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가장 유명한 파라오 람세스 2세 이야기
재위 67년, 90세에 죽어. 수많은 건축물을 남기고 수많은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子女는 100명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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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 심벨 신전 앞을 지키는 람세스 2세의 巨像. 높이가 20m.

 

古代 이집트의 역사는 3000~5000년 전 것이라도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象形문자 덕분이다. 이집트의 파라오(왕)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는 람세스 2세이다. 그는 서기 전 1279년부터 1212년까지 67년간 王位에 있었다. 죽었을 때 나이는 90~91세로 추정된다. 굉장한 長壽이다. 특히 수많은 戰場을 누빈 사람으로선 기적적인 長壽이다. 그는 여러 명의 부인으로부터 100명이 넘는 자녀들을 출산했다. 52명은 남자였다고 한다.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였을 때 왕이 람세스 2세였다. 영화 '十戒'엔 대머리 배우 율 브린너가 람세스 2세 役을 맡았다. 영화에선 속 좁은 인간으로 그려졌으나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람세스 2세는 古代 이집트의 영토를 가장 넓게 확장했다. 지금의 시리아, 이스라엘까지 점령하고 수단과 리비아쪽으로도 진출하였다. 그의 경쟁자는 지금의 터키에서 일어난 히타이트 제국이었다. 이 세력은 鐵器문명을 발전시켜 좋은 무기를 가졌다. 람세스 2세는 시리아 근방에서 히타이트 군대와 여러 차례 전투를 벌였으나 勝敗를 결정짓지 못하였다. 람세스 2세는 당시 상비군 10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히타이트와 람세스 2세는 1258년 시리아 서쪽 카데쉬라는 곳에서 인류역사상 최초의 평화협정을 맺었다. 이집트와 히타이트 언어로 쓰여진 협정문이 전한다.

람세스 2세는 이집트 全域에 수많은 건축물(도시, 神殿, 조각상 등)을 남겼다. 압부 심벨은 람세스 2세가 지은 수많은 神殿 중 하나이다. 그는 죽고 나서 룩소르의 '왕의 계곡'에 있는 무덤(KV 7)에 묻혔으나 곧 도굴되었다. 그의 미라는 여러 사람들을 거쳐 지금 카이로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최근 이 박물관 앞 타흐리르 광장에서 민주화 시위가 있었다. 혼란을 틈 타 한 침입자가 지붕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와 투탕카멘 王의 유물 몇 점을 갖고 달아났다. 다행히 람세스 2세의 미라는 안전하였다.

 

미라를 측정한 결과 람세스 2세의 키는 生前에 170cm였다. 목과 가슴을 잇는 나무 막대기가 꽂혀 있었다. 미라를 만들 때 목이 떨어진 것을 연결한 흔적이었다. 1974년 이집트는 람세스 2세의 미라를 파리로 옮겨 정밀검사를 하고 곰팡이가 생기지 않도록 처치를 받았다. 람세스 2세는 여러 군데 戰傷과 골절상을 입은 것으로 밝혀졌다. 프랑스 정부는 람세스 2세의 미라가 도착할 때 국가원수처럼 대우, 공항에서 군대 사열까지 받도록 하였다고 한다. 

[ 2011-02-18, 00:1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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