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빠는 권력자, 朴正熙
5·16 군사혁명 50주년 기념 연재(59)/ 화장실을 겸한 세면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박정희가 밤에 몰래 나와서 양말을 빨고 있었던 것이다. 이 대위에게 들킨 박정희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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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의장 취임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지휘한 문재준 육군 헌병감─박치옥 공수단장, 그리고 장도영 측근 세력 거세 작전은 1961년 7월2일 밤에서 다음날 새벽에 걸쳐 조용하게 진행되었다. 문, 박 두 대령을 비롯하여 내각수반 비서실장 이회영 대령, 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안용학 대령 등 40여 명이 정보부 요원들에게 연행되어 反혁명 혐의로 구속되었다. 장도영은 연행되지 않았지만 이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했다.
  
  7월3일 아침 장도영이 최고회의 회의장으로 나갔더니 상임위원들이 모여서 기다리고 있었다. 박정희 부의장 겸 상임위원장은 보이지 않았다. 선임 상임위원 李周一 소장이 말을 꺼냈다.
  
  “사태가 이렇게 되었으니 각하께서도 사표를 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미 사의를 표한 지 오래요. 잘 됐소.”
  
  회의를 1분 만에 끝낸 장도영 장군은 육성으로 사임 성명을 발표했다.
  
  “본인은 혁명 초부터 혁명 정권의 책임자로서 그 중책을 감당하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국가 초비상시에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잠시 그 직책을 맡았던 것이다. 이제는 신망 있는 지도자가 그 직책을 맡아야 할 것이므로 나는 사임하는 바이다.”
  
  장도영은 중앙청 내각수반실로 돌아가 업무 정리를 마쳤다. 7월1일자로 서독 대사로 임명된 申應均(신응균) 장군이 인사차 찾아왔다.
  
  “축하합니다. 일 많이 해주십시오.”
  
  장도영은 총리실에서 현관으로 나와 신응균과 헤어진 뒤 원효로의 자택으로 돌아갔다. 그는 안방으로 들어가 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피로하고 긴장된 심신을 풀었다. ‘차츰 심신의 피로가 풀리면서 자연히 참모총장 재직 시에 일어났던 헤아릴 수 없이 복잡하고 곤란했던 일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특히 5·16 이후 오늘까지 49일간 내가 겪은 모든 간난과 신고를 하나씩 회상해 보았다’는 것이다. 장도영은 그 뒤 가택 연금 상태에서 지내다가 가을에 反혁명 혐의로 구속된다. 1986년에 한 기자가 김종필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장도영 장군을 명예롭게 퇴진시킬 수는 없었습니까. 그래도 혁명에 앞장을 서 준 분이 아닙니까.”
  
  “4반 세기가 지난 지금 와서 생각할 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느냐 하는 데엔 동감입니다. 그런데 그건 나의 회고일 뿐이지 한 시대를 전환시키고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게 혁명인데 그땐 그런 여유가 없었지요. 당시엔 이기고 누르고 바꾸고 나가야 할 긴박한 상황이었으니까요.”
  
  김포 주둔 해병여단장으로서 혁명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김윤근 최고위원의 증언에 따르면 박정희도 장도영과 그 측근들을 거세한 직후 상임위원들을 불러 전후 사정을 설명해 주면서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김윤근은 박정희가 과거에 장도영에게 많은 신세를 진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朴 장군이 지나치게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을 정도였다.
  
  7월3일 오후 최고회의는 장도영 의장의 실각을 발표했다. 장도영의 사표는 수리되었고 박정희 부의장이 의장에 취임했고, 내각수반엔 송요찬 국방장관이 임명되었으며 최고위원 송찬호, 박치옥, 김제민은 그 직을 사임했다는 발표였다. 박정희는 취임사를, ‘배수의 진을 친 우리들에게는 이제 후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 앞에는 전진이 있을 따름입니다’로 끝맺었다.
  
  박정희는 7월7일 전국 수사기관장 회의에 참석하여 훈시를 했다. 그는 정부에서 일하고 있는 군인들에 대해서 주로 경고했다.
  
  “自家淨化(자가정화)와 자가단속을 철저히 하라. 점차 정부에 참여한 군인들 수를 줄이겠다.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현재의 수사기관을 정비하겠다. 한 명의 수사 대상자에게 두 개 이상의 수사기관이 중복 수사를 벌여 국민들을 불편하게 해선 안 되겠다.
  
  혁명 초에는 어느 나라에서나 옥석을 가리지 못하고 처리하는 것이 恒例(항례)이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옥석을 가려야 한다. 우리의 혁명 목적은 어디까지나 국민에게 봉사하려는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이 혁명 정신을 살려서 일반 국민에게 친절하고 겸손해야 한다.”
  
  최고회의는 7월9일 비로소 ‘장도영을 비롯한 44명의 反혁명 세력을 지난 3일에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장도영만을 가택연금시키고 나머지 인사들은 엄중 문초 중인데 혐의는 ‘反혁명 세력 구성’, ‘박정희 암살 기도’란 것이었다. 발표문은 새삼스럽게 5·16 거사를 전후한 장도영의 기회주의적 행동이란 걸 공개했다.
  
  7월16일 새뮤얼 버거 주한 미국 대사는 박정희 의장을 방문, 요담했다. 버거는 박 의장에게 군정을 끝내고 민정으로 복귀하는 문제를 논의할 軍民(군민) 합동 기구를 구성하여 그 과제를 연구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 버거 대사는 또 “미국 당국이 공개적으로 박정희 정권을 지지하고 싶어도 체포, 숙청 등이 되풀이되고 있어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최고회의가 긍정적인 조치를 취해 주면 자신도 한국 정부를 지지하는 성명을 내겠다고 약속했다.
  
  다음날 혁명 정부는 예비 검속한 용공 혐의자 3098명 가운데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석방한 1267명 외에 1293명을 추가로 풀어준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문을 통해서 박정희는 이렇게 당부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이 방면되더라도 지난날의 잘못을 깊이 반성토록 촉구하심과 아울러 따뜻한 아량으로 대하여 주시어 지난날에 포지하였던 용공적이고 불순한 생각을 버리고 애국심에 불타는 선량한 국민이 되도록 선도하여 주시기 바라며 앞으로 이러한 反국가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항상 엄중한 경계를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9일 오전 박정희 의장은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앞으로 출범할 민정의 형태와 시기에 대해서는 8월15일 전에 구체적으로 밝힐 것이다”고 했다. “한국 신문이 정부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견해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란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혁명 후 1주일 만에 보도 통제를 해제했다. 정부가 두려워 논평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 사실이라면 언론인들의 기개가 부족한 탓이다. 언론인들이 혁명 과업에 직접 참여해 주기를 바란다.”
  
  인간 素描
  
  권력자로 변한 박정희는 소박한 인간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육사 생도들을 혁명 지지 시위에 동원하는 데 일역을 맡았다가 박정희의 경호원이 된 육사 11기 이상훈(전 국방장관) 대위는 광주에서 열린 혁명 지지 대회에 참석한 박 의장을 수행하여 작은 호텔에 들었다. 한밤중에 호텔 문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데 화장실을 겸한 세면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이 대위가 가보니 박정희가 양말을 빨아 줄에 널고 있었다. 양말이 신고 온 한 켤레밖에 없어 밤에 몰래 나와서 그런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대위에게 들킨 박정희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박정희의 양말과 관계된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5·16 당시 국무원 사무처 보도과장은 국방부 보도과장 출신 李容相(이용상)이었다. 혁명 정부하에서는 공보부의 보도처 보도과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박정희가 9사단 참모장일 때 그 밑에서 정훈부장으로 근무했던 이용상 시인은 계급을 떠나서 박정희 집안과 인간적으로 친밀했다.
  
  기자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이용상에게 박정희 의장과의 기자회견을 주선해 달라고 졸랐다. 이용상은 장충동의 의장 공관으로 전화를 걸었다. 육영수가 받았다. 박 의장이 언제 돌아온다는 것만 확인했다. 이용상은 중앙청 출입기자들을 데리고 무턱대고 장충동으로 갔다.
  
  박정희는 외출에서 돌아오더니 발을 씻고는 양말도 신지 않은 채 회견 장소에 나와 의자에 걸터앉았다. 이낙선 소령이 호주머니 속에 양말을 넣고 와서 박 의장에게 귀엣말로 “사진기자들도 왔으니 양말을 신으시지요”라고 했다. 박정희는 큰 소리로 “발은 찍지 말라고 해!”라고 하면서 끝까지 맨발로 기자회견을 했다. 한국일보 尹宗鉉(윤종현) 기자가 “박 의장님은 주량이 어느 정도입니까” 하고 물었다.
  
  “내 주량은 여기 있는 이용상 동지에게 물어 보시오.”
  
  윤 기자는 말을 잘못 알아듣고 다시 물었다.
  
  “아닙니다. 이용상 과장의 주량은 우리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묻는 것은 의장님의 주량입니다.”
  
  “아마, 이용상 동지 주량은 여러분들도 잘 모르실 겁니다. 이분은 종로에서 동대문까지 가는 데 일주일이 걸리는 사람이에요. 중간, 중간에 있는 술집을 다 들러야 하거든요.”
  
  5·16 혁명 직후 박정희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 가운데는 洪得萬(홍득만) 중사가 있다. 그는 5·16이 났을 때 육군 참모차장실 선임 하사관이었다. 그는 1952년 박정희가 대구에서 육본 작전국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그 밑에서 하사관으로 근무했다.
  
  어느 날 일직사령 박정희 대령이 사병들을 집합시켰다. 홍 중사가 “집합 완료”를 보고하자 박정희는 “전원 모자 벗어!”라고 명령했다. 사병들의 두발 상태가 불량함을 확인한 박 대령은 “가서 가위 가져와”라고 했다.
  
  박정희는 두발 상태가 가장 단정한 홍 중사의 머리칼을 싹둑 자른 뒤 “해산시켜”라고 하고는 아무 말도 없이 들어가 버렸다. 홍 중사는 박 대령에게 찾아가서 “명색이 제가 하사관인데 이렇게 하시면 부하들이 저를 어떻게 보겠습니까”하고 하소연을 했다. 박정희는 웃으면서 “그럴 거야. 지금 사병들이 뭘 하고 있는지 한번 보고 와”라고 했다. 홍 중사가 막사로 내려가 보니 텅 비어 있었다. 사병들이 모두 이발하러 갔다는 것이었다. 하사관이 억울하게 혼이 나는 것을 본 사병들이 알아서 한 것이었다. 홍 중사가 “이것도 지휘통솔법입니까”라고 하니 박정희는 “바로 그거야”라면서 씩 웃었다. 5·16이 터지자 홍 중사는 바로 곁에서 박정희를 시중드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박정희는 최고회의 사무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잠을 언제 자는가 싶을 정도로 항상 깨어 있고 일하고 있었다. 박정희는 야전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면 아침 신문부터 꼼꼼히 읽었다. 그 다음엔 중앙정보부, 육해공군 정보부대에서 올라온 각종 보고서들을 뜯어 밑줄을 쳐가면서 읽기 시작했다. 그 다음엔 진정서와 건의서들을 읽었다. 보고서를 읽느라고 아침을 생략할 때도 있었다.
  
  어느 날 육영수가 신당동 근무 중인 박환영 중사를 시켜 꿀 한 병과 잣 한 봉지, 그리고 양주 한 병을 보냈다. 박정희는 홍 중사가 있을 때만 잣 몇 알을 입에 털어 넣은 뒤 양주 한 잔을 얼른 마시곤 했다. 꿀은 가끔 한 숟갈씩 퍼먹었다.
  
  혁명의 성공으로 박정희의 신당동 생활은 곧 끝나게 되고 육영수의 생활도 많이 바뀐다. 육영수의 사촌동생인 宋在寬(송재관·전 어린이회관 관장)은 그때 <평화일보> 기자로 근무하고 있었다. 군부 쿠데타 소식을 듣고 이종 사촌자형이 앞장을 섰다는 것을 알게 되자 한 반년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육영수가 송재관에게 전화를 걸어 “동생, 회사 끝나고 우리 집에 들러 줄 테야?”라고 했다.
  
  “무슨 일이죠?”
  
  “나, 지난번에 돈 탄 것 가지고 집수리했어.”
  
  그날 퇴근길에 신당동에 들렀더니 육영수는 처마 끝에 플라스틱 차양을 덧대어 놓고 자랑하고 있었다. 곗돈을 타서 마음먹고 만든 것이었다.
  
  그런 평범한 주부이던 육영수에게 송재관은 5월17일 전화를 걸었다.
  
  “아니, 자형은 왜 앞장서서 그런 일을 했어요?”
  
  송재관은 이종 사촌누님으로부터 “그러게 말이다…”란 말을 기대하면서 위로의 말을 준비했다. 그런데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육영수는 정치나 시국 같은 데에는 무관심하던 예전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육영수는 정색을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니, 동생 무슨 소리야?”
  
  “아니, 자형이 위험한 일에 가담하셨기에….”
  
  송재관은 순간적으로 ‘내가 말을 잘못 했나’라고 생각했다. 육영수의 또박또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세상이 온통 부정부패로 물들고 혼란에 빠진 채로 국민들이 어떻게 살겠어? 그냥 그대로 간다면 나라는 어떻게 될 것 같아?”
  
  송재관은 대충 대답하고 전화를 끊으면서 “이상하다. 저 누님이 언제 저렇게 변했나”라고 중얼거렸다.
  
[ 2011-04-07, 14: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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