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死刑”, 더욱 죄여진 죽음의 올가미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34)/ 1심의 선고를 2심에서 뒤집는 것보다, 2심 선고를 상고심에서 뒤집기가 훨씬 어렵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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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론요지 : “두 여인의 단독범행”
  
   엄인환 증인은 정 씨의 시체를 들어낼 때 목에 매인 넥타이를 잡아 당겼더니 스르르 풀렸다고 증언하여, 오 씨가 경찰에서, 넥타이를 목에 한번 매듭을 지었다고 진술한 내용을 부인하는 뜻의 말을 했다. 김태원 검사가 “증인 생각이 여자 혼자만으로도 죽일 수 있다고 보는가요”라고 묻자 “약을 먹였다면 모르나, 그러지 않고서는 여자 혼자만으로는 죽이지 못한다고 봅니다”고 대답했다.
  
   숭의동 불교회관 사무장 여창근 씨도 1심에 이어 다시 증인으로 나섰다. 여 씨는 오 피고인이 회관을 출발한 시간이 오후 8시~8시10분 사이라고 했다. 홍순표 재판장이 “1심에선 오후 8시10~20분이라고 했지 않느냐고”고 반문하니까 “1심에서도 8시~8시10분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적혀 있다면 그게 잘못된 것이다”고 했다. 여 씨는 또 “피고인이 사무실을 나간 시간을 특별히 기억해 두고자 기억한 것은 아니다”고 답했다.
  
   오 피고인이 사무실을 출발한 시간은 사건 직후의 오 씨 행적을 계산하는데 起算點(기산점)이다. 이 기산점에 대해서 오 씨는 범행을 시인할 때나 부인할 때나 똑같이 8시5분이라고 진술했다. 이 시간에 대한 진술은 오 피고인과 여창근 씨가 한 것뿐이다. 그 뒤의 오 씨 행적에 대한 두 씨의 진술로 미뤄 볼 때 ‘8시5분 출발설’은 거의 정확하거나 틀려도 10분 이상은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오 피고인에게 가장 불리한 시간, 즉 7시50분에 그가 회관을 나왔다고 해도, 오 피고인이 범행을 저지르고서는 8시30분경에 귀가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날의 증인 신문으로서 사실심리와 증거조사는 모두 끝났다. 1975년 10월10일 오후 2시부터 서울고법 117호 법정에선 결심공판이 열렸다. 求刑(구형)에서 검사(황공영 검사로 바뀌어 있었다)는 항소기각, 즉 1심에서 선고된 사형의 유지를 요구했다.
   김구남 변호사가 낭독한 변론 요지는 이러했다.
  
   전번 멀리 인천까지 재판부에서 출장 가셔서 현장검증과 증인 신문을 하여 주신 데 대하여 충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변론의 말씀을 간단히 몇 마디 올리겠습니다.
  
   1. 범죄의 동기
   ① 공소장에 의하면 피고인은 상 피고인 두이분이와 공모하여 피해자 정시화 등 3인을 살해하였다고 되어 있으나 피고인은 그 피해자들을 살해하여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습니다.
  
   ② 피고인은 상 피고인 두이분이와 서로 사랑한 것은 사실이지만 1974년 12월15일경 한 번 성교 관계를 맺은 일이 있었을 뿐이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 깊어가게 되었던 시발점은 될 수 있었을는지는 몰라도 피고인이 두이분의 남편과 그 자식까지도 죽여야만 해야 할 정도까지 사랑이 깊어갔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동 피해자들을 살해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③ 더구나 피고인은 29세의 총각이고 상 피고인 두이분은 남편과 자식을 가진 여자로서 서로가 깊은 사랑을 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범행 발생의 무렵에 피고인은 한 처녀와 약혼하려고 하였고 그 사실은 당원의 증인 김종렬의 증언에 의하여 판명되었고 또 동 증인의 증언에 의하여 상 피고인 두이분이가 그 약혼을 질투하고 방해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④ 이렇게 볼 때에 피고인으로서는 살인할 이유가 전연 없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건전한 양식으로써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⑤ 따라서 범죄의 동기가 너무도 불투명하여 피고인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납득이 잘 안갑니다.
  
   2. 흉기의 준비
   ① 일가족 세 사람이나 살해한다는 어마어마한 범행을 저지르는 데 있어 특히 남자와 여자 둘이서 범행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남자가 주동적인 역할을 맡아 그 범죄에 사용할 흉기를 준비하는 것이 일반 상식에 속하는 일인데 이 사건의 경우에는 범행에 제공된 칼, 노끈, 마후라, 넥타이 등은 모두 현장인 두이분의 안방에 있었고 또 그것들은 두이분이나 피해자 정시화의 소유였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에 피고인은 이 범죄에 가담한 것이라고는 보기가 어렵지 않나 이렇게 생각됩니다.
  
   ② 철모르는 미성년자가 사소한 폭행을 하려고 할 때에도 남 몰래 칼을 준비하고 자기 몸에 지니고 다니는 사실은 우리들이 재판을 통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어마어마한 큰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흉기를 미리 준비 안하고 범행 현장에 있는 흉기를 그 즉석에서 필요에 따라 이것저것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3. 공모의 점이 지극히 애매
   ① 공소장에 의하면 피고인 등은 1974년 12월20일경에 피해자들을 살해할 것을 공모하고 두이분이는 수면제를 구입하고 범행의 준비를 한 것같이 기재되어 있으나 이 공모의 시점에 관하여 원심 법원은 그 판결에서 두이분이가 피해자들에게 수면제를 먹여서 잠자게 한 후에 마침 그때에 피고인이 찾아왔기에 두이분이가 피해자들을 살해하자고 제의하자 피고인은 조금 취기도 있었고 해서 그 즉석에서 이를 승낙, 공모했다고 판시하여 그 공모의 점에 관하여 고심했다는 사실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② 일가족 세 사람을 살해하자는 제의를 받고 약간 술에 취하기는 했지만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쉽사리 승낙할 수가 있겠습니까. 살인을 몇 번이나 한 사람이라도 그러하지 못하겠는데 하물며 초범자가 당황한다든가 또는 주저하는 기색이 있다든가 좀 더 깊이 생각한다든가 하는 태도는 전연 보이지 않고 참새목 비틀듯이 세 사람이나 죽일 수가 있겠습니까. 과연 공모했는지가 지극히 의심스럽습니다.
  
   4. 살해의 필요성
   ① 두이분이는 일상생활이 옹색하였을 뿐만 아니라 남편 정시화와 성생활이 제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더욱이 남편의 주벽이 심하여 가정에 불화가 있었다는 점 등으로 30세 미만의 여자로서 자기의 앞날을 생각할 때에 그 비참함을 평소에 느끼고 비관하고 있었던 차라 자기의 애정을 피고인에게 호소하고 심지어는 결혼까지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② 두이분으로서는 피고인이 총각이었기 때문에 이 사람을 놓칠세라 열을 올리고 피고인의 약혼까지 방해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③ 그렇다면 두이분으로서는 피고인과 결혼하려면 그 남편과 아이들이 장애가 되었기 때문에 이들을 살해해서 없애버려야 할 처지에 있었던 것입니다.
  
   5. 살해의 방법
   ① 피해자들에게 수면제를 먹인 후에 노끈 또는 넥타이로 목을 감아 당기어서 살해하였다고 되어 있는데 피해자 중 어린애들은 몰라도 피해자 정시화를 피고인이 살해했다면 넥타이를 목에 감은 다음 올매어서 양손으로 힘껏 잡아당기어서 살해하는 것이 정상적인 방법일 터인데 당원의 증인 엄인환의 증언에 의하면 정시화의 목에 감겨 있던 넥타이의 한편을 잡아당기니까 올매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스르르 풀어지더라고 말한 점으로 볼 때에 피고인의 소행이 아니고 연약한 두이분이의 소행으로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6. 범죄의 사후 처리에 대한 진술의 불합리성
   피고인은 경찰에서 조사받을 때에 두이분이와의 대질에서 내가 할 일은 다했으니 뒤처리를 알아서 하라고 두이분에게 말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는데, 세 사람이나 죽인 살인범이 뒤처리를 하지 않고 여자인 두이분에게만 맡기고 유유히 집으로 갔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또 두이분이도 별 반응 없이 가만히 있었다는 진술은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7. 범행 시간
   전번 재판부에서 직접 현장에 가셔서 피고인이 다녀간 곳의 거리와 시간을 조사하셨지만 피고인이 그날 밤에 두이분이의 집에 불과 5분이나 10분밖에 머무르지 않았는데 그렇게 짧은 시간에 사람 셋이나 살해할 수 있을까, 이 역식 지극히 의심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8. 피고인의 지문
   범행한 현장, 즉 장롱, 유리창, 그리고 칼, 마후라, 넥타이 등에서 피고인의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피고인이 하수인이라면 어찌하여 지문이 발견 안 됩니까.
  
   9. 이렇게 볼 때에
   ① 범죄의 동기의 불투명
   ② 흉기 준비의 불합리
   ③ 공모의 시점 불명확
   ④ 살해의 필요성이 누구에게 있었나
   ⑤ 살해의 방법
   ⑥ 범죄의 뒤처리에 대한 진술의 불합리성
   ⑦ 현장 또는 증거물에 피고인의 지문이 없다는 점
  등을 모아서 고찰할 때에 본건 범죄에 대한 증거가 불충분하여 피고인에게 무죄의 선고를 내리시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변호인은 생각합니다.
  
   10. 돌아간 고인 두이분에게는 대단히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오히려,
   ① 두이분이가 남편과 아이들에게 수면제를 먹였다는 점
   ② 두이분이가 남편에 대한 불만이 심하였던 반면, 피고인에 대한 애정이 컸다는 점
   ③ 균형을 잃은 일방적인 애정이 컸기 때문에 심지어는 결혼까지 요청하였다는 점
   ④ 피해자 정시화의 목을 넥타이로 감은 다음에 올맨 것이 아니고 감아만 놓았더라는 점
   ⑤ 증인 이옥련 등의 증언에 의하면 범행한 날 저녁에 두이분이는 얼굴이 창백하였고 초조했고 그 태도가 안절부절했다는 점
   ⑥ 두이분이의 손에 피가 묻어 있었다는 점
   ⑦ 두이분이가 자살하였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에 이 범죄는 두이분이의 단독 소행이 아닌가 생각되는 바입니다.
  
   11. 피고인에 대한 범죄 사실 인정의 증거로서는 검찰에 있어서의 제3회 피의자 신문조서의 자백한 기재내용과 상 피고인 두이분의 진술이 있기는 하나 이것들은 일견 기록에 비추어 볼 때에 그 신빙성이 박약하여 사실 인정의 자료가 되기는 어렵지 않나, 이렇게 본변호인은 생각합니다.
  
   12. 피고인은 지금 生과 死의 분기점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만일 불행하게도 유죄로 인정하신다면 사형을 면치 못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무죄가 선고되어야 하는 실로 중대하고도 심각한 순간에 처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누구나 다 단 한 번뿐입니다. 두 번 살 수만 있다면 한 번쯤은 억울한 죽음을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란 한 번 죽으면 그만이 아닙니까. 모처럼 하느님께서 주신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억울하게 자기의 책임이 아닌 일로 희생시켜야 되겠습니까.
   현명하신 재판장님께옵서는 이 피고인으로 하여금 이 사건으로 고초를 받기 이전의 선량한 시민의 위치에 돌아가게 할 수 있도록 무죄판결의 일대 영단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을 변론을 마치겠습니다.

  
  2심 선고: 항소 기각
  
   10월17일 서울고법 117호 법정에서 재판부는 오휘웅에게 항소기각을 선고함으로써 1심의 사형선고를 그대로 유지했다. 판결문을 간단했다.
  
  
서울고등법원
  제2형사부
  판 결

  사 건 75 노 962 살인
  피고인 오휘웅, 무직, 1945. 3.2생
      주거 및 본적: 인천시 중구 신흥동 3가 26
  항소인 피고인
  검 사 김태원
  변호인 변호사 김구남
  원판결 서울민사지방법원인천지원 1975.6.30 선고 75 고합 11 판결
      서울형사지방법원
  주 문 항소를 기각한다.
  
  이 유
   피고인 및 피고인의 변호인의 항소이유의 요지는, 첫째, 피고인은 본건 공소범죄사실을 저지른 일이 없는데, 원심이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하였으니 원심판결에는 판결에 영향을 미칠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 하겠고, 둘째, 원심이 피고인에 대하여 선고한 형의 양형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는 것이다.
  
   살펴보건대, 먼저 원심이 적법하게 증거조사를 마쳐 채택한 여러 증거와 당심에서의 현장검증의 결과 기재들을 본건 기록에 비추어 종합 검토하여 보면, 원심이 판시한 피고인의 본건 범죄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고, 일건 기록을 살펴보아도 달리 원심이 사실 인정 과정에 논지가 지적하는 바와 같은 위법이 없으며, 다음 본건 범행의 동기, 수단, 결과, 피해 정도, 피고인의 연령, 성행, 환경, 범행 후의 정황 등 원심이 적법하게 조사한 양형의 조건이 되는 여러 가지 사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피고인이 주장하는 정상을 참작하더라도 원심이 피고인에 대하여 선고한 형의 양정은 적당하고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으므로, 결국 피고인의 각 항소이유는 모두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에 의하여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1975. 10.17
  
  재판장 판사 홍순표
  판사 김광년
  판사 주환석


  
   오기남 씨에 따르면 오 피고인은 사형선고를 받고도 쓰러진다든지, 울부짖는다든지 하는 일 없이 덤덤했다고 한다. 1심에서도 그랬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 씨가 법률상식이 좀 있었다면, 1심의 선고를 2심에서 뒤집는 것보다, 2심의 선고를 상고심에서 뒤집기가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고 크게 낙망했을 것이다. 오 씨 목에 걸린 죽음의 올가미는 더욱 죄여진 것이다.
  
   그때 배석판사였던 김광년 씨(1986년 당시 변호사)는 “세 판사가 합의를 할 때 별 異見(이견)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1986년 3월 인터뷰). 김 판사는 또 “오 피고인이 재판부에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었다”고 회상했다.
  
  
  (계속)
[ 2011-07-07, 10:4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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