嚴相益 연재소설 ‘환상(幻想)살인’ <1회>
전관(前官) 변호사의 고민

嚴相益(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한번 제 눈빛을 봐주세요. 사람을 죽여 본 사람은 빛이 달라요. 전 그걸 압니다.’

재판장은 살인이 인정된다고 하면서 무기징역을 확인했다. 항소를 기각한 것이다. 방청석 끝에서 다섯 살짜리 그의 아들이 수갑 찬 아빠를 보면서 울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어린 아들을 보았다. 영원한 이별의 순간이었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그가 재판장을 보면서 간구했다.

저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한번 제 눈빛을 봐주세요. 사람을 죽여 본 사람은 빛이 달라요. 전 그걸 압니다.”

그의 얼굴이 새까맣게 탄 것 같이 변했다. 재판장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침묵하고 있었다. 순간 그가 법대를 향해 펄쩍 뛰어올랐다. 뒤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교도관들이 달려들어 그를 덮쳤다. 이윽고 그는 동굴 같이 입을 벌리고 있는 법정벽에 설치된 문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나는 그 장면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

일 년 전 아직 겨울이 섞인 찬바람이 불던 3월 초순경이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을 무렵 친구 민 변호사가 전화를 했다.

국수나 한 그릇 같이 먹지. 법원 동문 앞에서 만나.”

부장판사였던 그는 변호사 개업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잠시 후 우리는 법원근처의 작은 국수집에서 마주 앉았다. 손님들이 한 차례 빠져나가간 식당은 조용했다. 구수한 고기국물에 향긋한 냄새가 나는 쑥갓을 얹어주는 안동국시가 별미인 집이었다. 국수 두 그릇과 소주 한 병을 시켰다.

내가 하던 사건을 당신한테 넘겼으면 하는데.” 
민 변호사가 뜬금없이 말을 꺼냈다.
?”
내가 되물었다.
살인사건으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인데 자기는 무죄라는 거야. 절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거지. 그런데 수사기록을 읽어보면 그가 살인범이라는 심증이 확실히 가는 거야. 아무리 그 사람 말을 믿으려고 해도 그가 살인범이 틀림없어 보이는 거야. 그러니 어떻게 해? 이 사건을 맡기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지 뭐.”

50대쯤의 식당 여주인이 국수와 술을 식탁 위에 놓고 갔다.
소주를 한 잔씩 잔에 따르고 탁자 위의 통에서 젓가락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당신이 그렇다면 나도 마찬가지겠지.”
내가 대답했다. 그는 신중한 성품이었다. 그가 살인범으로 확신을 했다면 나라고 다를 리가 없었다. 나는 그의 판단을 신뢰했다.
그게 아니고 내 말 좀 더 들어봐.”
번들거리는 땀을 냅킨으로 닦으면서 그가 말을 계속했다

재판장만 20여 년 하니까 변호사가 돼서도 머릿속은 계속 판사 인 거야. 의뢰인의 말을 일단 믿어주고 거기에 따라 변호를 하지 않고 혼자 앉아서 아직도 판결을 하고 있는 거야. 변호사가 이러면 안 되지. 그런데도 판사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 그래서 그런 나쁜 버릇이 들지 않은 자네 시각에서 당사자의 절규를 한번 진지하게 들어보는 게 어떨까?”
그는 벌써 자신을 객관화하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담당 재판장이 누구야?”
내가 물었다.
응, 오훈상 부장이야.”
난 바로 인상이 찌그러졌다. 문제가 많은 판사였다. 선입견을 가지고 재판 전에 이미 결론을 내버리는 성격이었다. 그는 변호사도 자기가 좋아하는 인물이면 뼈도 없이 좋았다. 그러나 미운딱지가 붙으면 곤혹을 치렀다. 변호사들이 공통으로 혐오하는 판사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면 재판은 더 볼 것도 없겠네?”
내가 말했다. 민 변호사 역시 오 부장을 알고 있었다.

 그런 것 같아. 아예 나쁜 놈으로 판단했는지 재판 한 번 열지 않아. 아마 마지막에 한번쯤 건성으로 하고는 항소기각을 할 것 같아.”
그러면 변호할 여지는 바늘 끝만큼도 없겠군. 나도 그 재판장한테 미운털이 박힌 변호사니까. 사양할게.”
세상에서 말하는 무전유죄(無錢有罪)가 떠올랐다. 재판장와 동향(同鄕)의 같은 학교를 나온 변호사로 선임하면 그렇게는 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이거 큰일 났네. 사건만기는 닥쳐오고 맡을 사람은 없고 그러면 말이지 한 번만 구치소에 가서 그 사람을 만나봐 줘. 엄 변호사는 판사를 하지 않았으니까 분명히 나와는 시각이 다를 수 있다고 믿어. 그러니까 한 번만 그 사람을 만나보고 내게 조언을 해 줄 수는 없을까?”
민변호사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그 가족에게 사건을 못하겠다고 거절하지 그랬어?”
내가 말했다.
친동생이 형 뒷바라지를 하는데 다른 변호사 사무실을 다녀 봐도 맡겠다는 데가 없다는 거야.”

그 말에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나는 모든 변호사들이 다 싫다고 거절하는 사건을 더러 맡아왔다. 천대받는 그런 사건 속에 사연이 담겨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돈과 승소도 좋지만 배경에 얽혀있는 사연도 가치가 있었다.

며칠 후였다. 높은 담장이 요새같이 둘러쳐진 안양교도소 안은 아직 얼어붙은 한 겨울 같은 느낌이었다. 더운 여름에도 그곳 강당은 시원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한()이 공기의 입자를 냉각시키는 지도 모른다. 나는 변호사 접견실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열린 유리창 밖 쇠격자 사이로 웅크리고 있는 장방형의 사동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이에 풀 한포기 없는 콘크리트 광장이 있고 그 구석에 금박 칠을 한 부처상이 맨몸이 거의 드러난 얇은 옷차림으로 떨고 있었다. 이윽고 사십대 말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 거무스름한 피부에 짙은 갈색 눈동자였다. 철사발 같은 짧은 머리털이 위를 향해 꼿꼿이 서 있었다

안녕 하세요 엄태오 변호삽니다.”
내가 인사했다. 그가 나를 강한 눈빛으로 탐색한 후 분통을 터뜨렸다.
도대체 나 같은 놈은 항소심 재판을 받을 권리도 없단 말입니까? 만기가 다가오는데 한 번도 공판이 열리지를 않아요. 나 같은 놈은 절차 생략하고 그냥 무기징역으로 확정해 버리겠다 그거죠?”
그의 얼굴엔 원망이 가득 차 있었다. 그가 계속했다.
민 변호사만 해도 그렇습니다. 딱 한 번 접견을 왔는데 마치 내가 살인범인 것처럼 간주하고 심문조로 막 몰아치는 거예요. 변호사가 뭐 그렇습니까? 그 분도 제가 싫으시겠지만 저도 그 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건을 그만 두겠다는 것도 동생을 통해 들었는데 그러려면 진작 그러시지 이제 항소심 만기도 며칠 안 남았는데 지금 와서 사건에서 손을 떼면 그게 변호사 도립니까?”

그가 거세게 항의했다. 내가 달래듯 말해 보았다.
무기징역을 받고 끝없이 사는 것 보다 차라리 자백을 하고 형을 감경 받는 게 어떨까요?”
독선적인 그 재판장을 설득시킬 방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법 자체는 공정해도 그걸 다루는 사람의 인격이 비틀어져 있으면 어떤 법도 흉기가 될 수 있었다. 갑자기 그의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강하게 내쏘았다.
지금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사람 속을 터져 죽이려고 오신 겁니까? 당장 가주세요.”
그의 눈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가 소리쳤다.

남자새끼가 한 건 한 거고 안 한 건 안 한 거예요. 전 살인을 하지 않았어요. 변호사가 살인의 의심을 품고 변호를 하는 건 전 싫어요. 차라리 혼자서 하는 데까지 하다가 죽겠습니다. 교도소에 오래 있다 보니까 다른 살인범들 재판을 받는 걸 보고 배우는 것도 있어요. 살인을 해도 정상참작을 받으면 몇 년 안 사는 것도 보고 요령도 들었어요. 저한테도 그걸 권하는 사람이 있지만 안 한 걸 했다고 타협하지는 않을 겁니다.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다가 무기징역이 확정되면 자살해서 인생을 마칠 랍니다. 됐습니다. 돌아가세요.”

나를 쳐다보는 그의 눈이 붉어졌다.
씨발 안 죽였는데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눈물이 그의 볼을 타고 넘쳐흘렀다. 그가 나가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제가 진짜 죽일 마음이 있었다면 말이죠. 그렇게 엉성하게 안 죽여요.”
불현듯 그의 말을 믿고 싶어졌다.

(계속)

[ 2011-10-12, 11:4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