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正熙, 일생일대의 위기

5·16 군사혁명 50주년 기념 연재(34)/ 5월16일 零時, 착착 진행되는 줄 알았던 거사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지휘소여야 할 6관구 사령부는 혼란 상태에 빠져 있었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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零時의 암흑
  
  사람이 긴장하여 불안에 휩싸이면 정상적인 판단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5월15일 밤 6관구 사령부 앞에서 벌어졌다. 거사 비밀이 누설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혁명파 장교들은 사령부 정문에 배치된 병력이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쪽에서 동원한 것이라고 오판했다. 아무도 초병들을 통해서 안에 있는 朴圓彬(박원빈) 작전참모나 金在春(김재춘) 참모장을 부르려고 하지 않았다.
  
  박정희가 탄 지프를 따르던 뒤차의 張坰淳(장경순) 육본 교육처장은 6관구 사령부 정문에서 초병들이 박정희의 지프를 에워싸는 것을 보고는 朴 장군이 체포되고 있다는 오판을 했다.
  
  장경순은 이날 자신의 임무가 공수부대의 출동을 도와주는 것임을 깨닫고 김포의 공수단으로 차를 계속해서 달리게 했다. 차 안에서 장경순은 만감이 교차하는 고민을 했다. 공수단 정문에 도착하여 내리려다가 그는 한 200m쯤 더 가게 한 뒤 차를 세웠다. 먼저 내린 장경순이 뒷자리에 탄 權天植(권천식) 소령을 보고 말했다.
  
  “너, 내려!”
  
  장경순은 다짜고짜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넌 내려서 집에 가!”
  
  “안 됩니다. 같이 가겠습니다.”
  
  “이 사람이, 어디를 가는 줄도 모르면서 같이 간다고 해? 빨리 내려!”
  
  권천식 소령은 기어코 안 내리겠다고 버티는 것이었다. 권 소령은 3사단의 중대장으로서 6·25 당시 관망산 고지 전투에서 용맹을 떨친 사람이었다. 관망산을 공격한 일곱 명의 중대장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였다. 장경순은 멱살을 잡고 그를 끌어내렸다. 그러고는 타이르듯이 조용히 말했다.
  
  “자네는 4대 독자가 아닌가. 죽어선 안 돼. 그리고 자네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어.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우리 가족도 돌봐 주어야지.”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권천식 소령은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더니 입을 덜덜 떨었다. 장경순은 ‘사람이 살고 싶어지면 이렇게 무서움을 느끼게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장경순은 권천식을 어둠 속에 남겨둔 채 공수단 정문으로 다시 돌아갔다. 공수단 정문에서 초병이 “아무도 못 들어갑니다” 하고 막았다.
  
  “이 사람아, 장성이 못 들어간다니 말이 되는가. 단장을 대.”
  
  초병이 朴致玉(박치옥) 단장을 전화로 연결시켜 주어서 비로소 정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장경순이 단장실로 들어가 보니 육본 특전감 張好珍(장호진) 준장이 와 있었다. 그는 ‘공수단의 출동을 저지하라’는 張都暎(장도영) 총장의 지시를 받고 감독차 와 있었다. 장호진 장군은 장경순과는 일제시대 學兵(학병) 동기였다. 장경순은 그를 바깥으로 불러냈다.
  
  “장 장군, 내가 일일이 설명해야 알겠소? 이 나라가 이래서야 되겠소? 협조하시오.”
  
  “알았어. 그런데 성공해야 할 텐데.”
  
  두 張 장군이 단장실로 돌아가니 박치옥이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대화를 들어 보니 상대방은 장도영 총장이었다. 박치옥 단장이 “장경순 장군도 와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하니 장도영이 “바꾸라”고 한 듯했다. 장경순과 장도영은 동양대학 동창으로서 친밀한 사이였다. 전화기를 드니 장도영이 “귀관, 뭐 하러 거기 갔소. 지금도 늦지 않으니 돌아가”라고 호통을 쳤다.
  
  “각하, 지금 어디 계십니까? 만나 뵈어야겠습니다.”
  
  “돌아가란 말이야!”
  
  장도영은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한편 6관구 사령부의 정문을 통과한 박정희는 본부 건물로 들어오다가 육군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연락을 받고 진해에서 올라온 尹必鏞(윤필용) 중령을 만났다. 박 장군은 “먼 데서 왔군” 하며 악수를 했다.
  
  참모장실에서 전화통을 붙들고 씨름을 하고 있던 김재춘 대령은 박정희에게 “수색(30사단)과 부평(33사단)이 연락이 되질 않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참모장실에 모인 혁명파 장교들은 스무 명을 넘었다. 이들은 굳은 표정으로 서성대고 있었다. 이때가 자정을 한 15분쯤 넘긴 시점이었다. 박정희는 6관구에 오기로 약속한 시각인 밤 11시보다 한 시간쯤 늦게 나타난 셈이었다.
  
  달력은 이제 5월16일로 넘어갔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착착 진행되는 줄 알았던 거사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지휘소여야 할 6관구 사령부는 혼란 상태에 빠져 있었다. 수많은 사선을 넘어온 박정희는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아직 그의 수중엔 일개 대대 규모의 병력도 없었다. 장도영 총장은 이미 쿠데타 저지에 나서고 있었다. 옆방에는 李光善(이광선) 헌병차감이 혁명에 가담한 장교들을 조사하려고 헌병들을 데리고 와 있었다. 5월16일이 시작된 零時(영시)의 상황은 암담했다.
  
  이 순간 6관구 사령부엔 彼我(피아)가 뒤섞여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김재춘 대령의 활약 때문이었다. 남을 돕기를 좋아하고 임기응변에 능한데다가 기가 센 김재춘은 박정희에게 거사 누설의 急報(급보)를 올린 뒤 사령부로 왔었다.
  
  김재춘이 사령부로 들어가자마자 徐鐘喆(서종철) 6관구 사령관이 전화를 걸어왔다. 徐 소장은 육본 헌병감실에서 전화를 걸고 있었다. 김재춘의 기억에 따르면 그는 대강 이런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참모장, 어떻게 된 거요? 지금 우리 부대 내에서 쿠데타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고 하는데 어디를 그렇게 싸돌아다니고 있단 말이오. 헌병 중대를 보냈으니 곧 도착할 헌병차감과 상의하여 반란군을 색출, 체포하시오. 모두들 참모장의 지휘를 받으라고 명령했소.”
  
  “예, 알겠습니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서종철 소장은 반란군의 핵심인 김재춘에게 반란군을 소탕하라는 명령을 내린 셈이다. 그때까지도 서종철 소장은 참모장이 박정희 소장 그룹의 중심인물임을 모르고 있었다. 김재춘은 이날 밤 그가 성공적으로 6관구의 혼란 사태를 충돌 없이 수습할 수 있었던 이유가 ‘사령관으로부터 지휘권을 위임받은데다가 양쪽으로부터 다 같이 신임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張都暎─朴正熙 전화
  
  김재춘 6관구 참모장은 서종철 사령관이 반란군을 진압하라고 보낸 헌병중대가 나타나자 지휘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영내에 製絲(제사) 공장이 있어요. 거기에 큰 창고가 있는데 거기 들어가서 別命(별명)이 있을 때까지 대기하도록 하시오. 반란군도 무장을 하고 있어 충돌이 우려되니 일단 거기서 내 명령을 기다리시오.”
  
  그 전에 쿠데타 주체 장교들은 카빈 한 정씩을 나누어 가졌다. 그는 영문도 모르고 비상 소집되어 나온 非(비)혁명파 장교들의 질문 공세에 대해서도 적당히 둘러댔다. 얼마 뒤 수십 명의 헌병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손에는 조서 용지, 수갑, 포승이 들려 있었다. 헌병들을 인솔하고 온 것은 이광선 헌병차감이었다. 이 대령은 김재춘과는 육사 5기로서 동기인데다가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6관구 사령부에 나가 있는 장교들을 귀가시키고 불응하면 연행 조사하라’는 명령을 받고 나온 이광선은 김재춘이 나타나자 대뜸 “야, 어떻게 된 거야?”라고 소리쳤다.
  
  이 순간 김재춘은 ‘상황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면 절대로 기가 죽어선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속으로 다짐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이러했다.
  
  “야, 너 아직 몰랐냐? 우리 혁명하는 거?”
  
  “뭐라고? 우리는 널 체포하러 왔단 말이야.”
  
  “누가 누굴 체포해? 잘못하면 네가 체포당하게 되어 있어.”
  
  “이봐. 잡으러 온 사람보고 그런 농담하지 마. 자세히 이야기 좀 해봐.”
  
  “잘 들어. 지휘관은 박정희 장군이시고, 해병대, 공수단, 그리고 육해공군 전체가 참여하고 있어. 임마, 잘못하면 너희들이 다 잡혀들어가. 조금 전에 인천항에 함정이 도착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어. 해군이 함정을 보낸 건 장성들을 죄다 잡아 실어버릴 계획이 있기 때문이야.”
  
  김재춘은 이왕 확인이 안 될 말이니 거짓말을 해도 크게 하는 것이 친구를 위해서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재춘 6관구 사령부 참모장은 박정희가 나타날 때까지 초조하게 기다리면서 혁명 지휘소인 6관구 사령부를 지켜내느라 임기응변을 다하고 있었다. 쿠데타 가담 장교들을 조사하러 온 헌병차감 이광선 대령을 설득하여 그 예봉을 무디게 해놓고 있는데 장도영 총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거기에 장교들이 많이 모여 있다고 하는데 뭘 해?”
  
  “예.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 사람들 뭘 하고 있어?”
  
  “비상훈련을 감독하려고 육본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김 대령은 모르는 소리야. 무슨 놈의 훈련이 훈련이야. 그 사람들 꼼짝 못하게 붙들어 놓아요.”
  
  이 말을 들은 김재춘은 무심코 “에이, 뭐 다 아시면서 그런 말씀이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이렇게 반란군과 진압군 장교들이 뒤범벅이 된 상황 속으로 박정희가 들어선 것이다. 김재춘의 기억에 따르면 박정희의 입에서는 술냄새가 강하게 풍겼다고 한다. 박정희는 신당동 집에서 나오기 전 김종필, 장태화, 이낙선과 함께 飯酒(반주) 정도의 술을 마셨다.
  
  김재춘은 박 장군에게 그때까지의 상황을 보고했다. 박정희는 자신이 2년 전 사령관실로 썼던 사무실로 들어섰는데 그 곳은 부사령관실로 쓰이고 있었다. 박 장군을 따라 혁명파, 비혁명파, 그리고 진압군 측 장교들까지 몰려들었다. 시선은 박정희에게 집중되었다. 박정희는 얼굴이 검붉게 상기되었다. 김재춘은 술기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박정희는 피아가 뒤섞인 수십 명의 장교들을 향해서 이런 요지의 연설을 했다는 것이 김재춘의 기억이다.
  
  “여러분, 우리는 4·19 혁명 후 그래도 나라가 바로잡혀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나라꼴입니까. 국무총리를 비롯해서 장관들이 호텔방을 잡고 돈 보따리가 오고가는 이권운동, 獵官(엽관) 운동에 여념이 없으니 이게 무슨 꼴입니까. 자유당 정권을 능가하는 부패와 무능으로 나라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는 이 정권을 보다 못해 우리는 목숨을 걸고 궐기한 것입니다. 동지들도 이제부터 구국 혁명의 대열에 서서 각자 맡은 임무에 전력을 다해 주기 바랍니다.”
  
  이 연설을 듣고 있던 사람 중에는 6관구 방첩대(508부대) 鄭名煥(정명환) 중령도 끼여 있었다. 육사 8기 출신인 그는 진압군 측에 서야 할 입장이었으나 박정희의 연설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 뒤 6사단장으로 있을 때 제2땅굴을 발견한 적도 있는 그는 “그런 불리한 상황에서도 박 장군은 그 자리에서 ‘이번 혁명은 어떤 경우에도 無血(무혈)로 해야 한다’고 평화적인 방법을 강조하던 것이 지금껏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연설이 끝나자 박정희는 이광선 헌병차감과 정명환 중령을 가까이 오게 하여 “혁명을 도와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정명환 중령은 “예, 돕겠습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고 한다. 박정희는 장도영 장군이 자기를 여러 번 찾았다는 말을 듣고는 전화를 연결해 줄 것을 지시했다. 정명환 중령이 다이얼을 돌렸다. 장도영과 박정희의 대화는 대강 이런 요지로 진행되었다.
  
  “박 장군, 그 곳에는 뭐 하러 가 있소. 오늘 예정되었던 야간 훈련은 모두 취소시켰으니 집으로 돌아가시오.”
  
  “망해 가는 이 나라를 구출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미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사전에 양해를 받지 못한 것은 대단히 죄송합니다. 이제부터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여러 말 마시오. 이번에는 장면 정부에 대해서 경고하는 정도로 그치고 내일 만나서 자세히 이야기를 해봅시다.”
  
  “이미 부대는 출동을 개시했습니다.”
  
  “부대의 출동은 내가 금지시켰어요. 박 장군, 취한 것 같은데 빨리 집으로 돌아가시오.”
  
  “아무리 그래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저 보고만 계십시오.”
  
  박정희는 전화기를 꽝 소리가 날 정도로 내려놓았다고 한다. 장도영도 박정희의 이날 목소리엔 醉氣(취기)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날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던 장교들은 박정희가 흥분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들린 것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술을 좋아하는 박정희가 불안감을 달래려고 술을 마셨을 가능성은 있지만 이날 밤 그의 판단과 행동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 2011-03-03, 11:3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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