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씨의 운명을 확정한 대법원 판결문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36)/ “오 피고인은 有罪”라는 대전제를 결정해 놓고 부합되는 사실만을 비논리적으로 갖다 댄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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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선고: 상고 기각
  
   대법원의 판결은 1976년 2월24일에 있었다. 대법원 합의부는 재판장에 홍순엽, 주심에 강안희, 간여로는 양병호, 이일규 대법원 판사로 구성됐었다. 판결문의 全文(전문)은 다음과 같다.
  
  
대 법 원
   제 1 부
   판 결

  
   사 건 75도 3348살인
   피고인, 상고인
오휘웅
         1945.3.2 생
         주거: 인천시 중구 신흥동3가 26
         본적: 위와 같음
   변호인 변호사 (私選) 박한상, (國選) 이범렬
   원판결 서울 고등법원 1975.10.17 선고 75 노 962 판결
   주 문 상고를 기각한다.
  
   이 유
   1. 변호인 변호사 박한상의 상고 이유 중 사실오인 주장 부분과 피고인 및 변호인 변호사 이범렬의 상고이유를 함께 판단한다.
   1) 증인 엄인환, 이옥녀의 진술에 대하여
   원판결이 유지한 제1심 판결은 피고인의 단독범행을 인정한 것이 아니고, 피고인과 망 두이분이 공모하여 망 두이분은 가게에서 망을 보고 피고인은 방안에서 피해자들의 목을 졸라 살해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는데 동판결은 증인 엄인환, 이옥녀의 공소장 및 검찰에서의 진술만으로써 위 판시사실을 인정한 것이 아니고 동인들의 위 각 진술은 본건의 정황증거로서 위 판결이 든 다른 증거와 종합하여 위 판시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자료로 하였음이 명백하므로 위의 증거는 피고인에 대한 유죄 인정의 자료로 삼을 수 없다는 논지는 이유 없으며,
  
   2) 증인 이주순의 증언에 대하여
   증인 이주순은 조세법 처벌법위반죄(밀주제조)로 구속 기소되어 교도소에서 4방에 망 두이분을 포함한 다른 수감자 8명과 함께 수용되어 있던 여자로서 망 두이분이 자살하기 전 동녀로부터 동녀의 범행에 관한 사실을 들은 바에 따라 증언하고 있는데 특히 동 증인의 신빙성을 의심할 만한 사유가 없는 이 건에 있어서 동 증인의 증언을 조신한 원판결은 위법하다고 할 수 없는 바 동 증인의 증언에 의하면 망 두이분이 죽기 5일 전부터 자기 재판이 사뭇 연기가 된다고 하면서 “나 혼자 남편과 자식을 죽인 것이 아니고 남자와 같이 짜고 죽인 것인데 간부는 증인 두 사람을 세워 빠져나가려고 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나 혼자 사건을 뒤집어쓰고 말 것 같다”(공판기록 171면), 죽던 당일에도 “나 혼자 뒤집어쓰다니 나는 증인 서줄 사람도 없고 억울하다”(171면), “남자쪽은 변호사를 대고 증인이 두 명이나, 나는 불리하다. 나를 증언해줄 사람은 없다”(145면), 바로 죽기 30분 전쯤에도 “누명쓰게 되었다”(145면)고 연거푸 4번씩이나 중얼거렸다는 것인바 이와 같은 망 두이분의 동 증인에 대한 진술은 상호 수감자끼리 신세타령을 하면서, 더구나 모든 것을 체념한 상태 하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참작할 때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그 정황을 그 진술이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므로 동 진술을 내용으로 한 위 증인의 증언을 조신한 것이 어떤 채증법칙을 위배한 허물이 있다고 할 수 없으며,
  
   3) 증인 지광남의 증언에 대하여
   증인 지광남은 피고인과 망 두이분이 검찰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청에 소환되었을 때 계호를 담당한 교도관으로 同人(동인) 등이 검찰청 구치감에서 면회 하면서 상호 주고받던 이야기를 들은 대로 증언하고 있는 바 위 증인의 증언이 허위라고 믿어야 할 하등의 사유를 찾아볼 수 없는 이 건에 있어서 그 증언 내용인 망 두이분이 피고인에게 “그동안 부인하는 것을 보니 남자로서 비겁했다, 그런데 오늘 자백한 것을 보니 측은한 마음이 든다, 나는 일가족 전부가 죽어 어차피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당신은 총각이며 부모 형제가 있으니 살아라, 교사범이 직접 죽인 사람보다 죄가 무서운 줄 이제야 알았다, 지금 당장에라도 검사님에게 말하여 내가 혼자 전부 저질렀다고 말하라”라고 하자 피고인이 “지금 검사 앞에서는 끝났다, 여기서는 필요 없고 법정에서 변호해주라”(공판기록 233편 201면)고 말하였다는 것인바 이와 같은 대화는 그 무렵 피고인은 처음에 범행을 부인하였다가 그 직전에 자백한 바 있고 망 두이분은 처음부터 공범관계를 자백하고 있던 당시 두 사람이 검찰 신문이 끝난 뒤에 서로 만난 자리에서 행하여진 점으로 보아 위 대화 내용이 상호 조작된 허위의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상황 하에서 행하여졌다고 좀처럼 믿어지지가 아니하고 오히려 상호진실을 내세워 자기의 억울함을 주장하고 상대방의 허위성을 힐난할 목적으로 행하여졌다고 할 것이므로 동 진술 역시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하여진 것이라고 할 수 있어서 동 증언을 조신한 것을 채증법칙 위배라고 할 수 없다.
  
   4) 망 두이분의 진술에 대하여
   (가)
망 두이분이 피고인과 본건 범행의 공모를 한 시기가 언제인지, 동녀가 수면제를 탄 사이다를 남편과 자식들에게 먹인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한 동녀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는 점은 변호인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으나 망 두이분의 진술은 원판결이 유지한 제1심 판결이 인정한, 피고인이 망 두이분과 공모하여 동녀의 남편과 자녀 등 3명을 살해하였다는 본건 범죄사실 중 중요부분인 (ㄱ) 피해자 3명을 직접 살해할 것은 피고인이고, (ㄴ) 두이분 자신은 망을 보았으며, (ㄷ) 피해자들에게 수면제를 넣은 사이다를 먹여 잠들게 한 것은 두이분 자신이고, (ㄹ) 살해하게 된 동기는 왼쪽 다리가 불구인 남편의 주벽과 원만치 못한 성생활에 욕구불만을 느껴오던 중 피고인을 알게 되어 애정을 느끼고 불의의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 사랑해 오다가 피고인과 결혼하기로 약속이 되었는데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결혼생활에 지장이 될 것 같아 살해하게 되었다는 점에 관하여서는 전체적으로 일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바, 그렇다면 범행의 중요부분에 관해서는 그 진술이 전체적으로 일관되어 있고, 미세하고 국부적인 점에 관해서 엇갈린 진술이 있다고 하여 그 진술 전체를 논지와 같이 전후가 모순되고 부조리에 충만된 지리멸렬한 진술로, 진술의 일관성이 없어 신빙할 수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할 것이며,
  
   (나) 피고인과 망 두이분과의 본건 범행의 공모시기는 적어도 원판결이 유지한 제1심 판결이 인정한 시기, 즉 두이분이 수면제를 탄 사이다를 피해자들에게 먹여 잠들게 한 후 피고인이 피해자들을 살해하기 직전에 이루어졌다고 볼 것이고,
  
   (다) 피고인은 한국 일련정종불교회 인천 창영지구 부장 겸 신흥지역 남자 책임자로서 망 두이분에게 권유하여 위 종교를 재차 믿게 하고, 창영지구 여반장으로 임명하여 1974년 4월10일부터 몇 단 간을 매일 만나 함께 종교 활동을 하는 한편 두이분이 경영하는 쌀가게에서는 쌀가마니를 운반해주는 등 친절히 대해주자 남편의 주벽과 원만치 못한 성생활에 불만을 품고 있던 두이분이 피고인을 사랑하게 된 사실, 동녀로부터 1974년 9월30일 밤 인천 송도 송림 속에서 사랑의 고백을 받자 피고인도 깊은 애정을 키스 등으로 표시하였고 추석 이후 자유공원에 놀러 갔을 때 공원 층계에서 망 두이분이가 꼬리가 길면 잡히니까 그만 만나자고 하였더니 피고인은 안 만날 수가 없고 이 사실이 발각되면 이혼을 해서 자기와 살 각오를 하고 있고 위자료 문제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하자 두이분은 피고인이 자신을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구나 하고 느끼게 된 사실(두이분 3회 피의자 신문조서, 430면), 또 피고인이 두이분 집에 올 때마다 두이분이 가라고 하여도 가지를 않고 꼭 키스라도 해야만 돌아간 사실(430면), 동녀는 1974년 11월 중순경에는 피고인으로부터 딸은 시집을 가버리면 그만이지만 아들은 크면 복수를 하여 후환이 있으니 뒤를 깨끗이 한 후에 결혼하자(두이분 5회 피의자 신문조서, 565면), 1974년 12월11일 경에는 뒤만 깨끗이 하고 나오면 같이 살아주겠다, 우리 어머니에게도 같이 살겠다는 이야기도 하였다는 사실(3회 피의자 신문조서, 431면), 피고인은 두이분을 매일같이 찾아가서 키스하고 두이분의 남편 정시화가 술에 취해서 자고 있으면 동녀를 나오게 해서 부엌에서라도 키스하고 흥분시킨 다음 성교를 요구하면 두이분은 손으로 만족시켜준 사실(두이분 진술서, 146면), 1974년 12월15일 처음으로 길조여관에서 정교를 한 후 귀가하면서 동녀는 피고인으로부터 자기 집에서 혼처가 계속 나오고 결혼을 서두르고 있으니 빨리 남편과 이혼을 하든지 여하간 3개월 안으로 무슨 수단을 쓰든지 해결을 보라는 말을 듣고 몹시 고심을 한 사실(5회 피의자 신문조서, 572면 3회조서 431면), 그 무렵부터는 서로 여보라고 불렀고(3회조서, 432면) 불교회관 다니는 것을 빙자하여 자유공원, 월미도, 기타 시내 각지를 저녁 늦게까지 함께 돌아다니면서 온통 정을 빼앗겨 정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피고인을 좋아하였다(5회조서, 572면)는 진술, 피고인의 검찰에서의, 저도 술김에 다 처치해 버리고 그녀와 같이 살겠다는 마음이 들어 살해하였다(피고인의 3회 피의자 신문조서, 634면)는 진술, 피고인은 당시 29세 두이분은 27세인 점 등을 종합해보면 망 두이분이 피고인을 열렬히 사랑했음은 물론이지만 피고인도 동녀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으며 두 사람은 사련에 눈이 어두워 이성을 잃은 나머지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행복을 막는 장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망 두이분이 일방적ㅇ로 피고인에게 애정을 호소하고 있었을 뿐 피고인은 동녀에게 강한 애정을 품고 있지 않아 피해자들을 살해할 만한 동기가 없었다거나 동녀의 진술 중 피고인의 살해 동기에 관한 부분이 모호하여 신빙할 수 없다는 논지는 받아들일 수 없다.
  
   사정이 이와 같을진대 망 두이분이 피고인과 혼담이 있는 여자의 집에 찾아가 결혼하게 되면 칼부림이 날 것이다고 말한 바를 들었다는 증인 김종렬의 증언은 피고인에게 본건 범행을 할 동기가 없었다는 상고인 주장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가 되지는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와 같은 사정을 참작하면 위 김종렬의 증언은 피고인과 망 두이분이 끊을 수 없는 사련관계에 있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라) 피고인은 매일같이 두이분 집을 드나들던 터였으므로 범행현장의 방과 가게의 다른 불은 끈 채 방안의 노란 불만 켜놓은 상태에서도 선반 위에 있던 노끈․칼, 장롱 속에 있던 마후라․넥타이 등을 찾아 범행에 사용할 수 있으리라 믿어지고 또 원판결은 피고인과 망 두이분과의 범행 모의시기를 범행 직전이라고 인정한 바이므로 피고인이 근처 사진관에서 사진을 찾아오고, 군고구마를 사다가 두이분에게 먹으라고 준 사실이나 찾아온 사진을 보며 한 장 다오, 기념사진이니 안 된다고 하는 등의 느긋한 행동 등은 모두 본건 범행 모의 前의 일들이라고 할 것이므로 그와 같은 사실은 이 건 판시 사실 인정에 지장이 될 사유가 못 된다.
  
   (마) 이상 제반 자료를 종합하여 보면 의사 김상현의 해부학상의 경험에 의하면 여자가 경부를 압박하여 살해한 일은 알지 못한다는 증언과 기타 원판결에서 인용한 증거에 의해 판시 사실을 인정한 것이 경험칙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고 망 두이분의 전반적 진술에 배치되는 사정이 너무 많아 동녀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는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
  
   (바) 망 두이분의, 情이 더럽고 무서운 줄은 몰랐다, 오휘웅 씨가 저를 남편보다 아끼고 사랑해 준 것이 이제는 원수로 생각이 들어가며 또 한편 생각하면 보잘것없는 여인 때문에 자기 신세 망친 생각하면 불쌍하다고 생각한다는 진술(검찰에서의 경위서, 467, 468 뒷면), 만약 오휘웅이가 그러한 범행을 한 사실이 없다면 왜 저를 좋아했고 제가 좋아했던 사람을 범행을 같이 했다고 우겨대겠습니까, 지금은 자기 혼자만 살아보겠다는 욕심으로 양심을 속여 가면서까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검찰 5회조서 573~574면)는 진술과, 증인 지광남의 증언 및 위 증인 이주순의 증언의 앞에서 설시한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망 두이분과 피고인은 서로 이성을 잃을 정도로 사랑하고 있었는데 피고인이 모든 책임을 망 두이분에게 뒤집어 씌워버리고 혼자만 빠져나가려 하자 죄를 혼자 뒤집어쓸 것 같은 데 대한 억울함과 원망․후회․환멸 등의 마음이 뒤범벅된 사실과 망 두이분은 자신은 직접 살해하지 않았지만 직접 살해한 자보다 책임이 더 무겁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고 실제로 제1심 공판 도중 교도소에서 스스로의 목숨을 끊어버린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나 기록을 정사하여도 망 두이분이가 무고한 피고인을 기어이 공범으로 끌어들이지 아니라면 안 될 사유를 발견할 수 없다.
  
   (사) 본건의 공판조서나 망 두이분에 대한 검찰에서의 피의자 신문조서를 볼 때 망 두이분에 대한 공판정과 검찰에서의 신문이 유도신문으로 일관되어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이 점에 관한 논란은 이유 없으며,
  
   (아) 사리가 위와 같을진대 망 두이분의 진술을 믿은 원심이나 원심이 유지한 제1심의 조처는 정당하고 거기에 채증법칙이나 경험칙을 위배한 허물이 없다.
  
   5) 피고인의 검찰에서의 자백에 대하여
   (가)
피고인은 1심 법정에서 검사로부터 고문을 받은 바 없다고 진술하였고(52면), 검찰조사에서 처음은 부인하다가 자백하게 된 심경의 변화에 대하여 사람은 죽을 때 살인자의 죄명을 차마 쓸 수 없기에 부인하였고… 모든 것은 당해 보지 않고는 부인하는 심정을 알 수 없을 것이고 보이지도 않고 형태도 없는 양심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자백한다는 진술(자술서, 617면)과, 처벌에 대한 공포감과 저의 부모나 동료 신자,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죽는 날까지 본인이 그러한 끔찍한 범행을 하지 않았다고 숨기고 싶었기 때문에…의 진술(3회 피의자 신문조서, 630면) 등을 보면 피고인의 그 당시의 심경을 충분히 수긍할 수 있으므로 그와 같은 심리상태에서 한 진술을 허위라고 보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없으며,
  
   (나) 피고인은 검찰에서 망 두이분과의 대질신문時 두이분은 자기가 이 집을 깨끗이 청산하고 나갈테니 협조해달라, 자식들은 다 깨끗이 처치하고 나 하나 나가면 그만이다, 내가 죽이고 나도 죽겠다고 하면서 저를 방안으로 팔을 잡아 끌어들이기에 술김에 다 처치해 버리고 그녀와 같이 살겠다는 마음이 들어 살해하였다(검찰 3회 피의자 신문조서, 632, 634면)고 진술하였는바 살해의 동기와 이유에 관한 피고인의 위와 같은 진술은 앞서 설명한 제반 사정을 참작할 대에 그것을 상식상 납득할 수 없다고 다정할 수 없으며,
  
   (다) 변호인은 피고인의 수사기관에서의 자백은 망 두이분의 선행된 자백을 그대로 답습한 것으로 거기에는 범인만이 알고 있을 비밀에 관하여 전혀 폭로된 것이 없어 믿을 수 없다고 하나 그러나 기록에 의하면 도리어 피고인의 자백이 망 두이분의 자백보다 선행하였고 그 자백에 따라 망 두이분이 피의자로 입건 조사된 사실(피고인은 1975년 1월1일 조사, 망 두이분이는 1975년 1월2일 조사), 송도 송림 속에서의 키스 등 애무 장면은 피고인이 최초로 진술한 사실, 피해자들에 대한 살해방법에 관하여는 오로지 피고인만이 진술하고 있을 뿐, 그 자신은 가게에서 망을 보았으며 방안에 들어가서 직접 살해한 것은 피고인이라고 시종일관해서 진술하고 있는 암 두이분의 진술에는 전혀 그와 같은 언급이 없는 사실을 알 수 있으므로 논지는 이유 없다.
  
   6) 부재증명 주장에 대하여
   (가)
피고인과 변호인은 피고인이 그날 불교회관을 출발한 것은 오후 8시~8시10분이고(피고인 오후 8시5분이라고 주장) 피고인 집에서 개최한 종교 좌담회에 참석한 것은 정각 오후 8시30분이니 그동안의 피고인의 행적 및 그에 소요되는 시간에 비추어 피고인에게는 피해자들을 살해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피고인은 범인일 수 없다고 주장하므로 먼저 피고인이 피고인 집에서 개최한 종교 좌담회에 참석한 시각에 대하여 본다.
  
  증인 송안섭은 피고인이 도착한 시간에 대하여 2심에서는 오후 8시 정각(365면), 1심에서는 오후 8시30분경(112면), 검찰에서는 정확한 시간을 모르나 오후 8시40분경(500면)이라고 진술하고 경찰에서는 정확한 시간 모르나 집회가 오후 9시10분경 끝났는데 그 무렵 왔다(234면)고 진술하여 그 진술에 일관성이 없으며 피고인이 참석한 시각을 그렇게 정확하게 안 것은 좌담회 결과 보고서에 참석한 시간을 명시하기 때문에 기억한다고 증언(368면)하였으나 위 종교회 사무장인 증인 여창근의 증언에 의하면 위와 같은 시간을 명시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377면) 위 증인은 피고인을 제외한 다른 참석자의 도착 시간은 전혀 모르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동인의 증언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이유도 없으며,
  
   증인 이석흥의 증언을 보면 피고인이 좌담회에 참석한 것은 오후 8시30분 정각이고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증인이 신도들의 질문에 답변하던 도중 답변에 부족을 느끼고 있던 참에 피고인이 들어와서 대신 답변해주어 불단 앞에 걸려 있던 벽시계를 보았기에 기억한다고 하고 있으나 수긍할 만한 특별한 사정없이 수개월이 지난 후에 그 당시 피고인이 참석한 시간은 오후 8시30분 정각이라고까지 정확히 기억한다는 것 자체가 도리어 이상하다고도 할 수 있어서,
  
   피고인의 도착 시간에 대한 위 증인들의 증언도 그것을 그대로 믿어야 할 이유도 없으며(이들 증인들은 모두가 피고인과 같이 피고인의 부친이 지구 책임자로 되어 있는 불교회의 신도들이고 피고인의 참석시간에 관한 진술이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서 점차 피고인의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있게끔 유리하게 일치된 시각의 진술을 하고 있다),
  
   피고인은 검찰 2회 신문 시(본건 범행을 부인할 당시) 피고인 집에 도착한 것은 그날 오후 9시라고 진술한 점(612면) 및 피고인이 본건 범해의 용의자로 지목되어 경찰에서 수사 도중 몰래 같은 신도 강보금에게 명함쪽지를 전달하려고 한 점(614면, 압수된 명함쪽지 증5호 182면) 등을 아울러 살펴보면 피고인이 피고인 집 좌담회에 참석한 시간을 그날 오후 8시30분 정각이라고 단정하기 난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나) 다음 피고인이 불교회관을 출발한 시각에 대하여 본다. 그날 피고인이 불교회관을 출발한 시간은 오후 8시~8시10분이라고 하나 이는 증인 여창근의 진술을 바탕으로 하였다고 할 것이고 그 시간의 정확성을 인정함에 족한 사유가 없는 이 건에 있어서(위 증인이 어떤 목적이 있어서 일부러 확인한 시간이 아님은 동 증인의 증언으로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정확성을 전제로 삼을 수는 없으며 이 점에 관해서는 여창근의 진술이 1심에서는 오후 8시10~8시20분경(124면), 2심에서는 오후 8시~8시10분(347면), 검찰에서는 오후 8시5분~8시10분경이라고 각각 틀리게 진술하고 있음에 비추어 더욱 그러하다 아니할 수 없다.
  
   (다) 불교회관을 출발하고 피해자 집에 왔다가 사진관과 군고구마 행상 장소를 거쳐 다시 피해자 집에 이르러 범행 후 피고인 집에 도착할 때까지의 행적에 소요되는 시간을 산출함에 있어서도 성인의 보통 걸음을 표준으로 하여 주장하고 있으나 이건 범행 당시 피고인이 그와 같은 걸음걸이를 하였다고 인정할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이 건에 있어서 반드시 그러한 표준에서 산출하여야 할 이유가 있다고도 단정할 수 없으며,
  
   (라) 경부를 압박하여 살해하는 경우의 소요시간에 관한 의사 김갑환의 증언(159면)은 일반적인 경우에 관한 것이지 본건과 같이 피해자들이 수면제를 먹고 잠들어 있는 상태이고 그중 두 사람은 연약한 어린애인 경우까지에도 합당한 시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마) 이상을 종합하여 보면 부재증명에 관해서 주장된 사실들은 이 건 판시 사실의 인정을 위법하게 할 사유로서는 충분치 못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7) 지문이 없다는 주장에 대하여
   피고인이 피해자 집의 장롱 문을 열고 마후라와 넥타이를 꺼내 범행에 사용했다면 장롱 문에 피고인의 지문이 남아 있어야 하고 따라서 장롱 속에서 채취한 지문에서 피고인의 것이 나오지 않았으므로 피고인은 범인일 수 없다고 주장하나 원판결이 인용한 증거를 검토하면 위와 같은 곳에 피고인의 지문이 없다고 해서 원판결이 동 각 증거에 의하여 이 건 판시 사실을 인정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다(그 당시 피고인은 면장갑을 끼고 피해자 집에 갔었다는 사정을 참작하면 더욱 그러하다).
  
   이상으로써 이상 각 점에 관한 논지는 모두 이유가 없으며 그 외에 원판결이나 원판결이 유지한 제1심 판결에는 달리 채증법칙을 위배하고 사실을 오인한 위법이 있음을 찾아볼 수 없다.
  
   2. 변호인 변호사 박한상의 상고이유 중 양형부당 주장에 대하여 판단한다.
   세 사람의 살해라는 본건 범행의 엄청난 결과와 邪戀(사련)에 눈이 어두워 일으킨 범행의 동기, 뉘우침이 없는 피고인의 범죄 후의 정황, 본건 범행의 수단, 피고인의 연령, 성행, 지능 정도, 기타 기록에 나타난 모든 양형의 조건을 살펴볼 때 원심이 유지한 제1심형이 심히 부당하다고는 할 수 없다.
  
   3. 그렇다면 피고인과 변호인의 상고이유는 모두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390조, 399조, 264조 4항의 규정에 의하여 이를 기각하기로 하고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1976년 2월24일
  대판장 대법원판사 홍순엽
   대법원판사 양병호
   대법원판사 이일규
   대법원판사 강안희


  
  두 여인의 말을 믿고 사형선고
  
   이 대법원 판결문은 오 씨의 운명을 확정시켰다. “오 씨를 죽여라”는 명령문과 같은 효력을 가진 것이 이 판결문이다. 그런 엄청난 효력에 어울리지 않게 이 문서는 그 논리상 많은 허점을 안고 있다.
  
   이 판결문은 먼저 이주순, 지광남 씨의 증언을 유죄의 증거로 인정한 항소심의 판결을 지지했다. 이 증언을 믿으려면 두이분 여인이 말한 내용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두 증인이 진실 되게 증언했다는 사실을 아울러 믿어야 한다. 1심에서 오 피고인은 지 씨의 증언 내용이 자기의 말을 잘못 전하고 있다고 지적했었다. 이주순 씨는 그때 미결수였다. 한국적 현실에서 그런 신분으로서 검찰 측 증인으로 나와서 과연 얼마나 객관적인 증언을 할 수 있을까.
  들어서 전달하는 이야기는 아 다르고 어 다르다. 그런 간접증언의 정확성을 믿는다는 것은 모험이다. 설사 정확하게 전달했다 하더라도, 구 여인이 그동안 숱한 진술에서 한 숱한 거짓말과 범행을 전후하여 기도한 영악한 위장극을 생각할 때, 그 여자의 말을 믿는다는 것도 모험이다. 대법원 재판부는 2중의 모험을 감행했다.
  
   재판부는 범행에 대한 두이분 씨의 증언을 믿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국부적인 부분에 대한 진술이 엇갈린다고 해도, 범행의 동기와 오 피고인의 직접 살해 등 중요부분에 대해선 진술이 일관되어 있으므로 신빙할 수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피고인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는 대목은 국부적인 부분이 아니다. “오휘웅이 아티반을 남편에게 먹여 놓으면 와서 죽이겠다고 해서 먹여 놓았다”고 진술했다가 “교회에 다녀오는 것을 남편이 모르게 하도록 먹이라고 해서 먹였는데 지금 생각하니 죽일 뜻이 있어서 그렇게 시켰다고 생각합니다”고 뒤집은 부분이 어떻게 해서 국부적인 것인가.
  
   오 피고인은 정 씨 목에 맨 마후라를 풀어 내던졌다고 했는데, 두 여인은 자기가 “남편 목에 매인 마후라를 풀다가 손에 피가 묻었다”고 모순된 말을 했었다. 이것은 국부적 부분이 아니라 사건의 핵심에 대한 진술의 엇갈림이다. 두 여인은 처음 범행 뒤 오 피고인의 신흥지물포 앞에서 자기를 만나 뒤처리를 하라고 지시, 강도당한 것처럼 위장을 했다고 말했었다. 이 진술은 나중에 가선 조서에서 실종돼버리고, 두 여인이 오 씨의 지시와는 관계없이 오랫동안 치밀한 위장공작을 했음이 드러난다. 이것도 국부적인 부분의 엇갈림인가. 도대체 국부적인 진실의 뒷받침 없이 중요부분의 진실이 확립될 수 있는가. 허술한 벽돌로 단단한 집을 지을 수 있는가.
  
  제한된 경험칙에 근거한 판단
  
   이 선고문은 또 오, 두 씨의 범행공모 시점이 1심 판결이 인정한 시점, 즉 두 여인이 아티반을 탄 사이다를 피해자들에게 먹여 잠들게 한 후 오 피고인이 피해자들을 살해하기 직전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오 피고인이 범행 전에 사진을 찾고, 잡담을 하고, 군고구마를 사 갖고 오는 따위의 위장한 행동은 모의 전이므로 이상할 게 없다고 설명했다.
   이 주장은 곧 오 피고인이 두 여인의 암시에 따라 술김에 순간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뜻이다. 세 사람을 죽이는 범행이 그렇게 즉흥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일까. 그런 발작적 흥분 상태하의 범행 직후에 평상시 그대로 설교를 하고 잡담을 하고 재정보증을 부탁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도 보통사람이?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범행 모의가 살해 직전에 이뤄졌다면, 두 여인이 그날 오후 7시 조금 넘어(모의 전이다), 삼성라사에 나타나 20만원 사기 운운하는 위장공작을 시작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날 밤 두 사람이 범행을 위해 만나기로 약속한 적은 없다. 두 여인은 오 씨와 만날 기약이 없는 상태에서 아티반을 먹이고, 위장공작을 하는 등 이미 범행의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대법원 선고문대로라면 갑자기 오 씨가 나타나 우연적으로 두 사람이 범행을 하게 됐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두이분 여인의 범행 직전 행동은 계획적인 것이었지 우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대법원 재판부는 여자가 남자의 목을 눌러 죽인 것을 알지 못한다는 의사의 증언을 신빙성 있는 것으로 지지했다. 그런 주장은 김상현이란 의사의 제한된 지식체계에 바탕한 이야기일 뿐 진리가 아니다. 그 의사가 알지 못한다는 것은 그런 일이 없었다는 의미가 아니며, 그런 사건이 일어날 수 없다는 뜻도 아니다. 1978년 11월14일 부산진구 범천동에선 40대 다방 마담이 여관방에서 잠든 40대 남자를 목 졸라 죽인 일이 있었다. 목 졸라 죽이는 것보다 목 눌러 죽이는 것이 더 힘든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술과 아티반을 다량 섞어 마시고 곯아떨어진 남자를 목 눌러 죽이기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재판부는 알리바이 문제에 있어선 김갑환 의사의 증언, 즉 한 사람을 목 눌러 죽이는 데는 5분쯤 걸린다는 주장은 “일반적인 경우에 관한 것이지 본건과 같이 피해자들이 수면제를 먹고 잠들어 있는 상태에서는 합당한 시간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무시, 피고인에게 불리한 해석을 했다.
  
   말이란 참 묘한 것이다. 대법원의 이 논리는 이런 식으로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의사 김상현은 여자가 남자의 경부를 압박하여 살해한 일은 알지 못한다고 증언했으나, 그것은 일반적인 경우에 관한 것이지 본건과 같이 피해자들이 수면제를 먹고 잠들어 있는 상태에서는 합당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로 돼야 한다. 대법원이 똑같은 논리를 편의대로 적당히 적용한 것은, “오 피고인은 유죄다”라는 대전제를 결정해 놓고 거기에 부합되는 사실만을 비논리적으로 갖다 대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계속)
[ 2011-07-11, 17:1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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