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티스 살해사건’의 교훈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43)/ 오 氏 사건과 너무나 비슷한 사건에서 피의자는 누명을 벗고 삶을 되찾았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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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말 믿고 애인을 주범으로 몰다
  
   이상의 결론에서 이삼재 씨는 “범인은 이 사건의 첫 목격자이며 신고자인 유봉순이다”고 수사본부에 통보했다.
   7월18일 서울 성동경찰서는 유 양을 살인혐의로 구속했다.
  
   유 양의 자백은 이러했다.
   유 양은 13일 정오, 청소를 하다가 거액이 든 피해자의 돈지갑을 발견, 살의를 품게 됐다. 오후 5시께, 강 양이 외출에서 돌아와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유 양은 갑자기 강 양의 얼굴에 보자기를 씌우고 목을 졸랐다. 강 양도 반항, 두 여자는 30~40분간 엎치락뒤치락 결투를 벌인 끝에 힘이 센 유 양이 강 양을 죽이는 데 성공했다. 유 양은 약 300만 원어치의 금품을 된장 항아리 속에 감추고 시체를 싱크대 밑으로 치운 뒤 위장 공작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흐트러진 집안을 정리한 뒤 빨래를 손질하고 있는데 강 양의 어머니가 왔다. 강 양 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날 밤을 유 양과 함께 그리고 시체가 돼버린 딸과 함께 보냈다.
  
   다음날 강 양 어머니가 가버리자 유 양은 술상을 차려놓았다. 외간남자에 의해 강 양이 살해된 것처럼 꾸민 것이다. 오전 10시쯤 유 양은, 호스티스 강 양의 어머니가 경영하는 중국음식점에 나타나 “언니가 술에 취해 들어와서 남자 손님이 온다고, 여기서 있다가 전화하면 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유 양은 음식점에서 놀다가 강 양 어머니와 함께 아파트로 돌아와 자연스럽게 살인현장을 발견한 것처럼 위장했던 것이다. 유 양은 경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도, 미스터 최라는 남자가 사건 전날에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 남자가 의심스럽다고 하는 둥 경찰을 우롱하려고 했었다.
  
   강 양 어머니를 소도구로 쓴 유 양의 이 위장극은 두이분 여인이 그날 이옥련 씨에세 20만 원 사기 운운하고, 옷가지를 방안에 흩어놓는가 하면, 시체들을 발견할 때 이 씨를 데리고 가 이 씨가 보고 있는 앞에서 기절하는 등 속임수를 벌인 과정과 너무나 닮았다. 닮은 것은 이뿐이 아니었다.
  
   경찰이 유 양을 구속한지 19일 뒤(1977년 8월6일) 서울지검 이진록 검사는 이 사건의 주범은 경찰이 구속송치한 유 양이 아니고, 유 양의 애인인 대영철 씨임을 밝혀내고 그를 강도살인 혐의로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그때의 신문기사는 이 검사의 수사경위를 자세히 소개했다.
  
   검찰은 범인으로 구속송치된 유 양을 신문 끝에 대영철이 유 양과 공모, 강 양을 살해한 후 금품을 훔치고 알리바이를 조작했음을 밝혀내고 대를 지난 4일 검거, 추궁 끝에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대는 검찰에서 숨진 강 양이 경영하는 중국음식점 오미각 주방에서 일하다 해고된 데 앙심을 품어오던 중 강 양이 돈이 많은 사실을 알고 돈을 훔쳐 유 양과 결혼하려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대는 지난 6월15일 강 양이 중국음식점을 개업할 때 주방장으로 일하게 되면서 가정부인 유 양을 알게 되었으며 7월부터 정을 통해오던 중 강 양이 오미각 옆 가게를 팔아 현금 200만 원을 갖고 있다는 유 양의 연락을 받고 범행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대는 7월13일 오후 2시쯤 강 양의 아파트에 와 유 양과 함께 지내다 강 양이 돌아오자 건넌방 장롱 속에 숨어 있다가 오후 4시쯤 강 양이 잠든 후 보자기로 강 양의 얼굴을 덮고 목을 졸랐다.
   이때 강 양이 “살려달라”고 외치며 방바닥에 떨어지자 다시 목을 눌렀는데 범행 당시 유 양은 버둥거리는 강 양의 다리를 잡아 범행을 도왔다.
   대는 강 양이 숨지자 싱크대 밑에 숨기고 유 양에게 솜을 가져오게 해 목 부분에 지문이 남았을까 봐 이를 닦고 자기는 현금 30만 원만 갖고 나머지 패물, 수표, 현금 등을 비닐 봉지에 넣어 스타킹에 싸서 독안에 넣게 했다.
  
   그 후 대 씨는 유 양에게 “잡히면 너 혼자 범행을 했다고 말하라. 나는 음식점을 옮기겠다”고 말하고 일하고 있던 중국음식점 만리장성으로 갔다가 7월25일 고향인 전남 영광으로 내려가 입영 신체검사를 받고 갖고 간 30만 원 중 10만 원을 사촌형에게 땅을 사도록 주었다.
  
   검찰은 유 양을 신문하면서 유 양이 경찰 진술 때 대가 범행에 가담한 사실을 비쳤는데도 유 양을 단독범으로 구속송치하는 등 경찰수사가 허술했던 점, 유 양이 단독으로 사람을 죽이기는 어렵다는 점, 가해자인 유 양의 몸에 피해자의 반항흔적이 없는 점, 응접실에 소주잔을 놓아 범인이 마신 것처럼 꾸민 점,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강 양이 경영하는 중국음식점으로 간 점으로 단독범일 수 없다고 보고 추궁 끝에 대와 공모했다는 자백을 받아낸 것이다.
   검찰은 6일 오전 11시, 대에 대한 현장 검증을 실시했다.

  
  대 氏에게 1심 사형선고
  
   이 기사에도 정 씨 가족 피살 사건 수사와 흡사한 점이 많이 나온다.
   정 씨 사건에서도 두이분 여인의 울음이 위장된 듯하다는 검사의 판단에 의해 타살의 방향으로 수사가 시작됐고, 두 여인을 먼저 추궁, 오휘웅 씨를 공범으로 지적하는 듯한 넋두리에서 확신을 갖고 오 씨를 데려와 문초했던 것이다.
  
   유 양은 대 씨를 물고 들어감으로써 主犯(주범)이 아닌 從犯(종범)이 됐다. 유 양이 노린 것은 바로 이 점이었다. 이것은, 김갑수 변호사의 주장(항고이유서)을 연상시킨다. 감 변호사는, 두 여인은 자신을 교사범으로 위장하여 가벼운 벌을 받고자 했는데 그러려면 하수인이 필요했고 오 씨가 하수인이 되기에 적당한 위치에 있었다고 풀이했던 것이다.
  
   1심에서 대 피고인은 범행을 부인했다. 유 피고인은 “같이 했다”면서 “대 씨가 비겁하다”고 대어들었다(두 여인도 그랬다). 대영철 씨가 억울한 듯한 징조는 많았다. 대 씨의 주위 인물들이 그의 알리바이를 진술하고 있었으며, 대 씨가 사람을 죽였다면 잠적하지도 않고 계속 그 음식점에서 일한 것이 이상하고, 유 양의 경찰 및 검찰 진술은 일관성이 없는데다가 사체 감정의사도 피살자의 몸에 난 손톱자국으로 미루어 단독범의 소행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오 씨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설명과 너무나 흡사했다. 특히 정 씨의 머리에 손톱자국이 난 것까지도 같다.
  
   1심과 2심 때 대 피고인의 국선 변호인이었던 이원형 변호사에 따르면 1심에선 재판부가 대 씨에게 유리한 증인 신청을 잘 받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1977년 10월21일 서울형사지법 합의6부(재판장 허정훈)는 대 씨에게 사형, 유 양에게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 변호사는 사형선고를 받자마다 쓰러져버린 대 씨에게 “걱정하지마! 2심에서 꼭 무죄 내겠어!”라고 소리쳤다.
  
  2심에서 무죄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조언 부장판사)가 맡은 항소심 공판에서 이 변호사는 대 씨가 고문을 받아 허위자백한 점을 파고들었다. 대 씨는 검찰에서 고문을 하도 당해 똥물까지 토해냈고 몸도 상했었다고 한다. 이 변호사가 면회를 가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그 후유증이 심했었다. 특히 대 씨는 서울지검 15층 취조실에 불려가 고문 받은 이야기를 했는데, 15층 취조실은 특수사건 때만 사용하는 곳이라, 대 씨가 거기서 신문을 받았다는 진술이 재판부의 판단에 큰 영향을 준 것 같다고 이 변호사는 말했다(1986년 4월 인터뷰).
  
   항소심에서도 유 양은 대 씨와 같이 범행을 저질렀고, 애인관계라고 주장했다. 대 씨는 애인관계라는 사실도 부인했다.
   재판부는 대 씨 측이 신청한 증인을 많이 채택해 주었다. 이들은 대 씨의 부재증명을 뒷받침하는 증언을 했다. 오 씨 사건처럼 대 씨의 경우에도 확증은 하나도 없었고 검찰에서 한 범행수법에 관련된 진술이 현장 및 사체 감식 상황과 도무지 맞지 않았다.
  
   1978년 3월15일 조언 재판장은 대 씨에게 무죄, 유 양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대 피고인이 종업원으로 있었던 만리장성의 주인이 사건 당일 30분 이상 대 피고인이 자리를 비운 사실이 없다고 증언하고 있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볼 만한 증거도 없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그해 7월11일 대법원도 검찰 측의 상고를 기각, 대 씨의 무죄를 확정 시켰다. 대 씨는 이날 석방됐다.
  
   오휘웅 씨는 같은 구치소에 있던 사형수 대 씨가 풀려난 소식에 접하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자기 사건과 너무나 비슷한 사건에서 대 씨는 누명을 벗고 삶을 되찾았다. 오 씨는 김순자 집사에게 가끔 투정을 부렸다고 한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라는데 왜 한 인간의 누명도 벗겨주시지 못하는가”하고 빈정대는 투로 말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오 씨의 좌절감은 대 씨의 석방으로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대 씨가 누명을 벗을 수 있었던 것은, ①현장감식이 처음부터 잘 되어(비록 현장 보전은 잘 안되어 있었지만) 단독범의 범행이란 논리가 확립돼 있었고, ② 항소심에서 대 씨의 알리바이를 증언해 줄 증인들을 많이 채택해 주었으며, ③ 적극적인 변호사를 만나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임이 공판정에서 실감 있게 현출됐기 때문이었다.
  
  (계속)
[ 2011-07-20, 09:3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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