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中東의 세습독재
1940~60년 中東에선 왕들을 쫓아내는 쿠데타와 봉기가 잇따랐다. 그 뒤에 등장한 독재자들도 새로운 王朝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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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이집트는 국민투표를 거쳐 헌법을 개정, 대통령 후보의 자격을 제한하였다. 지방의회 의원 140명 및 국회의원 90명의 추천을 받아야 출마할 수 있게 했다. 사실상 여당 후보, 즉 무바라크 대통령이나 그의 아들 게말 무바라크만 출마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改憲은 올해 가을 대통령 선거에 아들을 내세우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고 한다.
  
  아들 게말 무바라크는 카이로에 있는 아메리칸 대학을 졸업하고, 아메리카 은행 런던 지점에서 6년간 근무한 뒤 사업을 하다가 2000년부터 정치를 하기 시작하였다. 무바라크는 아들에게 권력을 넘겨주기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해왔다. 아들은 집권당인 국가민주당의 사무副총장, 정책위 의장을 지내면서 내각에 자기 사람들을 많이 심었다.
  
  1940~60년 中東에선 왕들을 쫓아내는 쿠데타와 봉기가 잇따랐다. 그 뒤에 등장한 독재자들도 새로운 王朝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집권한 지 40년이 넘는 리비아의 카다피는 아들 사이프에게 권력을 넘기고 있다. 시리아의 아사드가 죽고 나서 그의 아들이 대통령이 되었다. 이라크의 후세인도 아들 우데이를 후계자로 생각하였다.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은 아들 아하메드 살레를 후계자로 삼아 군부를 관리하도록 하였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中東 혁명의 바람은 적어도 이집트와 예멘의 세습통치를 무너뜨릴 것임이 확실하다.
  
  6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집트가 2011년에 보여주는 정치 및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 경험이 10년도 되지 않았던 1950년대 李承晩 정부 시절 한국의 야당과 언론이 누렸던 자유에 훨씬 못미친다. 李承晩 정부 때는 선거의 자유가 보장되었고, 부정선거가 있었지만 이를 폭로하는 언론과 수사하는 검찰이 있었다.
  
  이집트엔 야당 등 反정부 세력을 감시, 탄압, 침묵시키는 일을 주로 하는 保安경찰이 35만 명에 이른다. 反정부 활동가인 사드 에딘 이브라함씨에 따르면 2007년 현재 이집트 감옥엔 약8만 명의 정치범이 수감되어 있으며, 정부를 비판하였다가 수시로 실종되거나 의문의 事故死(사고사)를 당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브라함씨는 해외에서 게말 무바라크를 비판하였다고 고발을 당하여 귀국하지 못한 이다. 선거 등 정치행사 직전엔 수천 명의 反정부 인사들이 예비검속되거나 연금되곤 한다.
  
  무바라크의 탄압으로 건전한 야당세력이 육성되지 못한 것은 이제 집권세력의 고민이 되고 있다. 이슬람 원리주의로 이집트의 서민층에 뿌리를 내린 무슬림 형제단과 집권세력의 보루인 군대 사이에 완충지대가 없다. 중산층이 약하여 건전한 시민사회가 형성되지 않고, 야당 및 자유언론이 없으면 兩 극단세력의 갈등과 충돌로 민주화의 길은 험난할 것이다.
  
  
  
  이스라엘 국가 지도부는 특공부대 출신들
  
  
   한때 한국의 權府가 ‘미필자 집단’으로 불린 데 대하여 지금 이스라엘 내각은 ‘특공대 집단’으로 불릴 만하다. 대통령 시몬 페레스는 국방차관 시절엔 비밀 核개발을 주도하였다. 국방장관으로서 1976년 7월4일에 있었던 엔테베 특공작전을 지도한 사람이었다. 엔테베 작전은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이 이스라엘 사람들 약100 명이 이 탄 에어 프랑스기를 납치, 우간다의 엔테베에 착륙시켜놓고 이스라엘에 수감된 테러리스트 석방을 요구한 데서 발생하였다. 특공대원을 실은 이스라엘 공군기 석 대가 엔테베 공항에 착륙, 電光石火(전광석화) 같은 작전으로 테러리스트들을 제압, 人質(인질) 전원을 구출한 사건이다. 이 특공작전의 지휘관은 요나탄 네탄야후였다. 그는 敵彈(적탄)을 맞고 죽었다. 이 작전에서 죽은 유일한 이스라엘 군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니’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이 영웅의 동생이 현재의 총리 벤자민 네탄야후이다.
   그 또한 특공대원이었다. 1972년 5월 벨기에의 항공사 사베나 여객기가 100여 명의 승객을 태운 채 납치되어 이스라엘의 벤구리온 공항에 착륙하였다. 이 인질 구출작전에 투입된 이스라엘군 특공대의 지휘관은 현재 이스라엘 국방장관이자 부총리인 에후드 바락이고 총리 네탄야후는 바락의 부하였다. 네탄야후는 구출작전 때 동료가 쏜 총탄을 맞고 중상을 입었다. 대위로 제대한 그는 미국에 건너가 하버드와 MIT에서 공부하였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이 터지자 귀국, 전투에 참여한 뒤 다시 渡美(도미)하였다. 바락은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을 지냈다.
   역대 이스라엘 총리 중 1996년에 암살된 라빈과 바락은 참모총장 출신이고, 샤론은 4차 중동전쟁 때의 수에즈 운하 渡河(도하) 작전을 성공시킨 전쟁 영웅이다. 네탄야후 총리의 전임자 에후드 올메르트는 장교 출신이다. 사병으로 從軍(종군)하였던 이 사람은 국회의원 시절에 장교 교육을 따로 받았다.
   특공정신으로 똘똘 뭉친 이스라엘의 국가 지도부는 안보문제에 관한 한 그 누구의 간섭도 거부한다. 國益(국익)에 맞지 않으면 미국이나 유엔의 충고도 묵살한다. 국제여론이 아무리 나빠져도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책임진다”는 자세로 당당하게 대응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은 자주국방력에서 나온다. 이스라엘은 네 차례 중동전쟁에서 한 번도 외국군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 그들은 “우리 땅에 외국 군대가 주둔하면 의타심이 생겨 국민정신이 망가진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은 프랑스와 공동으로 1960년대에 이미 비밀 핵개발에 성공,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은 물론이고 중성자탄까지 갖고 있다. 그럼에도 이슬람 국가가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라크가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원자로를 짓기 시작하자 이를 폭격해버렸다. 시리아가 북한의 영변 원자로를 본뜬 원자로를 비밀리에 건설하는 것을 발견하자 이를 폭격, 없애버렸다. 시리아는 얻어맞고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지금 핵개발에 참여한 이란 과학자들을 암살하는 작전을 진행중이다. 이스라엘은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이스라엘 선수들을 죽인 테러 관련자들을 제거하기 위한 암살단을 만들었다. 이들은 그 뒤 20년간 관련자들을 추적, 모조리 죽였다.
   전설적인 정보기관인 모사드는, 이스라엘의 核시설에 근무하다가 퇴직, 영국에 가서 언론에 핵 관련 정보를 폭로한 과학자를 이탈리아로 유인, 납치하여 重刑을 살렸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런 공작이 폭로되어도 절대로 사과도 인정도 하지 않는다. 언론도 정부가 실수하였다고 비판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국가 지도부의 이 독한 자세는 어디서 나오는가? 그 답은 의외로 간단하였다.
   이탈리아의 인터뷰 전문 여기자인 올리아나 팔라치는 1972년 11월 골다 메이어 총리를 인터뷰하였다. 팔라치는 두 번 인터뷰하여야 했다. 첫 번째 인터뷰를 한 뒤 이탈리아로 돌아와 호텔에 투숙하였는데, 누군가가 녹음 테이프를 훔쳐갔던 것이다(팔라치는 리비아 정보기관 요원들을 범인으로 지목하였다). 메이어 총리는 이 소식을 듣자 인터뷰를 다시 하자고 연락을 취하였다.
   일찍 남편과 이혼한 메이어 총리는 빌라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빌라 앞에 경호원이 서 있을 뿐이었다. 메이어 총리는 낮에 소녀를 불러 청소를 시킬 뿐 요리도 직접 하였다. 팔라치와의 인터뷰 전날 메이어 총리는 손님들을 초대하여 저녁을 대접하였다. 회식은 새벽 2시에 끝났다. 손님들이 돌아가자 총리는 새벽 3시30분까지 설거지를 하였다. 3시간 남짓 잠을 잔 74세의 할머니 총리는 아침 7시에 일어나 집무를 시작하였다. 팔라치가 오전 10시에 메이어를 만나니 피로해 보였다고 한다. “인터뷰를 연기해도 좋습니다”라고 했지만 메이어는 “이렇게 멀리 오셨잖아요. 테이프를 도둑 맞고...”라고 오히려 위로했다.
   팔라치 기자는 긴 인터뷰를 끝내고 헤어지기 직전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메이어 여사님, 죽음을 어떻게 봅니까?
   “저의 한 가지 걱정은 너무 오래 사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죄도 아니고 자랑도 아닙니다. 계단을 뛰어서 오를 수 없다든지, 점프를 할 수 없다든지 하는 것은 문제가 될 게 없어요. 문제는 정신력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너무 일찍 죽은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듯이 너무 늦게 죽는 사람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 좋던 知性이 망가져가는 것을 본다는 것은 치욕입니다. 그런 치욕이 나에게 생기지 않기를 바라죠. 내 정신이 말똥한 상태에서 죽기를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한 가지 걱정은 너무 오래 사는 것입니다.”
   골다 메이어 총리의 소박한 삶은 예외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정치인과 軍人은 우리 기준으로는 거의가 가난뱅이이다. 돈에 관심을 쏟을 여유가 없다. 이스라엘의 엄격한 法治가 公職者(공직자)의 청렴성을 강제한다. 선거제도도 돈을 쓰지 않게 되어 있다. 라빈 총리는 駐美대사 시절 미국에 개설하였던 은행계좌를 귀국할 때 폐쇄하지 않았다는 한 가지 이유로 사임하여야 했다. 이스라엘 지도부가 용감한 것은 청렴한 덕분이다. 지도자는 깨끗한 만큼만 용감해질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위험하게 사는 게 잘 사는 길이다’고 믿는다. 자주국방을 하는 이스라엘 국민들의 幸福度(행복도)가 세계 최상급이란 통계가 있다. 국방을 미국에 의존하는 한국인의 행복도보다 훨씬 높았다. 우리도 한때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운다”는 정신으로 一面 건설, 一面 투쟁의 삶을 즐긴 적이 있었다. 한국인으로 태어나면 경쟁과 투쟁을 宿命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쟁해야 하고, 남북분단 상태에서 투쟁해야 한다. 이 숙명을 받아들여 치열하게 사는 게 행복한 삶이란 이야기이다.
  
  
  
  
  
  
  
  
[ 2011-02-08, 16:5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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