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法의 괴리 사이에서 스러져가는 民草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41)/ 한국에서 고문 경찰관이 유죄확정 판결을 받도록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고문 받은 사람이 죽어버리는 길이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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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의 입증, 고문자의 처벌 과연 가능한가
  
   이 사건에서 오 씨의 자백이 고문에 의한 것이냐 아니냐는 바로 유죄, 무죄의 갈림길이었다. 고문에 의한 자백임이 분명하면, 다른 확증이 없으므로 당연히 무죄의 선고를 받아야 한다.
  
   지금까지 이 글을 읽어 본 독자라면 고문 여부에 대해 나름대로의 판단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재판부에선 고문당했다는 주장이 아니라 고문의 입증을 피고인 측에 요구한다. 재심청구에서도 마찬가지다. 고문을 피고인이 입증하여 그 수사관이 유죄확정 판결을 받아야 재심의 개시가 허용된다는 이 조건이 대한민국에서 과연 충족될 수 있는가 한번 따져보자. 대한변호사협회가 1986년 5월1일 법의 날에 펴낸 <1985년도 인권보고서>에 나타난 3건의 자료만 소개해도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이 절로 나올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1985년 7월25일 ‘인권침해사례에 관한 시정촉구’ 공문을 검찰총장 앞으로 보냈다. 이 공문은 ①1982년 10월15일 대한변호사협회가 고발한 김시훈 사건 관련 고문 경찰관에 대한 수사결과의 통보가 없다는 점과 ②한강중학교 화재 사건을 수사하면서 무고한 시민을 고문하여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중상을 입힌 용산경찰서 소속 경찰관 7명에 대해 담당검사가 고문 경찰관들이 국가를 위해 헌신적 봉사를 했다는 이유로 기소유예 처분했다는 보도에 대해 언급했다.
  
   이 공문은 “(용산경찰서) 사건은 친고죄도 아니며,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논할 수 없는 反의사 불벌죄가 아니며, 고문의 정도가 중상인 점” 등을 들어 기소유예 처분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이 보고서에 실린 ‘김시훈 사건에 관한 고발장’의 내용은 이러했다.
  
  
고 발 장

   고 발 인
서울특별시 중구 서소문동 37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옹호위원회 위원장 조태형
   피고발인 전주경찰서
   (1) 경 정 정○원
   (2) 경 위 ○병권
   (3) 경 위 오○영
   (4) 계급미상 표재○
   (5) 경 사 박○윤
   (6) 계급미상 최명미상자 외 수명
  
  
고발의 경위

  
  대한변호사협회는 1982.9.10자 도하 일간지에 피고인 “김시훈이가 살인의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 14개월 만에 진범 3명의 구속기소로 비로소 누명을 벗게 되었고, 이로써 경찰의 고문 및 엉터리 조사가 드러나게 되었다”라는 보도를 보고 그간 세칭 ‘윤 노파’ 사건과 ‘여대생’ 사건 등 살인사건에서 피의자들이 경찰의 고문에 못 이겨 허위자백을 하였다는 등 사회적인 물의가 있어 재판의 귀추를 주시하여 오던 터라 조사기관의 고문 등 인권 유린 사태를 근절시켜야 하겠다는 결의로써 1982.9.13 인권옹호위원회 회의를 거쳐 ‘김시훈 사건 진상조사단’을 구성하였습니다.
  
   이에 조사단이 진실을 밝히기 위하여 먼저 본인의 진술을 듣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진상을 조사한 결과 다음과 같은 고문 등 인권유린 사실을 알게 되어 정의의 실현을 위하여 이에 고발하오니 조사하여 엄정하게 처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고발사실
  
   1981.6.24 24:00경 발생한 전주시 효자동 살인사건의 조사본부장 경정 정○원, 동 부본부장 경위 ○병권, 동 오○영, 전담관 표재○, 동 박○윤, 동 최명미상 형사 외 조사요원 중
   1. 동 오○영 외 조사요원 성명미상 수명은 공모하여 구속영장 없이 직권을 남용하여,
   가. 1981.7.12 20:00경 충북 청원군 미원면 옥화대부락 뒷산 대목장에서 노동에 종사하고 있던 대전시 동구 대동 194(3통1반) 피해자 김시훈(당시 30세․남자)을 1981.6.24 24:00 발생한 전주시 효자동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수갑을 채워 포승으로 묶어 불법으로 체포하고(형법 제124조),
   나. 1981.7.12 21:00경부터 1981.7.13 09:00경까지 청주시 북문로1가 133 국제여관 205호실에서 수갑을 채우고 포승으로 몸을 묶은 채 위 피해자를 동소 목제 이불장에 불법으로 감금하고(형법 제124조),
  
   2. 동 정○원, 동 ○병권, 동 오○영, 동 박○윤, 동 최명미상은 위 조사요원 성명미상 수명과 공모하여,
   가. 1981.7.13 16:00경부터 1981.7.14 06:00경까지 전주경찰서 진북2동 파출소 2층 숙직실에서
   (1) 직권을 남용하여 위 피해자를 감금하고,
   (2) 동소에서 위 피해자를 벌거벗기어 철제의자 다리에 양발을 묶고 양팔을 위 의자에 수갑으로 함께 채운 후 위 최명미상자는 곤봉으로 위 피해자의 성기를 수회 내리쳐서 성기가 극도로 붓고 멍이 들게 하고 곤봉으로 머리를 수회 강타하고,
   (3) 위 오○영, 박○윤은 동인 17:00경 동소 목욕탕에서 동인을 살인혐의로 신문함에 기하여 동인이 행적을 허위 진술한다는 구실과 위 살인사건 압수물인 흰 바탕 줄무늬 티셔츠 조각이 동인의 것이 아니라고 부인한다는 구실로 위 피해자를 묶었던 포승을 풀어 수갑 찬 위에 수건을 말아 덮고 그 위로 포승을 묶고 양 무릎 다리 사이에 묶인 팔을 벌려서 끼우고 끼운 위로 나온 양 무릎 사이에 직경 4센티미터, 길이 2미터의 철봉을 끼운 후 철제의 자 두 개 사이에 위 철봉 양끝을 올려놓음으로써 위 피해자가 위 의자들 사이에서 거꾸로 매달리게 하고 수도에 연결된 고무호스로 동인의 가슴에 물을 뿌리고 거꾸로 된 얼굴에 수건을 덮고 머리를 잡아 물을 뿌린 후 비눗물과 고춧가루 물을 들이붓고 이에 동인이 코에 스며드는 물을 삼켜버리자 수건을 입안에 처박아 막고 다시 코와 눈에 고춧가루를 처넣은 후 호스 물을 코에 흘려 넣어서 동인을 기절케 하고 정신을 차리면 다시 같은 방법으로 계속하여 동인을 4회 가량 기절하도록 하고 수시 동인의 등과 엉덩이에 알 수 없는 기구를 사용하여 전기를 방전시키고 굶게 하면서 잠을 재우지 아니하는 등 각 가혹행위를 하고(형법 제125조),
  
   나. 1981.7.14 21:00경부터 1981.7.15 06:00경까지 동소 목욕탕에서 전시와 같은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전시와 같은 구실로 두 의자를 합쳐서 묶고 위 피해자를 두 의자에 끼운 후 전항 기재와 같은 방법으로 가혹 행위를 하고(형법 제125조),
  
   다. 동 박○윤은 1981.7.15 10:00경부터 1981.7.16 06:00경까지 전주시 효자동3가 4178의 6 비사벌자립원 식량창고에서 전시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자백을 받을 목적으로 동인이 행적진술을 함에 있어 전주역 발차상행 특급열차의 발차시간이 아닌 1981.6.24 14:00에 상행열차를 탔다고 진술함을 구실삼아 동인의 명치끝의 배를 자전거 튜브 3개를 겹으로 하여 의자에 묶어 호흡곤란을 일으키게 하여 수 시간 후에는 결국 실신케 하고 동일 밤 시간 미상경에 동인을 깨워서 동 창고 벽에 걸린 피살자 최현석의 얼굴 사진과 유품인 자전거 및 가방의 그림에 플래시를 비추어 보이면서 동인에게 “최현석을 내가 죽였다”라고 말하라 강요하였으나 거절하자 약명미상의 약물(환각제인 듯함)을 태워서 연기를 나게 한 후 동인에게 이를 흡입케 함으로써 몽롱한 환각상태에 빠지게 하고 계속 굶겨가면서 잠을 재우지 아니하는 등, 각 가혹행위를 하고(형법 제125조),
  
   라. 1981.7.16 10:00경부터 1981.7.17 06:00경까지 직권을 남용하여,
   (1) 위 조사요원 성명미상 2명은 동 16일 10:00경부터 동일 12:00경까지 사이에 전항기재 장소에서 동인이 졸자 졸지 못하게 곤봉으로 동인의 머리를 수십 회 강타하고 동인을 담요로 말아 동 창고 앞마당 뜨거운 햇볕에 내놓아서 심하게 땀을 흘리게 하고 동인이 목이 타서 물을 찾자 주전자의 물을 동인의 머리에 조금씩 부으면서 “장물 하나만 내놓아라”하고 강요하고,
  
   (2) 위 조사요원 성명미상 1명은 동일 12:00경부터 13:00경까지 사이에 전주시 소재 대한의원 진찰실에 동인을 연행하여 동 원장 한방수에게 부탁, 동 원 간호원 성명미상으로 하여금 약명미상의 약물주사(환각제인 듯함)를 동인의 엉덩이에 2회 주사케 하여 환각상태에 빠지게 하고,
  
   (3) 위 박○윤, 위 조사요원 수명은 동일 13:00경부터 동일 밤 시간미상까지 위 창고에서 동인을 의자에 묶어놓고 곤봉으로 우측 하퇴부의 일정부위와 머리를 수십 회 강타하고 위 박○윤이는 백지와 볼펜을 주면서 불러주는 대로 쓰라고 강요하였으나 이를 거절하자 위 성명미상자 수명과 함께 동인의 입에 수건을 틀어막고 코에 물을 부어 기절하게 하고 정신을 차리면 다시 이를 반복함으로써 탈진 상태에 이르게 하고 “기왕에 사형당할 몸이니 몸이나 성해서 사형을 당하라”고 하며 곤봉으로 수십 회 강타하여 끝내 동인으로 하여금 범행을 허위자백하는 진술서를 작성하게 하는 등 각 가혹행위를 하고(형법 제125조),
  
   마. 이와 같은 불법구속을 합법화하기 위하여 동인을 즉결심판에 회부하여 구류 5일을 받게 하고 동 구류기간이 경과한 후 1981.7.19부터 1981.7.20까지 동인에 대한 구속영장 없이 동인을 전술 진북2동 파출소 2층 숙직실에 불법으로 감금하고(형법 제124조),
  
   3. 동 정○원, 동 서 유치장 간수 성명미상 2명은 공모하여 동인에 대한 구류 5일의 형을 집행함에 있어 동인을 동 서 유치장에 입감시켜 집행한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1981.7.14 17:20 도 서 유치장에 입감시키고 구류 만 3일인 동원 18일 18:00 석방하여 정당하게 집행한 것처럼 공문서인 동 서 1981년도 구속인명부 제731호, 구속별 일시란에 “1981.7.14 17:20 즉결심판 언도” 석방월일시란에 “1981.7.18 18:00” 석방사유란에 “구류 만기 석방”이라고 기재하고 동 서 동년도 간수근무일지 1981.7.14 자경범입감란의 특기사항란에 “17:20 경범 김시훈 구속입감”이라고 기재하고 동 정○원은 서장 결재란에 동인전결로 각 사인하고 동 성명미상 1명은 위 구속인명부 취급자란에 동인전결로 각 사인하고 동 성명미상 1명은 위 구속인명부 취급자란에 사인하고 다른 성명미상 1명은 위 간수근무일지 취급자란에 사인하여서 위 각 공문서를 허위작성하고 비치케 하여 이를 행사한 것이다(형법 제277조, 229조).
  
  
첨부자료

   1. 녹음테이프재생녹취서 1권(김시훈 진술)
   2. 구속인명부 사본 2매(전주경찰서)
   3. 간수근무일지 사본 1매(전주경찰서)
   4. 즉결심판서 사본 1통(전주지방법원)
   5. 조사보고서 사본 1통(전주경찰서)
   6. 진술서 사본 1통(이남식 진술)
   7. 진술서 사본 1통(김정호 진술)
   8. 파면자인적사항 사본 1매
   9. 사직원제출자인적사항 사본 1매
   10. 범죄접수부 사본 1매(전주경찰서)
   11. 인사발령통지서 사본 1매(전북경찰국장)
   12. 공소장 사본 1통(군산지청)
   13. 녹음테이프재생녹취서 사본 1권(이홍은 외 2명)
   14. 사진 12매
   15. TV프로그램 사본 2매(동아일보)
  

1982.10.15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옹호위원회 위원장 조태형
  검찰총장 귀하


  
  고문 받고 죽어야 고문입증 가능?
  
   변협의 인권보고서 김근태(민청련 의장) 관계 자료에는 증거보전 청구서와 이에 대한 기각 결정문이 실려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 씨의 변호인단은 1985년 10월2일 김 씨가 수사기관(경찰)에서 당한 고문의 상처가 치유되기 전에 사진촬영과 의사의 신체 감정으로써 고문의 증거를 보전토록 해줄 것을 서울형사지방법원에 청구했다. 김 피고인은 전기고문의 흔적으로서 양발 뒤꿈치에 피부결손 및 찰과상 반흔, 그리고 발등에는 10여 개의 찔린 흔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서울형사지법 김오수 판사는 10월12일 이런 논리의 기각결정을 했다.
   “경찰에서 고문을 받아 임의성 없는 상태에서 자술서를 작성하여도 공판 준비 과정 및 공판정에서 그 진술내용을 부인하기만 하면 임의성 유무를 따질 필요도 없이 증거능력은 없게 되므로 경찰진술의 임의성을 다투기 위한 증거보전의 필요성은 인정할 수 없다. 피고인이 검찰에서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가사 피의자가 경찰에서 고문을 받아 임의로 진술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상태가 검찰 조사과정에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증거보전의 필요성은 인정할 수 없다.”
  
   대한변협 인권위원회는 1985년 12월30일 김 씨를 고문한 혐의로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소속 ‘김 전무’ 등 경찰관 8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위에 열거한 자료에서 우리가 아주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결론은 고문 경찰관이 유죄확정 판결을 받게 하여 그것을 이유로 재심을 청구하기란 한국의 법 현실에서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위의 세 사건은 모두 언론에 크게 보도된 것이었다. 그런데도 고문 경찰관에 대한 수사가 그 정도라면 이름없는 사건에서 고문 경찰관을 감옥에 보내기란 별을 따다 감옥에 집어넣는 것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독자들 가운데는 한일합섬 김근조 이사에 대한 고문치사 사건을 예로 들면서, 나의 단정론에 반발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 한국에서 고문 경찰관으로 하여금 유죄확정 판결을 받도록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다. 그것은 고문 받은 사람이 죽어버리는 길이다. 그렇게 되면 고문의 증거가 시체로 확실하게 드러남으로써 고문 경찰관이 처벌을 받게 된다. 물론 다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구속 뒤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있을 때 고문의 후유증으로 죽을 경우엔 입증이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고문 경찰관이 쇠고랑을 찬 것은 거의가 피해자가 죽었을 경우다. 죽음으로써만 고문의 입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 끔찍한 상황이다.
  
   인천지원과 서울고법은 오휘웅 씨에 대해서 기계적으로 법조문을 인용하면서 고문경찰관이 유죄확정 판결을 받지 않았으므로 재심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정했다. 그런 법조문은 고문이 아주 드물고, 고문 경찰관은 틀림없이 처벌받고, 무엇보다도 법원이 허약한 서민에게도 그런 입증의 방법을 보장해주는 사회에서나 타당성이 있을 것이다. 한국의 법 현실과 동떨어진 재심이유 조항은 활자의 나열일 뿐일 수도 있다. 현실과 법의 괴리 사이에서 스러져가는 것은 억울한 민초들인 것이다.
  
  
  (계속)
[ 2011-07-18, 15:2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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