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첩대, 5월12일부터 朴正熙 24시간 감시
5·16 군사혁명 50주년 기념 연재(28)/ 장도영 총장이 박정희를 끝까지 비호함으로써 장면 정부는 박정희의 쿠데타를 저지할 수 있는 최후의 기회를 놓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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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 ‘박정희 체포 건의’
  
  토요일인 5월13일, 혁명 주체 장교들은 저마다 점검과 확인으로 바빴다. 부산의 군수기지사령부 참모장 김용순 준장은 작전참모와 본부사령을 불러 거사 계획을 털어놓고는 “혁명 방송이 나가면 본부를 장악하라”고 지시했다. 1군 사령부의 李鐘根(이종근·국회의원 역임) 중령은 서울로 올라와서 유승원 대령을 만났다. 유 대령은 “2~3일 안으로 거사할 것이고 인편으로 알려줄 것이니 밤차로 귀대하여 대기하라”고 말했다. 대구 2군 사령부에서 이주일 참모장은 논산훈련소 崔泓熙(최홍희)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한 대령을 내일 중에 대구로 보내 달라”고 했다. 최홍희는 일찍부터 혁명 주체 세력으로 포섭되어 있었다.
  
  이원엽 육군항공학교장이 광주에서 날아왔다. 이주일은 박정희가 써놓고 간 편지를 이 대령에게 건넸다. 펴 보니 ‘조국의 장래와 민족의 운명을 건 이 유신대업에 동참하고 수일 후 서울에서 감격의 악수를 나누자’고 적혀 있었다.
  
  박치옥 공수단장도 김제민 대대장과 차지철 대위 등 중대장들을 불러 거사일이 임박했다고 통보하고 정부 요인 체포 계획을 알려 주었다. 해병대도 이날 김동하 장군 집에서 회의를 했다. 김윤근 해병여단장과 출동 대대장 오정근 중령을 부른 김동하 장군은 거사 날짜가 16일로 확정되었음을 통보했다.
  
  5월13일 저녁, 서울 옥인동의 ‘백양’이란 요정에 장도영 육군 참모총장, 민주당 金在淳(김재순·국회의장 역임) 의원, 선우종원 조폐공사 사장, 송원영 총리 공보비서관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송원영의 기억에 따르면 김재순은 단도직입으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박정희라는 소장의 쿠데타 음모설이 있는데 참모총장은 총리께 보고했는지요?”
  
  “오늘 낮에 총리께 보고드렸습니다. 박정희 소장은 나의 꼬붕입니다. 형님, 참모총장을 못 믿겠습니까?”
  
  “하긴 참모총장을 못 믿고 누굴 믿겠소? 옛날 신하는 군주에게 충성했지만 현재의 군인은 헌법에 충성해야 하지 않겠소. 합헌적 정부를 전복하려는 쿠데타 기도를 총장이 책임지고 분쇄해야 합니다.”
  
  송원영이 보니 장도영은 매우 당황한 듯 보였다고 한다. 그날따라 장도영은 무슨 고민이 있는 얼굴을 하고 술도 많이 마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도영은 방바닥에 벌렁 눕더니 “형님, 정말 못 해먹갔어요”라고 했다. 송원영은 일주일쯤 전에 윤병한 의원으로부터 들은 김덕승 건을 상기시켰다. 장도영은 “그에 관해선 총리로부터 이미 이야기를 들었는데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다”라고 하더란 것이다. 이들은 이날 일찍 자리를 떴다. 장도영 총장이 “어디 갈 데가 있다”면서 총총히 일어서 나갔기 때문이다. 장도영은 선우종원에게 “내일 골프나 칩시다”라고 했는데 선우종원은 냉정하게 거절했다.
  
  장도영은 장면 총리의 ‘박정희 쿠데타 기도설에 대한 조사 지시’에 대하여 “낭설이다”라고 보고했으나 같은 지시를 받은 검찰은 제대로 수사를 하고 있었다. 이태희 검찰총장은 서울지검 金洪洙(김홍수·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역임) 부장검사에게 수사를 맡겼다. 김 부장은 박정희로부터 500만 환의 거사 자금을 마련하도록 부탁받았던 김덕승에게 미행을 붙였다.
  
  김홍수에 따르면 김덕승이 박정희 집에 출입하는 것도 확인했다고 한다. 검찰은 5월12일 오전에 김덕승을 체포했다. 김홍수는 김덕승이 조사를 받고 있던 남대문 근처의 한 호텔로 가서 김을 만났다. <5·16 혁명실기>에는 김덕승이 수사관의 문초를 받고도 끝까지 비밀을 지켰다고 적혀 있으나, 김홍수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죄다 털어놓았다고 한다. 김홍수는 내란음모죄로 그를 구속하면 사회에 너무 큰 충격을 줄 것 같아서 우선 사기미수 혐의로 구속했다. 그러고는 이태희 검찰총장을 찾아갔다. 김홍수는 ‘박정희 쿠데타 음모설은 사실로 판명되었다’고 보고했다.
  
  “이 총장은 보고를 듣더니 ‘내가 이미 아무 일도 아니라고 장면 총리에게 보고했다’고 합디다. 저는 ‘아닙니다. 이번만은 틀림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나를 앉으라고 하더니 이 총장은 장도영 총장한테 전화를 걸더군요. 이 총장은 장도영에게 ‘검찰에서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 모의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어요. 그렇게 한 15분쯤 앉아 있는데 장도영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장도영은 이 총장에게 대략 이런 말을 한 것 같습니다.
  
  ‘내가 대구의 박정희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 보았는데 전혀 그런 뜻이 없다고 합니다.’
  
  이 광경을 보면서 저는 이 총장과 장 총장이 쿠데타 모의 문제를 신중하지 않게 다루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홍수 부장검사는 5월13일엔 경찰로부터 결정적인 정보를 입수했다. 경찰에서 군부대 사이의 전화를 감청하고 있었는데 부대의 움직임이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고 보고하는 것이었다. 김홍수는 이 정보를 가지고 이태희 총장실로 달려갔다. 이태희 총장은 김 부장의 보고를 받더니 얼굴이 확 붉어지더라고 한다. 이 총장은 장면 총리가 머물던 반도호텔로 달려갔다.
  
  총장의 긴급 보고를 들은 총리는 장도영을 불러들였다. 이태희 변호사의 기억에 따르면 장도영은 손을 저으면서 “내가 알아보았는데 군에는 별일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더란 것이다. 이태희 총장은 “나는 군에 관련된 권한이 없으니까 당신이 조치하시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육군 방첩부대 산하 506서울 지구 대장 이희영의 증언에 따르면 이날 저녁 506방첩대장실에서 ‘박정희 체포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다. 이철희 방첩부대장, 이희영 대령, 그리고 이태희 검찰총장이 참석했다고 한다.
  
  이태희 총장은 그간의 수사결과를 설명하면서 “박정희는 지금 서울에 올라와 있는 모양이니 빨리 잡으시오”라고 재촉했다. 이희영은 “장성 체포는 국방장관이나 참모총장의 내락을 받아야만 가능합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철희는 이날 밤 참모총장 공관으로 장도영을 찾아갔다는 것이다. 이태희 총장의 구속 요구를 전달하자 장도영은 “좀더 두고 봐”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희영은 박정희가 대구에서 상경한 5월12일부터 방첩대의 4인 1조 미행 팀을 박정희에게 붙여 놓고 24시간 감시를 하고 있었다. 거사일이 12일에서 15~16일경으로 연기된 것도 알고 있었다. 모의 장교들 속에 방첩대 협조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장도영 총장이 박정희를 끝까지 비호함으로써 장면 정부는 박정희의 쿠데타를 저지할 수 있는 최후의 기회를 놓치고 만다.
  
  합동 작전 회의
  
  해병대는 거사 준비를 모범적으로 하고 있었다. 김포 해병여단장 金潤根(김윤근) 준장은 출동 부대로 내정한 吳定根(오정근·국세청장 역임) 중령의 대대를 강화하기 위해서 5월 초에 步戰砲(보전포) 협동 훈련을 실시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는 작전참모는 “보전포 훈련을 할 만한 장소가 없다”고 반대했다. 김윤근은 “군단장과 인접 사단장을 모시고 훈련 시범을 가지려는 것이니 비좁더라도 여단 지역 내에서 장소를 물색해 보라”고 지시했다.
  
  보전포 훈련이 오정근 대대 중심으로 끝나자 김윤근 여단장은 이 대대에 대해서 야간 기동 훈련을 실시하라고 명령했다. 다른 장교들은 훈련이 오정근 대대에 집중되는 걸 보고는 기합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정근 대대는 중대 단위의 도보 훈련만 해오다가 대대 규모의 차량 이동 훈련을 받게 되었다.
  
  김윤근 여단장은 김포 가도를 현지 시찰했다. 비포장에다가 노면이 울퉁불퉁하고 웅덩이도 있어 야간 기동에 장애가 될 것 같았다. 그는 해안 중대와 공병 중대를 동원하여 길을 보수했다. 해병대가 5월16일에 모범적으로 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5월14일은 화창한 일요일이었다. 이날 아침, 영천에서 상경한 韓雄震(한웅진) 육군정보학교장이 신당동 박정희 집에 들렀다. 한 준장의 임무는 거사 당일 박정희의 경호와 수행이었다. 이때 이틀 전에 경찰에 연행, 구속된 뒤 박정희의 쿠데타 모의에 대해 추궁을 받고 있던 김덕승의 처가 찾아왔다. 남편을 살려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었다. 한웅진은 “며칠 참으면 절로 해결될 터이니 기다려 주세요”라고 달래 보냈다. 박정희, 한웅진 두 사람은 내일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한웅진은 박정희의 호위병으로 데리고 올라온 부하들이 묵고 있는 화신 옆 미화호텔로 돌아갔다. 박정희는 집을 나서 약수동으로 향했다.
  
  서울 약수동 김종락(김종필의 형)의 집에 아침부터 평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검은색 안경을 낀 이들이 많아 장교들임을 짐작케 했다. 은행 간부이던 김종락은 집 안의 아이들을 모두 학교 운동장으로 보냈다. 김포 해병여단장 김윤근 준장은 처음 찾아가는 길이라 늦을까 봐 일찍 출발했는데 회의 시간 10시보다 15분 일찍 도착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한꺼번에 오면 이웃에서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근처 다방에서 3, 4명씩 모였다가 들어오곤 했다. 참석자들은 박정희 소장과 김동하 예비역 해병소장, 김종필을 비롯하여 25명.
  
  공수단: 단장 박치옥 대령, 대대장 김제민 중령. 30사단: 작전참모 이백일 중령, 33사단: 작전참모 오학진 중령.
  
  6군단 포병단: 6군단 작전참모 홍종철 대령, 대대장 신윤창 중령, 대대장 具滋春(구자춘) 중령, 대대장 白泰夏(백태하) 중령, 대대장 鄭五敬(정오경) 중령, 대대장 金人華(김인화) 중령.
  
  6관구 사령부: 참모장 김재춘 대령, 작전참모 박원빈 중령.
  
  김포 해병여단: 여단장 김윤근 준장, 대대장 오정근 중령, 부연대장 趙南哲(조남철) 중령, 인사참모 최용관 소령.
  
  특수 임무 담당자: 오치성 대령, 옥창호 중령, 김형욱 중령, 이석제 중령, 유승원 중령, 박종규 소령.
  
  박정희가 간단한 인사를 했다. 이어서 쿠데타군 출동 계획의 입안자인 朴圓彬(박원빈) 중령이 각 부대의 임무와 출동 시간을 설명했다. 그 요지는 이러했다.
  
  원래 박원빈은 한강 서쪽에 위치한 부대가 한강 인도교를 건너는 순서를 해병여단, 공수단, 33사단으로 제의했으나 김윤근 해병여단장이 반대했다. 그는 해병여단이 가장 먼 곳에 있으니 공수단 뒤로 해달라고 했다. 공수단 김제민 중령은 공수단에 차량이 부족하다면서 스리쿼터 수송대의 지원을 요청했다. 스리쿼터 한 대에 공수단 1개 팀이 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박원빈 중령은 6관구의 차량들을 15일 밤 10시까지 공수단 연병장으로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회의가 끝날 무렵 김종필이 신문지에 싼 돈을 돌렸다. ‘집에 양식이라도 사주자’는 취지였다. 해병대 몫은 30만 환이었다. 이 합동 작전 회의가 끝난 뒤 해병대의 네 사람은 따로 모였다. 오정근 대대장 등 세 영관 장교들은 여단장에게 불평했다.
  
  “왜 한강 인도교 통과의 선봉을 양보했습니까.”
  
  김윤근 준장은 찬찬히 설명했다.
  
  “거사가 실패했을 경우를 생각해 보았소? 우리가 선봉이 되었다가 실패했을 경우, 해병대의 입장이 얼마나 난처해지겠소. 또 성공한다 하더라도 해병대가 선봉이었다고 하면 누가 집권해도 해병대를 경계하고 푸대접하게 될 것이고, 육군 측의 시기와 中傷(중상)이 첨가되면 해병대에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우려가 있으니 피해야지요.”
  
  합동 작전 회의를 마친 뒤 김종필과 이석제, 민간인 김용태는 남아서 문안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혁명 공약, 포고문은 김종필이 작성했다. 유승원 대령과 이석제 중령은 국민, 학생, 재향 군인, 국군, 유엔군 장병 및 사령관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작성했다. 이런 문건들을 검토한 뒤 김종필 중령이 박정희에게 가져가 최종 검토를 받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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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2020년까지 원자력발전 2,000만kW로 확대
  인도의 인구는 2040년이면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가 되고, 이후 계속 증가하여 2050년에는 15억 3,1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World Population Prospects: The 2002 Revision).
  인도의 1차 에너지 수요는 2030년 시점에서는 중국의 절반 이하에 불과하여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인도의 비중은 중국만큼 높지 않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인구증가와 함께 인도가 세계 에너지 수급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인도는 중국과 같이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를 맞추기 위해 각종 시책을 강구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의 확대가 그 가운데 하나이다. 고속증식로(FBR)와 고온가스로의 도입을 계획하는 등 양국에는 공통점이 많지만, 당장 기술(원자력발전소)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중국과는 대조적으로 인도는 나름대로 독자적인 원자로 개발 노선을 걸어오고 있다.
  
  우선, 인도의 에너지 수급 예측을 보자.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의『World Energy Outlook 2004』에 따르면, 인도의 1차 에너지 수요는 2002년 석유환산으로 5억 4,000만톤이었던 것이 2030년에는 10억 3,000만톤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석유 수요는 2002년 실적으로 250만배럴/일이지만, 연율 평균 2.9%로 증가하여 2030년에는 560만배럴/일에 달할 것이다.
  
  한편 국내공급은 2002년 실적 80만배럴/일이 2030년에는 50만배럴/일로 낮아질 것이다. 때문에 석유의 실질 수입의존도가 크게 높아져 2002년에 69%였던 것이 2030년에는 91%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세계 전체의 수요가 연율 평균 2.3%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 천연가스의 경우, 인도에서는 2002년 280억m3이 2030년에는 1,100억m3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부문별로 보면, 세계적인 경향이라고 할 수 있듯이, 인도에서도 발전부문의 천연가스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한편, 천연가스 공급의 경우 2003년에 270억m3였던 국내생산량이 2030년에는 660억m3로 늘어날 것이지만, 급속히 증가하는 수요를 맞출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천연가스의 실질 수입의존도는 2002년 실적에서는 0%였지만, 2030년에는 40%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편 실질 수입량 가운데 70% 가까이가 액화천연가스(LNG)가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인도의 석탄수요는 2002년 실적 3억 9,100만톤에서 연율 평균 2.4% 증가하여 2030년에는 7억 5,800만톤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석탄수요의 대부분을 점하고 있는 것이 발전부문인데, 현재 총발전량의 71%를 석탄이 공급하고 있다. 다만 2030년에는 전원의 다양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발전부문에서 점하는 석탄의 비율은 64%까지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석탄수요의 대부분은 국내생산으로 조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력수요의 경우 국제에너지기구(EIA)는 세계 전체에서 연율 평균 2.5%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특히 증가가 두드러진 곳은 개발도상국인데, 2030년까지 전력수요는 3배 이상으로 증가할 것이다. 지역별로 보면 아시아지역의 전력수요가 가장 두드러질 것이다.
  
  인도에서는 2030년까지 연률 4.9%로 전력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는데, 이러한 수요증가에 대처하기 위해 2030년까지 2억 7,200만kW의 발전소를 신규 건설할 전망이다. 이 가운데 원자력발전은 현재의 원자력발전 설비용량(277만kW)을 2020년까지 2,000만kW로 확대할 방침이다.
  
  2008년까지 8기 396만kW 운전개시
  원자력발전의 확대를 위해 인도가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 보자. 우선 인도에는 현재 건설중인 원자력발전소가 9기(합계 설비용량 446만kW)이다. 이 가운데 진척률이 가장 높은 것은 타라푸르 4호기(PHWR, 54만kW)로 2005년 1월 22일 핵연료 장전작업을 시작하였다. 당초 2006년 4월경 운전개시 예정이었지만 시기가 앞당겨져 2005년 8월경이 될 전망이다. 고속증식로 원형로인 PFBR을 제외한 나머지 7기에 대해서도 2008년까지는 운전을 개시하여 원자력발전 설비용량은 현재의 277만kW에서 396만kW가 늘어난 673만kW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러한 가운데 러시아와의 원자력협력이 불안요인으로 등장하였다. 인도는 독자개발 노선을 걷는 한편, 조속히 전력공급을 확보하기 위하여 2002년에 러시아제 PWR인 VVER-1000형로 2기를 쿠단쿨람 사이트에서 개시하였다. 쿠단쿨람 발전소는 인도 최초의 100만kW급 원자로로 1호기는 2007년 12월, 2호기는 2008년 12월 운전개시 예정이다.
  
  러시아측은 양기의 건설에 이어 3, 4호기의 증설을 인도측에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한편, 일부 보도(2004년 12월 6일자 The Hindu지 전자판)에 따르면, 3, 4호기 이외에 타라푸르 1, 2호기(BWR, 각 16만kW)용 핵연료(저농축우라늄) 제공을 중단할 의향을 표명했다고 한다.
  
  이 신문에 따르면, 러시아측은 인도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포괄적 보장조치를 받아들이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원자력공급국그룹(Nuclear Suppliers Group: NSG)에 참가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핵비확산조약(NPT) 비가맹국이면서 NSG에도 참가하고 있지 않는 인도에 농축우라늄과 원자력발전소를 수출하는 것은 신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핵연료의 공급을 포함하여 건설중인 쿠단쿨람 1, 2호기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고, 인도측도 "현재로서는 상황을 지켜본다(아닐 카코드카르 원자력위원장)는 입장이다.
  
  한편 1호기의 원자로 압력용기는 2004년 11월 18일 러시아의 상페테르부르크 교외의 합동중기계공장에서 인도로 출하되었다. 2호기 압력용기도 2005년 4월에 출하할 예정이다.
  
  그는 만약 러시아로부터의 농축우라늄 공급이 중단된다거나 원자력발전소의 수입이 불가능해지더라도 인도 원자력발전 계획 자체에 큰 혼란은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FBR 원형로 건설 시작
  인도는 기존의 중수로 노선에 이은 제2단계로 고속증식로(FBR)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인도 국내에서는 실험로 규모의 FBR인 PFBR(전기출력 1만 3,000kW)이 1997년에 운전을 개시하였다. 또한 이에 이어 2004년 10월 23일에 FBR 원형로인 PFBR(Gross 전기출력 50만kW) 건설을 시작하였다. 2011년에 완공 예정이다.
  
  한편 2003년 10월에는 PFBR의 운영주체인 신회사 BHAVINI를 설립한 바 있다. 인도원자력성(DOA)에 따르면, 추가로 4기의 동형 FBR을 건설할 계획과 향후 100만kW급 FBR을 복수 건설할 구상도 있다고 한다. 인도는 FBR 개발에 있어서 60년의 내용년수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FBR에 이은 제3단계로 인도는 세계 최고의 매장량(세계 전체의 1/3)을 자랑하는 토륨 이용을 계획하고 있다. 토륨 자체는 핵분열성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FBR 등을 이용하여 핵분열성 물질인 우라늄 233으로 변환시키고 이를 재처리하여 개량형 중수로(Advanced Heavy Water Reactor: AHWR)에서 이용한다는 것이다.
  
  AHWR은 縱型 압력관 형식의 중수감속 비등경수로인데, 기본적으로 일본의 ‘후겐’(2003년 3월 폐쇄)과 같은 구조이다. AHWR은 자연순환에 의한 열 제거기능 등 피동형 안전특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년수를 100년으로 설정하고 있다. 플루토늄 연료를 핵분열성 feed 물질로 이용하면서 토륨 연료를 노내에서 우라늄 233으로 변환하여 핵반응을 지속시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인도는 AHWR 실현의 첫걸음으로 전기출력 30만kW의 원형로 건설에 곧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원형로의 건설, 운전을 통해 얻은 경험을 토대로 설계의 최적화를 이루고, 나아가 출력이 높은 AHWR II로 버전업한다는 계획이다. 아닐 카코드카르 원자력위원장은 2005년 1월 20일 바바 원자력연구센터(Bhabha Atomic Research Centre)에서 AHWR의 설계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토륨 이용을 중심으로 하는 제3단계에서 AHWR의 다음 단계가 컴팩트 고온원자로(Compact High Temperature Reactor: CHTR)이다. 수소의 제조와 원격지 전력공급용으로 열출력 100kW의 CHTR를 개발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미 노심과 제어계의 설계는 종료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이은 제3단계 스텝 3이 가속기 구동 시스템(Accelerator Driven Systems: ADS) 개발이다. 우라늄 233 제조와 PHWR의 운전에 따라 발생하는 장수명 방사성폐기물의 핵변환 등에 이용할 전망이다.
  
  수마트라 지진의 영향으로 원전 1기 일시 운전정지
  마드라스 원자력발전소 2호기(PHWR, 출력 22만kW)가 2004년 12월 26일 수마트라 지진해일로 현지시간 9시 15분 해수펌프 건물 침수에 따른 터빈 트립((Turbine trip)으로 원자로를 긴급정지시켰다. 1호기(PHWR, 17만kW)는 개조공사로 인해 정지중이었다.
  
  동 원자력발전소가 입지해있는 타밀 나두주 남부는 해일로 6,170명이 사망(2005년 1월 2일 현재)하는 등 인도 국내에서 가장 피해가 컸다. 다만, 마드라스 원자력발전소에서는 침수로 인한 외부로의 방사성물질 누출 등의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또한 동 발전소에 인접하여 건설중이던 PFBR도 기초공사 부분이 침수되었을 뿐 큰 영향은 없었다.
  
  FBR 실험로인 FBTR은 해안선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해일의 영향은 전혀 없었다. 한편 마드라스 2호기는 인도원자력위원회(AERB)의 검사에서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2005년 1월 2일에 운전을 재개하였다.
  
  
  
[ 2011-02-22, 14:3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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