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嚴相益 연재소설 ‘환상(幻想)살인’ <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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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일어났다.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인스턴트커피 한 잔을 타서 거리가 내다보이는 창문 앞에 앉았다.

 

정신없이 쓰러져 잤다. 피곤이 쌓인 것 같았다. 한밤중에 일어났다. 시계가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인스턴트커피 한 잔을 타서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창문 앞에 앉았다. 창백한 수은등이 아스팔트를 묵묵히 비추고 있었다. 이따금씩 지나가는 차들의 타이어 소리가 희미하게 창틈으로 들어왔다.

나는 책상위에 놓인 강철윤 살인사건의 수사기록을 가져다 다시 들추어 보았다. 1심판결문이 나열한 살인의 증거는 네 사람의 진술이 주축을 이루었다. 사망진단서와 부검결과 보고서는 강철윤의 살인과는 직접 관계가 없었다. 네 사람의 진술이 정확한지 감정이나 의견이 섞인 거짓이나 모략은 아닌지를 파악하는 게 내가 할 일이었다. 부검결과보고서는 도끼날의 반대편 뭉툭한 부분으로 얻어맞은 듯한 두개골 함몰이 보인다고 했다. 추정일 뿐이었다. 도끼였고 살의가 번득였다면 날카로운 도끼날로 머리를 찍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 뒤의 뭉툭한 부분으로 깠다는 것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낮에 강철윤의 비닐하우스에 갔다가 오래된 녹슨 도끼가 땅바닥에 반쯤 묻혀 있는 걸 발견했다. 사용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숨긴 것도 아니었다. 

나는 조서에 나타난 죽은 여자 언니의 진술을 다시 찾아 두 번쯤 반복해서 읽었다. 그 내용은 이랬다. 죽은 여자인 송양숙은 사건당일 아침 7시20분경 어머니 일 나가는 걸 배웅하러 나갔었다. 언니 송양자는 방안에 누워있는데 갑자기 “악”하는 소리가 들리고 동생이 쓰러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 밖으로 뛰쳐나가보니까 동생이 머리에서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더라는 것이다. 그녀는 범인이 강철윤이 틀림없다고 했다. 근거를 묻는 형사의 질문에 그녀는 아파트 4층에 사는 목격자인 아주머니가 말한 범인의 인상착의가 강철윤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살인의 유죄판결을 떠받친 결정적인 증거는 두 여자의 진술이었다. 두 여자의 진술이 과연 정확한 것일까? 그들의 엉성한 추정과 조합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 것일 수도 있었다. 사건을 처리하다보면 그런 경우가 많았다. 목격자인 가정주부는 경비실을 돌아가는 스포츠머리 같은 남자의 뒷모습만 얼핏 봤다고 진술했다. 그것도 조서를 작성할 때 마다 횡설수설했다. 다시 그 남자를 봐도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고 처음 파출소에서 진술하기도 했다.

살인의 배경에 대해 죽은 여자의 언니는 이렇게 진술했다. 수지침을 놓으러 간 여동생을 비닐하우스에 살던 강철윤이 강간을 했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여동생에게 남편과 이혼을 강요해서 겁을 먹은 동생이 이혼하고 그의 비닐하우스에 가서 얼마간 동거했다고 했다. 죽은 여동생은 화장품 외판원, 보험회사원, 노래방 도우미 등을 했다고 말했다. 그 이후 그녀는 전남편과 바로 이혼하고 강철윤의 비닐하우스로 옮겨 동거했다는 것이다.

나는 강철윤이 경찰에서 뭐라고 진술했나 조서를 찾아보았다. 그의 주장은 전혀 달랐다. 그의 비닐하우스로 30대 말쯤 되는 여자가 수지침을 놓으러 찾아왔었다. 일을 하다가 허리를 삐끗했는데 침을 잘 놓는 여자가 있다고 후배로부터 소개를 받은 것이다. 여자는 엎드린 그에게 팬티를 내리게 하고 꼬리뼈 부근부터 수지침을 놓았다. 여자는 바로 돌아누우라고 했다. 그는 자극을 받은 상태여서 아래쪽이 묵직해지며 성기가 발기됐다. 여자는 엎드려 있는 그에게 천정을 보고 바로 누우라고 재촉했다. 그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팬티를 올리려고 하자 여자는 그냥 돌아누우라고 했다. 그가 돌아누웠다. 여자는 자연스럽게 곤두선 그의 성기를 입으로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때 강철윤의 큰딸이 찾아왔다. 그러자 여자는 바쁘게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죽은 여자의 언니와 강철윤은 모든 말이 상반됐다. 언니는 강철윤이 여동생에게 돈을 요구해 동생이 그 집을 빠져나왔다고 얘기했다. 문득 낮에 비닐하우스 옆에 살던 영감의 말이 떠올랐다. 젊은 여자를 데리고 살기가 어려워 보이더라고 했다. 그들 사이에는 뭔가 다른 원인이 있었다. 수사기록을 보면 오히려 죽은 여자가 강철윤의 통장에서 허락 없이 1000만 원을 빼간 바람에 강철윤으로부터 고소를 당한 사실이 있었다. 그녀는 노래방 도우미를 비롯해서 남자와 가까이하는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뭔가 느낌이 왔다. 죽은 여자는 혼자 사는 남자들을 등치는 꽃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고소까지 하니까 서로간의 감정은 이미 증오로 변질되었던 게 틀림없었다.

죽은 여자의 언니는 검찰에 가서 강철윤이 손도끼로 동생을 죽였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강철윤의 비닐하우스를 몇 번 갔는데 나무를 토막 낼 때 손도끼를 사용하는 걸 봤고 여동생에게도 여러 번 “손도끼로 찍어 죽인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믿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 말 한마디에  범행도구는 손도끼로 낙착된 것 같았다. 도끼를 통해 갑자기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이 떠올랐다.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는 전당포 노파를 몰래 찾아가 도끼로 그 자리에서 찍어 죽였다. 완전범죄였다. 그가 어떻게 도끼를 가지고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노파의 아파트로 가느냐 고민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는 코트 안에 끈으로 고리를 만들어 거기다가 도끼를 끼우고 범행 장소로 갔었다. 도중에 주인공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세심한 행동을 하면서 노파의 아파트로 스며들었다.

강철윤 도끼살인은 모든 게 무리한 추정과 조합인 느낌이 들었다. 《죄와 벌》에서는  도끼를 숨겨 갈 겨울과 코트라는 배경이 있었다. 목격되지 않은 노파가 사는 적막한 아파트가 범죄현장이었다. 강철윤의 경우는 그 반대였다. 한여름의 해 뜬 아침 한국의 도시였다. 남방셔츠를 입었던 강철윤은 도끼를 숨길 수 없었다. 주위에는 산책객이나 다니는 차들도 많았다. 사건현장부근에서 도끼는 발견되지 않았다. 목격자도 도끼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도끼살인은 수사기관이 만들어낸 억측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일한 목격자는 실제로 본 게 없었고 뒷머리가 짧아 보이더라는 게 전부였다. 언니의 말은 증오가 개입된 가짜일 수 있었다. 결정적인 증인 두 명의 진술에는 실질적인 알맹이가 없었다.

어느새 시계가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유리창 밖의 짙은 어둠으로 창은 검은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추고 있었다. 스탠드 아래 한 남자가 돋보기를 쓰고 서류를 들추는 모습이 보인다. 러닝셔츠에 헐렁한 바지차림이었다. 나는 이렇게 조용한 시각 편한 차림이라야 생각이 풀려나오는 것 같다. 다시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두 여자의 진술은 흔들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다음은 사건 전날 강철윤과 함께 있었다는 군대후배와 닭집 주인의 증언이었다. 그 말들도 진실한지 직접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

일요일 오후 4시. 부평전철역에서 내렸다. 역사 안은 나가는 길을 못 찾을 만큼 작은 상점들과 그 사이의 거미줄 같은 미로로 가득했다. 가게들에서 나오는 음악들이 합쳐져 소음을 넘어 굉음이 되어 귀가 얼얼했다. 나는 진땀을 흘리며 간신히 역 광장으로 빠져 나왔다. 광장 한 구석에 허름한 삼층 건물이 보였고 이층에 ‘로뎀 나무’라는 둥근 아크릴 간판을 붙인 찻집이 있었다. 나는 광장을 가로질러 찻집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구석 테이블에 오십대 남자 몇 명이 앉아 한가롭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역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창문 옆에 앉았다.

사건 전 날 강철윤과 함께 있었다는 군대후배라는 남자를 만나기 위해 몇 번 연락을 했었다. 그는 약속을 해 놓고는 몇 번씩 허탕을 치게 했다. 검찰에서 한 그의 진술은 강철윤이 살인을 할 수 있는 흉포한 성향인 걸 알려주고 있었다. 사실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평소 알고 지내던 군대후배로서는 말 중에 엄청난 악의가 스며들어 있는 걸 느꼈다. 진짜 그의 악의인지 형사나 검사의 조작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잠시 후 문 쪽에서 스포츠머리에 청바지를 입은 사십대 초쯤의 남자가 나타났다. 굵고 짙은 눈썹아래에 여자같이 예쁘장한 눈을 가진 미남이었다. 그가 두리번거리며 살피고 있었다. 검찰에서 진술한 군대후배라는 남자가 틀림없는 것 같았다. 내가 손을 들었다. 그가 내게 다가와 탁자를 가운데 두고 마주앉았다.

“변호사 맞죠? 저를 왜 만나자고 했죠?”
그가 탐색하는 눈길로 나를 훑어보았다. 눈동자가 흔들렸다.
“강철윤 씨 군대 후배라고 하셔서 몇 가지 확인해 보고 싶어서 뵙자고 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경계하는 그들의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겸손이 최고의 무기였다. 긴장했던 그의 얼굴이 펴지는 느낌이었다. 경계심이 옅어지는 것 같았다.

“재판은 어느 정도 진척되어 갑니까? 잘 되 갑니까?”
그의 얼굴에 호기심이 가득 떠올랐다.
“잘 안 됩니다.”
내가 고개를 흔들면서 난색을 표명했다. 순간 그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강철윤이 안 되기를 바라는 악의가 그의 얼굴 뒤에 감추어져 있는 것 같았다.
“왜요? 이 거 증거가 하나도 없는 사건 아닙니까?”
그가 마치 추리소설의 탐정이라도 되는 듯 결론을 지었다.
“그래도 그게….”
나는 힘들다는 얼굴로 얼버무렸다. 그의 눈동자가 부지런히 나의 함량이나 무게를 재고 있었다.
“오늘 저에게 알고 싶은 거나 부탁할 게 뭐 있습니까? 난 거의 아는 게 없어요.”
그는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표시했다.


(계속)



도끼살인은 수사기관이 만들어낸 억측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일한 목격자는 실제로 본 게 없었고
뒷머리가 짧아 보이더라는 게 전부였다.
결정적인 증인 두 명의 진술에는 실질적인 알맹이가 없었다.

[ 2011-10-24, 16:4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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