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革命하시누만”
5·16 군사혁명 50주년 기념 연재(22)/ 1961년 4월 매카나기 駐韓 美대사는 한국 정세에 대한 보고문에서 장면 총리의 지도력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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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雲鶴의 예언
  
  행정반장으로서 혁명 성공 후의 국정 방향을 짰던 이석제(총무처장관, 감사원장 역임)는 ‘육군 중령이 신문 기사와 도서관에서 수집한 짧은 지식을 바탕으로 혁명 정부의 전략과 계획을 수립했으니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고 고백했다.
  
  행정반에서 연구된 사안들은 보고서로 작성하여 박정희 장군에게 보고하고 한 부는 이석제 중령이 보관했다. 참고 자료는 즉시 불태웠다. 이석제는 혁명이 성공하면 헌법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임시 헌법을 공포하기로 마음먹었다. 임시 헌법안을 검토하는 자리에서 김종필이 차관직에 군인을 임명하여 민간인 장관을 끌고 국정을 개혁하는 발상을 제안했다.
  
  차관은 국무위원이 아니기 때문에 강력한 국정 운영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반론이 많았다. 김종필이 제시한 국가재건최고회의란 명칭에 대해서도 “최고회의라고 하니까 공산 국가에서나 즐겨 쓰는 용어 같네”란 반응이 있었다.
  
  이석제는 민주당에서 수립하고 있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안을 구해보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이석제의 기억에 따르면 박정희는 혁명 준비 단계에서부터 외자 도입에 의한 경제 개발과 일본의 역할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석제는 박정희와의 이런 대화를 소개하고 있다.
  
  <박정희: “국가를 지도하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은 우선 두 가지 문제에 근본적인 대안을 가져야 합니다. 우선 국민들이 배고프지 않게 밥을 먹이고, 그 다음에 나라를 자기네 힘으로 지키게 하는 것이 통치의 근본입니다.”
  
  이석제: “각하, 국가 근대화란 뭐를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박정희: “이론상으로는 복잡하고 나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쉽게 해석하자면 농업 사회를 뜯어고쳐서 공업화를 추진한다는 정도로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거요. 우리나라 인구가 3000만인데 언제 농사를 지어서 국민들의 배를 불리겠소. 농토에 매달리는 농민들을 공장으로 끌어내어서 소득을 높여 주는 국가 시스템을 잘 연구해 봅시다.”
  
  이석제: “공장 지을 돈은 어디서 조달합니까?”
  
  박정희: “가진 게 없다고 굶어 죽을 수는 없으니까 우선 급한 대로 돈 있는 집에 가서 돈을 좀 빌려다가 장사를 해서 갚으면 될 게 아니오.”>
  
  그때 혁명 주체들은 자신들이 미군 몰래 병력을 동원하여 혁명을 일으키면 미국이 원조를 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박정희는 “너무 걱정하지 맙시다. 미국 문제도 잘 해결될 거요. 앞으로는 일본이 있잖소”라고 했다고 한다. 이석제가 5·16 거사일까지 검토하여 보고서로 작성한 혁명정부 정책안의 제목은 대강 이러했다.
  
  <임시 헌법 제정, 국가재건최고회의 구성, 반공 태세의 실질적 정비 및 강화, 민족 자주 외교의 정비 강화, 재건 국민운동 전개, 정치 활동 금지와 정당 사회단체 해산, 폭력배 단속과 사회 정화, 교통질서 확립과 공중도덕 앙양, 병역 기피자 처리, 밀수 근절과 稅吏(세리) 부패 방지, 공무원 인사 제도 개혁, 행정 관리 제도 개혁, 공무원 처우 개선, 금융 민주화, 부정 축재자 처리, 원조 효율의 제고, 稅制(세제) 개혁, 언론계 정비, 증권 시장 육성, 중소기업 육성, 수출 진흥과 수입 시책, 산림녹화 및 조림 사업 강화, 농협의 운영 쇄신과 확대, 광산 개발 촉진, 민족 예술 문화의 진흥, 水利(수리) 사업의 혁신…>
  
  4월19일로 거사일이 결정되자 주체 세력 장교들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임무에 따라 구체적인 행동 계획에 들어갔다. 김종필은 서울 중구 정동에 있던 KBS 점령 계획을 세운다, 장면 총리 체포 계획을 세운다 해서 바쁘게 돌아다녔다.
  
  공주중학교 후배인 金石野(김석야)는 그때 방송작가로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 날 김종필이 김석야를 찾아왔다. 근처 다방으로 후배를 불러낸 김종필은 “나는 요사이 따라다니는 사람이 많아”라면서 벽을 등지고 앉았다.
  
  그는 “우리 아이를 어린이 합창단에 넣으려고 하는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하고 말을 꺼내더니 “나라가 이러다간 안 되겠어. 토치카 공사비까지 중간에서 다 떼먹으니 전쟁 나면 우리 사병들이 다 죽게 생겼어”라고 했다. 며칠 뒤 김종필은 또 방송국에 와서 이번엔 좀 이상한 질문을 했다.
  
  “방송국에서 방송을 내보낼 때 키 같은 게 있는 거요?”
  
  “주조정실이란 데서 합니다. 거기서 연희송신소로 전파를 보내면 방송이 됩니다.”
  
  “숙직은 어디서 하오?”
  
  김석야는 김종필을 데리고 당직실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는 ‘방송국을 견학하러 와서 당직실을 보자는 사람은 처음인데…’ 하는 생각만 했다. 김종필은 방송국의 구조를 확인한 뒤엔 총리 체포조의 팀장인 박종규(대통령 경호실장 역임) 소령을 데리고 반도호텔에 들어가서 “이것이 총리실이다”고 가르쳐 주었다. 鄭一亨(정일형) 외무장관의 체포를 책임진 오치성 대령은 공수단 1개 분대를 배정받아 놓고 있었다. 그는 잡지에 난 정일형의 얼굴 사진을 오려서 갖고 다녔다. 전화번호부에서 정일형의 주소를 알아내 지형 정찰을 해두었다.
  
  김종필 중령과 함께 정군 운동을 주동했다가 함께 강제 예편당했던 석정선은 혁명 모의에선 빠져 있었다. 그는 트럭을 두 대 가지고 업자에게 빌려 주는 운송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교통 사고를 자주 일으켜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석정선이 하루는 김종필을 찾아오더니 점을 보러 가자고 했다. 두 사람은 정동의 한 여관 안채를 빌려 손님을 맞던 白雲鶴(백운학)을 찾아갔다. 먼저 온 여자 대여섯 명이 기다리고 있다가 안에서 부르면 들어가곤 했다. 석정선이 불려 들어가고 김종필은 문 밖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백운학은 석정선의 관상을 보다 말고 힐끗 김종필을 쳐다보더니 한마디했다.
  
  “혁명하시누만.”
  
  김종필은 거의 반사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니, 누굴 죽이려고 그러시오?”
  
  “다 됐어요. 걱정 마시오. 혁명하겠다고 얼굴에 다 씌어 있는데 뭘 그러시오.”
  
  “내 관상은 볼 필요가 없어요. 그 친구나 잘 봐주시오.”
  
  백운학은 석정선을 쳐다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허, 그거 파쇼. 네 발 달린 거 가지고 다니누만. 그게 사람 죽여요. 빨리 파시오. 옷은 이렇게 입고 왔지만 당신네들 중령, 아니면 대령인데 아직 官祿(관록)을 먹고 살 사람이니까 자동차 같은 거 손대지 마시오.”
  
  미국의 우려
  
  1961년 봄 미국 정부도 장면 정부의 지도력에 회의를 갖기 시작한다. 서울에 와 있던 미국 원조 기관 유솜(USOM)의 부원장 휴 D. 팔리는 한국의 부패와 유솜의 정책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사표를 제출한 뒤 워싱턴으로 돌아갔다. 유솜의 상급기관인 국제협력처(ICA=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는 팔리의 사표 수리를 보류하고 ‘당신의 의견을 보고서로 만들어 국무부 관리들과 토의해 보자’고 했다.
  
  팔리는 ‘1961년 2월 현재 한국의 상황’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3월6일 케네디 대통령의 안보 담당 특별보좌관 대리인 로스토 박사에게 전달되었다. 보고서는 ‘장면 정부의 瀆職(독직), 부패, 무능이 한국을 위기로 몰고 가고 있는데도 미국 정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면서 ‘오는 4월19일 혁명기념일에 대중의 불만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팔리 부원장은 또 ‘대통령의 특사를 한국에 급파하고 친서를 전달하는 등 긴급 대책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팔리의 이 보고서는 워싱턴 관가에 경보를 울렸다. 3월15일 대통령 직속인 국가안보회의 요원 로버트 W. 코머는 로스토 박사 앞으로 이런 요지의 메모를 보낸다.
  
  <한국 문제의 본질은 다음과 같다.
  
  a. 자원과 기술이 부족한 빈곤한 나라
  b. 견뎌 내기 힘들 정도의 군사비 지출
  c. 민주 정부의 경험 부족에 기인한 부패의 확산
  d. 민족주의적 열정의 浮上(부상)과 좌절감
  
  한국 문제의 본질은 경제난이다. 다음 10년간 미국 정부가 취해야 할 조치로서 한국군의 상당한 감축도 검토해 볼 만하다. 減軍(감군)으로 남은 미국 예산을 한국 경제 발전에 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날 로스토 박사는 케네디 대통령 앞으로 짤막한 보고서를 올려 한국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이 보고서의 결론 부분에서 로스토는 이런 건의를 했다.
  
  <한국에 대한 우리의 많은 원조는 한국이 세 번째로 추락하는 것을 막는 데 쓰여야 할 뿐 아니라 한국을 전진시키도록 하는 데 쓰여야 한다. 이승만 정권이 퇴진한 다음 한국 사회에는 이런 전진에 우리와 함께 동참할 만한 세력이 생겨났다. 이 세력은 그러나 우리의 반대 세력으로 변할 수도 있다. 각하께서는 이 문제로 러스크 국무장관과 한번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 좋을 것으로 판단됨>
  
  한국의 위기 상황에 대한 워싱턴 관가의 관심이 갑자기 높아진 것을 반영하여 정보기관들도 움직였다. 미국 CIA(중앙정보국)의 주관하에 국무부, 국방부, 육해공군, 그리고 합참의 각 정보기관이 참여한 가운데 한국 상황에 대한 종합 정보 판단서가 3월21일에 작성되었다. 특별국가정보판단서(Special National Intelligence Estimate)라고 불리는 이런 보고서는 장기적인 정책 수립에 참고가 되는 중요한 문서이다. 이 문서는 다가오는 4·19 혁명 기념일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폭력 시위에 대한 우려를 깔고 장면 정부의 대처 능력을 검토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장면 정부가 정치적으로는 사면초가의 상태에 몰려 있다고 진단했다. ‘민주당의 내분과 그에 따른 分黨(분당), 민주당 내의 분열, 무책임한 언론의 가혹한 정부 비판, 공산당의 선동, 학생·노동자·제대 군인들의 개혁 부진에 대한 불만 등으로 해서 집단시위와 대중 집회가 한국 사회의 일상적 현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또 ‘경찰과 공안 기관은 계속되는 숙청과 조직 개편 때문에 능력과 사기 면에서 크게 약화되어 폭력 시위가 일어났을 때 효과적으로 대처할지 의심스럽다. 군대를 동원하더라도 군은 시위 군중에게 발포하는 것을 주저할 것이다’고 분석했다.
  
  ‘부정부패는 한국 사회의 모든 계층에 보편화되어 있으며 민주화되었다고 해서 옛날에 비해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현재의 공무원 봉급으로는 아무리 부패 추방 운동을 벌여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 보고서는 ‘정치적 위기의 뿌리에는 경제 문제가 있다’고 분석했다.
  
  <연례적인 식량 부족에다가 1월에만 물가가 10%나 오르고 실업률은 약 20%에 이르렀다. 올해 대학과 전문학교를 졸업한 4만5000명의 취업 문제가 사회 불안을 심화시킬 것이다>
  
  이 보고서는 결론적으로 ‘인화 물질은 많다. 계획되거나 우연한 계기에 의해서 이 인화 물질을 폭발시키면 파괴적인 폭력 시위가 일어나 중대한 위기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보고서는 그러나 확률상으로는 그런 폭력 시위가 일어날 가능성이 한 해 전의 4·19 혁명 때와 비교하면 낮다고 했다. 지난해처럼 많은 사람들을 흥분시킬 만한 주제가 없고 정부가 공개적으로 그런 사태에 대처하겠다고 선언했으므로 이번 4·19 기념일은 무사히 지나갈 것 같다고 예상했다.
  
  4월1일 러스크 국무장관은 국무부의 극동 담당 차관보로 내정된 매카나기 주한 미국 대사에게 전문을 보내 한국 사태에 대한 좀더 원초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러스크는 이런 요지의 분석을 했다.
  
  <20세기 후반 아시아 나라들의 젊은층과 지식인들은 지금까지는 그냥 아시아적인 병폐로 넘어갔던 독직, 부패, 권력자의 친인척 발호를 묵인하지 않을 것이다. 현 정권에 실망한 이들은 공산주의의 독재성과 인명 경시 풍조까지도 애써 무시하면서 공산주의자들의 엄격성과 집념을 높게 평가하고 그들의 유혹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
  
  한국 정부는 언론의 비판에 너무 신경을 쓰고 있다. 정부는 젊은층에게 희망을 줄 만한 생활 수준 향상 부문에서의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어야 한다. 만약 근시안적인 세력이 집권하고 이들이 다시 쫓겨나고 하는 혼란이 일어난다면 통일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져 한국을 공산주의자들의 함정에 빠뜨릴 가능성도 있다>
  
  4월11일 매카나기 주한 미국 대사는 러스크 장관에게 보낸 한국 정세에 대한 보고문에서 장면 총리의 지도력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장면 총리의 박력 없는 지도력은 그의 인간성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바꾸기가 힘들다. 장면 총리와 측근들은 準(준)비상사태 하에선 상투적인 정치로써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장면 총리와 장관들은 기근으로 고생하고 있는 지역을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우리는 여러 차례 장면 총리에게 충고했다. 자신의 패거리나 서울의 정치판으로부터 벗어나 국민들의 문제를 동감하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지도자로 바뀌어야 한다고. 장면 총리는 젊은층을 많이 등용해야 하는데 동양적인 서열 의식 때문에 이것이 어렵다. 한국의 30대층은 그 위의 세대와 사고방식이 크게 다르다. 이들 젊은층이 사회의 지도층으로 등장하면 독직과 부패를 척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2011-02-14, 09:3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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