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들의 역할을 묵살한 한국사 교과서
기업 및 기업가에 대한 서술은 있으나 부정적인 내용이 압도적, 경제발전의 공로를 노동자 중심으로 기술

金秀姸(조갑제닷컴)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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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비판 삽화를 실은 미래엔컬처그룹 발간 한국사 교과서(p.377)

高校 한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기업 및 기업가에 대한 서술은 부정적인 내용이 압도적이다. 지난 60여 년간의 기적과 같은 한국 경제의 발전은 마지못해 인정하면서도, 그 주체에 대한 설명은 대충 얼버무리는 식이다. 특히 박정희 정부와 주요 기업 및 기업가 등 경제 발전 주체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설명하면서 기업·기업가의 역할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일제시대의 독립운동을 거론하면서 독립 운동가들은 소개하지 않는 것과 같다.

 

교과서의 反기업 정서는 특히 천재교육과 미래엔컬처그룹 발간 교과서에서 두드러졌다. 천재교육 발간 교과서는 한국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상을 소개하면서 그 원인을 우수한 노동자와 유학생, 전문 공무원들에게 돌리고 있을 뿐, 기업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거나 간략하고 소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외자 도입 이후 경제 성장은 더욱 급속히 진행되었다. 1964년부터 1966년까지 수출은 연 44%의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이러한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은 1960년대 한국 사회의 잠재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결과였다. 높은 교육열에 힘입어 우수한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배출되었다. 이들은 낮은 임금과 열악한 환경에도 성실하게 일하는 근면성과 열정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유학생들도 경제 성장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해외 연수 등의 경험을 갖춘 전문 공무원들이 경제 개발 관련 부서에 배치된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천재 375페이지)
- 정부는 1967년 한․일 협정으로 얻게 된 자본의 일부를 제철소의 설립에 투자하였다. 제철소 설립은 1973년 포항 제철소의 준공으로 결실을 맺었다. … 한편 1970년 준공된 경부 고속 국도는 수출 물량의 이동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였고, 서울을 중심으로 한 전국 시장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천재 376페이지)
- 같은 해(1973년) 정부는 중화학 공업화를 선언하고 철강, 비철 금속, 화학, 기계, 조선, 전자 등을 6대 전략 업종으로 선정하였다. (천재 376페이지)
- 1973년부터 이듬해까지 국제 유가가 4배 이상 급등하는 오일 쇼크가 있었지만, 중동의 건설 붐이 일어나 여기에 한국 기업이 대거 참여하면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 1977년 말에는 100억 달러 수출 목표를 4년 앞당겨 달성하였다. (천재 376페이지)
- 외환 위기 이후 각 대기업 집단은 부실 부분을 정리하고 주력 기업 위주로 구조를 재편하였다. 이에 따라 반도체, 휴대전화, LCD, 자동차, 조선 등의 분야에서 대규모 기업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한국 경제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이들 분야를 중심으로 재편되었으며, 이들 주력 분야는 지속적인 기술 개발에 힘입어 세계에서 1~6위 안에 들 정도로 크게 성장하였다. (천재 383페이지)
-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의 IT, 자동차, 선박 산업과 세계 점유율 2위의 휴대 전화 생산 등 경제적인 면에서도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천재 406페이지)

 

미래엔컬처그룹 발간 교과서에서는 기업․기업가의 역할에 대한 언급이 전무했다.

 

- 우리나라가 1960~70년대에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경제 개발의 의지가 강한 정부가 외자를 도입하여 수출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높은 교육열과 근면성을 지닌 국민들이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1979년 1인당 국민 소득은 1962년에 비하여 20배나 성장하였다. (미래엔 376페이지)
<사진자료: 1960~70년대, 성장 신화의 숨은 주역들>(미래엔 375페이지)
- 베트남에서 도로를 건설하는 우리 근로자들: 총 40여 만 명의 병사와 산업 인력이 8억 5천만 달러 규모의 베트남 특수를 얻어냈다.
- 이란에서 조선소를 세우고 있는 우리 기술자들(1976): 산유국들은 유가 폭등으로 풍부해진 재정으로 대규모 건설 사업을 벌였다.


이에 반해,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은 쉽게 눈에 띈다. 천재교육 발간 교과서는 대기업 즉 재벌 중심의 불균형한 산업구조, 정경유착 등을 중점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미래엔컬처교육 발간 교과서 역시 정부가 대기업에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한 결과, 고도성장은 유지했지만 국민들의 금융 부담이 늘어나고 노동자들이 저임금에 시달렸다고 기술하고 있다.

 

- 무역 적자와 더불어 무리한 외국 자본의 도입은 외채의 급속한 증가를 가져왔다. 또한 외국 자본은 수출품 생산의 단기적인 증대를 위해 주로 대기업에 지원되어 중소기업의 육성을 가로막았다. 이는 결국 대규모 기업 집단 중심의 불균형한 산업 구조를 만들어 냈다. (천재 377페이지)
- …이 과정에서 경제의 자율화를 내세운 정부의 정책과는 달리 권력에 의한 인위적 산업 구조 재편은 오히려 정부와 대규모 기업 집단 간의 유착을 더욱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따라 정경 유착에 대한 부정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천재 377페이지)
- …1997년 1월 한보 철강의 부도를 시작으로 여러 대기업 집단이 도산하였다. 이는 이들 대기업 집단이 과도하게 은행 빚과 외자를 차입하여 몸집 불리기를 해온 결과였다. 게다가 동남아시아에서 외환 위기 사태가 일어나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에서도 투자한 자금을 거두어가기 시작하였다. (천재 383페이지)

- 1960년대 말, 국제 경기가 악화되면서 수출 감소, 외채 누적, 사채 상환 부담 증가로 기업은 부도 위기에 직면하였다. 정부는 대기업에게 파격적인 금융 혜택을 제공하고, 마산, 창원 등지에 자유 무역 단지를 조성하여 외국 기업을 유치하였다. 그 결과 고도성장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국민들의 금융 부담은 늘어났고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시달렸다. (미래엔 375페이지)
- …그 결과 1979년 1인당 국민 소득은 1962년에 비하여 20배나 성장하였다. 그러나 소득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에 시달렸고, 빈부의 차도 커졌다. 영호남 간 개발의 불균등과 도시와 농촌 간의 소득 격차 확대도 문제였다. 한편, 정부 주도의 성장 정책은 재벌 중심의 한국적 기업 문화를 형성하였다. 수출을 주도하는 몇몇 대기업이 정부의 특혜로 성장하면서 여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서로 다른 업종에까지 진출하여 재벌이 되었다. 이때 기업이 정부의 혜택을 얻어내기 위한 부적절한 거래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정경유착의 문제가 발생하였다. 또, 수출 주도형 성장 정책으로 내수보다 수출입의 비중이 커지면서 우리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심화되었다. 재벌 중심이며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은 1990년대 말에 직면한 외환 위기의 한 원인이었다. (미래엔 376페이지)
- 1980년대 후반에는 3저 호황으로 물가가 안정되고 수출이 늘면서 반도체, 자동차 등 기술 집약 산업이 크게 성장하였다. 그러나 부실기업 정리 과정에서 정경유착에 따른 비자금 의혹이 발생하고, 1980년대 말에 3저 호황이 막을 내리면서 경제 상황은 다시 어려운 국면을 맞았다. (미래엔 378페이지)

 

경제 관련 부분의 분량, 민주화 관련 부분의 약 40%

 

분량 면에서도 ‘경제’를 다루는 부분은 ‘민주화’를 다루는 부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두 교과서의 경우, 경제 관련 부분은 민주화 관련 부분의 약 40% 정도의 분량인 것으로 나타났다.

 

천재교육 발간 교과서의 경우, 단원상 민주화 과정을 다루는 부분은 20페이지인데 비해, 경제 발전 과정을 다루는 부분은 10페이지에 불과하다. 이 10페이지 중에서도 2페이지는 노동·농민운동과 사회·시민운동을 다루고 있어, 엄밀히 말하면 20 對 8 페이지의 비율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2페이지 분량의 각종 노동·사회운동 부분의 서술이다. 전태일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전태일이 썼던 ‘대통령에게 드리는 글’이 부록으로 길게 소개되는가 하면, 민주노총, 한국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교조는 물론 ‘크리스천 아카데미’나 ‘도시산업 선교회’,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같은 단체명이 직접적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이는 경제 관련 부분 중 기업이나 기업가를 직접 언급하는 내용이 1997년의 대기업 도산을 설명하면서 언급되는 ‘한보 철강’뿐이라는 사실에서 비교되는 점이다. 

 

미래엔컬처그룹 발간 교과서의 경우 단원상으로는 16 對 10의 비율이지만, 경제 관련 부분 10페이지 중 4페이지가 도시빈민 문제, 노동·농민운동 등을 다루고 있어 실질적으로는 16 對 6페이지의 비율을 보였다. 이 교과서 역시 전태일은 1페이지 반을 할애해 다루고 있으며, 철거 이주민의 천막촌 사진 및 단식 농성 중인 농민들의 사진이 등장한다. ‘신자유주의와 한국경제’라는 제목이 붙은 단원에서는 신자유주의를 악마로 묘사해 지구를 비틀어 짜서 돈을 빼내는 삽화와 함께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우리 경제는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아보자”라는 질문이 등장한다.

 

또한 한국의 현재 경제 규모와 자유화 등급 변화를 소개하면서, 한국을 “경제 성장과 민주화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성공한 나라”라고 평가한 미국의 학자인 ‘노암 촘스키’의 말을 인용했다. 언어학자인 노암 촘스키는 反戰(반전)운동가이자 미국을 제국주의라고 비판하고,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대표적인 좌파성향 학자이다. 교과서는 노암 촘스키의 이름 앞에 ‘세계에 양심적 지성인으로 널리 알려진’이라는 편향된 수식어를 붙여서 소개했다.

 

이에 비해 두 교과서에는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했던 기업이나 기업인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실정은 나머지 교과서들도 마찬가지다. 6種 高校 한국사 교과서 중 삼화출판사 발간 교과서만이 정주영, 이병철 씨의 사진을 싣고 간단히 소개한 것이 전부다. 모든 교과서에 등장하며 특별하게는 한 페이지 이상이 할애되는 전태일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현재의 한국 경제를 일으켜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위대한 기업인 정주영, 이병철 회장의 드라마틱한 삶이 노동운동가 전태일보다 더 적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現 교과서의 불균형성을 잘 보여주는 증거이다.

 

“국가의 부를 축적시키는 주역은 기업인”

 

조재호 울산대 교수는 저서 <한국의 경제발전과 기업가 정신>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일약 근대 공업국가로 도약하며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경제 기적에는 1960~70년대 ‘정부 주도적’ 개발 전략이 주효했다. 그리고 조국 근대화에 동참하면서 창의력을 발휘하고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기업가, 그 기업가와 뜻을 같이 하는 근로자의 동참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창업 1세대 기업가들이 ‘국가발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민간 분야에서 보여주었던 기업가 정신은 객관적으로 그 가치를 측정하기 힘든 무형문화재와 같은 국가적 자산이라는 것이다.

 

조 교수에 따르면, 국가의 부를 축적시키는 주역은 기업인이다. 인적자본, 제도, 경제정책 자체가 경제 성장을 자동적으로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요소들이 기업가 정신과 화학적으로 반응할 때 비로소 경제 성장을 일으키게 된다. 1960년대 초 한국이 30~40년 후에 자동차, 조선, 철강, 전자제품을 생산하여 수출할 것이라고 예측한 경제학자는 없었다. 그러나 1960~70년대 박정희 대통령과 저력 있는 기업가들이 등장하면서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다음은 교과서에서 간략하게 얼버무려 소개된 주요 성과들을, <한국의 경제발전과 기업가 정신>을 참고해 재구성해 본 것이다.

 

<철강 산업> 우리나라가 자동차, 조선, 전자 등의 분야에서 세계 톱을 향해 달리는 산업 경쟁력 뒤에는 포항제철(現 포스코)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 우리나라 철강 산업은 황무지에서 시작하여 40년 만에 세계적인 산업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발전은 정부가 수립한 기본적 계획을 포항제철이 충실히 수행해나가면서 이룩한 것이다. 더불어 창업자인 박태준의 기업가 정신과 집념을 빼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박태준은 한국에서의 일관제철소 건설은 불가능하다는 국제적인 평가를 뒤로 하고 불과 20여년 만에 세계 굴지의 철강회사를 이룩했다. 그는 포항제철소를 건설하면서 對日청구권 자금의 轉用(전용), 제2종합제철 사업의 획득, 설비 및 원료 구입 국가의 확보, 건설공기의 단축 등 포항제철이 중요한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이를 기회로 전환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조선 산업> 16~17세기에는 스페인이 바다를 지배했고 18~19세기에는 영국이 조선강국으로 명성을 날렸으며, 1950년대부터는 일본이, 그리고 21세기는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조선시장 점유율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1960년대 정주영은 새로운 사업으로 조선소 건립을 구상했다. 현대그룹은 외국의 선진 조선업체들과의 합작으로 대형 조선소를 설립하기로 방침을 세우고 일본, 이스라엘, 노르웨이 등의 회사들과 조선소 합작 설립을 추진했으나, 이들 회사가 조선소의 운영권을 요구해오자 합작 투자를 포기하고, 장기 저리의 차관을 도입하여 독자적으로 조선소를 건설하기로 방침을 바꾸었다.
 한국 조선산업의 성공은 정부의 장기적인 안목과 정주영의 기업가 정신으로 세계 조선업계의 흐름을 파악하고 적시에 기회를 포착한 결과이다. 만일 정주영이 전후방 효과가 큰 조선공업을 성공시키지 못했다면, 우리나라의 산업 및 경제발전 인프라들은 지금보다 뒤쳐졌을 것이다. 가령 국산 자동차의 생산, 조선공업 및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공사에서 현대가 참여하여 엄청난 철강을 소비하지 않았다면 포항제철 역시 오늘날과 같은 선진 우수기업이 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는 정주영의 현대조선소 건설이 국가경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다른 산업의 발전에 있어서 크게 기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동차 산업>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은 자체의 힘으로 자동차를 생산하지 못하고 완제품을 그대로 수입하거나 선진국 자동차업체를 대행하여 생산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현재 자동차를 독자 개발하여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10여 개국에 불과하고, 이 가운데 선진국을 제외하고 개발도상국에서 성공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자동차 산업은 기계, 철강, 전자, 유리, 섬유, 고무, 화학, 정유, 운수, 관광 등 전후방 연관 산업의 발전과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산업이기 때문에 산업 중의 산업이라 불리며,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은 국가의 경쟁력과 비례한다.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정주영은 자동차공장을 설립하면서 해외 大메이커와 제휴를 모색했으나, 각각의 견해차에 부딪히자 합작투자 자체에 회의를 품고 독자경영의 길을 모색했다. 국제규모의 양산체제를 갖추고 좁은 국내시장보다는 수출을 목표로 해야한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독자적인 고유 모델의 자동차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반도체 산업> 반도체 산업은 미국에서 시작되어 태평양을 건너 일본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후 한국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한국이 반도체 산업에 뛰어든 것은 미국 등 선진국보다 30여년 정도 늦은 1970년대 중반이었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국내 조그만 전자회사에서 시작하여 단기간에 세계 정상급 산업으로 발전하였다. 현재는 수출 1위 산업으로, 우리 경제의 든든한 견인차이자 고용을 책임자는 사회의 안전판이 되고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성공은 한국을 휴대전화나, 컴퓨터산업 등으로 기반으로 IT강국이 되도록 하는데 초석이 되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발전은 철강, 조선, 자동차와 다르게 산업발전 초기에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보다는 민간 기업들이 적극 참여하여 이룩한 것이다. 창업자 이병철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발전과정에서 탁월한 리더십과 기업가 정신을 발휘했다. 한 기업인의 도전과 개척정신으로 건립된 삼성전자는 세계 반도체 업계의 매출과 기술발전에 있어서 많은 신화를 창조했다.

 

 

[ 2011-05-06, 00:2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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