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北의 화폐개혁, 교과서 모두 다루지 않아
한국의 경제失政은 과장, 北의 失政은 은폐. 北이 선전하는 '개성공단', '나진·선봉 경제 특구'는 다루고 '개혁 개방'을 추진한 것처럼 거짓말.

趙成豪(조갑제닷컴)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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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種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들은 북한 경제를 다룰 때 대체적으로 실패한 개방 정책인 ‘합영법(합작회사 경영법)’, 한국과 합작해 지은 ‘개성공단’ 같은 대외적인 것만 기술했다. 반면, 2009년 11월 전격적으로 단행된 북한의 화폐개혁 내용은 全 교과서가 다루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의 화폐개혁은 2009년 11월을 제외하고 총 네 번 실시됐다(아래 표 참조).

1차 화폐개혁(1947년)의 목적은 日帝시대 때부터 사용하던 화폐를 1:1로 교환하는 것이었으며, 2차(1959년)는 6ㆍ25 전쟁에서 비롯된 인플레 방지, 3차(1979년)는 遊休(유휴)화폐의 유통, 4차(1992년)는 화폐유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각각 실시한 것이었다. 북한의 화폐개혁은 주민 경제생활을 향상시키지 못하고 철저히 黨의 이익만을 추구해 사실상 실패 한 것으로 판명됐다. 그 중 4차와 5차 화폐개혁은 북한 주민들에게 매우 치명적인 조치였다.

 

2009년 11월30일字 데일리NK <北, 1992년 화폐개혁 단행해 주민들 쌈짓돈 ‘갈취’>의 보도에 따르면, 1992년 11월 단행된 4차 화폐개혁이 新券(신권)과 舊券(구권)을 교환한다는 명목 하에 이뤄졌다고 했지만 사실은 주민들의 쌈짓돈을 당이 착취한 것이라고 말했다. 데일리NK는 “최고 액면가는 100원, 최저가는 1전이었다. 북한 은행들은 만 17세 이상 성인에 한해 1인당 300원씩 교환해 줬고, 개인의 돈은 2만원까지 적금으로 받아주었으나 그 이상은 전면 무효화 했다”며 “그 이상의 나머지 돈은 은행에 돈이 없다는 이유로 출금해 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북한 주민들뿐 아니라 조선족들까지 상당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으며 외국인이 가지고 있던 북한 화폐 또한 교환해 주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2009년 화폐개혁은 이전의 화폐개혁과 비교했을 때 차이점이 있다. 교환비율도 1:100으로 컸으며 장마당을 중심으로 만연해 있는 시장경제 요소를 걷어내고 비공식 부문의 돈을 당국이 회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 5차 화폐개혁 역시 시장폐쇄·외화 사용금지·가격통제를 골자로 하고 있으나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화폐개혁 두 달 만인 2010년 2월1일, 북한 당국이 전국적으로 실시했던 시장 통제를 풀고 모든 물품에 대한 거래를 허용해 反(반)시장 정책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폐개혁을 담당했던 박남기 노동당 계획경제부장까지 총살돼 화폐개혁 실패는 내부적으로도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그에 따른 민심이반으로 내부단속도 더욱 심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북한 전문가는 화폐개혁 실패 이후 民心이 동요 생계형 抗命이 예사로 되었다고 했다.

 

5차 화폐개혁의 부작용은 ▲ 쌀을 포함한 물가 폭등 ▲ 위안화 거래에 따른 중국 경제로의 예속화 ▲ 지급되는 급여와 배급 감소에 따른 餓死者(아사자) 증가 ▲ 노동당의 경제지배 구조 강화를 들 수 있다. 실제로 화폐개혁 직전(2009년 11월22일) 2,200원(舊券 기준)이었던 평양의 쌀값(kg당)이 화폐개혁 이후(2010년 3월8일) 1,300원(舊券 13만원 해당)이 되었다. 2,200원에서 13만원이 되었으므로 약 59배나 뛴 셈이다. 주민들의 생활은 더 궁핍해졌다.

 

6種의 교과서 중 화폐개혁과 그 부작용을 다룬 교과서는 없었다. 천재교육 교과서는 ‘개성 공업지구’, ‘금강산 관광특구’를 언급하며 북한 경제에 대해 이렇게 평하였다.

 

“북한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기본틀은 유지하면서도 시장 경제적 기능을 일부 도입, 활용한다는 실리 사회주의 경제노선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북한식 개혁ㆍ개방은 국제 사회의 신뢰 부족으로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401페이지).”

 

북한의 화폐개혁 실패로 미루어 보아 천재교육 교과서의 기술은 사실을 왜곡하는 서술이 될 수 있다. 북한은 그간 자신들의 주장이 먹히지 않을 때마다 개성공단 계약 무효와 금강산 관광 철폐를 주장하며 억지를 부렸다. 이는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黨 주도에 의한 전격적인 화폐개혁 역시 시장과 정부 간의 정상적 역할로 보기 어렵다. 천재교육 교과서는 이런 사실을 외면한 채 포괄적으로만 서술해 북한이 시장경제와 사회주의 경제를 적절히 혼합해 운용하는 것처럼 썼다. '북한식 개혁 개방'은 터무니 없는 美化이다. 북한이 그런 용어를 쓴 적도 없다. 친북세력이 북한정권보다 더 북한을 선전해주기 위하여 만든 용어 같다. 북한은 개혁 개방을 수령체제 붕괴로 여긴다.

 

(주)미래엔컬처그룹의 교과서는 390페이지 <북한의 식량난>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북한의 경제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식량난이다. 매년 600만 톤이 필요하지만, 생산력 저하와 거듭되는 자연재해로 생산량이 400만 톤을 밑돌기 때문이다. 여기에 외화 부족과 국제 식량 가격 폭등은 북한의 식량사정을 더욱 악화시켰다.”

 

이 교과서는 북한 식량난의 원인으로 ‘생산력 저하’와 ‘자연재해’를 들었지만, 黨이 지배하는 일당 독재체제로 인해 벌어진 것임은 지적하지 않았다. 원인을 말하지 않고 현상만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화폐개혁으로 인한 쌀값의 폭등과 이로 인한 식량난에 대해서도 설명하지 않았다.

 

비상교육 교과서도 “김대중 정부의 대북 화해 협력 정책에 힘입어 금강산 관광 사업 등 남한과의 경제 교류가 확대되었고 생필품 시장을 일부 허용하는 등 시장 경제 체제도 일부 도입하였다”고만 적었다. 시장경제체제를 부인한 화폐개혁에 대한 내용은 없다.

 

법문사 교과서는 <북한 경제의 문제점>(363페이지)에서 북한 경제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비교적 자세히 다뤘다. 이 교과서는 “군사와 경제의 병진 정책 또한 한정된 자원으로 군사력 강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추진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주민의 소비 부분이 억제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오늘날 북한 주민들이 극도로 궁핍한 생활을 강요당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적었다. 이 교과서도 화폐개혁의 실패에 대해선 다루지 않았다.

 

지학사 교과서는 1991년 개설된 나진ㆍ선봉 경제특구와 2002년 신의주 특별행정구 기본법을 예로 들며 북한이 경제 특구를 확대하고 있음을 적고 있다. 나진ㆍ선봉 특구는 현재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김수열 라선市(나진ㆍ선봉 지역의 앞 글자만 따서 지은 이름) 인민위원회 위원장(라선시장)은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원간조국》 2003년 10월호 인터뷰에서 “세계적 추세에 맞게 경제무역지대를 창설하고 운영하는 것은 처음 해보는 일로 애로가 많으며 제국주의자들의 경제봉쇄와 제재로 장애가 조성되고 있다”며 그 책임을 외부 세계로 돌린 바 있다. 신의주 경제 특구는 중국과의 갈등으로 진척되지 못하였다. 경제특구를 만들겠다는 생각과 그것이 실천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서류가 공장이 되는 게 아니다.

 

(주)삼화출판사 교과서의 경우 북한 경제가 발전을 거듭하다 침체에 빠진 것처럼 기술했다.

 

“1970년대에는 인민 경제 발전 6개년 계획(1971~1976년)을 수립하고 생산력을 강화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지속적인 사상적 독려와 노력경쟁을 동반하여 이 기간에 농업 총 생산액은 전 기간에 비해 각각 2배 이상 증대되었고, 노동자ㆍ농민의 실질 소득도 각각 2배 가까이 늘어났다(379페이지).”

 

“…그러나 제2차 7개년 계획(1978~1984년)을 추진하면서 북한 경제는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자체의 자원과 기술만으로는 빠르게 발전하는 세계의 기술 수준을 따라 잡을 수 없었다. … 1980년대 초부터 경제 성장률이 점차 떨어지면서 북한 경제는 장기적인 침체에 빠지게 되었다(380페이지).”

 

이 교과서 역시 북한의 화폐개혁과 관련된 내용은 일체 다루지 않았으며 “‘우리식 사회주의’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대외 개방과 시장 도입을 통한 변화를 모색하였다”는 식의 모호한 서술을 실어 실패한 화폐개혁과 같은 정책 역시 緘口(함구)했다.


역사는 민족과 국가의 興亡과 그 因果관계를 설명하는 학문이다. 좌편향 교과서는 계급적 시각과 친북적 성향에 집착, 사물을 편향적으로 보니 역사의 흐름과 진실을 놓친다. 그런 좌경 이념적 집필방침이 적용되니 사실 왜곡이 일관성 있게 全面的으로 일어났다. 이건 역사가 아니라 선전물이다.   

[ 2011-05-05, 07:4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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