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할 시간이 없었을 텐데…’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32)/ 집에 쌀을 앉혀두고 좌담회에 참석해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계를 자주 확인했던 박소연 氏의 증언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웃으면서 들어오더라”
  
   사건 날 밤에 오 씨 집에서 열렸던 좌담회 참석자 가운데 박소연 씨(당시 33세)는 한 번도 조사를 받거나 증언을 한 적이 없지만 아주 상세한 ‘시간기억’을 갖고 있었다. 송 씨와 함께 나는 박 씨도 만나 보았다. 눈이 초롱초롱하고 야무지게 생긴 박 씨 아주머니를 보고, 나는 오 씨 가족들이 “그때 참석자는 30여 명이나 됐는데 왜 똑똑한 사람은 젖혀 두고 송 씨 같은 사람을 불러 갔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하던 일이 생각났다.
  
   박 씨는 그날 좌담회가 오후 7시에 시작됐는데, 자신은 오후 6시55분쯤 도착했다고 말했다. 그날 정확한 시간관념을 갖게 된 것은, 운전하는 남편이 점심을 늦게 먹었다고 해서 저녁은 좌담회를 마치고 돌아와 해먹기로 하고, 쌀을 앉혀둔 뒤 오 씨 집에 왔으므로 좌담회가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에서 방안에 있는 사발시계를 자주 보게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발시계는 본존님을 모신 불단의 밑에 놓여 있었고, 박 씨는 약 2미터 떨어진 문 가까이 앉아 있었다고 한다.
  
   사발시계를 보고, 오후 8시20분을 확인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오 씨가 허둥지둥 들어오더니, 박 씨보고 웃으면서 “아주머니 만나러 이렇게 뛰어왔어요”라고 하더란 것이다. 박 씨는 평소 오 씨와 스스럼없이 지내는 사이였다. 박 씨가 “왜”하고 물으니까, “사정이 있으니까 끝나고 이야기할께요”라고 오 씨는 말했다. 이때 이석홍 씨가 “부장님이 오셨으니 한 마디 하세요”라고 권했다. 오 씨는 차분하게 설교를 했다. 박 씨가 다시 사발시계를 본 것은 이때였는데, “8시30분에서 두 눈금 정도 못 미친 8시28분경이었다”는 것이다.
  
   “이날은 유달리 좌담회가 늦게 끝났어요. 박소임 씨란 여자분이 공덕담을 길게 한 걸로 기억합니다. 9시20분쯤 끝이 났는데, 나는 얼른 젖먹이를 들쳐 업고 방문을 나섰어요. 이때 오휘웅이가 따라 나오면서, ‘아줌마, 사진보고 가’라고 붙들어요. 오휘웅이는 좌담회에 참석할 때 사진 한 뭉치를 들고 들어왔었어요. 내가 ‘애기 아빠한테 혼나, 빨리 가야 돼’라고 하니까 휘웅이는 재정보증서 이야기를 꺼냅디다. 수도사업소에 취직했는데, 재정보증서를 한 장 써달라는 거예요. 저는 그 얼마 전에도 한진(주)에 들어간 사람에게 재정보증서를 써준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써주어도 아빠가 모르게 써주어야 하니까, 아무래도 정초가 지나야 되겠어’라고 말하고는 집으로 돌아왔어요. 밥을 지어 먹으니까 10시가 지났더군요. 그때 오휘웅이는 술을 마신 듯 얼굴이 상기돼 있었고, 당황하거나 별 이상한 표정은 없었어요.
  
   오휘웅이가 범인으로 붙들러 갔다는 소식을 장범이 엄마한테 듣고는 제가, ‘그럴 시간이 없었을 텐데…’라고 했어요. 오후 9시경에 살인을 했다고 해서, 8시28분경에 오 씨가 귀가한 기억이 되살아났거든요. 사건이 나자 일련정종교에 대해서 나쁜 소문이 도는 바람에, 남편이 그 뒤 다섯 달 동안 교회에 못 나가게 했어요. 그래서 휘웅이 면회도 못 가고, 유리한 증언도 못해주었습니다. 그 뒤 신흥동파출소에 판사들이 와서 조사를 할 때 휘웅이를 한번 보려고 군중들 틈을 뚫고 들어갔지요. 휘웅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내가 ‘아이구,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하니까, 그이는 반가워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손짓을 하더군요.
   제가 알고 있는 휘웅이는 약간 덜렁대지만, 쾌활하고,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붙임성이 좋은 청년이었어요.”

  
  삼성라사 여주인은 병을 얻고
  
   박소연 씨는 두이분 여인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다.
   “종교집회에 참석할 때 짙은 화장을 하고, 옷도 요란하게 입고 와서, 장사한다는 부인네가 좀 이상하다 하는 생각을 가졌어요. 눈이 땡글하고, 요염하게 생긴 여자인데, 만나면 늘 반갑게 인사를 하고, 사교술이 대단하다는 평판이었어요.”
  
   송안섭 씨는 “두 사람이 육체관계를 가졌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사건이 난 뒤에 교인들 사이에서도 두 사람이 팔짱을 끼고 돌아다녔다는 둥 여러 이야기가 나온 걸로 봐서 보통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송 씨는 또 “그때 오휘웅 씨는 어떤 처녀와 약혼할 단계에 있었는데, 두 여인이 그 처녀에 대해서 행실이 나쁘다느니 험담을 하고 다니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면서 약혼에 훼방을 놓으려고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라사 여주인 이옥련 씨(52세)는 그곳에서 아직도 살고 있었다. 삼성양복점으로 이름만 바뀌었다. 나는 맨 처음 이 씨의 남편 김사국 씨(59세)를 만나 찾아온 까닭을 얘기했다. 김 씨는 대뜸 “그 이야기만 나오면 열이 오른다”면서 “아내는 그 일 때문에 병까지 얻었다”고 내뱉었다. 건강하고, 아주 호인으로 보이는 김 씨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이 씨를 불러내 나와 만나게 해주었다. 얼굴이 갸름하고 자상하게 생긴 이 씨는 내가 여동생 이야기를 꺼내니 여동생은 몇 년 전 고혈압으로 죽었고, 정 씨와 두 아이의 시체를 들어냈던 고무신가게 주인 엄인환 씨도 5년 전에 암으로 죽었다고 했다.
  
   이 씨는 “그때는 재단대가 이렇게 놓여져있었다”고 손짓을 해가면서, 가게 출입문 너머 맞은편에 보이는 옛 시화상회(지금은 잡화점)를 가리키면서 설명을 했다. 이 씨 부부에 따르면 정시화 씨는 다리만 조금 절었지 몸은 건장했고 연탄이나 쌀 배달을 하여 길러진 힘이 좋았다고 했다. 성격은 온순했고, 동전을 늘 종이에 싸가지고 다니며, 새까만 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등 아주 구두쇠였다는 것이다.
  
   죽기 하루 전 새 슬리퍼를 사 신고 양복점에 건너와서 자랑하던 모습이 선하다고 김 씨는 말했다. 두 여인은 야무지게 빈틈없이 생긴 여자로서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이었고 말주변도 좋았다는 것이다. 두 여인은 이웃과는 별로 교제가 없었고, 밤만 되면 일련정종 교회에 갔다가 자정이 가까워서 들어오는 걸 자주 봤다고 김 씨는 말했다. 정 씨는 아내를 기다리면서 술을 마시고는 자기 쌀가게 앞에 가마니를 깔아 놓고 그냥 잠에 곯아떨어지는 일도 자주 있었다고 한다.
  
   오휘웅 씨가 두이분 여인을 만나러 자주 오던 것을, 김 씨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정 씨가 있으면, 오 씨는 소주 한 병을 사갖고 들어가곤 했으며, 정 씨가 배달을 가 두 여인만 있을 때도 오 씨가 혼자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가 한참 뒤에 나오곤 하더라는 것이다. 이 씨는 사건 당일 저녁 무렵, 정 씨가 삼성라사 앞에서 두 아이들과 놀다가 “얘들아, 엄마가 이제 밥 다 해놓았는가 보다”면서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가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했다.
  
  시간기억의 상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러 이 씨를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두이분 여인이 삼성라사에 나타난 시간에 대해 직접 의문을 풀어보고 싶어서 온 것이었다. 김사국 씨에 따르면 자살로 처리될 뻔했던 이 사건이 살인사건으로 백일하에 드러난 데는 처제인 이옥녀 씨의 신고가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이옥녀 씨는, 1975년 1월1일 형부를 찾아와서 12월30일 밤에 목격했던 두 여인의 손에 묻은 피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다. 김 씨는 세 사람을 죽인 여자의 소행을 묵인해서는 안 된다면서, 처제로 하여금 신흥동파출소장에게 신고하게 했었다는 것이다.
  
   이옥련 씨는, 내가 갖고 간 경찰, 검찰 진술조서와, 그 진술과 모순되는 법정 증언기록을 읽어주어도, 너무 시간이 오래되어 시간에 대한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다만, 오휘웅 피고인이 나중에 재심 신청 때 주장했듯, 두 여인이 오후 9시45분께 삼성라사에 나타났다는 설은 부인했다. “그렇게 늦은 것 같지는 않다”면서 이 씨는 여동생이 삼성라사에 온 것은 두 여인이 두 번째 나타났을 때라고 말하여 이옥녀 씨의 2심 증언과 다른 이야기를 했다.
  
   시간관계 진술에 있어서 경찰로부터 어떤 권유나 압력을 받지는 않았다고 말한 이 씨는 그때 진술한 시간은 아이들이 보고 있던 텔레비전 프로를 근거로 한 것인 듯하다고만 말했다. 아들 김종남 군이 시계를 보고 8시45분이라고 했다는 대목에 대해서도 자세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다음날 나는 지금은 어엿한 성인이 되어 서울에서 회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종남 씨(28세)에게 시계를 본 기억이 나느냐고 물었는데, 김 씨는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이처럼 진술이 엇갈릴 때는 최초의 진술, 즉 기억이 생생하고, 외부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한 진술에 무거운 신빙성을 두는 게 보통이다. 삼성라사 세 사람들 가운데 가장 먼저 경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은 이는 이옥련 씨로서 날짜는 1974년 12월31일이었다. 이날에는 경찰도 이 사건을 타살로 보고 있지 않을 때였다. 즉, 시간의 중요성을 모르고, 거기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있을 때였다.
  
   이날의 진술에서 이옥련 씨는 두이분 여인이 (손에 피를 묻혀) 들어온 시간을 오후 8시40분경이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계속)
[ 2011-07-05, 17:3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