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계 형사반장의 충고
嚴相益 연재소설 ‘환상(幻想)살인’ <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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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을 하고 도주할 때는 단 몇 초도 영원이다. 시간에 불이 붙는다. 일분일초가 타들어간다. 그렇다면 아니었다.


친척 결혼식장을 갔다가 친척이 되는 형을 만났다. 30년 베테랑 강력계 형사출신이었다. 대학시절 합기도 6단이었던 그는 경찰에 특채되어 평생을 강력계 형사로 일했다.
“요새 어떤 사건을 맡고 있어?”
그 형이 물었다.
“살인사건을 맡고 있어요.”
만난 김에 강철윤 사건의 대충을 얘기해 주었다.
“요즘 같은 경우 수사기록이나 증거물을 너무 믿지 말어.”
형이 충고했다.

“왜요?”
내가 되물었다.
“컴퓨터가 어떻게 발달했는지 그걸로 증거서류를 위조하면 감쪽같단 말이야. 판사들은 문서로 된 증거를 절대로 아는데 워낙 위조기술이 발달하니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야. 또 과학증거물을 절대시하는데 그것도 믿으면 안 돼.”
그의 경험에서 나오는 진실한 충고였다. 베테랑 형사반장인 그는 수사의 온갖 이면을 꿰뚫고 있었다. 그가 계속했다.

“예를 들어 살인범을 잡았는데 증거가 없다고 쳐. 범행현장에 털 한개 슬쩍 가져다 놓고 거기서 발견했다고 하면 판사가 그걸 어떻게 알아챌 거야? 그런 엉터리가 많다구. 명확한 증거가 있는 사건들은 오히려 의심을 해봐야 할 거야. 그대로 믿지 말고 하나하나를 확인해 봐.”
형사들이 사건을 조작할 경우 검사는 이해관계가 일치되는 입장이다. 힘을 합쳐 공소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범인을 만드는 사람이지 현실에서 풀어주는 입장이 아니었다. 변호사가 그들의 맹점을 보충해 주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일요일 오후 4시. 나는 살인사건이 발생했던 아파트에 와 있었다. 5층짜리 낡은 아파트 네 동이 웅크리고 있었다. 문 앞은 바로 2차선 도로였다. 마을버스와 승용차들이 줄지어 지나갔다. 도로 맞은편은 튀김집, 빵집, 옷가게 등 자그마한 상가들이 닥지닥지 붙어 있었다. 아크릴로 만든 호프집 간판이 걸린 건물이 보였다. 여자가 죽기 일주일 전쯤 그 건물 계단으로 끌려 내려가 폭행당했다는 장소였다. 나는 도로를 건너 그 건물로 들어섰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 보았다. 지하 1층이 호프집이었다. 죽은 여자의 언니는 호프집 문 앞에서 동생이 허리띠에 목이 졸리고 얻어맞았다는 것이었다. 입고 있던 청바지가 온통 먼지투성이가 되어 돌아왔었다고 했다. 그곳에서 강철윤과 죽은 여자가 함께 있었던 시간은 5시간이었다. 그들은 5시간 동안을 계단에서 무엇을 했을까. 그 시간 내내 때리고 얻어맞기만 했을까. 맞았다는 진술은 있는데 멍이 든 자국을 봤다는 말은 없었다. 언니가 과장을 했을 가능성이 컸다. 잠시면 몰라도 그곳에서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

다시 올라와 나는 도로 건너편에서 사건이 발생한 아파트를 관찰했다. 아파트는 사방이 다 도로에 접해 있었다. 일요일 오후인데도 사람들이 많이 다녔다. 가까운 곳에 재래시장도 보였다. 범인이 도주할 경우 누군가에게 목격되기 쉬운 장소였다. 아파트 주차장에도 차들이 꽉 들어 차 있었다. 가지고 간 카메라로 사건현장들을 꼼꼼히 찍었다. 살해당한 자리에 지프차가 무심한 듯 서 있었다. 나는 살해지점에서 아파트로 시선을 옮겼다. 수십 개의 창들이 마치 커다란 눈알처럼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로로 열 채인 아파트들이 5층이니까 백여 개의 창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셈이었다.

사건발생 시각은 한여름의 해가 뜬 후였다. 주위로는 차들도 다니고 지나가는 배달원이나 행인들도 있었을 것이다. 열려진 아파트의 창문을 통해서 이미 잠에서 일어난 수많은 눈들이 볼 수 있는 지점이었다. 더구나 주차장이었다. 주차해 놓은 차안에 또 어떤 눈이 있을지도 몰랐다. 거기서 도끼 단 한 방으로 살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대담한 범인이라도 그런 노출된 장소에서 한 방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수사기록 속에 그려진 도주로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아파트 안에서 목격자가 말한 범인이 간 방향을 걸어가 보았다. 아파트 뒷문 쪽 담에는 쇠창살이 빠져있었다. 주민들은 거길 개구멍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 구멍으로 빠져나가 보았다. 정문 앞보다는 한적한 편이었다. 그곳도 역시 도로였다. 수사기록을 보면 강철윤은 거기서 택시를 잡아타고 20분 정도 달려 자신의 비닐하우스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내가 간 일요일 오후는 비교적 택시를 잡기 쉬운 시간이었다. 20분쯤 기다렸는데도 택시가 오지 않았다. 범인이 택시를 이용했다면 단 몇 분이라도 그렇게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나는 택시를 잡기 좋은 곳으로 생각되는 지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믿음교회’란 간판을 단 단층 스레트 건물 앞이었다. 그곳에서 택시를 기다렸다. 역시 택시는 쉽게 오지 않았다. 수사결론은 무리한 추측이었다. 택시가 쉽게 잡히는 곳이 아니었다. 나는 다시 정문 앞 차량이 많이 다니는 도로 앞으로 가서 택시를 기다렸다. 5분 이상 택시를 기다려야 했다. 범행을 하고 도주할 때는 단 몇 초도 영원이다. 시간에 불이 붙는다. 일분일초가 타들어간다. 그렇다면 택시는 아니었다. 강철윤이 승용차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렌트를 한 흔적도 없었다.

경찰의 수사기록은 마치 추리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강철윤이 7시20분 경 여자를 살해하고 범행현장에서 택시로 그가 살고 있는 역곡동 비닐하우스 부근의 연립주택들이 있는 오솔길 입구에서 내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그 시각 택시로 현장에서 거기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약 16분에서 18분이 소요된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것도 세 번이나 측정해서 평균치를 낸 것이라고 적어놓았다.

벌써 시계가 오후 5시9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택시기사에게 강철윤이 살던 역곡동 비닐하우스까지 가자고 했다. 일요일 오후라 교통이 정체되는 곳은 없었다. 다만 교차로의 빨간 신호등 이따금씩 차를 세울 뿐이었다. 택시는 특별히 빨리도 느리게도 달리지 않았다. 정확히 42분이 걸렸다. 경찰의 기록과 맞지 않았다. 경찰이 주장한 16분이나 18분은 살인혐의를 위해 과장하고 끼워 맞춘 것이다. 경찰은 강철윤이 정확히 시간을 예측해서 범행하고 택시로 돌아와 알리바이를 성립시켰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논리의 비약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교통상황이었다.

경찰은 택시에서 내린 강철윤이 외부인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산책로를 통해 그의 비닐하우스로 갔다고 했다. 마치 직접 본 듯 지도 위에 강철윤의 움직임과 그 시간을 적어놓고 있었다. 실제로 확인해 보기로 했다. 택시에서 내린 나는 경찰이 만든 지도 속의 도주로를 따라 야산 길을 올라갔다. 수사기록 속의 사진은 음침하고 외진 분위기였다. 그러나 실제로 내 눈에 보이는 주위의 광경은 평화스럽고 조용했다. 밤나무가 늘어서 있는 야산 자락의 부드러운 흙길이었다. 산책하는 동네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상치, 고추를 심은 작은 밭들이 바둑판처럼 보였다. 주말농원이었다. 주변에는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아파트들이 드문드문 서 있었다. 그 길은 산책로였다. 여름날 아침 7시40분경이면 사람을 만날 가능성도 충분했다.

수사기록을 보면 그날 아침 강철윤을 본 사람이 있었다. 약수터로 산책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그의 비닐하우스로 김치통을 받으러 갔다는 노파도 있었다. 어느새 강철윤이 살던 비닐하우스가 나타났다. 걸어서 그곳까지 내 걸음으로 10분 정도 걸렸다. 비닐하우스 옆에서는 칠십대쯤 되어 보이는 밀짚모자를 쓴 영감이 러닝셔츠 바람으로 농기구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저 아래 큰 길에서 여기까지 저 산책로로 오려면 보통 몇 분 걸립니까?”
내가 물었다.
“보통 칠팔 분 걸리죠.”
그가 무심코 말했다. 그렇다면 수사기록의 2분의 시간대는 뛰어서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경찰의 무리한 추론이 하나하나 바로 확인되는 것 같았다. 강철윤을 만났을 때 마지막에 “내가 정말 살인을 하려고 했으면 수사기록에 나와 있는 것 같이 엉성하게 안 해요”라는 말이 떠올랐다.

지난 이십년간 변호사를 하면서 내가 느낀 현실은 내남없이 모두들 너무 아마추어라는 것이다. 형사들이 단순한 선입견으로 3류 추리소설을 만들어 내면 그게 진실이 되어 버리는 수가 많았다. 수시로 사건배당을 받는 형사들은 사건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따질 시간이 없다. 그랬다가는 오히려 상부의 질책만 떨어졌다. 대충대충 해버리는 것이다. 검사 역시 정해진 짧은 구속기간동안 모든 걸 종료하고 사건을 끝내야 했다. 공부에 내몰리면서 추리소설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을 여유가 없었다. 그들은 법조문을 적용하기에도 솔직히 벅찼다. 

법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판사들의 임무는 정해진 구속 기간 내에 맡은 수백 건의 사건들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변호사로 법정에 설 때는 시간의 격류 속에 정신없이 휘말려 버리는 느낌이 들곤 했다. 단 3분의 변론도 재판장의 눈치가 보여서 하기 힘들 때가 많았다. 엄숙한 분위기의 법정과 전능자같은 법복을 입은 판사들은 겉모습뿐이었다.

(계속)  

 
모두들 너무 아마추어다.
형사가 3류 추리소설을 만들어 내면 그게 진실이 되어 버렸다.
검사도 판사도 그냥 믿어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원인이었다.

[ 2011-10-19, 15:0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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