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필코 당대에 대한민국의 기적을 이룩해내야 합니다”
5·16 군사혁명 50주년 기념 연재(69)/ 새뮤얼 버거 주한 미국대사의 보고서 ‘많은 국민들이 그들의 私心 없는 헌신에 감명을 받고 있으며 그들이 만들어낸 실적을 확인하고서 지지로 돌아선 사람들이 늘고 있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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分派主義와 國家主義
  
  1961년 12월4일 딘 러스크 미 국무장관은 새뮤얼 버거 주한 미국대사에게 보낸 전문에서 박정희의 방미에 대해 높은 평점을 주었다.
  
  <박 의장은 그와 만난 미국 고관들에게 매우 좋은 인상을 주었다. 그는 헌신적이고 총명하며 자신감이 있고 정부를 확실히 장악하고 있으면서 한국이 직면한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비쳐졌다. 미국이 자유세계의 지도자이며 지원자란 사실도 잘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그도 미국의 계속적인 지원 약속에 만족했을 것으로 믿는다>
  
  버거 대사는 12월15일 러스크 장관에게 보낸 <한국의 상황에 대한 평가 보고서>에서 ‘한국은 이제 정치적으로 안정되었으며 적어도 앞으로 여섯 달 동안은 이런 상태가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버거 대사는 ‘지난 5월 그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아무도 이 장교단이 누구이고 무엇을 할지 몰랐는데 이제 그들은 진정한 개혁을 추진하고 정직하고 능률적인 정부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능력 있고, 열성적이며 헌신적인 집단임을 증명해보였다’고 극찬했다.
  
  <그들은 정부, 군, 민간 부문에서 부패, 부정, 뇌물, 밀수, 탈세, 정경유착을 근절할 각오가 되어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그들은 농업, 산업, 금융권, 교육, 복지 분야를 개혁하고 있다. 그들은 모든 부문에서 행정을 재편하고 있다.
  
  그들로부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여 군부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비관적이며 너무 서둔다고 불평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정직한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동기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많은 국민들이 그들의 私心(사심) 없는 헌신에 감명을 받고 있으며 그들이 만들어낸 실적을 확인하고서 지지로 돌아선 사람들이 늘고 있다>
  
   버거 대사는 이런 정치적 안정은 박정희의 지도력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박정희 의장은 강력하면서도 공정하고 총명하여 권력을 잡고도 국민들을 안도시킬 수 있고, 이 혁명을 신중하고 온건한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인물로 그 위치를 확고히 했다. 박정희 의장은 정부와 국민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한국정세를 안정시키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더구나 박 의장이 최고회의 내의 분파주의자들에 대해 강력하게 손을 쓴 관계로 이 고질병은 어느 정도 통제되고 있다.
  
  분파주의는 수백 년 동안 이 나라의 정부를 혼란에 빠뜨려 왔다. 박 의장의 강력한 의지력으로 해서 지금은 분파주의가 잠잠하지만 영구히 그렇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최고회의의 대다수 군인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부정을 저지른 인물에 대해서는 가혹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공무원들과 하위직 주체세력 사이에 부정부패가 침투할 가능성이 있다>
  
  버거 대사는 ‘혁명정부가 너무 많은 것을 너무 서둘다 보니 1962년도 예산을 적자팽창 예산으로 편성한 것이 걱정스럽다’고 지적했다. 버거 대사는 ‘한국 측에서는 적자를 미국이 메워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1962년 4월4일 미국 CIA가 주관하여 각 정보기관이 합동으로 작성한 <남한의 장기 전망>이란 특별정보판단서가 있다. 1970년까지의 정치정세 예측이다. CIA 이외에 국무부·국방부의 정보부서 및 육·해·공군의 정보부대, 그리고 합참이 참여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 정치정세는 군부, 민간 부문이 격렬한 갈등과 분파주의에 휩쓸릴 것이다. 군부는 국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형식상으로는 민간정부일지라도 군부의 영향력은 압도적일 것이다. 쿠데타에 의한 정권 교체의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경제전망은 심각하지만 희망이 없지는 않다. 미국 원조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면 경제성장률을 다소 높일 수는 있겠지만 그 성과는 잘 해 봐야 지지부진할 것이다. 공산권에서 미국이 한국을 방어할 것이라고 믿는 한 그들이 남한을 정면공격할 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남한의 병력수준에서 3분의 1을 감축하더라도 북한의 남침 가능성이 높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 보고서는 실제보다도 남한의 미래를 어둡게 보았다. 박정희는 이 기간(1970년까지)에 한국사회의 분파주의를 누르고 고도 경제성장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이 무렵 미국 정보기관의 한국정세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常數(상수)로 삼고 있는 것은 역사적 전통에 뿌리를 박고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血緣·地緣·學緣(혈연·지연·학연)에 따른 분파주의였다. 주목할 만한 것은 미국 측은 박정희가 이런 분파주의를 억누르는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好評(호평)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측이 박정희 세력에 대해서 호감을 갖게 된 것도 자유당·민주당 정부 때의 분파주의가 가져온 비효율과 부패에 비교되는 군사정부의 國益(국익)우선 정책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군인들이 아마추어 정신으로 너무 서둘기는 하지만 사심 없이 문제를 직시하니까 여러 가지 신선한 발상과 해결책이 나오고, 일단 방향만 결정되면 무섭게 밀어붙이는 군대식이 한국사회를 바꾸고 있었다. 대한주택영단에 의한 마포 아파트 건립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주인공은 2군 사령부 직속 공병대대장으로서 혁명주체 중 한 사람이 된 육사 8기 張東雲(장동운) 중령. 그는 혁명 직후 大韓住宅營團(대한주택영단) 이사장으로 임명되어 부임하자마자 직원들을 모아놓고 ‘소문이 나쁜 사람’을 찍어내는 記名(기명)투표를 하게 했다. 다섯 번이나 되풀이한 투표를 집계하여 물러날 사람을 정한 데 이어 무기명투표로써 ‘존경할 수 있는 사람’과 ‘존경할 수 없는 사람’을 고르게 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내보내는데 하루 평균 5~7명씩 의원면직되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구조개혁을 한 다음 장동운은 1961년 10월16일 마포아파트 착공식을 가졌다. 10층짜리 11개 棟(동)에 1158호가 들어가는 대규모 아파트를 50억 환의 예산을 들여 건설한다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계획이었다.
  
  장동운이 이런 발상을 한 계기는 단순했다. 1953년에 미국에서 공병 교육을 받고 있을 때 잡지에서 본 유럽의 아파트 단지 사진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때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마셜 플랜에 의한 미국 원조로 고층 아파트를 많이 짓고 있었습니다. 땅이 좁은 우리나라에도 옆으로만 퍼지는 연립 주택만 지을 게 아니라 높이 올라가는 아파트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이죠.”
  
  아파트와 연탄가스와 電氣
  
  대한주택영단 이사장 장동운 중령은 외국 잡지에서 본 단지화한 아파트 사진을 서울 한복판에서 현실로 옮기려 했다. 마포아파트를 짓기 전에도 서울에는 아파트가 몇 군데 흩어져 있었다. 입주자들의 낮은 소득수준과 관리소홀로 ‘아파트’하면 빈민굴이란 인상까지 줄 정도였다.
  
  “저는 단지화한 아파트를 지어 중산층을 입주시킴으로써 아파트에 대한 인상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생각이었습니다. 김종필 정보부장과 최고위원들을 만나 저의 발상을 설명했더니 모두 찬성했습니다. 건설자금은 유솜이 관리하던 대충 자금(미국의 원조물자를 판매한 대금)을 지원받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유솜의 주택국장인가 하는 사람이 반대를 합디다. ‘1인당 국민소득이 80달러인 나라가 엘리베이터를 수입할 돈을 어떻게 쓸 수 있느냐’는 거였습니다.
  
  결국 전액을 국고로 짓게 되었는데 10층으로 계획했던 것이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 없게 되자 6층으로 낮춘 것입니다. 중앙난방시스템도 구상했지만 호화판이란 여론에 밀려 호실별 연탄보일러로 바꾸었습니다. 수세식 화장실은 ‘먹을 물도 부족한데 그럴 수 있느냐’는 반대론에 직면했지만 관철시켰습니다. 국내엔 양변기 제조업체가 없어 일본에서 수입했지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전문가, 학자들을 모아서 설계 자문위원으로 삼았지요. 외국에 가서 아파트 단지를 구경하고 설계한 것이 아니고 우리끼리 머리를 맞대어 순 한국식으로 만든 단지입니다. 9평형, 12평형, 15평형으로 만들었는데 임대 아파트로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경험을 가지도록 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마포아파트가 들어선 자리는 안양으로 옮긴 마포 형무소 안 야채밭이었다. 법무장관은 이 부지를 서울시에 매각하려고 했다. 장동운은 尹泰日(윤태일) 서울시장을 설득하여 매입을 포기하게 하고 주택영단이 헐값에 구입했다. 1962년 12월1일에 1차 연도분인 6개 동 450호가 준공되었지만 의외로 입주자가 적었다. 10분의 1정도만 입주해 놓으니 겨울에 파이프는 凍破(동파)되고 연탄가스가 잘 빠져나가지 않았다.
  
  주택공사(이때 대한주택영단은 주택공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에서는 입주자들을 안심시키려고 모르모트 여섯 마리를 구해서 여러 방에 가두어놓고 실험을 했는데 다행히 가스에 중독되지는 않았다. 현장소장은 입주자들의 항의에 시달리다가 하루는 술을 잔뜩 마신 뒤 가스가 가장 많이 샌다는 방에 들어가 잠을 자는 일종의 인체실험을 감행하기도 했다. 장동운 이사장은 직접 아파트 내의 생활상태를 시찰했다.
  
  “신문지를 휴지처럼 쓰고 생리대를 변기통에 처넣고 하다 보니까 양변기가 막히는 등 첫경험인 아파트 생활에 희비극도 많았습니다.”
  
  마포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제작되는 등 차츰 인상이 달라지면서 여름부터는 프리미엄이 붙어서 임대되기 시작했다. 이 마포 아파트는 1992년에 재건축을 위해서 철거되었다. 장동운은 1968년에 다시 대한주택공사 총재로 돌아와서 동부이촌동에 한강맨션 아파트를 짓게 된다. 그는 “27~55평의 큰 아파트를 지어 팔기 시작한 이 사업이 대성공함으로써 본격적인 아파트 시대가 열린 것이죠. 지금은 철거된 남산 외인아파트도 이때 지었습니다”라고 했다.
  
  “외국 잡지에 난 아파트 단지 사진만 참고로 하여 마포 아파트를 짓고 있던 1962년에 로마로 여행을 갔다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사가 아파트에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아파트 생활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서 운전사의 집을 구경해보았습니다. 겉에서 보기보다는 내부가 근사하고 편리한 것을 확인하고는 아파트 단지 건설의 타당성에 대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 확산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1961년 12월10일 박정희 대통령은 서울시의 공영주택 입주식에 참석하여 致辭(치사)를 하는 가운데 원고 없이 이런 말을 했다.
  
  “저녁을 먹으려고 밥상 앞에 앉으면 전깃불이 왔다가 갔다가 하고 촛불을 켜면 전기가 들어왔다가 (촛불을) 끄면 또 갔다가 왔다가, 이렇게 갔다가 왔다가 했는데 금년 들어서는 가정에서도 철야로 전깃불을 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電源(전원)을 많이 개발한 것은 없습니다. 출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이것은 관리하는 사람, 취급하는 사람, 공무원, 담당관들이 부정하지 않고 정직하게 하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첫째, 정부가 양심적이고 능률적이어야 합니다. 둘째, 국민들이 그런 정부를 신뢰하고 지지해야 합니다. 봉사하는 정부와 협력하는 국민들이 서로 단합할 때 여기서 기적이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는 기필코 당대에 대한민국의 기적을 이룩해내야 합니다.”
  
  이즈음 박정희 대통령은 대소 행사에 자주 참석하여 연설을 많이 했다. 그 내용도 개탄, 분노, 호소, 훈계, 경고의 의미가 뒤섞인 激情的(격정적)인 것이다.
  
  <종전의 대학이 최고학부로서의 구실을 못 하고 대학졸업자로서 응당 지녀야 할 지적 수준에 이르지 못한 자들을 부당한 諸(제) 방법으로 대량 사회에 배출하여 일종의 사회문제까지 배태시킨 과거를 반성하고…> (담화문 <전국 대학교직자에게 고함>)
  
  <작금 본인은 비행기로 일선 순시차 경기도와 강원도 지방을 날던 도중 전답들을 살펴보았으나 응당 되어 있어야 할 秋耕(추경·가을갈이)이 아직도 되지 못한 채 내버려둔 것이 허다히 눈에 띄었습니다. 농민들 자신도 스스로 각성하고 근면하여야 하겠습니다. (중략) 추경성적이 나쁜 농가에 대해서도 앞으로 비료보상의 혜택을 再考(재고)할 것입니다> (담화문 <가을갈이를 하자>)
  
  <병역을 필하지 못한 과오를 속죄하는 이 갸륵한 정신으로 이 위대한 건설사업을 추진해나간다면…> (<국토건설단 창단식 치사>)
  
  <1. 집 앞에 습관적으로 버려둔 쓰레기나 오물은 깨끗이 치워야 할 것이다.
  
  2. 짚이나 나뭇가지로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울타리와 담은 흙과 돌로써 아담하게 새로 쌓아야 할 것이며,
  
  3. 마을 앞을 흐르는 개천은 양쪽 제방을 돌로 쌓고 잔디를 입히고 나무를 심고 하는 등 손질이 되어 있어야 하며,
  
  4. 길을 깨끗이 손질하고 양 옆에 나무를 심어 풍치를 돕게 하고…> (<농민에게 드리는 부탁의 말>)
[ 2011-04-25, 12:5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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