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에서 혁명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軍 장갑차를 에워싼 군중이 함성을 지르고 장갑차 위에 올라가도 군인들이 속수무책이다. 1960년 4.19 학생혁명 때 보았던 장면과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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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은 카이로 시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夜間 시위를 생중계하고 있다. 전국에 통행금지가 선포되고 군대가 배치되었는데도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軍 장갑차를 에워싼 군중이 함성을 지르고 장갑차 위에 올라가도 군인들이 속수무책이다. 1960년 4.19 학생혁명 때 보았던 장면과 흡사하다. 그때 전국에 비상 계엄령이 펴지고 출동한 군대와 戰車를 시민들이 에워싸고 환영하면서 한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군인들은 발포를 하지 못하였고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했다. 이집트 사람들은 경찰은 싫어하지만 군인들에겐 우호적이다. 시위대는, "국민과 군대는 하나다"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카이로 시내에 있는 여당 국민 민주당의 본부 빌딩이 불타고 경찰서가 공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총성도 들린다. 4.19 때도 어용신문사가 불타고 경찰서가 공격을 받았으며 자유당 이기붕 부통령 후보의 집이 습격을 당하였다. 힐러리 클린턴 美 국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이집트 보안군과 경찰이 폭력적으로 시위를 진압하는 것을 우려한다"면서 이집트 정부에 대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개혁으로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하였다. 1979년의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 이후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을 많이 지원하였던 미국이 한 발 빼는 모습이다.
  
  새벽 3시 현재 CNN, BBC는 카이로 사태만 다루고 있다. 이집트 당국은 反정부 시위를 막기 위하여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불통시켜버렸다. 이집트에 사는 한국인 知人에게 국제전화를 해도 연결되지 않았다.
  
  30년간 鐵拳통치로 이집트를 이끌었던 82세의 무바라크 대통령이 곧 對국민연설을 할 것이라고 한다. 이 연설이 그의 정치적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이집트에서 군대는 가장 잘 조직된 세력이며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사태가 악화되면 군대가 前面에 나서서 무바라크 대통령을 밀어내고 정권을 장악, 사태를 수습할 가능성이 있다. 바햐흐로 카이로에서 혁명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中東 최대국가가 요동치고 있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이슬람권 혁명이 어디까지 번져갈지 주목된다. 김정일도 떨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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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가 흔들리면 세계가 요동친다!
  오늘도 최대규모의 시위가 예고되어 있다. 30년간 독재를 하고 있는 무바라크 대통령은 1960년 李承晩 대통령이 직면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에 있다.
  趙甲濟
  
   카이로를 중심으로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反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오늘도 최대규모의 시위가 예고되어 있다. 30년간 독재를 하고 있는 무바라크 대통령은 1960년 李承晩 대통령이 직면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에 있다.
  
   불만이 많은 失業상태의 청년층이 시위를 주도한다. 대통령은 80세를 넘어 결단력이 약해졌다. 권력층의 부정부패와 경제난이 결합되어 국민불만이 퍼지고 있다. 시위가 격화될 때 군인과 경찰이 발포명령을 들을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독재정부는 진압군이 발포를 거부하면 무너진다. 前 IAEA(국제원자력 기구) 사무총장으로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모하메드 엘바라데이가 오스트리아에서 귀국, 시위에 참여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그가 反정부 시위의 구심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부는 내심 親美노선을 충실히 걸어온 이집트의 안정을 원하지만, 무바라크 몰락 이후를 겨냥한 路線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듯하다.
  
   오늘 시위에 학생들이 가담할지 여부가 주목된다. 1908년에 開校한 카이로 대학은 학생수가 20만 명에, 교직원수가 1만2000여 명이다. 이집트뿐 아니라 중동 여러 나라의 학생들이 이 학교에서 공부한다. 중동의 人材 양성소이다. 만약 카이로 대학생들이 무바라크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한다면 큰 변혁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카이로 대학의 유명한 졸업생으론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전 유엔 사무총장, 야셀 아라파트 PLO 의장(사망), 배우 오마 샤리프, 이라크의 독재자 후세인(사망), 전 국제원자력 기구 사무총장 엘바라데이, 알카에다의 2인자 알 자화이리 등이 있다.
  
   전략적 영향력면에서 가장 중요한 중동 국가인 이집트의 政情불안은 중동뿐 아니라 세계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집트는 외교적으로, 문화적으로, 사상적으로 중동의 지도국이라 할 만하다. 인구도 9000만 명에 육박, 중동 최대국가이다. 1952년 나세르가 주도한 자유장교단의 쿠데타로 등장한 군사정권은 사다트, 무바라크를 거치면서 60년간 이집트를 이끌었다. 한때 제3세계 운동의 지도국이었고, 이스라엘을 상대로 세 번 전쟁을 벌였다.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는 데도 선두였다. 중동이 극단적으로 기울지 않도록 중심을 잡은 나라이기도 하다.
  
   중동 여러 나라의 지도층을 양성한 親美국가이면서도 이집트 사회는 알카에다, 무슬림형제단 등 과격세력의 사상적 온상이 되었다. 거대한 역사, 문화, 인구, 전략적 중요성을 가진 이집트의 政變은 1979년 이란의 호메이니 혁명처럼 세계사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1973년 10월에 이스라엘에 대한 이집트의 기습으로 시작된 제4차 중동전쟁이 석유파동을 불러 한국의 進路에도 결정적 작용을 했던 일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중동 과격세력의 모태인 무슬림 형제단이 이번 시위에 가세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 세력이 정권을 잡는 사태가 발생하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물론 오늘의 이집트는 개방적이고 다양하여 호메이니식 神政체제가 들어설 가능성은 낮다.
  
   이집트는 북한과 친했지만 한국과 수교한 뒤엔 다방면에서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요사이는 이집트 관광철이라 많은 한국인들이 이집트를 찾고 있다. 이집트 사태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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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反정부 시위 격화, 카이로에서 느낀 것
  
  
   높은 청년 실업, 권력층의 부패, 선거부정은 봉기를 부른다.
   趙甲濟
  
   지난 25일 오전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는 조용하였다. ‘경찰의 날’이고 공휴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8일간의 이집트 여행을 끝내고 공항으로 달렸다. 전날 극심한 교통 停滯(정체)를 목격한 터라 한 시간 이상 걸릴 줄 알았는데, 30분만에 도착하였다. 이날 카이로에서 무바라크 집권 이후 최대 규모의 反(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CNN의 추산으론 약 2만 명이 모였다. 경찰이 몽둥이와 최루탄으로 진압에 나섰다. 카이로에서 한 명(경찰관), 수에즈에서 세 명(시위자)이 죽었다.
  
   北(북)아프리카의 투니시아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나 23년간 장기 집권한 벤 알리 대통령이 달아난 뒤 인근 아랍(이슬람) 국가들의 政情(정정)이 불안해진 가운데 이집트에 불똥이 튄 셈이다. 이집트는 세계 最古(최고)문명을 바탕으로 아랍세계의 정신적, 사상적 흐름을 주도해온 나라이다. 학생수가 20만 명이나 되는 카이로 대학 졸업생들이 아랍세계의 엘리트층에 많다. 이집트에서 시작된 무슬림 형제단(MB=Muslim Brotherhood)은 아랍세계로 퍼져 하마스와 알카에다 같은 극단적 세력의 人力(인력)공급원이 되었다.
  
   이집트는 사다트 대통령의 결단으로 1978년 이스라엘과 화해, 전쟁에서 빼앗겼던 시나이 반도를 되찾고 親美(친미)국가가 되었다. 사다트는 1981년에 암살되고 공군사령관 출신의 부통령이던 무바라크가 권력을 승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무바라크는 집권 30년 동안 이집트를 지도하면서 이 나라의 국제적 位相(위상)을 높였다. 미국은 이집트에 매년 10억 달러 이상의 원조를 하고 있다. 미국은 1975년 이후 230억 달러를 이집트에 지원하였다. 中東(중동)에서 미국정책을 지지해준 대가였다. 무바라크는, 군대와 경찰을 이용한 鐵拳(철권)통치로 反정부 활동을 억제하였고 미국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이집트도 이란, 파키스탄처럼 이슬람 공화국을 표방하나 이란 같은 神政(신정)체제와는 많이 다른 개방성과 다양성을 보장하고 있다. 예수의 제자 마가가 시작한 세계最古의 기독교 宗派(종파)인 콥트 교도는 全(전)인구의 10%를 차지한다.
  
   문제는 나세르가 시작한 사회주의 경제체제이다. 무바라크 정부는 계획경제를 개혁하려고 하였으나 높은 인플레, 財政(재정)적자, 실업률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성패를 좌우하는 제조업의 기반도 약하다. 특히 청년실업자가 많다. 직장을 갖지 못한 청년들의 불만은 정치적 변혁 운동의 불씨가 된다.
  
   8000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이집트는 매년 불어나는 130만 명의 인구를 감당해야 한다. 정부가 일자리를 만드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은 며칠간의 여행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인구가 2300만 명이나 되는 카이로의 도로엔 車線(차선)도, 신호등도, 횡단보도도 없다. 車, 사람, 당나귀, 오토바이, 자전거가 公有(공유)하는 도로이다. 세계에서 가장 혼잡스러운 도로일 것이다. 교통정리는 경찰관들이 수신호로 한다. 신호등을 만들면 이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이집트의 가장 큰 외화수입원은 관광이다. 정부는 관광경찰을 두어 외국 관광객을 보호한다. 23명의 한국인 여행객이 탄 버스엔 두 명의 이집트인 가이드가 배치되었다. 나일강 크루즈船(선)에도 관광경찰이 총을 들고 탄다. 관광버스가 아부 심멜 신전 등 유명 관광지로 갈 때는 무장한 경찰이 소형 트럭을 타고 앞장을 선다.
  
   反정부 시위대는 무라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올해 있는 대통령 선거에서 5選(선)의 무바라크는 출마하지 않고 아들을 출마시킬 것이란 예상이었는데, 이번 시위가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이집트의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6300달러이다. 정경유착으로 貧富(빈부)격차가 심하다. 특히 무바라크 측근들의 부패에 대한 불만이 이번 시위의 한 원인이었다.
  
   北아프리카 국가들의 政情불안을 몰고 온 투니시아의 경우도 벤 알리 대통령 一家(일가)의 부정 부패가 국민들을 거리로 불러낸 主(주)원인이었다. 벤 알리 대통령은 지난 20여년간 투니시아를 가장 성공적인 아프리카 국가로 만든 사람이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09년에 투니시아를 아프리카에서 가장 경쟁력이 높은 나라로 뽑았다. 1인당 국민소득도 8000달러를 넘어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최상위급이었다. 벤 알리 대통령은 16세까지의 의무교육, 여성의 사회참여 장려 등 개혁조치도 성공시켰다.
  
   이 모든 업적에도 불구하고 一家의 부패, 청년층 실업의 증가, 분신자살, 위키리크스의 폭로가 알리 대통령을 國外(국외)탈주자로 만들었다. 권력자들의 부패는 毒藥(독약)이다. 가장 부패한 권력자인 김정일의 운명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 2011-01-27, 07:58 ] 조회수 : 1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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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東격변의 주동자는 '화 난 젊은층'
  트위터, 페이스북으로 무장.
  趙甲濟
  
   정치적 激變(격변)을 부르는 원동력은 '화 난 젊은 층'에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1960년의 4.19 학생혁명, 그 1년 뒤 청년장교들이 주도한 5.16 군사혁명, 광주사태, 1987년의 6월 대시위. 지금 이슬람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시위 열풍도 그렇다. 20여년의 독재정부를 몰아낸 튀니지 민중봉기, 이집트를 뒤흔드는 거리 시위도 젊은 층이 주인공들이다.
  
   카이로 시내를 달려보면 거리가 사람으로 넘친다. 할 일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특히 젊은 이들이 일자리가 없어 하루 하루를 헛되이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어느 나라든 청년층 失業은 가장 큰 정치불안 요인이다.
  
   中東 청년층은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니 자연히 정부에 불만이 많다. 최근엔 이 불만을 조직하고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 트위트, 페이스북, 인터넷 등 이른바 '소셜 미디어'가 시위를 기획, 홍보, 실천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카이로에선 오늘 대규모 시위가 예보된 상태이다. 정부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접속을 차단하였지만 實效가 별로 없다. 시위를 홍보하고 있는 한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8만 명이 넘는 '팔로워'가 등록하였다. 알렉산드리아에서 경찰에 의하여 맞아죽었다는 한 시위자를 추모하는 페이지엔 순식간에 2만 명이 등록하였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시위를 미리 알리고 현장을 생중계한다. 기자들이 가기 어려운 지방의 시위소식을 동영상과 함께 생생하게 알려준다. 누가 경찰에 붙들려 갔다는 속보도 재빨리 유통된다.
  
   이집트 시위를 주도하는 것은 소셜 미디어로 무장한 젊은층이다. 가장 잘 조직된 反정부 단체인 무슬림 형제단은 이번엔 구경만 하다가 뒤늦게 시위 참여를 선언하였다. 새로운 언론환경이 정치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2012년 한국의 총선과 大選에서도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정치는 도태된다.
  [ 2011-01-28, 10:38 ]
  
  They Did It
  By THOMAS L. FRIEDMAN
  CAIRO
  
  In the end, President Obama made a hugely important but unintended contribution to the democracy revolution in Egypt. Because the Obama team never found the voice to fully endorse the Tahrir Square revolution until it was over, the people in that square now know one very powerful thing: They did this all by themselves. That is so important. One of the most powerful chants I heard in the square on Friday night was: “The people made the regime step down.”
  
  This sense of self-empowerment and authenticity — we did this for ourselves, by ourselves — is what makes Egypt’s democracy movement such a potential game-changer for the whole region. And in case other autocrats haven’t picked up on that, let me share my second favorite chant from the streets of Cairo after President Hosni Mubarak resigned. It was directed at the dictator next door, Col. Muammar el-Qaddafi of Libya, and it went like this: “We’re not leaving Tahrir until Qaddafi leaves office.” Hello, Tripoli! Cairo calling.
  
  This could get interesting — for all the region’s autocrats. Egypt’s youthful and resourceful democrats are just getting started. Up to now, the democracy movement in the Arab world was largely confined to the U.S.-led liberation of Iraq, which, because it was U.S.-led, has not been able to serve as a model for emulation. If, and it remains a big if, Egypt can now make the transition to democracy, led by its own youth and under the protection of its own armed forces, watch out. The message coming out of Cairo will be: We tried Nasserism we tried Islamism and now we’re trying democracy. But not democracy imported from Britain or delivered by America — democracy conceived, gestated and born in Tahrir Square. That will resonate among Arabs — and in Iran.
  
  Some people worry, though, that the Egyptian Army will strangle this Egyptian democracy movement in its crib. Personally, I think the army leadership is a little afraid of the Twitter-enabled Tahrir youth. The democracy movement that came out of Tahrir Square is like a tiger that has been living in a tiny cage for 30 years. Having watched it get loose, there are two things I would say about this tiger. One is that anyone who tries to put it back in that little cage will get his head bitten off. And, two, any politician who tries to ride the tiger for his own narrow interests, not for the benefit Egypt, will get eaten by it as well. Iran, the other day, issued a declaration urging the Tahrir youth to make an “Islamic revolution,” and none other than Egypt’s Muslim Brotherhood told Tehran to get lost because the democracy movement here is pan-Egyptian and includes Christians and Muslims.
  
  But here’s the big question in Egypt now: Can this youth-led democracy movement take the power and energy it developed in Tahrir Square, which was all focused on one goal — getting rid of Hosni Mubarak — and turn it into a sustainable transition to democracy, with a new constitution, multiple political parties and a free presidential election in a timely fashion? Here, the movement’s strength — the fact that it represented every political strain, every segment and class in Egyptian society — is also its weakness. It still has no accepted political platform or leadership.
  
  “It is essential that the democracy movement now form its own leadership and lay down its own vision and priorities which it can hold the government to. Otherwise, all this effort can be lost,” cautioned Rachid Mohamed Rachid, the liberal former minister of trade and industry, who declined to continue serving in Mubarak’s cabinet before the revolt happened. “They have to have a vision of what Egyptian education should be, about agriculture policy and human rights. Getting rid of Mubarak was not the only hope. That ultimate goal is to have a new Egypt.”
  
  Ever since this revolt started, America, Israel and Saudi Arabia seemed to hope that there were two choices here — one called “stability” that would somehow involve Mubarak, and the other called “instability,” which was to be avoided. Well, let me put this as plainly as possible: Here in Egypt, stability has left the building. For which I say: good riddance. Or as Ahmed Zewail, the Egyptian-American Nobel Prize-winning chemist, put it to me: Egypt was stable these past 30 years because it had no vision, no aspiration and was “stagnating.” That kind of stability couldn’t last.
  
  That’s why today Egypt has before it only two paths, and both are unstable. One is where this democracy movement falters and Egypt turns into an angry Pakistan, as it was under the generals. And the other is the necessarily unstable, up and down transition to democracy, which ends stably with Egypt looking like Indonesia or South Africa.
  
  This will be hard. Many tough days lie ahead, but they will be made much easier thanks to the self-confidence bred here among Egypt’s youth the past three weeks. Watching so many Egyptians take pride in their generally peaceful birth of freedom — to listen to them say in different ways to themselves and each other, “I am somebody” — was to witness one of the great triumphs of the human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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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1-29, 02:4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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