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그가 일을 저질렀군”
5·16 군사혁명 50주년 기념 연재(39)/ 朴正熙, 장도영에게 “아니 혁명인데 무슨 보고가 있습니까. 각하께서 알아서 하시면 되지. 그리고 썩어 문드러진 민주당 정권에 무슨 사과를 시킵니까.”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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陸本으로 入城
  
  5월16일 새벽 원주 1군 사령부 李翰林(이한림) 사령관의 숙소. 당번병이 문을 두드렸다. 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는 것이었다. 전화기를 들었다. 육군 참모차장 張昌國(장창국) 중장이었다.
  
  “아니, 이 꼭두새벽에 웬일이오?”
  
  “쿠데타가 일어났소.”
  
  “무엇이?”
  
  “군사 쿠데타 말이오.”
  
  “주모자가 누구요?”
  
  “박정희 소장이오.”
  
  “기어코 그가 일을 저질렀군.”
  
  “지금 상황은 어떻소?”
  
  “새벽 3시 조금 지나서 쿠데타 부대가 육군본부에 진입했소.”
  
  이한림은 20년 친구인 박정희가 쿠데타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군 상층부와 수사기관이 알아서 대처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적극적인 저지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가 자신의 운명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될 뉴스를 접한 것이었다.
  
  이한림이 ‘총구로부터의 권력’에 대한 박정희의 집념과 처음 접한 것은 1946년이었다. 육사 2기 생도로서 교육을 받고 있던 박정희는 육사 중대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滿軍(만군) 동기인 이한림과 만났다. 어느 날 두 사람은 남산을 산책했다. 박정희는 경무대(지금의 청와대, 당시는 조선총독부 관저로 쓰이다가 미군 사령관 하지 중장의 관저로 쓰이고 있었다)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림이, 이곳에 포를 설치하고 경무대 쪽을 포격한다면 나폴레옹이 파리 소요를 진압할 때 야전포를 쏴서 파리를 제압했던 것과 같이 경무대 장악은 문제가 없겠지?”
  
  이한림은 “정희야, 그런 농담하지 마. 너는 농담이 지나칠 때가 있어”라고 입을 막았지만 박정희의 그 말은 뇌리에 오랫동안 남았다. 이한림은 전날 1군 창설 기념식에 참석하러 와서 원주에 머물고 있던 군단장과 사단장들을 사령관 공관으로 소집했다. 그는 서울의 정변 소식을 들려준 뒤 “즉시 부대로 귀임하여 전선 방어에 철저를 기하고 추가 지시를 대기하라”고 명령했다. 군단 예비인 1군단의 林富澤(임부택) 군단장에겐 ‘반란군 토벌을 위한 출동준비’를 지시했다. 이한림은 장면 총리와 통화를 하려고 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장교 3명을 서울로 보내 상황을 알아보고 오라고 시켰다.
  
  이 순간 장도영 육군 참모총장은 미 8군 사령부로 들어가 매그루더 사령관과 요담하고 있었다. 이날 매그루더가 미 합참으로 보고한 電文에 따르면 장도영은 아침 6시30분에 매그루더를 찾아왔다고 한다. 이 요담은 매그루더의 요청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매그루더는 새벽 3시 장도영의 첫 전화를 받았었다고 한다. 이때 장도영은 “미군 헌병들을 동원하여 해병대의 서울 진입을 저지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매그루더는 거절했다.
  
  <장도영 자신은 혁명군과는 무관하지만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서 그들과 협상하려고 한다는 암시를 주었다. 그는 또 예하부대 지휘관들로부터 혁명을 반대하는 자신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확약을 받아 놓겠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진압군을 서울로 불러들이는 것은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보고 電文)
  
  장도영은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이 자리에서 매그루더에게 ‘나는 해병대를 지휘할 수 없고 육본을 점령한 6군단 포병단도 행정상으로는 육본에 속해 있을 뿐이지 敵前(적전) 행동에 관해서는 유엔군 사령관의 지휘하에 있음을 상기시켰다’고 했다. 그는 또 ‘군 내외에서 막연하게 알고 있던 육군 참모총장의 책임과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권한 사이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후방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선 부대를 출동시키는 것은 유엔군 사령관의 양해와 협조가 있어야 했다’고 썼다.
  
  아침 7시 직전 박정희는 남산을 출발, 김재춘 6관구 참모장의 지프를 타고 앞뒤로 해병대의 호위를 받으면서 육본으로 들어갔다. 육본 연병장엔 혁명군으로 가담한 6군단 포병단 병력이 와 있었다. 간밤에 6관구 사령부로 들어갈 때와는 사뭇 다른 상황에서 박정희는 육본으로 당당하게 입성하는 길이었다. 육본 현관 앞에 차가 섰다. 김재춘과 박정희가 내리는데 한 장교가 헌병들을 배치하면서 “너희들은 여기서 경계를 서다가 반란군이 들어오면 쏴!”라고 하더란 것이다. 박정희는 그 장교를 보고 “뭘 쏴!”라고 한마디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박정희는 불안했던지 뒤따르던 김윤근 해병여단장에게 “김 장군, 해병대를 풀어서 이 건물을 포위하시오”라고 지시했다. 박정희와 동행한 김재춘의 기억에 따르면 이때 2층 참모총장실에서 내려오던 미 고문단장 하우스 장군과 맞닥뜨렸다고 한다. 하우스 장군은 지휘봉으로 박정희 쪽을 가리키면서 영어로 말하는데 영어가 짧은 김재춘은 “제너럴 팩?”이라고 하는 말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대강 짐작으로 “네가 반란군 지휘자 박정희냐?”는 뜻인 것 같았다. 박정희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살 길은 이 길뿐이다. 너는 간섭하지 말고 비켜!”
  
  공격적인 말투에 기가 죽은 하우스 장군은 길을 비켰다. 박정희가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가는데 육본 작전참모부장 宋錫夏(송석하) 소장이 내려오다가 마주쳤다. 송석하는 박정희로부터 작전참모부장 자리를 인수받았다. 육사 2기로서 박정희와는 동기였지만 나이는 두 살 위였다. 그는 만주국 봉천군관학교 5기 출신으로서 丁一權(정일권)과 동기여서 박정희의 만군 선배에 해당한다. 박정희가 말했다.
  
  “아니, 형님, 쏘긴 뭘 쏩니까.”
  
  송석하는 조금 전에 자신이 헌병들에게 “앞으로는 출입자를 통제하라”고 명령했던 일이 생각났다. 그는 박정희의 손을 끌면서 “그런 일 없습니다. 하여간 올라가서 이야기 합시다”라면서 그를 총장실로 안내했다. 송석하는 “권총은 풀지요”라고 권했다. 박정희는 “그러지요”하면서 권총을 풀어 부관실에 맡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김재춘도 따라 들어갔다. 방은 텅 비어 있었다. 두 사람이 복도로 나와 몇 걸음 옮기는데 장도영이 들어왔다. 박정희, 김재춘 두 사람은 경례를 올려붙였다. 장도영은 경례도 받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고 朴, 金 두 사람도 따라 들어갔다. 총장실에서 있었던 대화를 김재춘은 이렇게 기억한다.
  
  박정희: “저희가 이제 방송도 다 하고 준비를 끝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각하께서 진두지휘하셔야죠.”
  
  장도영: “어쩌자고 병력을 동원해서 육본을 점령하는 거요. 나로서는 지금 아무런 결정을 할 수 없어요.”
  
  張都暎, 몰리다
  
  5월16일 아침 육본 총장실에서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박정희: “저희들이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그저 인정만 하시고 저희들 하자는 대로 따라오시면 될 것 아닙니까.”
  
  장도영: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하겠소.”
  
  박정희: “저희들은 이제 후퇴할 수 없습니다. 목숨 내놓고 한 일인데…. 제가 인편으로 보낸 편지는 받으셨습니까.”
  
  6관구 참모장 김재춘 대령은 박정희 옆에 앉아서 부관실의 동향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계속해서 전화기가 울리고 있었다. “1군 사령관 이한림 장군이…” 하는 말소리도 가늘게 들렸다. 박정희는 계속 다그치듯 장도영을 설득하고 있었다.
  
  “저희들은 모두 유서를 써놓고 집을 나왔습니다. 죽기 전엔 후퇴할 수 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민주당 정권더러 사과하라고 시키고 쿠데타軍을 철수시킵시다. 장면 총리를 찾아도 보이질 않으니 나도 계통을 밟아 보고해야 할 것 아니오.”
  
  “아니 혁명인데 무슨 보고가 있습니까. 각하께서 알아서 하시면 되지. 그리고 썩어 문드러진 민주당 정권에 무슨 사과를 시킵니까.”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장도영은 바깥으로 나가 버렸다. 그는 참모회의실로 가서 참모들과 회의를 하는 것 같았다. 박정희도 같은 층의 상황실에서 혁명군 장교들 회의를 소집했다.
  
  “장 총장에게 지휘자가 되어 줄 것을 요청했더니 강경히 반대했으나 나중에는 태도가 누그러졌고 일이 너무 중대하니 결심하는 데 시간을 달라고 했소. 좀 기다려봅시다.”
  
  이런 박정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육본에 진주한 6군단 포병단 문재준 대령이 소리쳤다.
  
  “아니, 다 잡아넣고 해야지 타협은 무슨 타협입니까.”
  
  이 말을 신호탄으로 주로 포병단 대대장들이 격한 발언들을 쏟아 놓았다. 장교들의 눈엔 핏발이 서 있었고 격앙되어 있었다. 박정희는 무질서해지는 분위기를 가라앉힌 뒤 “그럼 장도영 총장을 모시고 와서 이야기합시다”라고 했다. 박정희는 끝까지 장도영 총장을 모시고 혁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했다. 다른 장교들은 대체로 기존 지휘 체계를 싹 쓸어버리고 혁명다운 혁명을 하자는 생각이었다.
  
  장도영은 참모회의실에 공군 참모총장 金信(김신), 해군 참모총장 李成浩(이성호) 중장, 金聖恩(김성은) 해병대 사령관을 초청하여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거사 부대에 포위된 상황에서 회의를 하니 반대, 지지에 대한 기탄없는 견해를 토로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회의 도중 문재준 대령이 들어와서 열변을 토하며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이성호 총장은 “혁명 지지가 되든 반대가 되든 나는 참모들과 회의를 한 후에 태도를 밝히겠다”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이날 아침 혁명 주체가 아니면서 가장 먼저 박정희를 지지하겠다고 태도를 확실히 한 장군은 柳陽洙(유양수) 소장이었다. 육본 작전참모차장 겸 전쟁계획통제관이던 그는 동작구 흑석동에 살고 있었다. 새벽에 총성을 들은 그는 육본의 본부사령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차를 보내라”고 했다. 30분 만에 지프가 집으로 왔다. 한강을 건너는데 이미 군인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검문을 하고 있었다. 육본에 들어가니 연병장엔 6군단 포병단 병력이 꽉 들어차 있었다. 본부 건물 현관으로 들어가다가 장경순 교육처장과 마주쳤다. 장 준장은 “미리 알려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누구하고 하는 일이오?”
  
  “박정희 장군입니다.”
  
  “어디 계십니까.”
  
  “지금 총장실에 계십니다.”
  
  2층 복도에는 완장을 낀 장교들이 서성대고 있었다. 총장실로 갔더니 박정희는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유양수와 눈이 마주치자 박정희는 일어서서 나왔다. 박 소장은 “유 장군, 이야기 좀 합시다”라고 했다.
  
  “미리 이야기하지 못해서 미안하오. 일이 여기까지 왔으니 도와 주어야겠어요.”
  
  “알았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대로 미십시오.”
  
  “고맙소.”
  
  유양수는 혁명 지도자가 박정희라는 사실을 알고는 마음이 놓였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사무실로 올라와 외무부에 전화를 걸었다. 유엔 담당 간부를 불러 유엔사무총장과 우방 16개국에 보내는 사태 설명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공항 폐쇄를 지시했다.
  
  한편 5·16 성공의 1등 공신인 김윤근은 부하 장교들과 총장실 옆방에서 쉬고 있었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민간인 두 사람이 들어왔다. 그들은 장교들의 얼굴을 두리번거리면서 살피더니 구면인 김윤근을 발견하고는 “김 장군이 어떻게 여기 계십니까”라고 했다. 민간인은 국방부 출입기자들이었다.
  
  “재간이 비상합니다. 아니 어떻게 여기에 들어올 수 있었소.”
  
  “말씀 마십시오. 해병이 막는 걸 겨우 뚫고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시내의 해병대는 모두 김포여단 소속입니까.”
  
  “그렇소.”
  
  “지금 총장실에는 누가 계십니까.”
  
  “박정희, 김동하 장군이 들어가 있습니다.”
  
  “박 장군이라면 2군 부사령관, 김 장군은 해병 1사단장을 지내신 분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들은 서둘러 나갔다. 이날 조간신문 호외와 석간신문엔 쿠데타 주동자로서 장도영, 박정희, 김윤근(또는 박정희, 김동하, 김윤근)이 소개되었다. 자기 선전을 싫어하는 김윤근은 이 기사 때문에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고 한다.
[ 2011-03-10, 12:2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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