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투성이 대법원 판결문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37)/인간의 생명을 말살시키는 판단을 物證없이, 非논리적, 非과학적으로…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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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백이 증거의 여왕이던 시대로 후퇴
  
   재판부는 피고인이 경찰과 검찰에서 한 자백은 믿을 만하다고 했다. 그 이유로 피고인이 검사로부터 고문을 받지 않았다고 한 점과 살해방법에 대해선 피고인만이 진술하고 있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일부러 검찰의 입장에 서서 피고인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릴 뜻이 아니라면 이런 판단은 참으로 형식논리적이다. “검사로부터 고문당한 사실이 없다”는 말을 “나는 고문당한 사실이 없다”는 말로 해석하는 것은 논리상 비약이다. 검사로부터 고문을 당하지 않아도 검사의 지시를 받은 다른 수사관이나 형사로부터 고문을 당할 수도 있다. 피고인도 검찰청으로 몰려온 형사들에 의해 고문당했다고 말했었다.
  
   “살해방법에 관해서 피고인만이 진술하고 있으므로 그 진술은 신빙성이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도 놀라운 형식논리고 단순논리다. 살해방법에 대한 진술의 내용을 놓고 판단해야지, 그런 진술을 했다는 자체에 그토록 무게를 둘 수가 있는가. 이런 논리는 자칫하면 “범인이, 내가 죽였다고 했으면 됐지 어떻게 죽였든 무슨 상관인가”는 식의, 자백이 증거의 여왕이던 시절로의 退步(퇴보)로 해석될 위험이 있다.
  
   자백이 어떻게 이뤄졌는가, 그 내용이 얼마나 엉터리고, 어떤 방향으로 바꿔져 가고 있는가에 대한 놀라운 무관심은, 상고심이 아무리 서류로써 만의 판단이라 해도, 사회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의 결핍으로밖에 설명되지 않을 것 같다.
  
   1969년 3월21일 대구고법 형사부(재판장 김태현)는 유명한 부산의 김근하 군 살해 사건 판결문에서 “…살인을 자백한 피고인의 진술이 자주 변경 추가되어 공소사실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음을 간취할 수 있는바, 피고인은 살 구멍을 남겨놓았다가 양심의 가책을 받아 털어놓게 된 것이라고 합리화하려고 하나, 그와 같은 경우는 무거운 사실을 숨겨두고 가벼운 사실을 자백하던 자가 점차 무거운 사실을 자백하여 가는 경우에 해당하는 이론이고, 이 사건과 같이 먼저 무거운 사실(살인)을 자백한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으며, 이 사건에 있어서는 도시 가벼운 사실에 관하여도 알지 못하는 자가 공소사실에 맞춰가는 과정이며 이는 필경 무거운 사실에 관하여도 알지 못한 자의 허위자백이라고 봐야 한다”고 판시. 피고인 전원의 무죄를 선고했었다.
  
   오휘웅 씨 사건의 경우 대법원은 대구고법의 판례와는 정반대로서, “무거운 사실에 대해 자백하면, 가벼운 사실은 변경 추가되어도 진실된 자백으로 본다”는 논리를 채택한 셈이다. 대법원의 논리가 상식적인 인간의 경험법칙과 어긋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 피고인이 비상식적이기 때문에 비상식적인 잣대를 갖다 대어야 한다면, 오 피고인이 그런 인간이란 사실을 먼저 입증해야 했었다.
  
   재판부는 좌담회 참석자 이석홍 씨의 ‘오 피고인 귀가시간에 대한 증언’은 “수개월이 지난 후에 그 시간을 정확히 기억한다는 것 자체가 도리어 이상하다”면서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이것도 너무 심한 단순 화다. 이석홍씨는 좌담회 때 신도들의 물음에 답이 막혀 조마조마할 때 오 피고인이 중간에 들어와 대신 대답을 해주었으므로 그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더구나 그는 사건이 난 이틀쯤 뒤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기 때문에(그 기록은 경찰이 법정에 제출하지 않음) 수개월 뒤 그 시간을 기억해낸 것이 아니라 수일 뒤 그 시간을 상기한 것이었다. 대법원은 이 씨가 수개월 뒤 1심 법정에서 증언한 기록만 보고 그런 파단을 한 모양인데, 증언의 전단계가 있었던 것이다.
  
  면장갑 꼈다는 착각에 근거한 판단
  
   이 판결문은 이범렬 변호사가 상고이유서에서, 피고인 자백에 ‘비밀의 폭로’가 없어 믿기 어렵다고 한 데 대해서도 반박했다. “기록에 의하면 도리어 피고인의 자백이 先行(선행)하고, 그 자백에 따라 망 두이분이 입건 조사된 사실이 있고, 피고인만이 살해방법에 관하여 진술하고 있으므로 비밀의 폭로가 없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록만 보면 분명히 오 피고인이 먼저 자백했다. 그러나 앞에서 쓴 대로 형사들은 두 사람을 따로 떼어놓고 양쪽을 왔다가 갔다가 하면서 “저쪽이 자백했으니 당신도 불어!” 식으로 조사를 했다. 참여형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먼저 범행을 실토한 것은 두 여인이다. 신문조서는 양쪽이 다 자백한 뒤 기록으로 정리한 것이므로 기록의 순서와 날짜만 보고 오 피고인이 먼저 자백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 판결문의 가장 큰 실수는 “피고인이 면장갑을 끼고 피해자 집에 갔었기에 장롱 등에서 지문이 안 나왔다고 해서 범인일 수 없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시다.
   오 피고인은 1심에서, “그날 면장갑을 하의 뒷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두 여인 집에 갈 때도 그냥 넣고 갔는지, 다른 데 빼놓고 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끼고 갔다”는 말은 없고 “살해할 때 끼고 했다”는 진술은 더더구나 안 보인다. 검찰이 그 면장갑을 찾은 적도 없다. 재판부는 그릇된 사실 인식에 바탕하여, 지문이 안 나온 사실, 아마도 피고인에게는 가장 유리한 사실을 불리한 쪽으로 해석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대법원 판결문도 1심, 2심의 판결문처럼 진술․목격․기억 등 형이상학적 자료들에 대한 판단과 해석으로 짜인 구조물이다. 판단과 해석은 주관적 작업이다. 이 자료들을 정확하게 판단 해석하여 주관적 사실을 객관적 사실로 승화시키려면 엄정한 논리체계가 적용되어야 한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이 선고문엔 너무나 많은 구멍이 있다. 물증 없이 ‘말’만 놓고 판단 해석하는 데도 모험이 따르는데, 그 방법마더 비논리적이었다. 하나뿐인 인간의 생명을 말살시키는 판단을 이렇게 비과학적으로 해도 되는 것인가. 더 끔찍한 사실은 이런 대법원의 판결이 어떤 과정을 걸쳐 나오는가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시 따져 볼 것이다.
  
  
  (계속)
[ 2011-07-12, 10:2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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