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無罪에 대한 차이, ‘삶과 죽음’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38)/한 쪽은 誤判이고, 거짓이고,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재판부는 사형을 확정 시켰다. 오휘웅의 말이 眞이라면….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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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사형수의 신, 사형수의 법
  
  구치소 교무계장의 ‘오휘웅 관찰기록’
  
   1976년 2월24일.
상고기각자 통보가 있었다.127번 오휘웅의 신분장을 꺼내 보았다. 본인은 상고가 기각되었는지조차 모르고 있겠지…. 김수진 목사는 오휘웅은 사이비 종교 신자인데, 애써서 기독교 신자化 해놓았다고 하신다.
  
   2월28일. 오휘웅과 상담하다. 癡情(치정)살인범이다. 본인은 죽이지 않았다고 강변한다. 상고기각 통지가 곧 도착할 텐데, 본인은 대법원 판결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키는 작고, 이마는 확 벗겨지고, 왠지 섬뜩한 인상이다. 그런데, 과연 죽이지 않았다면 誤判(오판)이란 말인가. 그럴 리는 없다. 정치범도 확신범도 아닌데 죄 없는 자를 살인범으로 몰아세울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은가.
  
   3월8일. 12번 오휘웅의 상고기각 판결문이 도착했다. 무엇이라 진정시켜 이를 전해줄까 망설여졌다. 신앙조차 깊지 않은데 신앙문제를 전면에 내세울 수도 없다.
   본인은 승복할 수 없다며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한다. 경찰의 각본대로 진행된 거짓 재판이라며 눈을 홉뜬다. 재심청구 때 서로 상의하자며 꽁무니(?)를 뺐다.
   실로 힘든 상대다. 한 쪽은 오판이고, 거짓이고, 자기는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재판부는 사형을 확정 시켰다. 오휘웅의 말이 眞(진)이라면….
  
   3월30일. 오휘웅에 대한 보고전을 냈다. 재심청구에 담을 내용을 협의해 왔다. 법률적인 문제들을 물어 왔으나 나는 구체적인 언급은 피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형소법에 규정된 재심청구 사유는 제한적 열거사항인데, 오휘웅이 무죄라는 사실을 입증할 새로운 사실이 발견된 바 없고, 진범이 체포된 바도 없고, 위증한 자도 없기 때문이다.
   법률적 면에서 해결할 방법으로 유일한 것은 고문경찰관을 고소해서 허위자백이었음을 밝혀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은 1, 2, 3 심에서 충분히 다루어졌을 것이다.
  
   유무죄에 대한 차이는 오휘웅의 경우, 바로 삶과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내가 이 엄청난 법률적 사안에 개입할 방도란 전연 없다. 과장도 법률적 문제에 휘말리지 말라고 경고하지 않았던가.
   오휘웅은 잠을 잘 수 없다고 호소한다.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고…, 정말 무죄일까? 이 문제는, 과연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자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일까?

  
   이 일기초는 이 무렵 서울구치소에서 일하면서 그가 죽을 때까지 줄곧 접촉했던 황정남 당시 교무계장(지금은 퇴직)의 일기에서 뽑은 것이다.
  
  사형수의 고독과 울분
  
   오 씨는 1975년 6월11일 1심에서 사형 구형을 받은 뒤부터 줄곧 사형수 대우를 받고 있었다. 사형수 대우란, 감방 안에서도 밥 먹을 때와 변소 갈 때만 빼고는 늘 手錠(수정․수갑)을 차고 두 팔은 포승에 묶여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쇠로 된 수정을 차기 시작했을 때 사형수들의 충격은 크다. 동작의 불편함은 물론이고 쇠붙이가 주는 싸늘한 감촉은 마음마저 얼어붙게 한다. 그 감촉이 싫어 토시를 끼고 그 위에 수갑을 차기도 한다.
   다른 죄수들은 사형수과 같이 있으면 “곱징역 산다”면서 두려워한다. 이미 버려진 목숨이니까, 무슨 짓을 못하랴 하는 공포감 때문이다. 사형수가 난폭할 것이란 선입감은 오해이지만, 사형수가 들어 있는 감방은 늘 서늘한 공기로 감싸여 있어 조용한 게 특징이라고 한다. 수정 찬 사람이 같은 감방에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긴장감을 주게 된다.
  
   서울구치소에선 석 달에 한 번씩 사형수를 轉房(전방)시킨다. 사형수가 새 방에 가면 맨 처음 하는 것이 청소라고 한다. 벽에 예수 그림을 붙이거나 불단을 만들고, 다른 죄수들에게 청소를 자주 시켜 사형수가 있는 방은 신방처럼 깨끗하다는 것이다. 수정을 차면 사형수들은 며칠간 의기소침해져 밥도 안 먹고 말문도 닫는다고 한다. 교무계 직원이 불러내 달랜다.
   “최후진술을 잘 해야 한다…”
   선고에서도 사형이 떨어지면 이번엔 “항소이유서를 잘 쓰자…”
   항소이유서, 상고이유서 따위를 쓰는 동안 사형수들은 차츰 ‘죽음’이란 말에 길들여지기 시작한다.
  
   1960년대 영등포 상업은행 갱 사건의 주범으로서 사형 확정 선고를 받았다가 무기로 감형이 되었던 권오석 씨는 사형수 시절 이런 수기를 쓴 적이 있었다.
  
   나의 왼쪽 가슴엔 4047이라는 번호가 붙어 있고, 그 번호 위에는 반은 파란색, 반은 붉은 색인 삼각형이 붙어 있다. 이것은 사형수란 표시다. 아직 덜 익은 과일과 같다. 감나무에 달려 있는 반쯤 익은 반물렁이와 같다. 그것이 다 익으면 빨간 홍시가 되어 사람들의 입 속으로 들어가게 마련이다. 나 또한 그와 다를 바 없다. 사형수는 사형수이지만 완전한 사형수가 아니라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표시인 것이다. 2, 3심에서 기각이 된다면 나는 완전한 빨간 색의 삼각형이 되고 만다.
  
   멋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내가 달고 있는 표시가 보기 좋다고 할는지 모른다. 내가 보기에도 완전히 빨간 것보다는 보기가 좋다. 완전한 빨간 색이 돼버리면 나의 인생도 완전히 끝나는 것이다. 내 부모, 내 형제, 그리고 사랑하는 처와 어린 것들을 볼 길이 없게 된다. 나는 지금 입학시험을 치고 발표 날을 기다리는 조바심을 느끼고 있다.
  
   쥐 죽은 듯 사방은 고요하다. 잠이 오지 않는다. 사람이기에, 감정의 동물이기에 잠이 오지 않는다. 아무리 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 나는 지금 독방에 있다. 말 한마디 붙일 사람이 없다. 다시는 방문이 열리지 않을 것 같다. 가슴이 답답하다. 아무리 옆을 보아도 있어야 할 얼굴은 없고, 걸려 있어야 할 옷은 없다. 나를 누가 이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내가 뭣을 잘못 했기에…. ΧΧ와 ΟΟ가 나를 여기에 눕혀 놓았다. 괘씸하다. 아! 분하다. 침이라도 뱉고 싶다. 죽이고 싶도록 밉다. 내가 새가 된다면 저 쇠창살을 빠져나가 그들을 죽이고라도 오고 싶다. 왜 나는 새가 될 수 있는 기술을 갖지 못했단 말인가.
  
   이럴 때는 미쳐버렸으면 제일 좋을 것 같다. 그러나 그것도 되지 않는다. 죽고도 싶었다. 그것도 이 안에선 할 수 없다. 내 몸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안 된다. 나를 밀고한 내 원수를 생각하면 잠이 달아난다. 숫자를 200, 300까지 헤아려도 잠은 안 온다(하략).

  
   강도살인을 하고 사형선고를 받은 살인범이 이렇게 팔딱팔딱하고 있는데, 자신은 무고하다고 주장하는 오휘웅 씨의 사형수 생활은 어땠을까.
  
  사형수의 꿈
  
   서용태란 사형수는 1960년대 말 서울구치소에서 처형됐다. 생전에 쓴 편지에서 그는 수정을 자기의 벗이라고 했다.
  
   …처음 이놈을 찼을 땐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해도 시원치 않았었다. 지금은 제법 정이 들어 가장 친한 벗이 되었다. 벽 위에 선반이 있다. 그 위의 물건을 내릴 때 나는 한 손으로 가야 할 것을, 두 손과 함께, 그것도 나의 벗 수정과 함께 갔다 온다. 수정 이놈을 나의 몸에서 쫓아낸다면 하느님께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수정과 함께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드린다(하략).
  
   강도살인사건의 공범으로 기소되어 사형수가 됐으나, “나는 죽이지 않았다”고 끈질기게 재심을 청구, 사형확정 뒤 10년쯤 살다가 서울구치소에서 처형됐던 정기호 씨는 이런 편지를 남겼다.
  
   …이렇게 편지로써 라도 은규 씨와 이야기하는 일이 제게는 더할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이 기회에 이곳의 생활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이곳의 하루는 오전 6시 기상나팔 소리와 함께 시작됩니다. 저는 2시간 전에 일어나 신공을 드리고 묵상에 잠겨 마음을 정리해 봅니다. 6시 기상과 함께 8명의 식구가 인원 점검을 받고 나면 아침식사를 합니다. 식사 후에 공판이 있는 사람은 출정을 나가고, 각방 순서별로 세면장에 다녀온 뒤 실내청소를 끝내면 9시 점검을 하게 됩니다.
  
   교도소의 일과는 9시 점검 뒤부터 시작됩니다. 면회도 오고, 비교적 기분이 맑은 오전시간을 독서로 보냅니다. 새 책이 없어서, 읽었던 책을 되풀이해서 읽지요. 11시30분경에 5분 남짓 되는 운동시간이 있어서 잠깐 바깥바람을 쐬고 들어와서는 12시에 점심입니다. 오후 1시까지는 스피커를 통해 뉴스와 낮 음악을 듣습니다. 오후 4시까지는 토론과 대담으로 소일합니다. 주로 바깥에서 경험했던 일들이 화제가 됩니다.
  
   오랜 기간 여기서 있어보니 여기 들어오는 거의 다가 극히 뛰어난 사람과, 인간대열에서 낙오자인 極下(극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보통 수준의 평범한 사람들은 극히 드문 것입니다. 그들의 죄상으로 볼 때에 근본적으로 가정과 사회의 조건에 의해 빚어진 사건과 사회대책이 없이는 해결하지 못할 성질들의 것이고, 의법처벌을 하지 않아도 좋은 미미한 죄상들이 거의 다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극악, 파렴치범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저는 이곳 사람들이 사회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단조로운 생활 속에서 어린애같이 되는, 소탈한 면도 있어 거짓과 허위로 위장된 사회인들보다는 좋게 보이는 면도 있습니다.
  
   이곳의 공식 업무는 저녁 식사가 오후 4시30분에 있는 것으로 일단 끝납니다. 식사 후 마지막 점검과 함께 우리는 방 밖으로 나갈 기회가 없어집니다. 이때부터 8시 취침 시간까지가 가장 즐겁고 서글퍼지는 때입니다. 나도 모르게 깊은 감회에 젖어서 주위를 잊고 있노라면 몬티가 불던 트럼펫 소리가 취침시간을 알려줍니다. 비로소 어느 인간으로부터도 속박을 받지 않는 행복한 시간이 시작됩니다. 꿈속에서만은 마음껏 자유로워질 수도 있고, 보고 싶은 사람도 볼 수가 있으므로 가장 귀하고 기다려지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보고 싶은 환영이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그래도 그런 때는 괜찮은 일입니다. 꿈에서까지도 교도소에 있는 몸이 되고, 囹圄(영어․감옥)된 위치에 처해 있을 때는, 깨어난 후에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하략).
[ 2011-07-13, 10:1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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