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세르를 평가하였던 朴正熙
이집트의 군사정권은 경제개발에 실패, 지금 1인당 국민소득은 한국의 10분의 1이다. 5.16 군사혁명이 났을 때는 1인당 국민소득에서 한국을 앞선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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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正熙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1963년에 쓴 '國家와 革命과 나'에는 나세르가 주도한 이집트 혁명을 높게 평가하는 대목이 있다.
  
  <공화제 이집트의 실권자가 된 나세르는 그동안 여러 가지 제약으로 완화하여오던 자신의 소신을 그 때부터 발휘하게 되었다. 이것이 말하는 ‘나세르 혁명 6개 원칙’이다. 즉,
  
  1. 식민주의와 그 동조자에 대한 제재
  2. 봉건주의의 폐지
  3. 정치에 대한 金力(금력) 지배의 종식
  4. 강력한 국민군의 창설
  5. 사회정의의 보장
  6. 건전한 민주적 생활
  
  이리하여, 其間(기간) 성격이 모호하였던 이집트의 혁명 노선은 점차 그 윤곽을 드러내게 되었다.
  
  첫째, 그의 중립노선이 그것이다. 1955년 7월의 나세르·네루·수카르노 회담, 同 12월의 나세르·티토 회담, 그리고 그의 반둥 회의 참석 등에서 언제나 그는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둘째. 이스라엘 문제를 게기로 하여 全 아랍세계의 단결 촉진이다.
  그리고 끝으로 1956년 6월13일 실현을 보게 된 수에즈 운하의 영국군 철퇴로써 이집트의 숙원을 성취시켰다는 점이다.
  
  나세르는 1956년 6월23일에 新헌법을 국민투표에 부치게 하였는데 여기서 그는 투표율 99% 중 지지율 98.8%라는 승리를 거두었고, 99.9%란 지지를 받아 정식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우리들은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니다. 단지, 우리는 우리의 사회를 형성 중에 있을 뿐이다.”
  나세르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그는 지금 세계 최대의 댐이자 이집트 공업화의 중심 동력원이 되고, 全경작지의 3할을 증가한다는 장대무비한 아스완 하이 댐 공사에 여념이 없다.
  
  또한, 1960년부터 시작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약 37,500만 이집트 파운드를 투입하여 연간 13,700만 이집트 파운드의 국민소득 증가를 기하려고 총력을 다하고 있다.
  
  그는 또한 민족 경제의 재건을 돕는 인사라면 누구든지 이집트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하여 동서 양방을 마음대로 다루고 있고, 아랍과 아프리카의 頂點에 앉아, ‘제3세계 건설’이란 내일을 향하여 손짓하고 있다. 수천 년래의 봉건 아성을 무너뜨리고 생기 충일하는 현대 이집트를 건설하려는 나세르의 자세와 투지!
  
  동서의 강대세력, 그 한복판에 서서 실리외교를 추진하며 제3의 세계를 외치면서 세계 균형을 조정하고 나서려는 그의 철학은 확실히 弱者가 창조하여 가는 현실의 기적이 될 것으로, 이는 우리의 관심을 모아 마땅하리라 믿는 바이다.>
  
  1952년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30代의 나세르는 수에즈 운하를 國有化(국유화)하여 영국·프랑스로 대표되는 제국주의 세력과 대결하면서 안으론 근대화 개혁도 밀어붙였다. 나세르의 아랍민족주의는 중동뿐 아니라 세계 도처의 민족독립운동에 영향을 끼쳤다. 만델라와 카스트로와 후세인은 나세르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다.
  
  나세르 노선을 추종하는 정치세력이 1950~1960년대에 中東에서 많이 생겨 집권하기도 하였다. 시리아, 이라크에선 나세르주의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성공하였다. 나세르의 영도하에 이집트와 시리아는 1958년에서 1961년까지 아랍연방공화국으로 합쳐진 적도 있다.
  
  5.16 군사혁명을 주도한 청년장교들중엔 1952년 군사쿠데타로 부패한 王政을 타도한 후 아랍민족주의를 내세우면서 帝國주의 세력과 맞서는 나세르를 숭배한 이들도 있었다. 5.16 주체세력은 성향이 대체로 민족주의적이었다. 朴正熙 소장도 이런 분위기를 탄 것으로 보인다.
  
  나세르주의는 한때 中東을 풍미하였으나 1967년 6일전쟁 때 이집트가 이스라엘에 참패한 뒤 지도력을 상실, 몰락과정을 밟았다. 1970년에 나세르가 急死하였을 때는 52세였다. 이집트의 군사정권은 경제개발에 실패, 지금 1인당 국민소득은 한국의 10분의 1이다. 5.16 군사혁명이 났을 때는 1인당 국민소득에서 한국을 앞선 나라이다. 박정희는 民選 대통령이 된 뒤로는 나세르를 일체 언급하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의 自主국방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
  
  무바라크의 퇴장은 나세르가 시작한 군부통치가 경제개발과 사회혁명에 실패하였음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한국의 안정은 박정희式 근대화의 성공을 입증한다. 하지만 1963년엔 나세르가 성공하는 듯 보였다. 역사의 變轉은 신비하다. 오늘의 성공은 내일의 실패를 예약하고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성공을 낳는 경우가 허다하다. 역사 앞에선 겸손해야 할 이유가 있다.
  
  
[ 2011-02-18, 17:4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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