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곳에 있는 敵(적)
嚴相益 연재소설 ‘환상(幻想)살인’ <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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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유리한 걸 말해 줄 수는 없어요. 사형당할 수 있는 말이라면 몰라도.”


수사기관은 용의자의 주변 사람 중 그와 적대적인 감정이 있는 사람들만 불러 참고인 진술조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노리던 상대방을 파멸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가 온 것이다. 가장 무서운 敵(적)은 항상 가까이 있었다. 매일같이 만나 밥 먹고 술 마시던 후배가 그의 등에 비수를 단단히 박아 넣었다. 군대후배 황정식은 강철윤에게 은밀히 품었던 증오를 모략의 형태로 검사에게 진술했었다. 

“저는 검찰이나 어디 가서 한 마디도 한 적이 없어요.”
내 앞에서 황정식은 천연덕스럽게 잡아떼었다. 철면피한 저질의 인간이었다. 자신을 방어하려는 얕은꾀만 남아 있었다. 나는 그가 검사 앞에서 진술한 조서를 읽었었다. 그는 금세 들통 날 거짓을 능청스럽게 말하는 인간이었다. 
“검찰에 가서 이미 진술했던데요?”
내가 그를 빤히 보면서 정면으로 되물었다.   
“아니에요. 그런 적 절대 없어요.”

그가 뻔뻔스러울 정도로 부인했다. 대충 상황이 짐작됐다. 그는 나름대로 뭔가 믿는 게 있었다. 아마도 검사가 그에게 진술한 걸 아무도 모를 테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을 게 틀림없었다. 이런 종류의 인간들을 이용하고 검사들이 종종 써먹는 거짓말이다. 오리발을 내밀면서도 그는 뭔가 켕기는 얼굴이었다. 그가 내 눈치를 보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검찰에서 전화가 걸려 와서 한번 대답은 해준 것 같아요.”
나름대로 나중에 도망갈 길을 만들어 놓는 것 같았다.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이런 저질의 인간들을 몇 명만 매수하면 어떤 범인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판사들은 형식논리만 맞으면 그들의 말을 채택한다. 

“사건 전날 밤 강철윤과 함께 계셨죠?”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을 물었다. 내가 진짜 알고 싶어 하는 걸 그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하는 게 중요했다. 
“새벽 2시까지가 아니고 밤 10시경 헤어졌어요. 그때도 그 꼴통이 사업은 얘기 안하고 그 여자 말만 하더라구요. 그래서 하도 지겨워서 하나도 예쁘지 않은데 왜 그 여자 말만 하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어요.”
그의 말에는 악의가 가득 찼다. 어떻게 해서든지 강철윤이 살인범이라는 걸 내게 주입시키고 싶어 했다. 그의 얼굴은 당시를 떠올리며 넌더리나는 표정이었다. 강철윤을 ‘꼴통’이라고 노골적으로 깔아뭉갰다.  

“강철윤 씨는 공수부대 하사관으로 오래 근무 했죠?”
내가 물었다. 당연히 알고 있는 사항이다. 그러나 진짜를 묻기 이전에 나는 증오의 색깔과 농담(濃淡)을 알고 싶었다.
“맞아요. 그 꼴통이 하사관으로 근무했어요. 저도 생긴 건 이렇게 얌전하게 생겼지만 공수부대 출신이라니까요. 그래서 아는 건데 그 꼴통의 선배 하사관들 대부분은 월남참전 용사 출신이에요. 월남 갔다 온 인간들이 어떤 줄 아세요? 거기서 양민들을 꼬챙이로 산채로 꿰뚫어 죽인 걸 자랑하고 그랬어요. 강철윤은 그런 선배 놈들한테 잔인하게 사람 죽이는 거나 배운 쓰레기 같은 인간이죠. 사람하나 죽이는 거 개구리 잡는 거 같이 간단히 해 치울 인간이죠.”

그의 악의는 주저 없이 내게 강철윤을 살인범으로 몰아치고 있었다. 가까이 있는 미움을 가진 사람이 엎어지는 순간 이렇게 무서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제를 돌렸다.
“사건 전날 밤 강철윤의 머리형태가 어땠어요?”
내가 물었다. 목격자라는 주부는 범인이 스포츠머리라고 했다. 범행 몇 시간 전 함께 있었던 그가 본 강철윤의 머리모습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왜요?”
그가 경계의 눈빛으로 되물었다. 그는 순간순간 내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강철윤에게 호의적인 말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적의가 강하게 서려있었다. 설사 그게 진실이라고 할지라도.

“그냥 어떤 머리 형태였는지 사실만 말해 주세요.”
내가 속을 내보이지 않고 덤덤한 투로 다시 재촉했다.
“빡빡이죠 뭐. 머리에 뱀 껍질 같은 비듬이 훤히 보였어요. 불결해 보였어요.”
나는 귀가 번쩍 뜨였다. 적의가 가득한 그의 입에서 나온 그 한마디는 강철윤이 범인이 아니라는 걸 확인해 주고 있었다. 
결정적인 엄청난 수확이었다. 진짜 범인은 스포츠머리의 다른 인물이거나 목격자의 부정확한 기억일 수 있었다. 문제는 이런 진실을 발견한 장소가 법정이 아니고 커피숍이라는 것이다. 변호사인 내 말이 진실이라도 법원은 믿지 않을게 틀림없다. 녹음을 했어도 상대방의 허락이 없으면 증거능력이 없었다. 진실이 형식에 의해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앞에 앉은 황정식이 질문의 취지를 알아챘다면 절대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법정에 나와도 검찰 측 증인인 그에게 기대할 게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진실은 알았다.

“강철윤이 빡빡머리면 모자를 쓰고 다녔나요?”
내가 이중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강철윤과 나는 같은 세대였다. 우리 세대는 머리를 빡빡 깎으면 모자를 쓰는 습관이 있었다. 군인이거나 교도소에서 출감한 것으로 오해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항상 모자를 쓰고 다녔죠. 왜 묻죠?”
그가 되물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범행현장에서 목격됐다는 범인이 강철윤이라고 한다면 모자를 썼어야 했다. 아니면 빡빡머리가 바로 눈에 띄었어야 했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앞에 앉은 군대 후배라는 남자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아마도 내가 자기와 살인사건에 대해 탐정소설 같이 거창한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수사정보라도 알아볼 심산으로 나온 것 같았다. 아니면 미국 영화처럼 자신에게 돈이라도 제시하며 증언을 부탁할 줄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얼굴에 ‘아 변호사 별 볼일 없구나’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나는 기대이상의 수확을 얻어내고 있었다. 그가 진술한 조서를 보면 강철윤이 범행 후 태백산으로 도주하는데 도피자금을 마치 그가 댄 것처럼 말했다. 그것도 확인 해 볼 필요가 있었다.
“강철윤씨가 태백산으로 가기로 한 건 어떻게 된 겁니까?”
이미 그는 나를 깔보고 경계심을 풀은 상태였다. 그의 얼굴에 나를 가지고 놀고 싶은 심술궂은 빛이 떠올랐다. 
“그거 말입니까? 그 꼴통이 만나기만 하면 그 여자 얘기를 하기에 내가 ‘차라리 태백산에 들어가 도나 닦고 오쇼, 형님’하고 권했어요. 그 말에 태백산으로 떠나기로 했던 거죠.”
그렇다면 도주의 의도가 아닌 것이다. 

“정확히 그 시점이 언제죠? 사건 무렵인가요?”
내가 다시 물었다.
“아니 그 한참 전이죠.”
도주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얘기였다. 그가 덧붙였다.
“후배 철식이도 형님 어디 가서 바람을 쐬라고 했어요.”
“왜 태백산이죠?”
내가 다시 물었다.
“그 꼴통이 무당기가 있어요. 사기치는 건지 어떤 건지 몰라도 부처를 사다놓고 신당을 차렸다니까요. 젊은 여자도 점쳐 준다면서 껌뻑 넘어가게 했을 거예요.”
비닐하우스에서 본 굿을 하는 무구들이 그것이었다.

“태백산으로 가라고 돈을 주셨다면서요?”
그는 검사에게 도피자금이라고 했었다.
“제가 조경공사를 소개해 주겠다고 하면서 강철윤에게 돈을 꿔 쓴 일이 있어요. 공사가 입맛에 맞지 않았는지 자기가 준 돈을 도로 달라고 하더라고요. 강철윤은 보통 저에게 새벽4시에서 6시 사이에 전화를 걸어왔어요. 그 시간에 저는 잠을 자는 시간인데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강철윤은 제가 그 돈을 주면 태백산에 들어가서 기도를 드린다고 했죠. 돈 받으려고 독하게 하는 그 꼴통 정말 진저리나는 미친놈이죠.”

그가 왜 악의를 가졌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강철윤에게 공사를 미끼로 돈을 우려냈다. 후에 강철윤 역시 집요하게 그로부터 돈을 받아낸 것이다. 사건이 터지자 그는 기회가 왔다는 듯 뒤에서 강철윤에게 보복을 한 것이다.
“저를 법정에 부르시는 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그가 나에게 경고조로 말했다.
“진실만 그냥 말해주면 안되겠습니까?”
내가 사정했다. 그는 결정적인 증인이었다.

“아 그야 그렇지만 상황에 따라서 나는 오히려 반대로 갈지도 몰라요. 절대 유리한 걸 말해 줄 수는 없어요. 사형당할 수 있는 말이라면 몰라도. 예를 들면 강철윤이 사건 무렵 죽은 여자가 사는 아파트 주위를 배회했다 이런 걸 증언할 수도 있어요. 난 거기까진 하고 싶지 않아요. 변호사님. 하여튼 알아서 잘하쇼. 어때요? 내가 안 가는 게 낫겠지?”
그가 빙글거리는 표정으로 나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계속)


“결정적으로 불리한 사실을 증언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빼도 박지도 못하고 사형이 되겠죠?
그렇게 해 줄까요?”

[ 2011-10-26, 17:3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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