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을 미사일 표적으로 삼아야
自主국방의 나라 이스라엘 紀行(8)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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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泳三 대통령은 취임 직후 李仁模(이인모) 노인을 보내주었다. 곧 북한으로부터 좋은 답장이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지만 납북어부가 아니라 核공갈이 날아왔다. 김영삼 정부는 그 核공갈에 대해 40억 달러짜리 경수로 지원으로 대응했다. 40억 달러를 바치고도 한국이 중심적 역할을 한다는 보장도 확실하지 않는 가운데 이번엔 서둘러 쌀 15만t을 무조건 주기로 결정했다. 아무 대가도 없이 북한에 사람·쌀·돈을 주기만 하고 있다. 金대통령이 자선단체의 長이라면 그것도 괜찮은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북한의 남침으로 수백만의 국민을 잃은 적이 있고 지금도 再(재)남침 위협에 노출돼 있는 국가의 지도자가 공갈과 위협에 군사적으로 맞섬이 없이 금품을 주기만 한다면 그것은 인도주의가 아니라 조공이 된다.
  쌀을 주면서 金대통령은 국가이면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을 포기하였다. 國歌(국가)·국기·국호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상징이다. 이 상징의 사용을 둘러싸고 전쟁과 외교관계 단절까지 일어나기도 한다. 北으로 보내는 쌀에 국호표시를 하지 않고 싣고 가는 배(배는 영토이다)에 국기를 안 달기로 합의해 준 것은 金대통령이 스스로 국가 지도자임을 포기한 것과 같다(1984년 수해 때 북한은 판문점을 통해 공개적으로 원산지 표시가 된 물자를 당당하게 보냈지 않았던가).
  
  이로써 북한은, 남한이 국가가 아니라 조선인민공화국의 미수복 남반부 지역이라는 그들의 일관된 주장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金泳三 대통령이 對內的(대내적)으로는 한국 現代史(현대사)를 부정적으로 보고 對外的(대외적)으로 국가의 권위를 양보하고 있는 이 2중적 상황은 상호연관성 아래에 있다. 국가는 역사의 産物(산물)이다. 그릇된 역사관은 필연적으로 잘못된 국가관을 파생시킨다. 자기 역사를 저주하는 사람은 조국도 가볍게 보게 돼 있다.
  
  
  주석궁을 조준한 뒤 對北 협상에 임한다면…
  
  
  이스라엘은 核강국이면서도 국방정책은 철저하게 재래식 무기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군비증강 태세를 보면 核무기는 전혀 계산에 넣지 않고, 어떤 전쟁에서도 재래식 무기로써 결판을 낸다는 자세를 굳게 지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核을 믿고 부리는 태만 같은 게 없다. 安保란 2중, 3중의 안전장치라야 한다는 신념의 표현이리라. 기자는 이스라엘 북부지역 山頂(산정)에 있는 라파엘社의 미사일 개발 본부를 방문했다. 라파엘社가 개발한 空對空(공대공)미사일 파이턴(Python)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서 미국 공군에 수출하고 있다. 이날 브리핑에서 기자의 흥미를 돋운 것은 空對地(공대지)미사일 포파이(Popeye)였다. 1985년부터 實戰用으로 미국 공군에만 수출하고 있다.
  
  이 미사일은 한국 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팬텀(F-4)이나 F-16에도 장착할 수 있다. 사정거리는 100km나 된다. 이것을 발사한 전투기는 뒤로 물러나 안전한 상공에서 텔레비전 모니터로 포파이를 목표물로 정확히 유도한다. 초속 300∼400m로 날아가는 이 미사일은 입력된 좌표와 사진을 쫓아간다. 예컨대 평양 주석궁의 사진을 입력시키고 2층 오른쪽 두 번째 창문을 표적으로 선정해 놓으면 정확히 그 창문을 때릴 수 있다고 하여 ‘창문의 정확도’(Accuracy of window)로 불리고 있었다.
  
  “한국에도 팔 수 있는가”하고 물어 보았더니 “미국內 합작회사를 통해서 살 수도, 우리로부터 직접 살 수도 있다”는 대답이었다. 가격은 1개당 50만∼100만 달러라고 했다. 對北 쌀 지원 15만t의 時價가 약 2000억 원이라니 그 돈이면 수백 개의 포파이를 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포파이 미사일은 고급 표적(High valued strategic target)에 대해서 사용하는 전략 무기이다. 인민군사령부, 영변核시설, 주석궁, 金正日의 별장이나 숙소 같은 전략적 표적물에 이런 미사일을 조준시켜 놓는다면 對北협상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문제는 이런 전략적 무기를 살 수 있을 만한 의지력을 한국의 국가지도부가 갖고 있느냐일 것이다. 북한의 스커드 미사일 공격을 막기 위한 방어용 패트리어트를 駐韓미군이 들여오는 것조차 북한을 자극한다는 궤변으로써(그것도 우리 외무장관까지 맞장구를 치고) 지지한 적이 있는 한국의 일부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은 남북문제에 있어서는 항상 책임을 남측에 전가시키는 ‘블레임 코리아 퍼스트’(Blame Korea first), 즉 조국을 먼저 비난하고 보는 위선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對北관계에서 한국이 깡패에게 멱살 잡힌 사람처럼 질질 끌려 다니고 있는 근본적 이유는 국가 지도부가 의지력 싸움에서 북한에 굴복했기 때문이다. 40억 달러어치의 경수로 지원이나 2000억 원어치의 對北 쌀 지원도 본질적으로는 그런 굴복에 따른 조공품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 돈으로 차라리 군비증강을 한 뒤에 북한에 대해서 “답답한 쪽은 너희들이니…”하고 덤덤하게 기다리는 것이 우리를 위해서도 북한을 위해서도 더 나은 정책이었을 것이다.
  북한의 절박한 요구에 의해서, 그들이 고마운 심정으로 우리의 지원을 받아들일 때 북한 내부에 변화가 오는 것이지 戰利品처럼 가져갈 때 체제강화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노예의 話法
  
  
  남북대결에선 남한이 GNP 기준 세계 12위의 그 거대한 경제력을 군사력으로 변화시킬 때 북한의 굴복은 必至의 사실이 된다. ‘경제력→군사력’으로의 전환에는 국가 지도부의 의지와 국민의 희생정신이란 변환 스위치의 작동이 필요하다. 군비증강과 自主국방을 위한 부담을 국민된 당연한 도리로서 끌어안고 가려는 국민들은 많지만 북한의 억지와 국내의 좌익세력과 미국의 압력을 막아낼 수 있는 페레스-라빈과 같은 국가 지도자가 없기 때문에 “제발 받아주세요”라는 자세로써 수십억 달러의 국민세금을 북한에게 갖다 바치는 신세가 된 것이 대한민국인 것이다.
  
  페레스와 라빈, 그리고 기자가 만난 이스라엘 정치인과 군인들의 話法과 文法은 한국 정치인들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金泳三 대통령이 자주 쓰는 “우리는 북한을 흡수통일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말이나 金日成 사망 때의 토로인 “정상회담이 무산되어 아쉽다”는 식의 語法(어법)은 그들의 사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북한이 核개발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대응개발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하면 한국에선 철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데 이스라엘에선 상식이 되는 말이다. 한국 국방장관은 “북한의 핵시설에 대해서 엔테베 작전 같은 것도 연구하고 있다”고 발언했다가 정치·언론계로부터 집중포화를 맞았는데 이스라엘에선 행동으로써 보여주었다(1981년 이라크의 오시라크 원자로 폭격).
  
  한국 식자층에선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아주 고매한 도덕성과 신중함의 표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레이건 美 대통령이 현직일 때 공개석상에서 소련에 대해서 “악의 제국(Evil Empire)”이란 표현을 사용한 뒤 군비증강으로 나가 결국 소련체제의 자체붕괴를 유도했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安保문제와 관련한 한국 지도층의 話法은 독립국가 아닌 식민지 근성의 주눅 든 눈치보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북한에 대한 엄정한 자세도, 치열한 대결자적 자세도, 미국에 대한 主權국가로서의 自主的 태도도 발견하기 어려운 애매모호한 話法을 구사하는 바람에 국민들은 정부를 불신하다가는 경멸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오히려 북한이 이스라엘 지도부와 비슷한 수준의 話法으로써 남한을 갖고 놀려고 하고 있다. 1994년의 불바다 발언과 “경제봉쇄를 하면 전쟁하겠다”는 취지의 공갈은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한국의 엘리트들이 조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주인공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노예적 발상과 언어를 버리고 主人(주인)의 언어감각을 배워야 할 것이다. “미친 개에겐 몽둥이가 필요하다”는 朴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지 이제 19년이나 된다. 민족중흥의 기수가 쓰러졌을 땐 침묵하던 이들이 민족의 원수가 죽자 애도하자고 나서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것은 1994년이고 조문론을 주장한 정치인들이 야당의 지도층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은 1995년 한국의 오늘이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조국을 저주하는 발언은 자유롭고 조국을 옹호하는 발언은 不自由(부자유)하다. 애국심과 국가주의는 냉소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이다. 그런 분위기는 언어를 통해서 확산된다. 北核문제로 북한의 위협이 고조된 바로 그 시기에 한국 언론은 美-北회담을 北-美회담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남북대결에 中立은 없다
  
  
  朝鮮日報-月刊朝鮮 정도가 ‘美北’을 견지하고 있다. 北核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대표는 동정의 대상인 人民이 아니라 노동당 지배층이다. 우리 헌법 체계가 규정하고 있는 反국가단체의 간부들이다. 그들을 우리의 혈맹인 美國보다 앞자리에 놓는다는 것은 미국에 대한 예의가 아닐 뿐 아니라 교육상으로도 좋지 않다.
  金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어떤 이념이나 우방보다도 민족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엔 맞는 표기법이다. 최근 일부 기자들은 ‘한국-조선’으로 표기하자는 주장을 제기했다. 기자가 중립적 입장에 서서 남북한 양쪽을 등거리로 보겠다는 뜻이라면 그는 휴전선상에 집을 짓고 無국적을 먼저 선언해야 한다. 남북한 문제에서, 더구나 악마적 집단이자 민족의 원수인 북한노동당 지배체제를 상대하고 있는 남한에서 中立이란 있을 수 없다. 惡과 善 사이에서 중립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 2010-12-05, 22:1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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