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원조를 악의적으로 왜곡한 高校 교과서
1950년대 미국 원조의 절반이 미군의 유지비와 무기 구입에 쓰였다고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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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엔컬처그룹刊 교과서는 戰後(전후) 경제복구 내용이 다루고 있으나 李承晩 정부의 노력이라고 표현하지 않았고, 제1공화국의 경제안정 정책도 다루지 않았다. 특히 1950년대 미국 원조를 다룬 부분은 왜곡되고 악의적이다. 교과서는 “전후의 경제 재건은 미국의 원조에 힘입은 바가 컸다”고 서술하면서도 원조액(대충자금)의 절반 정도가 미군의 유지비와 무기 구입 자금으로 쓰이면서 미국의 무기 체계에 의존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됐다고 왜곡하고 있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원조는 미공법 480호(미국의 농산물 무역 원조법)에 의해 농산물이 중심을 이루었다. 한국은 원조 받은 농산물을 시장에 팔아 그 대금을 한국은행에 예치하였다. 이 예치금을 대충자금이라고 하는데 정부는 한미합동 경제위원회의 감독 아래 이를 사용하였다. 재정 수입에서 대충자금의 비중은 평균 38%였다. 대충자금은 절반 정도가 미군의 유지비와 무기 구입 자금으로도 쓰임으로써 한국군의 국방력이 강화되었지만, 미국의 무기체계에 의존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알아봅시다’, 대충자금과 미공법 480호, 346페이지)

 

우선 미국의 對韓원조가 농산물 중심이었다는 記述(기술)은 과장이다. 1950년대 미국 및 유엔을 통해 한국 정부에 제공된 원조는 ECA&SEC, CRIK, FOA&ICA, UNKRA, PL480 등 다양하다. 농산물과 관련된 미공법 480(PL480)은 그 중 하나인데, 1945~1959년까지의 전체 원조액 중 미공법 480에 의한 원조액은 5.12%, 미공법 480이 개시된 1956~1959년간을 보아도 전체의 약 11%에 불과하다. 여러 원조를 통해 수입된 물품 중 농산물은 약 17% 정도였으며, 원료‧중간재를 포함한 공산품이 더 많았다.

 

對充資金(대충자금)이란 對外원조의 한 형태로, 미국이 예치한 자금으로 한국 정부가 미국 등 타국에서 물자를 구매한 후 그것을 국내에 판매한 돈을 한국은행에 적립하는 방법이다. PL480에 의한 판매 대금뿐만 아니라, 모든 원조 물자의 판매 대금이 대충자금으로 적립되었다. 대충자금은 한국 정부의 재정자금으로 이전되었는데, 1953~1960년 대충자금은 총 재정수입 중 평균 38%를 차지, 1957년에는 50%를 넘기도 하는 등 큰 비중을 차지하며 대한민국 再建(재건)의 밑바탕이 되었다. 주로 농지개량사업, 치산치수사업, 토목사업, 상하수도, 통신 등 정부의 공공사업에 투입되거나 민간 부분에 융자로 제공됐다. 대충자금 중 미공법 제480호에 의한 농산물의 판매대금은 주로 국방비로 분류되어 쓰였는데, 1950년대 연평균 국방비의 34.7%에 달했다.

 

1950년대 국방비 중 77.2%가 봉급 및 급식비로 지출

 

미래엔컬처그룹刊 교과서는 이 대충자금의 절반이 미군의 유지비와 무기 구입 자금으로 쓰였다고 記述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주한미군 유지에 부분적으로나마 직접적인 비용을 분담하기 시작한 것은 1974년부터로, 1953~1973년까지는 토지와 시설의 무상공여, 세금 및 공공요금의 면제나 감면 혜택 같은 간접비용을 분담하는 데 그쳤다.

 

무기 구입 자금에 쓰였다는 서술과 관련해서는, 1950년대 국방비 지출 내역이 당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이승만 정부는 전쟁의 수행, 전란 수습 및 북한의 도발에 대비하기 위해 어려운 재정상황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 연평균 정부 일반재정의 50.7%에 해당하는 예산을 국방비로 편성했다. 이 중 77.2%가 봉급 및 급식비를 포함한 개인유지비로 지출됐으며, 17.9%가 부대 유지비, 전력증강비와 전투준비비는 각각 2.3%, 2.6%에 그쳤다. 한국군이 사용한 무기는 경제원조와는 별도의 경로인 군사원조를 통해 제공된 것이었다. 1954년부터 1961년까지 국군이 미국으로부터 받은 군사원조는 약 13억 8000만 달러에 달한다.

 

李承晩 정부 당시 부흥부 장관과 재무부 장관을 역임했던 宋仁相(송인상) 前 장관은 “미국 원조는 우리 산업의 기초를 세우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日帝가 물러난 이후 그들의 자본과 기술력이 빠지면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미국의 원조가 있어 극복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대충자금은 산업자금에 융자·투자 방식으로 방출되기도 했다. 중소기업 지원금으로 2700만 달러와 대충자금을 묶어 400여 개가 넘는 중소기업에 대출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신진자동차 같은 기계공업을 지원했고, 종로3가에서 안경점 하던 분이 플라스틱 안경테 제조를 신청하여 자금을 배정했다. 이 자금이 경제 각 분야에 지원되어 우리나라 산업 근대화의 불씨가 됐다> 《전경련 40년史》 ‘이승만의 경제리더십 연구’ 中

 

당시 원조의 경제적 역할에 대해 생각이 달랐던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는 원조財源의 구성 비율과 운용 방식을 두고 자주 충돌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 정부는 원조를 사회 기반설비와 생산재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싶었지만, 미국은 원조가 생활 물품 및 자재의 공급과 정부財政의 균형유지에 사용되길 희망했다. 이 사이에서 고군분투한 李承晩 대통령의 노력은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李承晩 정부 때 재무부 장관을 지낸 印泰植(인태식) 씨는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경무대로 들어갔다. 李 대통령은 印泰植 장관에게 “지금까지 재무부 장관이나 다른 장관들이 미국 측에 대충자금(원조물자 판매대금) 사용방향을 바꿔 달라고 여러 수십 차례 교섭을 해왔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나로서는 경제건설을 해야 할 우리나라 입장에서 이 대충자금은 공장을 세우는 데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굳은 신념이 서 있다. 나의 뜻을 명심하고 미국 사람들을 이해시키도록 힘써 달라…”>《전경련 40년史》 ‘이승만의 경제리더십 연구’ 中

 

허술했던 교과부의 수정권고안

 

 高校 교과서의 미국의 경제원조에 대한 몰이해와 악의적 평가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08년 좌편향적 서술로 수정권고를 받은 금성출판사刊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등장했었다.

 

 이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는 수정권고안에서 “대충자금(對充資金, counterpart fund) 한자 표기가 잘못되었으므로 수정이 필요함(代充이라고 표기했었음). 또한 고등학교 수준에서 미공법 480호와 같은 사료를 다루는 것이 적절한지 여부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함”이라고 간단히 지적하는 데 그쳤다.

 

2010년 새로 발간된 미래엔컬처그룹刊 고교 한국사 교과서(346페이지)

 

 

左편향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금성출판사刊 고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324페이지)

 

[ 2011-07-15, 17:0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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