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革命 참 잘하셨습니다”
5·16 군사혁명 50주년 기념 연재(49)/ 은행 문 앞에서 작가라며 자신을 소개한 사람이 김종필에게 말했다. “국민들이 절대 지지하고 있으니 꼭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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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부
  
  5·16 당시 崔英澤(최영택·前 주일 공사) 중령은 서울 남산 하얏트 호텔 자리에 있던 육군 첩보부대(HID)의 첩보과장이었다. 그날 새벽 4시쯤 총 소리를 들은 최 중령은 육본 관사에서 허겁지겁 옷을 입고 부대로 나왔다. 부대로 달려가면서 최 중령은 박정희 소장과 육사 8기 동기생 김종필이 일을 벌였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김종필은 약 한 달 전인 4월 초순에 최영택 중령과 통신참모 金泰珍(김태진·중앙정보부 초대 통신실장) 중령을 찾아왔다. 김종필은 심각한 얼굴로 김태진에게 “혁명이 나면 전화 라인 좀 차단시켜 줘”라고 부탁했고, 김태진 중령은 “알았다”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출근해 보니 부대에는 이미 비상 소집령이 내려져 부대장, 부부대장, 공작처장, 과장, 통신참모 등 간부들이 다 나와 있었다. 그들은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어 몹시 불안해했다.
  
  최영택 중령은 간부들 앞에서 “이건 틀림없이 박정희 소장과 김종필이 주동이 되어 한 것이니 내가 육본에 찾아가 봐야겠소”라고 했다. 이 말에 모두가 반색을 했다. 사복 차림의 최 중령이 오전 6시30분쯤 육군본부 정보국에 도착하니 비상 소집되어 출근한 장교들이 일은 하지 않고 창가로 모여들어 연병장에 주둔한 혁명군들의 동태를 살피는 데 관심 쓰고 있었다.
  
  육본 상황실(기밀실)로 올라가니 혁명파 吉在號(길재호) 중령이 보였다.
  
  “종필이 어딨나?”
  
  “어, 지금 방송국에 가 있을 거다.”
  
  지프로 남산 KBS에 가보니 경비가 삼엄했다. 사복 차림의 최 중령이 길 건너편에 서서 방송국 마당을 살펴보는데 점퍼 차림의 김종필이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 채 마당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가 몸을 돌려 고개를 드는 순간 최 중령이 손을 들어 흔들었다. 김종필은 최 중령을 단번에 알아보더니 “오! 너 왔구나. 이리 와”라며 손짓을 했다.
  
  웃으며 다가선 최 중령에게 김종필은 “봤지? 드디어 해냈다”면서 살짝 박치기를 했다. 그러면서 첫 마디가 “야, 이제부터 우리 할 일이 있다. 너는 이 시간부터 일 좀 해라”였다.
  
  김종필은 즉시 점퍼 지퍼를 열고 오른손을 품안으로 넣더니 잠시 후 수십 장의 문건이 가지런히 접힌 뭉치를 꺼냈다. 그걸 최 중령 앞에서 부지런히 넘겨 가더니 한 페이지를 찾아 쭉 펼쳐 보였다.
  
  거기에는 혁명 정부 기구표가 그려져 있었다. 대통령 직속으로는 ‘중앙정보부’가 실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김종필은 최영택 중령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정보국에 있을 때 평소 생각했던 미국의 CIA 같은 기구를 창설해야겠어. 넌 이제부터 이 작업 좀 해야겠다. 지금부터 착수하자. 일단 육본으로 가자. 그런데 차 가져왔니.”
  
  “그래.”
  
  두 사람이 육본 상황실에 도착했을 때가 오전 7시경. 동기생인 육사 8기생들이 많이 보였다. 최영택 중령은 김종필에게 “일단 자동차도 좋은 걸로 바꿔야겠고, 권총도 네 것까지 두 정을 갖고 와야 되니 부대에 잠깐 다녀올게”라고 말하고 남산의 첩보부대로 돌아왔다.
  
  첩보부대 간부들은 최영택 중령이 돌아오자 마른 침을 삼키며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다 모여들었다.
  
  “이제부터 종필이와 일을 해야겠는데, 여러분들이 협조 좀 해줘야 겠소.”
  
  “뭘 도와주면 되지?”
  
  “우선 차부터….”
  
  첩보부대에서 가장 좋은 차는 공작처장이 타고 다닐 때였다. 金永玟(김영민) 공작처장은 즉시 자기 차를 쓰도록 했다. 권총도 두 정을 구했다. 게다가 첩보부대장에게서 “운전병, 휘발유 등 첩보부대가 보유하고 있는 것은 마음대로 써도 좋다”는 허락까지 받았다. 모의 과정에서 제외되었던 첩보부대가 자진해서 혁명에 참여한 데는 김종필이 이 부대에 오래 근무하여 능력이나 인품에서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최영택 중령이 다시 육본 상황실로 돌아와 보니 넓은 방이 장교들로 꽉 차 있었다.
  
  모든 장교들이 군복을 입고 있었지만 김종필과 최영택 중령만 사복이었다. 회의에 불만이 있는 혁명파 장교들 중 중·대령급들은 틈만 나면 상황실 뒤편으로 걸어와 김종필에게 귓속말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란 말이다.”
  
  김종필은 그럴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답한 뒤 돌려보내곤 했다.
  
  장도영 총장이 출동 부대의 철수론을 펴 실내가 소란스러워졌을 때 한 대령이 “함부로 철수 못 합니다”라고 끼어들자 길재호 중령이 말했다.
  
  “저 새끼 저거 배신할 때는 언제고 혁명군 들어오니 저런 말을 해? 며칠 뒤에 저놈도 다 잡아넣어야 해.”
  
  군사혁명위원회 명단을 발표할 때 김종필은 최 중령을 데리고 갔다. 해병대 헌병 지프가 선두에서 사이렌을 울리며 에스코트를 했다. 姜昌善(강창선) 아나운서가 이들을 맞았다.
  
  “계엄 사령부 인적 사항을 발표할 테니 읽으시오.”
  
  “알겠습니다.”
  
  강창선 아나운서는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김종필은 “나는 여기 있을 테니 네가 들어가 봐”라고 했다. 최영택은 강창선 아나운서 뒤로 들어가 명단을 제대로 읽는지 꼼꼼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중앙계엄사령관 장도영, 중앙계엄부사령관 박정기….”
  
  그는 박정희를 ‘박정기’로 읽고 있었다. 최영택은 강창선 아나운서의 어깨를 소리나지 않게 치면서 “기가 아니라 희”라고 말했다. 아나운서는 다시 읽기 시작했다.
  
  “아, 실례했습니다. 박정기가 아니라 박정희입니다.”
  
  이날 방송을 마친 뒤 김종필은 종로 한일은행 본점으로 최영택을 데리고 갔다. 친형 金鍾珞(김종락)이 두 사람을 보고 밖으로 나왔다.
  
  “형님 돈이 좀 필요해요.”
  
  “알았다.”
  
  잠시 뒤 김종락은 한 다발의 돈을 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은행 문 앞에서 작가라면서 자신을 소개한 사람이 김종필에게 말했다.
  
  “아, 수고하십니다. 군사혁명 참 잘하셨습니다. 국민들이 절대 지지하고 있으니 꼭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제 소견이 있습니다. 과도기에는 반드시 쌀값이 뜁니다. 혼란기가 닥치면 장사꾼들이 매점매석을 하기 때문이지요. 이것을 우선 막아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김종필은 좋은 훈수 하나 들은 듯 기분좋아했다고 한다.
  
  육사 8期 주축 中情 창설
  
  5월16일 밤 김종필은 중앙정보부를 조직하는 데 협조해 달라고 불러낸 육사 8기 동기생 최영택(前 주일 공사) 중령과 함께 혁명군 완장을 만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울 명동 입구의 상패 만드는 집으로 갔다.
  
  가게 주인은 낚시와 등산용 지도를 만들어 팔기도 하는 사람인데 김종필한테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김종필이 육본 정보국 기획과장으로 있을 때, 이 주인이 5만분의 1 군사 지도를 등산용으로 팔려는데 허락해달라고 부탁해 왔다. 김종필이 상부에 이야기해서 좌표를 지우고 판매하도록 해주는 바람에 돈을 많이 번 사람이었다. 이 주인은 그날 밤을 새워 4500장의 완장을 만들어 주었다.
  
  17일부터 하얀 천에 혁명군이라 쓴 완장을 나누어 주니 군인들의 사기가 충천하는 것이었다. 혁명군이 아닌 군인들은 완장을 찬 동료들을 보고 부러워했다. 최영택은 완장의 심리적 효과에 놀랐고 이를 적절하게 이용한 김종필의 두뇌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17일 오후 김종필은 최영택에게 “우리 동기들을 불러오자. 우선 徐廷淳(서정순), 李永根(이영근), 그리고 제대한 뒤 대구에 내려가 있는 高濟勳(고제훈)을 불러 와”라고 했다. 이들이 정동 舊(구)러시아 공사관 근처의 하남호텔에 모인 것은 5월18일이었다. 김종필이 대강 정해준 지침에 따라 이들은 중앙정보부의 조직案(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6·25 전부터 육본 정보국에서 근무한 장교들로서 당시 전투정보과 비공식 문관이던 박정희와 親面(친면)이 있었다.
  
  이들은 작업을 하다가 石正善(석정선)을 생각했다. 동기생 석정선은 4·19 직후 김종필과 함께 군내 정화운동을 주동한 인물이었다. 김, 석 두 중령은 둘도 없는 친구로서 5·16 석 달 전에 헌병대에 같이 구속되었다가 강제 예편당할 때까지는 행동을 함께 했다. 그 뒤 석정선은 “나는 처자식도 있고 하니 혁명은 그만두겠다”고 하여 손을 뗐었다. 김종필은 “좋다. 네 갈 길을 가라. 그러나 혁명이 누설되면 네가 한 걸로 알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동기생들은 뛰어난 정보장교인 석정선의 머리가 필요하니 그를 불러야겠다고 김종필에게 건의했고 김종필도 양해했다. 석정선이 참여하자 하남호텔의 모임은 활기를 더해갔다. 이들은 중앙정보부뿐 아니라 군사혁명위원회를 이을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조직안도 만들었다. 이들은 혁명 정부 권력 구조의 산파이기도 했다.
  
  19일 김종필은 최영택 중령에게 장면 총리 직속으로 되어 있던 중앙정보위원회의 李厚洛(이후락) 실장으로부터 업무 일체를 인수하라는 지시를 했다. 이후락은 자유당 시절에 김정렬 국방장관으로부터 발탁되어 장관 직속의 중앙정보부를 창설하고, 이 부대의 이름을 자신의 군번을 따서 79부대로 붙였었다. 79부대의 주 임무는 미국 CIA와 정보 교류를 하는 것이었다. 이후락은 장면 정부 시절에도 육군 소장으로 전역한 뒤 같은 일을 보고 있었다. 정보위원회는 그러나 경찰, 군의 여러 정보기관을 통합 조정하는 국가 정보기관으로서는 기능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영택 중령은 이후락 실장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부인이 전화를 받는데 “안 계신다”는 것이었다. 최영택은 이후락과 함께 연합참모본부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최영택은 “사실 저는 최영택입니다”라고 하니 부인은 “어머나 그러세요. 잠깐 기다리세요”라고 하더니 이후락을 바꾸어 주더란 것이다.
  
  “최영택 중령입니다. 이젠 군사혁명이 성공 단계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중앙정보부를 창립하려고 하는데 도와주십시오.”
  
  “아, 협조하지요.”
  
  “인수인계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언제든지 좋습니다.”
  
  “일단 내일 한번 뵈면 어떨까요.”
  
  “좋지요. 내일 오후 1시에 명동 사보이호텔 지하 다방에서 만납시다.”
  
  5월20일 최영택은 김종필을 따라가서 군사혁명위원회 위원들에게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조직과 기능 등 혁명 정부의 통치 기구 조직에 대해서 보고했다. 최영택은 차트를 넘기고 김종필이 설명했다. 장도영 총장은 ‘최고’란 말이 거슬린다고 지적했다. 최연장자인 김홍일 외무장관이 말했다.
  
  “지금 우리는 군사혁명을 한 것입니다. 이런 시기엔 권위 있는 이름이 필요합니다. 비록 공산 국가에서 쓰고 있다고 해도 ‘최고’란 단어를 못 쓸 이유가 없습니다.”
  
  김동하 해병 소장도 찬동하는 바람에 원안대로 통과되었다. 최고위원 중 한 명인 김포 해병여단장 김윤근 준장은 이날 김종필의 구상이 스케일이 크고 원대한 비전을 담고 있어 큰 감명을 받았다. 그의 능란한 화술 때문에 브리핑 내용뿐만 아니라 이 조직안을 만든 사람들을 돋보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김종필은 이 자리에서 국가재건최고회의 직속으로 중앙정보부와 재건국민운동본부를 둔다는 것도 보고했다.
  
  김윤근은 5월17일 저녁 육본 상황실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군사혁명위원회 위원 30명 가운데 육사 8기생들에게 다섯 명이 배정되었다. 8기생들은 한 구석에 모여 승강이를 벌이는데 김종필이 나타나 무슨 말을 하니 조용해지는 것이었다. ‘아, 이 사람이 8기생들 중 리더구나’ 하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최영택은 보고회를 마치고 이후락과의 약속 장소인 사보이호텔로 갔다. 30분이 늦었는데도 이후락은 기다리고 있었다. 이후락은 선선히 말했다.
  
  “우리는 사실 그동안 본격적으로 활동하지 못했어요. 현재까지는 미국 CIA와 정보를 교환하는 일만 했습니다. 다 인계해 드리겠습니다. 내일 오후 3시에 우리 사무실에서 만납시다.”
  
  최 중령은 다음날(5월21일) 남산에 있는 중앙정보위원회 사무실로 갔다. 이후락은 보이지 않고 육군 소장인 차장과 해군 대령인 국장이 업무 인계를 해주려고 했다. 이때 미국 대사관에서 왔다는 두 미국인이 나타났다. CIA 요원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자신들과 정보 교류를 하는 한국 측 창구가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궁금해서 나와 본 것 같았다. 두 미국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수인계 서류에 도장을 찍은 최영택은 현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중앙정보부 창설 준비 작업반은 5월22일 하남호텔에서 화신백화점 뒤편에 있는 여관으로 옮겼다. 다음날 김종필이 오더니 돈뭉치를 주고는 말했다.
  
  “그런데 오늘 다른 데로 옮겨야겠어. 민주당 계통 사람들이 이 여관에 많이 들락거려. 도저히 보안 유지가 안 되겠어.”
  
  작업반은 서울 퇴계로 입구에 있던 중앙여관으로 다시 이동했다. 국회의사당으로 최고회의가 입주한 뒤에는 서울신문 옆 국회 별관이 중앙정보부 창설 준비 사무실로 쓰였다.
[ 2011-03-24, 15:5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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