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制憲)헌법 '민족 사회주의 국가' 추구(?)
삼화출판사 발행 고교 한국사 교과서 ‘탐구활동’ 예문

金泌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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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출판사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는 ‘탐구활동’(313페이지)에서 ‘제헌 국회 속기록’을 예문으로 제시하고, 당시 제헌 헌법의 정신을 '민족 사회주의 국가'로 소개했다.

위 자료는 헌법기초위원회 위원장 서상일(徐相日) 의원이 헌법기초위원회의 보고 및 헌법안 제1독회(1948년 6월23일, 제17차 회의)의 첫 보고 발언 내용이다.

 

서상일은 독립 운동가이자 정치가로 1945년 광복 후 송진우, 장덕수 등과 함께 한민당(韓民黨) 창당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그는 1946년 비상국민회의 의원에 취임했으며, 1947년에는 남조선 과도입법의원의 민선의원으로 당선됐다.

 

1948년에는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헌법기초의원으로 활동했으며, 제헌국회 말기에는 내각 책임제 개헌안을 발기해 최초로 헌법개정안을 제기했다.

 

1960년 제5대 민의원으로 당선됐으나 신병으로 활동하지 못하다가 병사했다. 서상일은 혁신계 사회민주주의 정당 활동을 벌여 진보당(進步黨), 사회대중당 등에 관여했던 인물이다.

 

삼화출판사를 포함한 고교 한국사 교과서는 건국(建國) 주체 세력으로서의 국내 보수우파(保守右派) 그룹과 이승만을 비롯한 재미(在美)독립 운동가들의 활동을 축소-배제했다.

 

그 결과 탈(脫)식민 사회의 예정 코스인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혼합’ 혹은 ‘자주적 민족국가와 자립적 민족경제의 건설’을 제시하면서 마치 이것이 당시 사회 전체의 묵시적(黙示的) 합의였던 것처럼 오도(誤導)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전혀 밝히지 않았다.

 

이유는 현행 고교 한국사 교과서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국제화보다는 민족주의와 민중주의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헌국회가 만들려 했던 대한민국의 국가체제는 서상일이 언급한 것처럼 ‘민족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다.

 

제헌헌법은 애초부터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아울러 대한민국의 체제와 질서를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와 자유경제체제임을 확실히 했다. 권력구조로는 내각제적인 요소가 결합된 국회 선출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했다.

 

또한 제헌헌법은 당시 현실을 감안해 주요 자원과 산업에 대한 국유화 내지 국-공영 원칙이나 노동자의 이익배분 균점권과 같은 사회주의적 요소가 어느 정도 담겨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신생독립국가에서 나타나는 초기 현상이었을 뿐이다.

 

그 이후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을 착실히 실현해 오늘에 이르렀다.

 

[참고자료] 제헌 헌법의 주요 내용 및 의미

출처: 대한민국 국가기록원

 

제헌헌법은 자유권의 보장, 권력분립, 단원제 국회, 대통령중심제, 통제경제정책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였다. 제헌헌법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헌법 전문에서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 제도를 수립할 것을 천명하였으며,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하는 것임을 밝혔다.

 

둘째, 총강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였다. 또한 대한민국은 모든 침략적인 전쟁을 부인한다고 천명하였으며,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모든 국민의 자유, 평등과 창의를 존중하고 보장하며 공공복리의 향상을 위하여 이를 보호하고 조정하는 의무를 진다고 하였다.

 

셋째, 국민의 기본권을 폭넓게 보장하였다. 즉 모든 국민은 법률 앞에 평등하며, 성별,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않으며,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 신앙과 양심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는 등의 내용을 명시하였다. 그 밖에도 일사부재리의 원칙, 구속적부심사제 등의 자유권, 사회적 기본권으로는 교육받을 권리 및 초등 의무 교육, 근로의 권리, 근로자의 근로3권, 근로자의 이익균점권, 생활 무능력자에 대한 국가의 보호, 결혼·가족의 건강에 대한 국가의 보호 등을 규정하였다. 청구권적 기본권으로는 청원권, 재판청구권, 형사보상권 등을 규정하였다.

 

넷째, 정부형태는 3권 분립을 통해 권력집중을 막고 권력 간의 견제와 균형을 꾀했으며,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였다. 임기 4년의 대통령은 국회에서 간접선거를 통해 선출되고, 한 차례에 한해서 중임을 허용했다. 대통령과 부통령 선거는 국회 재적의원 2/3 이상의 출석과 출석의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당선되었다. 대통령에게는 긴급명령권, 긴급재정처분권, 계엄선포권을 부여하여 국가 비상사태 시에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밖에도 법률안 제출권, 법률공포권, 법률안 거부권, 조약체결 및 비준권, 선전포고 및 강화권, 국군통수권 등의 권한이 있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는 국무원을 중요정책의 의결기관으로 설치하였다.

 

다섯째, 국회는 단원제 국회를 채택했으며, 보통·직접·평등·비밀 선거에 의해 선출된 4년 임기의 국회의원으로 구성되었다. 다만 제헌국회의 의원 임기는 국회 개회일로부터 2년으로 규정하였다. 국회의원은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을 가졌다. 국회는 국정감사 권한을 비롯하여 예산심의권 및 의결권, 법률제정권, 대법원장 임명승인권, 중요 공무원 탄핵소추권 등의 권한이 있었다. 국회의 회기는 정기회와 임시회로 구분하였다. 정기회는 매년 12월 20일에 집회 하였으며, 임시회는 대통령 또는 국회의 재적의원 1/4 이상의 요구로 소집되었다.

 

여섯째, 사법권 독립을 위해 대법원장 임명에 대한 국회 승인제와 법관의 임기제(10년)를 채택하였다. 아울러 위헌법률의 심사·결정을 위해 헌법위원회를 설치했으며, 대통령 등 고위공직자의 탄핵심판을 위해 탄핵재판소를 별도 로 구성하였다.

 

일곱째, 통제경제를 바탕으로 한 경제 질서를 마련하였다. 중요 지하자원, 수산자원 등을 국유로 하였을 뿐만 아니 라, 중요한 운수, 통신, 금융, 전기, 수도 등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하였고 대외 무역을 국가의 통 제 하에 두었다. 아울러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발전을 기본으로 삼았다.

 

여덟째, 국회는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반민족행위자처벌특별법 제정의 근거를 마련하였다.

 

아홉째, 헌법 개정의 제안은 대통령 또는 국회 재적의원 1/3 이상의 찬성으로 발의할 수 있었으며, 국회에서 재적의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가능토록 하였다.

 

제헌헌법이 제정됨에 따라 대한민국은 새로운 독립국가로 출범하였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의의 가치관을 실현하기 위하여 민주주의, 법치주의, 국민의 기본권 보장, 권력 분립 등 현대적 의미의 통치 질서가 우리 역사상 최초로 마련된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 2011-04-25, 14:3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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