 사람을 대하듯 먹을 것과 입을 것을 屍身 옆에 쌓아둔다.
   사람들은 개와 닭을 잡아 고기를 배로 던진다. 따라 죽게 되어 있는 여인은 여기 저기 쳐진 천막을 돌아다니면서 부족장의 부하들(家長)과 性交를 한다. 그들은 "주인에게 이야기하라. 주인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서 이렇게 한다고"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여인을 배로 데리고 간다. 여인은 목걸이를 벗어 '죽음의 천사'에게 준다. 많은 사람들이 나무로 만든 방패를 들고 와서 여인을 에워싼다. 여인에게 술을 먹인다. 여인은 노래를 부른다. 통역자는 아랍인 이븐 파들란에게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방패를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여인의 비명을 구경꾼들이 듣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여섯 명의 남자가 배에 올라탄다. 여기서 또 여인과 性交를 한다. 여인을 부족장 屍身 옆에 눕힌다. 남자들이, 여인의 두 팔과 다리를 붙든다. '죽음의 천사'가 여인의 목을 끈으로 맨다. 두 남자가 끈을 당겨 질식시키는 순간 '죽음의 천사'는 굵은 칼로 여인의 갈비뼈 사이를 여러 번 찌른다. 부족장과 가장 가까운 친척이 와서 배에 불을 지른다. 사람들이 차례로 불쏘시개를 배에 던진다. 배가 불길에 휩싸인다.
  
   이런 식의 殉葬이 사라진 것은 11세기 초 바이킹들 사이에 기독교가 확산되면서이다. 노예제도도 사라졌다. 기독교에 의한 文明化가 시작된 것이다. 기독교를 가장 늦게 받아들인 바이킹족이지만 16세기 초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자 맨 먼저 신교를 받아들였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사람들은 1530년대부터 루터교로 改宗, 유럽 新敎세력의 보루가 된다. 17세기 전반의 30년 종교전쟁 때 독일의 新敎徒를 구원한 것은 (프랑스의 후원을 받은) 스웨덴軍이었다.
  
  
   인류역사상 몇 번인가, 민족적 에너지의 대폭발이 있었다. 이 대폭발은 대정복이나 큰 전쟁으로 이어졌다.
   서기 전 4세기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大王이 페르샤, 중앙아시아, 인도를 원정하였다. 서기 4~6세기 지금 독일, 헝가리 등지에 살던 게르만族이 훈족의 침략을 받아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로마 문명권으로 밀려들었다. 로마가 무너지고 게르만族이 유럽의 주인공이 되었다. 비슷한 시기 몽골 고원에 살던 유목민족이 중국, 한반도, 일본열도로 南下, 여러 나라를 무너뜨리고 여러 나라를 만든다.
   서기 7~8세기 아라비아 사막에서 일어난 이슬람 세력이 中東, 이란,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北岸, 그리고 지중해를 넘어 스페인까지 점령하였다. 3개 대륙에 걸친 이슬람 문화권과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서기 8~11세기의 이른바 바이킹 시대. 스칸디나비아에 살고 있던 바이킹이 날렵하게 생긴 긴 배를 몰고 유럽을 공격, 정복, 정착한다. 프랑스의 노르망디, 이탈리아 남부와 시실리, 시리아 해안 지대, 러시아의 母胎가 되는 키에프, 그리고 영국, 아일란드, 아이슬란드, 그린란드를 점령하였다. 오늘날의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아이슬란드는 바이킹족이 건설한 나라이다. 영국과 아일란드도 바이킹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다. 11세기 후 영국 王家는 바이킹族 출신인 정복왕 윌리엄 1세의 후손들이다.
   서기 13세기. 몽골고원에서 일어난 징기즈칸과 후손들이 기마軍團을 앞세우고 前無後無한 대제국을 유라시아 대륙에 걸쳐 건설하였다. 중국, 러시아, 중앙아시아, 중동이 몽골계 帝國의 圈域이 되었다. 서기 15~16세기.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만들어가기 시작하였다. 17세기. 네덜란드 사람들이 세계의 바다를 주름잡으면서 北美,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인도 등지에 근거지를 남겼다. 19세기. 영국이 막강한 海軍力을 바탕으로 세계의 4분의 1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20세기엔 독일이 두번의 세계大戰을 일으키고 미국과 소련이 이 전쟁을 통하여 2大 강국으로 등장하였다가 미국의 一極체제로 종결된다. 21세기는 중국과 인도의 國力이 대폭발하는 세기가 될 것이다. 한국이 자유통일하면 남북한을 합쳐셔 7300만 인구(유럽에 놓으면 독일, 러시아 다음이 된다)를 갖게 됨으로 여기에 가세할 것이다.
  
  
  바이킹이 유럽으로 쳐들어갈 때나 그린란드와 北美대륙을 탐험할 때 사용한 배는 흔히 '롱십'(Long Ship)으로 불린다. 가늘고 긴 船體(선체)이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의 여러 박물관에서는 발굴된 배를 진열해놓고 있다. 가장 유명한 배는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다. 오슬로 대학 부설 '바이킹 배 박물관'에 세 척의 롱십이 있다. 이 가운데서도 오제베르크 高墳(고분)에서 발굴된 배가 가장 유명하다. 바이킹 배를 설명할 때 보여주는 사진은 거의 이 배를 찍은 것이다. 길이 22m, 너비와 높이가 각 5m인데 原型대로 거의 보존되어 있다. 이 배가 발견된 고분에선 20代와 60代의 여인 두개골도 나왔다.
  지난 5월에 박물관에 간 필자가 세어보니, 배의 양쪽엔 15개씩 모두 30개의 노 젓는 구멍이 나 있었다. 30명이 노를 저었다는 이야기이다. 최고 시속은 18km로 추정된다. 배는 참나무와 소나무로 지었다. 木材(목재)에 고래기름을 발랐다. 서기 800년 前後(전후)에 만들어진 배라고 한다. 여자 유골이 있었다고 하여 '여왕의 배'로 불린다. 바이킹 배는 앞뒤가 없다. 약탈을 한 뒤 서둘러 돌아와 배를 돌리지 않고 빨리 도망갈 수 있게 한 것이다.
   두 여인 중 한 명은 다른 한 명을 위하여 殉葬(순장)된 것으로 보이는데 어느 쪽인지는 알 수가 없다고 한다. 20代 여인의 염색체를 조사한 결과 이란人을 조상으로 둔 것으로 추정되었다. 금속 이쑤시개를 쓴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로 보아 상류층이었을 것이다. 60代 여인은 癌(암)으로 죽었는데 호르몬 분비 장애를 겪어 남자처럼 보였을 것이라고 한다. 이들이 매장된 연도는 서기 834년으로 추정되었다. 열네 마리의 말과 소 및 개들의 뼈들도 발굴되었다. 고크스타드에서 발굴된 배도 전시되어 있는데, 길이가 23.24m, 너비가 5.2m이다. 32명의 노 젓는 사람 등 40명이 정원이지만 70명까지 탈 수 있었다. 시속 20km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배의 복제판을 만들어 노르웨이의 베르겐에서 미국까지 항해한 적도 있다.
  
  
   1945년생인 필자 世代는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덴마크에 대하여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컸다. 지금도 달가스, 그룬트비히 같은 덴마크의 교육자와 농업운동가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덴마크가 19세기 후반에 프러시아에 敗戰(패전)한 후 어떻게 국민정신을 바로 세워 나라를 再建(재건)하였는가, 잘 사는 농촌을 어떻게 만들었는가? 교사들이 열정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쳤다. 서울농대 柳達永(유달영) 교수 같은 분들이 덴마크 이야기를 책으로 써 소개하기도 하였다. 5·16 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朴正熙 정부도 농촌 개발에 덴마크의 사례를 배우려 하였다.
   그래서 덴마크는 농업국가, 평화로운 나라, 그러나 약한 나라로 알려졌다. 유럽에서는 덴마크라고 하면 ‘무서운 바이킹의 나라’란 인상이 강하다. 8세기 말에서 11세기 말까지의 약 300년 간 유럽 기독교 문명권을 강타한 海洋민족 바이킹族의 중심은 덴마크에 살던 바이킹이었다. 노르웨이 바이킹은 탐험과 개척, 덴마크 바이킹은 전쟁, 스웨덴 바이킹은 장사를 主특기로 하였다.
  
   노르웨이 바이킹은 아일랜드, 영국을 침공하더니 아이슬란드, 그린란드를 개척하고 지금의 캐나다 동해안에까지 건너갔다. 덴마크 바이킹은 대부대를 조직, 정복에 나섰다.
  유럽의 현존 王家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덴마크 王家이다. 965년 덴마크의 해랄드王은 부하 바이킹들과 함께 原始(원시)신앙을 버리고 기독교로 改宗(개종), 통일왕국을 만들었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일부까지 통치하게 되었다. 자연히 동원력이 강해졌다. 그들은 잉글란드 정복에 注力하였다. 그 전 9세기 초부터 덴마크 바이킹들은 北海를 건너와 잉글란드를 공격하기 시작, 동부 지방을 점령하였다. 잉글란드 사람들도 이에 대응, 뭉치기 시작하였다. 알프레드 대왕이 나타나 덴마크 바이킹들을 무찌르고 협상이 성립되었다. 잉글란드의 동부지방 통치권을 바이킹에게 주는 대신에 바이킹들은 잉글란드 왕에 충성을 바치고 기독교로 改宗하기로 하였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의 노르망디 지역을 점령한 바이킹과 프랑스 왕 사이에 맺어진 약속과 같은 조건이었다. 덴마크 바이킹에게 주어진 公國(공국)은 데인로(Danelaw)라고 불려졌다.
  
   알프레드가 죽은 뒤 잉글란드와 덴마크는 다시 전쟁으로 들어갔다. 10세기 전반 잉글란드는 덴마크 바이킹들을 내몰고 失地(실지)를 수복하는 듯하였으나 덴마크 本國에서 원정군을 보냈다. 덴마크의 스벤 왕(해랄드왕의 아들)은 北歐(북구)의 强者(강자)였다. 그는 1014년에 잉글란드를 완전히 정복하였다. 그의 아들 카누트는 大王으로 불린다. 1017-1035년 사이 카누트 대왕은 지금의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일부, 그리고 영국(잉글란드)으로 국성된 大帝國(대제국)을 다스리는 사람이었다.
  
   카누트 대왕과 그의 아들이 죽자 잉글란드를 다스리던 덴마크 바이킹은 잉글랜드의 王位를 알프레드王의 후손 에드워드에게 물려주었다. 에드워드가 후계자 없이 죽자 노르웨이의 해롤드 할드라다 왕은 자신이 잉글랜드의 왕을 겸하고 싶어서 1066년 원정군을 보냈다. 이때 도버 해협 건너 노르망디 公國의 윌리엄公(그 또한 덴마크 바이킹의 후손)도 왕이 되고싶어 수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잉글란드에 상륙하였다. 영국 귀족을 대표한 색슨族 출신 해롤드는 먼저 노르웨이 원정군을 스탬포드 다리에서 맞아 전멸시키고 노르웨이 해롤드 王까지 죽였다. 잉글란드軍의 다음 상대는 노르망디에서 건너온 군대였다. 하스팅스에서 벌어진 결전에서 노르망디의 윌리엄공이 이겼다. 잉글란드군은 강행군으로 너무 지쳐 있었다.
  
  윌리엄公의 영국 점령은 영국의 進路(진로)뿐 아니라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대사건이다. 노르망디 사람들이 영국의 새로운 귀족층이 되었다. 이들은 先住民(선주민)인 앵글로-색슨 귀족과 융합하여 오늘날 영국의 王家 및 귀족들의 先祖(선조)가 된다. 노르망디 사람들이 쓰던 프랑스어가 英語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 노르망디 사람들에 의하여 유럽 대륙의 로마-라틴系 문명이 영국에 많이 들어온다. 영국과 유럽을 이어준 것이다. 윌리엄 1세와 후손들은 고향인 노르망디의 領有權(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중엔 프랑스의 왕자리까지 탐하게 된다. 14~15세기 프랑스-영국 사이 백년 전쟁의 불씨가 된 것이다. 덴마크는 잉글랜드를 잃고도 수백년간 스칸디나비아 반도 전체를 통치하였다. 16세기까지 약 800년간 北歐(북구)의 최강국은 덴마크였다. 코펜하겐의 덴마크 국립박물관에 가 보면 帝國(제국)이 아니면 모을 수 없는 미술품들이 많다. 스웨덴도 140년간 덴마크 지배를 받았다. 16세기 스웨덴이 민족주의의 高揚(고양)으로 덴마크 지배에서 벗어나 유럽의 새 강국으로 떠오른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스웨덴 사람들을 향하여 이런 농담을 한다고 한다.
   "친구는 세지 못하면서 돈을 잘 센다."
   그만큼 理財(이재)에 밝다는 뜻이다. 스톡홀름에선 공중화장실에 들어갈 때도 한국돈으로 쳐서 1500원 정도를 내야 한다. 투숙객이 아니면 호텔 화장실도 쓸 수가 없다. 호텔에서는 실내 화장실을 잠가두고 투숙객들에게만 비밀번호를 준다. 반면 덴마크 국립박물관은 공짜이다. 스웨덴 바이킹은 장사꾼, 덴마크 바이킹은 싸움꾼이자 술꾼, 노르웨이 바이킹은 손재주가 좋아 재주꾼이라 불렸다. 덴마크 바이킹은 정복, 노르웨이는 탐험, 스웨덴 바이킹은 무역이 主특기였다.
   스웨덴 바이킹族은 러시아, 黑海(흑해), 비잔틴 제국 등 동남쪽으로 나아갔다. 이들은 볼가 강을 타고 내려가 黑海에 이르고, 지금의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두었던 비잔틴 제국과 交易(교역)하는가 하면 일부는 바그다드까지 진출, 아랍 사람들과 장사를 했다. 한때 비잔틴 제국의 황제는 바이킹족으로 구성된 경호부대를 두었다.
   스웨덴 사람들이 이때 세운 도시가 키에프이다. 키에프(우크라이나 수도)를 중심으로 발전해 간 나라가 러시아. 러시아라는 낱말은 스웨덴 바이킹의 말에서 나왔다. 러시아의 초기 지배층은 바이킹이었다.
  
  
  
  
  
[ 2010-11-10, 00:3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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