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改憲의 권력投機'를 벌일 땐가?
권력형 改憲은 禁物(금물)이다. 헌법 ‘총칙’ 아닌 '各則(각칙)'이나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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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 長 春(전 외무부대사․ 자유평론가)
  
  1. ‘權力型’ 개헌은 더 없어야 한다
  
   가당찮은 핑계로 改憲을 감행하여 정권 재창출을 노리는 무모한 권력投機가 國難을 자초하며 한국의 어린 民主主義를 욕보일 모양이다.
  
   소위 공영 방송 KBS는 2011년 정월 초하루부터 ‘改憲에 찬성하는 쪽이 69.4퍼센트로 반대보다 훨씬 높다’고 나팔을 불었다. 그 후 나흘 만에 한나라당이 1월 중 개헌을 위한 議員총회를 가진다는 소리가 났다. 그것이 일단 불발에 그쳤지만 개헌을 위한 목소리가 크질 것 같다. 각종 방송과 이른바 ‘綜編채널‘을 따낸 재벌言論을 앞세워 소위 ’分權型 대통령제‘를 일제히 찬성하는 輿論造作으로 ’權力型 개헌‘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다.
  
   李明博(이명박) 정권의 실세 李在五 특임장관은 작년 12월 8일의 날치기國會가 끝난 이틀 후에 개헌의 각오를 비장하게 밝혔다. 그동안 심심찮게 - “각종 輿論調査를 해 보면 改憲 찬성이 60-70% 나온다"고 - 알맹이 없는 호객용 모닥불을 지펴온 그는 날치기國會로 개헌에 自信을 얻은 것 같다. 그가 - “2011년 상반기 중에는 되든 안 되든 改憲 논의를 끝내야 한다… 分權型 대통령제는 정치 일생의 마지막 소신이다"고 - 기염을 토하며 ‘客土‘를 들먹인 바로는 ‘날치기改憲’이나 모종의 정치적 冒險(모험)을 불사할 듯하다.
  
   모든 憲法은 혁명 또는 전쟁에 의한 정치적 現狀변경(political change in status quo) 또는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결과를 담은 국가의 基本法이다.
  
   민주국가의 헌법은 아무 때나 만들고 바꾸는 권력자의 專有物이 아니다. 그러므로 개헌은 - 민주주의로 가는 道程에서 마땅한 理由로 획기적 契機가 조성되어 - 국민적 컨센서스[總意]가 성립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아야 한다.
  
   한국은 - 제2차世界大戰의 결과 ‘日帝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정치적 現狀변경에 따라 - 헌법 '總則'을 제정한 이후 아홉 번이나 改定했다. 처음부터 민주주의를 위한 自律的 투쟁의 결과로 制定되지 않았을 뿐더러 - 1987년 6월抗爭에 따라 改定된 現行 헌법을 빼고는 - 여덟 번의 改定이 모두 민주주의를 위한 鬪爭(투쟁)의 결과를 구현하여 민주주의를 發展시키는 것과는 무관했다.
  
   한국은 執權세력이 맘대로 헌법 ‘總則’의 권력구조를 바꾸는 ‘權力型 개헌’을 경험할 만큼 경험한 나라이다. 그런 개헌은 더 없어야 한다. 앞으로 가능한 개헌은 - 한반도가 역사적 統一을 성취하거나 또는 한국이 自由와 民主主義를 획기적으로 신장․ 발전시키기 위한 국민적 결단을 자율적으로 내린 경우로 - 그 契機와 理由가 당연하고 정당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權力型 개헌’은 禁物이다.
  
  
  2. 지금은 결코 개헌할 때가 아니다
  
   李明博 대통령은 2010년 12월 8일의 날치기國會를 끝낸 바로 그 다음날 동남아로 가더니 말레이시아에서 “統一이 가까이 오고 있다”고 예언했다.
  
   그 후 통일에 대한 언급이 권력자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그것이 머지 않아 헛소리가 아닌 사실로 드러날 수 있음에 비추어 - 統一을 성취한 후에는 반드시 곧 改憲해야 하므로 - 지금은 결코 改憲할 때가 아니다.
  
   그런 데도 그 임기 만료가 사실상 1여년 밖에 남지 않은 5년單任 정권이 어처구니없게 엉뚱한 개헌을 시도한다. 고이 물러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國家安保가 6.25전쟁 이후 가장 심각한 危機狀況에 처해 있다”는 최고 국방당국자의 경고가 내려져 있는 상태이다. 北의 天安艦 격침과 延坪島 포격에 따끔하게 응징하지 못한 李明博 대통령은 “앞으로 北의 도발에는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北의 惡黨들이 그 말에 기겁한 나머지 가만히 엎드려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니깐 지금은 - 國家安保에 총력을 쏟을 때이고 - 결코 개헌할 때가 아니다.
  
   민주국가의 改憲은 민주주의를 위한 政治鬪爭의 산물이다. 지금의 한국은 - 한나라당의 한 간부가 최근에 “국민들은 개헌에 관심이 없는 게 분명하다”고 말한 대로 - 누가 봐도 개헌상황이 아니다. ‘民主化를 完成했다’고 自慢하는 한국에는 1987년의 현행 헌법을 바꾸기 위한 정치투쟁이 全無하다. 권위주의 시대가 남긴 ‘權力型 개헌’의 악습에 젖은 권력投機꾼들과 그 心腹들만이 야단이다.
   李明博 정권은 - 현행 헌법상 임기를 마친 ‘李明博의 一身安保’를 國家安保에 앞세우며 - 나라와 그 민주주의가 風飛雹散(풍비박산) 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개헌의 속내는 - 황금만능에 젖은 재벌 태생 권력이 정권을 사실상 연장하기 위한 꼼수로 그 얄팍한 껍질을 벗길 필요 없이 - 뻔하다. 그 출생의 ‘前科’와 秕政(비정)을 은폐하고 前 대통령 盧武鉉(1946-2009)의 자살과 같은 前轍(전철)을 회피하며 권력의 프리미엄을 계속 누리기 위한 待避所(대피소)를 만들려는 탐욕의 소치이다. 또한 정치적 怨恨(원한)에 기인한 報復의 가능성을 封鎖(봉쇄)하기 위한 포석의 底意가 짙다.
  
  
  3. 한국의 소위 ‘帝王的 대통령’이 憲法 탓인가?
  
   改憲의 핑계가 참으로 같잖고 가관이다. 李明博 대통령은 - “내가 대통령을 해보니 권력이 너무 대통령에게 集中돼 있더라”고 - 개헌의 이유를 ‘實吐’하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에 眞正性이 없는 것은 분명하다.
  
   대통령에게 쏠린 권력의 ”集中“은 제3자가 빚어낸 현상이 아니다. 대통령 스스로가 - 憲法의 權力分立 원칙과 정신에 따라 - 권력을 分散하지 않고 행정각부에 권력을 委任하지 않으며 쓸데없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憲法 타령으로 둘러댈 것이 아닌 自業自得(자업자득)을 개헌의 구실로 삼는다. 正直하지 않다.
  
   국가(state)의 頂上인 대통령이 사회(society)의 대들보인 서울대학교 총장에게 손수 임명장을 수여한다. 國家가 사회를 압도하고 있는 증거이다. 대통령이 각료와 軍의 將星(장성) 등을 포함한 고관들을 불러모아 놓고 辭令狀(사령장)을 직접 건넨다. 왕조시대의 君主나 식민지統治者답다. 先進민주국가의 實權을 가진 대통령은 - 실없는 儀典(의전)에 시간을 낭비하며 허세를 부리지 않고 - 언론 발표로 대신한다. 대통령의 결심만 서면 당장 내일부터라도 없애거나 분양(devolve)할 수 있는 한국 대통령의 권력이 한두 가지 아니다. 憲法은커녕 법률도 改定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한나라黨의 수뇌부가 - “帝王的 대통령제는 限界에 이르렀고… 5명의 전임 대통령의 末年이 불행했다… 地域感情은 망국병인데 [개헌하면] 순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 철없는 코흘리개(driveler)처럼 말한다. 소위 ‘帝王的 대통령‘은 권력이 만들어 내는 복합적 현상이다. 한국의 권력자들은 그것이 객관적 ‘制度’인 것처럼 탓하며 그 '限界'를 운위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무슨 “限界”에 도달했는지에 관해서는 말이 없다.
   개헌으로 대통령의 “不幸”을 예방할 수 있고 또한 한국의 오랜 역사에 그 뿌리가 깊은 “地域感情”을 순화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얼토당토않은 기상천외의 망상이다. 失笑를 금할 수 없는 새빨간 거짓말로 무고한 국민들을 조롱하며 개헌의 詐欺劇(사기극)을 벌이는데 능청맞다.
  
   한국의 憲法에는 ‘帝王的 대통령’이란 것이 없다. 그것은 대체로 헌법의 ‘總則'에 어긋나거나 '總則'을 능가하는 헌법의 '各則'[準헌법적 법령] 탓에 생기는 현상이다. 헌법의 '各則'은 - 국회법․ 선거법 등의 政治관계 법률과 행정부․ 司法府․ 지방자치 등 국가의 組織에 관한 법률 - 국가財政法․ 조세법 등의 경제에 관련된 법률 - 刑事訴訟法과 검찰청법 등 국가의 '合法的 폭력' 또는 스파이活動에 관련된 법령 - 비준․同意한 조약과 국제관습법 등 -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그 중의 많은 것들이 - 帝國일본의 殘滓(잔재)로 - 권력의 횡포와 오만(傲慢)을 자극하며 감싸는 根源이다.
  
   문제의 ‘各則’이 민주적으로 뽑은 무고한 대통령을 ‘帝王的’으로 만든다. 帝王的 권력의 鐵甕城(철옹성)을 허물기 위해서는 ‘帝王的 대통령’을 寄主로 여기며 그것을 지키는 권력의 眷屬(권속)들과 부단히 싸워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帝王的 대통령’을 추방할 수 없다. 실제로 민주주의에 중요한 것은 헌법의 ‘總則’ 아닌 ‘各則’이다.
  
   한국은 당분간 1987년의 憲法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民主主義의 기초와 條件을 지속적으로 확보하여 다져야 한다. 헌법 ‘總則’의 권력구조를 바꾸는 악순환에서 벗어나 헌법 ‘各則’을 과감하게 민주주의로 전환해야만 先進민주국가로 격상될 수 있다. 괜히 목적과 개념이 공허한 ‘先進化'를 황당하게 떠들어댈 것이 아니라 문제의 '各則'을 고치는 勇氣와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앞으로 한 世紀 동안은 그렇게 하는 것을 일차적 國家議題로 삼지 않고는 先進世界에 입문할 수 없다.
  
   소위 ‘民主化’에 따라 권좌에 오른 한국의 帝王的 대통령 - 盧泰愚(노태우)․ 金泳三(김영삼)․ 金大中․ 盧武鉉(노무현) - 중에서 連任했더라면 좋았을 者가 과연 누구인가? 정직한 答은 ‘5년單任制가 아니었다면 큰 일 날 뻔했다’이다.
  
   현직 대통령 李明博이 연임 못해 생기는 아쉬움이 - 그를 계승할 대통령의 重任을 허용해야 할 만큼 - 간절하나? 衆論은 결코 그렇지 않다.
  
   지난 20여년에 걸친 소위 ‘民主化’시대의 대통령들이 드러낸 리더십의 빈곤과 저질 및 反逆的 행각으로 볼 때 대통령의 5년單任制는 - 한국을 위해 천만다행한 제도로 - 그 장점이 그 단점을 압도한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民主主義는 고사하고 나라에 큰 탈이 날 뻔했다. 소위 ‘民主化’시대의 대통령들이 남기는 얼룩진 성적표와 혹심한 弊端(폐단)으로 보면 그들의 임기 5년은 짧지 않다.
  
   물론 지난 20년과는 달리 偉大한 人物이 한국의 권좌에 올라 동요 없이 나라를 위해 일하는 데에 대통령의 임기 5년은 짧다. 그런 偉人을 위해서는 대통령의 重任 금지를 아예 폐지할 만도 하다. 그러나 그럴 가망이 보이지 않는 바에야 長期집권에 대한 집요한 국민적 反對로 근 40년 만에 성취한 5년單任制에 대한 適應力을 기르면서 制度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이 백번 마땅한다. ‘4년重任이 사실상 8년單任‘으로 둔갑하여 弊政(폐정)을 自招하는 꼴이 되면 안 된다.
  
  
  4. 소위 ‘分權型 대통령제’는 나라를 거덜 낼 惡種이다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안정궤도에 올리지 못한 나라는 국가의 권력구조를 자주 바꾸는 개헌의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가운데 정치가 불안정하여 표류한다.
  
   民主主義를 위해 국가권력을 조직하는 제도의 大宗은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國會制정부(the parliamentary system of government)로 한국에서는 흔히 ‘議院내각제정부’로 불린다. 그 다른 하나는 大統領制정부(the presidential system of government)이다. 둘 다 역사가 길다.
  
   英國은 - 근 80萬 명의 희생자를 낸 英國內亂(the English Civil War of 1642 - 1651)과 명예혁명(the Glorious Revolution of 1688)을 경험하면서 - 國會制정부의 기틀을 잡은 이후로 그 권력구조를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영국은 - 王의 목을 베며 王의 권력을 빼앗아 국민의 최고 대표기관에 귀속시킨 국회주권(parliamentary sovereignty)의 나라로 - 근대 민주주의를 시작하여 발전시킨 元祖이다.
  
   王政의 역사가 긴 나라는 國會制정부에 의하지 않고 先進민주국가(the advanced democracies)의 반열에 오른 경우가 없다.
  
   英國式의 요체는 ‘政府’를 구성하는 首相과 내각이 수상의 정치적 결단 또는 국회의 불신임(no-confidence)에 따라 임기에 관계없이 물러나는 責任정치이다.
  
   美國은 - 영국의 王政에 유혈로 항거하여 自由와 민주주의를 쟁취한 나라로 - 건국 때 채택한 그 권력구조를 기본적으로 바꾸지 않았다. 본시 王과 귀족과 僧侶 등의 土着기득권 세력이 없던 北美의 신대륙에서 탄생한 미국은 大統領制정부로 세계 최대/최고의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미국은 大統領制정부를 가진 先進민주국가로는 유일하다. 선진세계에는 미국식을 제대로 따르지 않고 겉보기에만 大統領制정부를 가진 나라가 없다.
   美國式의 요체는 - ‘政府’가 법을 제정하는 立法府와 법을 집행하는 行政府 및 법을 해석/적용하는 司法府의 三府로 구성되어 - 권력을 상호 견제하며 균형을 유지하는 三權分立이다. 실제로는 國會가 행정부를 통제하는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한국의 李明博 정권이 말하는 “分權型 대통령제”는 - 한국發 신조어로 듣기에 그럴싸하나 - 널리 통하는 말이 아니다. 흔히 準대통령제정부(semi-presidential system of government)로 불리는 佛蘭西式의 권력구조에 붙인 別名이 아니고는 엇비슷한 것이 없다. 한국에서는 - 헌법상 ‘政府'의 同義語로 쓰이는 行政府를 둘로 쪼개는 것처럼 보이니깐 ‘二院制’로 혼동하여 - 왕왕 ‘二元政府制’ 또는 ‘二元執政府制’로 잘못 膾炙(회자)된다. 어느 것이든 적절한 어휘(generic term)는 아니고 민주주의를 위해 확립된 국가권력의 일반적 편성 방식이 아닌 변종(aberration)을 가리킨다.
  
   佛蘭西式 정부형태는 변태적 惡種이다. 改憲에 이력이 난 나라의 험난했던 정치사를 투영한다. 王과 왕비를 처형하며 千年王朝를 허문 ‘불란서革命은 끝나지 않았다(the French Revolution is not over)’는 말이 그치지 않는다. 소위 ‘國民主權’을 주창하여 - 왕조국가(dynastic states)를 국민국가(nation-states)로 바꾼 것으로 - 또한 三權分立을 창안하여 - 미국식 大統領制정부의 탄생을 선도한 것으로 - 민주주의의 발전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나라가 그 자체의 민주주의를 안정궤도에 올려놓지 못했다. 현행 1958년의 佛蘭西 헌법은 - 왕국과 공화국을 번갈아 악순환을 되풀이한 그 역사가 남긴 최근의 정부형태로 - 그 자체가 18번이나 개정되었다.
  
   佛蘭西는 '帝王的 공화국'이다. 그 대통령은 '매년 한 번씩' 國會를 解散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그러니깐 佛蘭西는 大統領制정부의 핵심인 三權分立을 부인하는 나라이다. 英國式이라면 '政府' 전체가 해산되어 새로 출발할 것이고 美國式이라면 적어도 2년은 - 연방국회의 중간선거 때가지 - 解散을 모르는 國會가 견제 역할을 계속한다. 특히 與大野小의 佛蘭西에서는 임기제로 직선된 '帝王的 대통령'이 제철을 만난 듯이 復活하여 권력을 휘두르기 마련이다.
  
   佛蘭西 헌법상의 소위 ‘分權’은 虛構에 불과하다. ‘任期制’로 국민이 직선한 대통령과 ‘任期制' 국회가 뽑은 국무총리[首相]에게 권력을 分散하는 佛蘭西식의 '分權’은 그 자체로 당연히(ipso facto) 실행될 수 없다. 與小野大로 경쟁하는 권력의 속성상 상호 충돌 내지 마찰이 불가피하다. 권력의 傲慢(오만)을 통제하기 위한 민주주의 本然의 分權이 아니다. 主權者의 입장에서는 - 주머닛돈이 쌈짓돈인 것처럼 - 행정부를 구성하는 大統領과 首相은 한통속이다. 그 속에서 말하는 權力의 分點은 權力플레이를 위한 양상에 불과하다. 與小野大가 되면 한 지붕 밑의 소위 同居정부(cohabitation regime)가 나라를 위해 순탄하게 작동할 리 없다.
  
   이른바 ‘分權’의 對象과 방식도 事理에 맞지 않다. 外交는 국내정치를 포함한 內治와의 함수관계(foreign policy is a function of domestic politics)에 있거늘 그 자체로 독립할 수 있는 권력이 아니다. 그 무대가 정글(jungles)인 外交는 - 모든 국가작용을 총합하여 國家利益을 추구하는 '國家藝術’로 - 强大國이 독판치며 中小國은 외교의 시늉을 낼 뿐이다. 경제력의 뒷받침 없는 國防은 종이호랑이와 같아진다. 大統領은 외교와 국방을 맡고 首相은 경제 등의 나머지 권력을 행사한다는 假說은 정치적 혼란과 國政의 "마비상태(a state of paralysis)"를 야기할 뿐이다.
  
   佛蘭西式의 準대통령제정부를 가진 나라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독립을 성취하여 민주주의를 도입한 지가 일천한 우크라이나(Ukraina) 등의 몇몇 東歐羅巴 국가 및 內戰에 시달리는 스리랑카(Sri Lanka) 등의 경우처럼 政情이 不安한 나라가 눈에 띈다. 외형상으로는 소위 ‘分權型’인 것 같은 오스트리아(Austria)와 아일랜드(Ireland)는 사실상 國會制정부 국가이고 인구 약 537萬 명을 가진 핀란드(Finland)만이 準대통령제 국가로 무난하다. 세 나라는 ‘分散할 권력’이 거의 없는 태평스런 中小國家이다.
  
   소위 ‘分權型 대통령제’로 가기 위해 佛蘭西를 벤치마킹하는 李明博 정권은 엉뚱해도 너무 엉뚱하다. 佛蘭西는 정치적으로 닮을 국가가 아니다. 근 千年 동안 구라파 대륙의 강자로 군림했던 나라가 루이 14세(Louis XIV, the Sun King, of 1643 - 1715)의 치세로 권력의 절정을 누린 以後로는 계속 내리막길로 가고 있다.
  
   佛蘭西가 共和國의 ‘宗主國’으로 걸고 있는 간판은 반드시 民主主義를 의미하지 않는다. ‘北朝鮮(North Korea as a state)’과 中國은 물론 한국을 포함하여 共和國의 門牌(문패)를 단 120개 이상의 나라 중 先進민주국가는 대여섯에 국한된다. 나머지는 짝퉁이거나 佛蘭西처럼 ‘帝王的 공화국’이다. 일찍이 몽테스뀌에(Montesquieu, 1689 - 1755)가 英國을 ‘王國으로 위장한 共和國’이라고 부른 대로 先進민주국가의 다수는 영국 같은 왕국(kingdoms)이거나 미국(the United States of America)처럼 그 간판에 아무 표시가 없다. 어느 나라가 진짜로 민주주의를 실행하는지의 여부를 쉽게 당장 판별하기 위한 시금석은 그 나라의 國會이다.
  
  
  5. 憲法의 ‘총칙’ 아닌 ‘各則’이나 속히 바꿔라
  
   민주주의는 選擧로 한다. 그러나 選擧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안 된다. 選擧는 흔히 민주주의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악용된다. 胡錦濤(Hu Jintao, 1942 - )의 중국과 金正日(1941 - )의 北朝鮮을 포함하여 個人의 自由를 무시하는 全體主義 국가는 거의 100%의 찬성投票로 독재자를 뽑는다. 지구상의 대다수 국가는 選擧를 조작하여 민주주의를 하는 것처럼 과시한다.
  
   ‘帝王的 대통령’을 쫓아내지 못하고 法治(rule of law)의 기초가 부실한 나라의 소위 選擧민주주의(electoral democracy)는 獨裁를 은폐하거나 不正한 권력을 正當化하기 위한 도구로 악용된다. 민주주의를 하는 데 필요한 아래 네 가지의 制度的 필수조건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選擧로만 민주주의의 시늉(a travesty of democracy)을 내는 것은 似而非민주주의(phoney democracy)이다:
  
   - 자율적 국회(an autonomous parliament)
   - 사법의 독립(judicial independence)
   - 公職의 중립(neutrality in public offices)
   - 자유언론(a free press).
  
   한국의 민주주의는 - 그 ‘잡동사니憲法’의 文面과 그 정치의 모양새로는 - 완전히 長成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個人의 自由를 위한 투쟁의 역사가 거의 전무한 韓나라[韓族의 땅․ 朝鮮땅․ 조선반도․ 韓반도]에는 민주주의의 條件을 制度的으로 확실하게 확보해놓은 것이 없다. 한국의 영웅 朴正熙(1917 -1979)가 개발독재로 절대빈곤을 추방하여 민주주의의 절대적 基礎를 닦아놓은 것은 괄목할 만하다. 日帝 등 外勢로부터의 解放을 위해 싸운 역사와 1960년의 4.19學生革命처럼 獨裁권력을 타도한 歷史는 있다. 1987년의 6.29抗爭을 제외하고는 解放과 革命을 위한 투쟁의 역사는 민주주의의 條件을 制度로 갖추며 다지는 것과는 무관했다.
  
   民主主義의 基礎로는 絶對貧困의 퇴치와 法治가 가장 중요하다. 법치는 민주주의에 앞서야 할 문명국가의 일차적 요건이다. 約束의 준수를 강행하며 正義를 구현하는 法治가 부실한 민주주의는 砂上樓閣(상상누각)에 불과하다.
  
   한국은 - '雜湯'헌법을 가진 나라로 - 그 헌법 ’總則‘을 고치기는 고쳐야하나 그 時機가 지금은 아니다. 통일을 달성했을 때가 가장 좋다. 統一뿐만 아니라 改憲도 오랫동안 準備해야 한다. 先進민주국가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영국식으로 가든지 아니면 美國式으로 가는 도리밖에 없다. 한국도 왕국의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이기 때문에 역사의 교훈에 따른다면 英國式으로 가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한국의 立法府와 司法府가 독립하기 위한 換骨奪胎(환골탈태)가 필요하다. 어떤 경우에도 계속 정치적 내리막길로 가고 있는 佛蘭西를 닮지 않아야 한다.
  
   한국은 지금부터라도 - ‘權力型 개헌’의 투기를 벌일 것이 아니라 그 어린 民主主義가 무럭무럭 자라 속히 선진세계에 진입할 수 있게 하기 위해 - 헌법의 총칙 아닌 ‘各則‘의 民主化를 위해 매진해야 한다. 그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李明博 정권이 아래의 것 중에서 단 한 가지의 업적이라도 남긴다면 훗날의 역사가 좋게 평가할 것이다:
  
  5-1. 國會가 그 자체의 독립적 기구(an independent organ of its own)로 변신한다.
  
   한국의 국회는 - 動物園 크기의 땅에 阿房宮(아방궁)을 지어놓고 사실상 無노동․ 高임금에 免責특권을 누리는 웰빙族이 國費로 運轉手를 거느리고 거의 일제히 검정색 고급 乘用車를 타며 허구한 날을 虛勢로 소일하는 안식처로 - 간혹 폭력과 날치기로 그 존재이유를 과시한다.
  
   한국의 국회가 일하는 곳으로 바뀌는 것이 改憲보다도 훨씬 급하다.
  
  5-1-1 ‘국회의장의 職權 상정’을 廢止한다
  [그 대신 다수결을 방해하는 暴力을 강력하게 制裁하는 동시에 국회가 그 자체의 倫理기준을 엄하게 확립하여 실천 한다]
  5-1-2 연중 常時 개원하는 국회로 改造한다
  5-1-3 중요한 것을 大統領令에 위임하지 않고 알맹이가 든 법률을 制定한다:
  5-1-4 소관 상임위원회가 국가예산의 책정과 집행 및 결산을 철저히 監視한다:
  [대통령 직속의 監査院을 폐지하는 대신 국회 산하에 審計院을 신설한다]
  5-1-5 국가의 중요 보직에 대한 인사청문회의 결정에 구속력을 부여한다.
  
  6-1 國家檢察의 독단과 橫暴와 월권을 불식한다.
  6-1-1 검찰의 搜査/起訴 독점과 便宜主義의 지양을 위해 刑事訴訟法을 改正한다
  6-1-2 警察에 수사권을 부여하고 부분적 起訴權을 認定한다
  6-1-3 중앙검찰과는 별개의 地方檢察 제도를 도입한다.
  
  7-1 재판의 正義와 獨立을 위해 司法制度를 혁신한다.
  7-1-1 최고재판소를 하나로 統合하고 그 재판관의 任期를 12년으로 保障한다
  7-1-2 정치前科者의 赦免復權 제한과 前官禮遇/有錢無罪 추방을 法制化한다
  7-1-3 치안재판 등 略式재판제도를 도입하여 裁判의 迅速과 公正을 도모한다.
  
  8-1 機能主義 행정부를 위해 職業公務員制度를 확립한다.
  8-1-1 획일적 정부조직을 지양하기 위해 특히 행정각부에 독자성을 부여한다
  [특히 행정안전부· 재정경제부· 법무부 등의 帝王的 철옹성을 허문다]
  8-1-2 ‘은퇴하는 事務次官制’로 행정각부를 無主空山으로 만들지 않는다
  8-1-3 政務次官制로 ‘豫備’장관을 양성하여 政治와 行政의 共存을 도모한다.
  
  9-1 情報機關의 政治化를 막는다.
  9-1-1 국가정보 총책의 지위를 次官補급으로 하향 조정하여 非정치화한다
  9-1-1 소위 特殊활동비를 대폭 삭감하고 엄격하게 사후 統制한다
  9-1-3 정보기관을 철저하게 ‘地下化’한다.
  
  10-1 放送의 권력화를 지양한다.
  10-1-1 방송통신위원회를 非정치화한다
  [정권의 교체 때마다 공영 방송사 사장이 바뀌는 악습을 지양하기 위해 영국의 BBC처럼 公營化하거나 美國처럼 점차적으로 民營化한다]
  10-1-2 ‘自由言論’의 창달로 방송 프로그람의 政治化와 低俗化를 防止한다.
  
   * 자유언론: 先進민주국가에서는 신문과 방송을 통한 報道와 논평을 專業으로 하는 專門家 집단인 職業言論 이외에 직업과는 꼭 관계없이 국가와 사회의 길잡이로 허심탄회하게 良識을 제공하는 知識人 집단을 가리키는 自由言論이 민주주의에 불가결한 獨自的 책임을 수행한다. 한국처럼 선거 때마다 職業言論에서 입신한 幹部들과 自由言論의 보루로 남아야 할 大學敎授 등의 把守꾼들이 정권의 走狗로 服役(복역)하기 위해 自尊心을 포기하고 권력의 門을 두드리는 나라에서는 民主主義가 제대로 될 수 없다.
  
  
  필자 약력: 1940년 경남 마산市에서 출생. 마산고등학교 졸업. 4·19혁명공로자. 1961년 고등고시 행정과[外交] 합격.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대학원 외교학과 수료. 空軍중위 예편. 독일/월남/영국/제네바/뉴욕에서 근무. 外務部 조약과장/국제기구條約局長/외교정책기획실장. 대통령政務[외교안보]비서관. 駐유엔대표부 차석대표. 駐싱가포르/오스트리아/IAEA/필리핀大使. 2000년 외교통상부 사직. 경희대학교 국제학대학원/명지대학교 초빙교수[독일 Bonn대학교 대학원 修學. 미국 Harvard대학교 CFIA 펠로우. 일본 慶應義塾大學 방문교수]. 자유평론가.
   
  
  
[ 2011-01-28, 23: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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