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운동' 인물이 '경제발전 기여' 인물보다 부각된 교과서
高校 한국사 6종 교과서 사진 이미지 분석 ② 인물 비교 : 등장 횟수 박정희-이승만-김구-김대중-김일성-김정일-여운형-마오쩌둥-전두환-고르바초프… 순

金秀姸(조갑제닷컴)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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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校 한국사 교과서 속에는 어떤 역사 속 인물들이 얼마나 노출되어 있을까. 現 6종 교과서 중 현대사 부분인 8~9과의 사진 이미지 1195건을 분석해 봤다.

 

사진 속 등장한 주요 인물은 총 88명으로, 이들이 등장한 횟수는 266회였다. 사진 중 인물 비율은 (주)미래엔컬처그룹(舊 대한교과서)이 28.1%로 가장 높았고, 비상교육이 15.6%로 가장 낮았다.

 

10위권 내로는 박정희(17)-이승만(16)-김구(15)-김대중(13)-김일성(12)‧김정일(12)-마오쩌둥(10)-여운형(8)-전두환(7)-고르바초프(6)‧김규식(6) 순으로 나타났다. 6종 모든 교과서에서 1번 이상 볼 수 있었던 인물은 김구(15), 김대중(13), 김정일(12), 마오쩌둥(10)이었다.

 

 

대통령을 제외하면 김구가 15회로 가장 많았다. 이 중 6회가 1948년 4월 38선을 넘는 김구 일행의 사진이다. 비상 교과서를 제외한 5종의 교과서에 실렸다(천재 2회). 당시 김구와 김규식은 김일성과 김두봉에게 편지를 보내 남북 정치 회담을 제의했다. 이를 계기로 평양에서 남북 협상이 열렸고, 미‧소 양군의 즉시 철군, 통일 정부의 수립,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 반대 등을 포함한 공동 성명서가 발표됐다. 6종 교과서는 이 부분을 관련 자료까지 첨부하며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이승만과 김구가 손을 잡고 있는 사진도 3회 등장했다. 3회의 사진 모두 이승만의 정읍발언과 김구의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을 비교하고 통일 정부 수립에 대한 이승만과 김구의 입장을 파악하도록 한 코너 속에 위치하고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각각 12회로, 공동 5위를 차지했다. 김일성의 경우 북한 정권 수립 전후의 활동을 담은 사진이 주를 이뤘다. 스탈린과 함께 한 모습이나 박헌영과 함께 찍은 사진 등이다. 2회는 동상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교과서 속 김정일의 모습은 주로 남측 대통령과 손을 잡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다. 12회 중 10회가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때의 사진이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2000) 8회, 제2차 남북정상회담(2007) 2회)

 

마오쩌둥의 사진은 10회 중 5회가 중화 인민 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하는 장면(1949), 3회가 중국을 방문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만나는 장면이었다.

 

8회 등장한 여운형은 교과서에서 횟수에 비해 존재감이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환호하는 군중에 싸여 있는 모습(3회)과 좌우 합작 위원회의 단체 사진(2회) 등이 주요 이미지였다. 사진과 함께 광복 후 여운형이 중심이 됐던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와 좌우 합작 위원회의 내용이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었다.

 

6회 등장한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로 소개되면서, 주로 냉전 종식 관련 내용과 함께 등장했다. 노태우 대통령과의 만남 장면이 2회였다. 역시 6회 등장한 김규식은 ‘중도 우파’로 소개되면서, 주로 좌우 합작 위원회 관련 내용과 함께 등장했다.

 

위의 순위는 몇 가지 공평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첫째는 민주주의 파트 관련 인사와 경제 성장 관련 인사의 비율이다.

 

등장한 인물 중 ‘민주주의의 발전’ 파트와 관련해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전태일(5), 박종철(3), 이한열(3), 이경해(1), 장준하(1) 등이다. (삼화 p. 344 <역사의 창> 코너에 소개된 이경해는 농민운동가로, 2003년 9월 WTO 각료회의가 열린 멕시코 칸쿤에서 자살한 인물이다)

 

이에 비해 ‘산업화와 경제 성장’ 파트 관련 인물은 정주영(3), 이병철(1) 정도로 증명사진과 함께 박스처리 되어 짧게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정주영의 경우 3회 중 2회는 소를 몰고 北에 방문했던 장면이다. 인물 선정에 있어 기업가, 그리고 대한민국의 創軍(창군) 주역인 백선엽 등 군인 출신 등에 인색함을 엿볼 수 있다.

 

 

해외 인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6회 등장한 고르바초프에 비해, 소련 해체와 냉전 종식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되는 레이건 美 대통령은 1회(비상) 등장했다. 그것도 사진 설명에는 ‘고르바초프’만 등장할 뿐 레이건은 이름도 설명되지 않았다. 8회 등장한 마오쩌둥에 비해 장 제스는 1회(법문) 등장에 그쳤다.  

 

 

주로 사용되는 이미지 역시 편견을 갖게 만들 수 있었다. 가장 큰 대조를 보이는 이미지는 박정희와 김대중이었다. 박정희의 17회 중 7회가 군복에 굳은 얼굴을 한 박정희의 모습이었다. 이에 비해 김대중의 경우 13번 중 8회가 환하게 웃고 있는 남북정상회담의 모습이었다.

 

 

김정일의 경우 12회 중 10회가 남북정상회담(1차 8회, 2차 2회)의 사진으로, 악수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는 장면이었다. 8회가 김대중과 겹치는 사진으로 머릿속에 둘의 이미지가 비슷하게 남는 느낌을 주었다.

 

 

 

[ 2011-04-08, 18:0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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