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시위는 중동의 가부장적 인식체계 변화시키는 '사상혁명'될 것"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학술회의/ "걸프지역 王政국가들의 민주화는 오랜 시간 걸릴 것"

李庚勳(조갑제닷컴)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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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현안 긴급 진단] 이집트, 수단, 튀니지 사태와 중동의 민주화 전망이라는 주제의 학술회의가 2월8일 명지대학교에서 열렸다
‘[중동 현안 긴급 진단] 이집트, 수단, 튀니지 사태와 중동의 민주화 전망’이라는 주제의 학술회의가 2월8일 오후 명지대학교에서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주관, 한국중동학회·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의 공동 주최로 열렸다.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김효정 초빙연구원은 <튀니지 시민 혁명과 민주화 전망>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튀니지 시민 혁명(재스민 혁명)은 경제적 문제뿐만이 아닌 총체적 사회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로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시민 혁명 이후 튀니지 국민들은 종교 세력이 정권을 잡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튀니지는 1956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초대 대통령 하비브 부르기바가 1956년부터 1987년까지 집권했고, 부르기바의 후계자인 아비딘 벤 알리가 1987년 무혈 쿠데타로 부르기바 대통령을 하야시켰다. 벤 알리는 5번에 걸쳐 대통령직을 유지했다. 그는 종교 세력의 정치 참여를 철저히 배제했다.
  
   튀니지 시민 혁명은 2010년 12월18일, 시디 부 지드의 한 과일 노점상이 당국의 단속으로 물품을 빼앗기자 이에 항의하며 분신을 한 것으로 시작됐다. 시디 부 지드 지역은 알카에다와 연관된 무장 세력과 정부군이 충돌한 사례가 있을 만큼 종교적 색채가 강한 곳이다. 튀니지 국민의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정치 등장 우려는 여기서 비롯됐다.
  
   김효정 연구원은 “서구는 민중에 의해 변화가 일어났지만, 아랍 국가는 민중의 요구가 아닌 정권과 정책에 의해 변화가 일어났다. 이 때문에 튀니지 국민은 어떠한 세력이 집권할 것인가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튀니지 국민들이 종교 극단주의자들과 벤 알리 대체 세력과는 달리, 국외 생활을 한 野圈(야권) 지도자에 대해선 거부감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튀니지 시민 혁명의 주도세력은 없었다. 舊세력(벤 알리 세력)의 지속을 반대하는 일부 시위가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안정돼 있다. 벤 알리의 빠른 하야로 시위가 더 커지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튀니지는 6~7개월 뒤 열릴 예정인 대통령 선거 때까지 과도정부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 튀니지 내무부는 2월6일, 벤 알리 前 대통령의 집권 여당인 입헌민주연합당(RCD)의 모든 활동을 전면 금지시켰다.
  
   <이집트 시민혁명과 민주화 전망>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서정민 교수는 이집트의 민주화 시위를 “중동에 중·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사상적 혁명”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5000년 중동역사에서 시민 혁명은 없었다. 이번 중동의 민주화 시위는 東유럽의 민주화 도미노 현상과는 다를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강조한 프랑스 혁명처럼,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인식체계를 변화시키는 내면적이고 깊은 ‘사상 혁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집트에 권위주의가 60년간 지속됐고, 무라바크도 30년간 집권했다”면서 “한국의 권위주의와 이집트의 권위주의의 차이는 국민들의 지지에 있었다. 이집트는 60년간의 권위주의 정치기간 동안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었다”고 분석했다.
  
   서정민 교수는 “중동 지역은 물리력을 바탕으로 한 권위주의에 약한 특징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遊牧(유목)으로 인한 無所不爲(무소불위)·남성중심 家父長(가부장)적 전통의 바탕에는 물리력이 있었다. 자신보다 강한 물리력을 가진 집단에는 도전을 하지 않았다. 軍과는 별 관계가 없는 사담 후세인이 군복을 입고, 야세르 아라파트가 빈 권총집을 차고 대중 앞에 서는 것은 물리력을 과시해 복종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쿠웨이트 같은 王政(왕정)체계에서도 왕세제나 왕세자가 되기 위해서 거치는 코스가 있다. 영국 사관학교를 이수하고 自國(자국)으로 돌아와 경찰 총수, 국방장관을 거친다. 아무리 왕정국가라도 왕이 되기 위해서는 물리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정부가 향후 급변하게 될 중동 상황에 대비해 對중동 진출 전략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동 경제의 특성은 ‘地代(지대) 추구형 경제(rentier economy)이다. 석유가 바로 지대이다. 월세를 받듯 油田(유전)이나 가스전에서 國富(국부)를 창출하는 것이다. 産油國(산유국)인 이들 국가의 정권이나 정치 체계의 변화는 경제 구조 변화로 이어진다. 이는 석유 수출 중심 경제 구조의 변화를 의미한다. 중동 국가의 경제 구조가 변화할 경우, 우리나라 석유 수입, 플랜트 수출 등에 막대한 영향을 받는다. 궁극적으로는 세계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왕정국가인 이들 산유국은 이집트·튀니지와 같은 상황이 벌어나지 않도록 실업률을 해소하기 위해 향후 국내산업(제조업)을 육성할 수 있다. 튀니지·이집트 사태가 필연적으로 중동의 경제 구조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중동 국가의 변화될 경제 구조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새로운 對중동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선대 아랍어과 황병하 교수는 <이집트 무슬림 형제단의 정치이념과 역할, 그리고 향후 전망>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무슬림 형제단(Muslim brothers)에 대한 美·英의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이집트 사태에서 무슬림 형제단이 전면에 나서는 것을 자제하고 있지만, 향후 정치 일정에서 무슬림 형제단이 조직을 가동해 전면에 나서면 眞價(진가)가 드러날 것이다. 무슬림 형제단은 이슬람 국가 수립 이념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슬림 형제단은 개인, 가족, 사회, 국가를 이슬람化하여 이슬람 연방국을 만들고, 세계를 이슬람으로 정복하는 것 목표이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인 무슬림 형제단은 향후 이집트 민주화 과정과 선거에서 주도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많다. 초기 이집트 시위를 촉발시킨 것은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바탕으로 한 젊은층·전문직 종사자였지만, 현재 이집트 시위 현장에 등장하는 이들은 주로 하층 계급과 서민 계층이다. 무슬림 형제단은 基層民(기층민)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봉사단체를 조직해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가 이들을 돕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무슬림 형제단은 2005년 총선에서 전체 의석의 20%인 88석을 차지하기도 했다.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정상률 교수는 “유목민과 사이버(Cyber)의 특징은 ‘빠른 이동 속도’이다. 사이버 시대를 사는 중동 국가의 민주화 요구 현상은 주변 아랍 국가로 빠르게 확대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반면 튀니지·이집트의 민주화가 걸프지역(GCC, Gulf Cooperation Council)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금상문 교수는 “GCC국가들이 오일머니(Oil Money)를 통해 청년 실업을 만회할 것이고, 중동 국가의 비밀경찰 또한 상당해 민주화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정민 교수도 “걸프(Gulf)의 王政(왕정) 국가의 경우 오일머니를 통해 분배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기 때문에 권위주의에서 민주화까지는 중·장기적인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금상문 연구교수는 “경제적인 이유로 발생한 이집트 사태가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됐다”고 주장했다. 이집트가 이슬람사회주의를 모토로 탄생한 국가이지만, 자본주의化하는 과정에서 국영기업이 민영화 되고, 실적위주의 경제로 바뀌면서 양극화와 失業(실업)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명지대 이종택 교수는 “아랍 독재 정권의 특징은 政·軍·財의 유착이다. 따라서 이집트 군대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킬 수 있는 세력과 협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이종하 소장은 “튀니지·이집트 사태 발생의 근본 원인은 경제문제이지만, 교육도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육으로 국민들의 수준은 올라갔지만, 경제와 국가는 국민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교육을 끊임없이 장려하는 바람에 국민들의 요구 수준이 너무 높아졌다. 교육받은 여성들의 참여 또한 이번 사태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튀니지는 국가예산의 20%를 교육에 투입한다.
  
   정상률 교수는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이집트의 경제난에 대해 “이집트 軍部(군부)를 중심으로 한 30년 독재로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집트의 빈약한 산업시설(제조업)도 이집트 경제력에 문제를 끼쳤다”고 덧붙였다.
   서정민 교수도 “지난 역사에서 중동은 상업주의(수·출입)가 主를 이뤘기 때문에 제조업을 잘 하지 않고, 하더라도 국영기업이 하기 때문에 효율성이 없다”고 말했다.
   황병하 교수는 “이집트가 이슬람의 관행상 자녀가 많을 수밖에 없고, 주변국으로부터의 이민이 많다”며 인구는 많지만 제조업 등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집트는 인구의 40%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한다. 물가상승률은 12.8%이다. 공식 실업률은 9.7%이고, 실질실업률은 30%에 육박한다. 인구의 66%를 차지하는 30대 이하 젊은층이 가장 많은 실업인구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 [중동 현안 긴급 진단]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이번 튀니지·이집트 사태가 “세속적 민주주의의 발현이자, 이슬람 원리주의 퇴조의 시발점”이라는 공통된 결론을 내렸다.
  
  
[ 2011-02-10, 16:3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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