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여자의 조용한 남편
嚴相益 연재소설 ‘환상(幻想)살인’ <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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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 앞 나무의자에 40대쯤의 여자가 보였다. 그녀는 괴로운 듯, 허리를 굽히고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옆에 있는 남자가 그녀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나는 순간 고개를 들어 올리던 그녀의 시선과 부딪쳤다. 그녀의 눈에서 유리 파편 같은 파란 불꽃이 튀어 나왔다. 공포영화 속의 저주받은 귀신의 눈 같은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법정으로 들어갔다. 죽은 여자의 언니가 증인으로 나오는 날이었다. 사실 이 재판의 본질은 강철윤에 대한 죽은 여자 언니의 면도날 같은 증오였다. 그녀는 검찰 측 증인이었다. 변호사인 나는 그녀의  말들이 과연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를 철저히 확인할 의무가 있었다. 기록으로 보는 그녀의 모든 진술은 추측일 뿐이었다. 그러나 검찰이나 일심재판부의 결론은 거기서 나왔다. 내 차례가 됐다. 올라가 변호사석에 앉았다.

“송양자 증인 나오세요.”
재판장이 불렀다. 방청석 뒤쪽에서 청바지를 입은 여자가 내 앞의 증언대로 나왔다. 아까 봤던 그 여자였다. 그녀가 재판장을 보면서 사정했다.
“재판장님 저는 그 사람 앞에서는 오금이 얼어붙어 말을 못하겠어요.”
얇은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강철윤은 아직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강철윤 피고인을 나오지 못하게 하세요.”
재판장이 앞에 서 있던 교도관에게 명령했다.

검사의 신문이 시작됐다. 이미 경찰과 검찰에서 모든 조서가 작성되어 절차가 간단했다. 그동안 작성된 모든 조서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확인해 주면 되는 것이다. 변호사인 내가 신문할 차례였다. 그녀의 적대감을 희석시켜야 할 것 같았다. 객관적인 입장에 서 있는 걸 그녀에게 인식시키고 싶었다. 변호사라고 살인범을 무조건 두둔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표정을 온화하게 하려고 애쓰면서 먼저 그녀 측에 불리하지 않는 무색투명한 질문부터 시작했다.

“강철윤이 사건발생 무렵 아파트 근처를 배회했습니까?”
“제가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새벽 6시경만 되면 돌아다니는 걸 이웃 할머니나 주변사람들이 봤다고 했어요.”
“강철윤이 동생에게 집착 했나요?”
강철윤이 살던 동네 영감은 젊은 여자를 데리고 살기가 힘든 것 같더라고 찾아간 내게 말했었다. 

“데리고 살면서도 문을 잠그고 나가지 못하게 할 정도였어요. 심지어 어디 나갈 때는 차에 태워서 데리고 다녔어요.”
언니의 대답이었다. 그 정도인데 과연 죽일 수 있을까? 나는 다른 범인의 존재 가능성을 언니를 통해 확인하고 싶었다.
“죽은 동생 송양숙이 강철윤을 만나고 한 달 만에 이혼했던데 어떻습니까?”
수사기록에 그렇게 나와 있었다.
“그 남자한테 수지침을 놓으러 갔다가 강간당해 죄책감 때문에 그랬습니다.”
이상했다. 그렇다면 죽은 여자가 노래방 도우미 같은 직업은 왜했을까? 거짓의 냄새가 풍겼다.

“동생이 전남편과 협의 이혼하고 바로 강철윤의 비닐하우스로 가서 동거하기 시작했다죠?”
“그랬습니다.”
“강간을 당하고 바로 그 남자가 좋아져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런 건가요?”
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강간당한 면도 있고 동생이 좋아서 그런 점도 있습니다.”
말이 바뀌고 있었다. 강간은 아니었다. 수지침을 놓으면서 성적 자극을 주고 적극적으로 대쉬하더라는 강철윤의 말이 더 신빙성이 있는 것 같았다.

“아내가 강간을 당하고 남편까지 버렸는데 전남편은 어떻게 했나요? 협의이혼을 해 줬다고 하는데 맞나요?”
“워낙 착한 사람이라 화는 났겠지만 행복하게 살라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워낙 착하다?”
“그렇습니다.”
“전남편은 아내를 강간했다는 아니 아예 빼앗아버린 강철윤을 찾아가 따지거나 싸운 적이 있어요?”
“그런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남편이 혹시 강철윤보다 아내였던 죽은 송양숙에게 더 분노와 배신감을 가졌던 건 아닌가요?”
죽은 여자의 행동이 오랫동안 흐트러져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남편은 속으로 분노를 차곡차곡 쌓아놓았을 수도 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흔들며 부인했다.
“죽은 동생이 전남편과 문제점이 없었나요?”
“아무런 문제점도 없었습니다. 동생은 단지 강간당한 죄책감 때문에 남편의 곁으로 갈 수가 없어서 이혼했습니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내가 계속했다.
“사건당일 아침 상황이 어땠습니까?”
“검찰에서 이미 얘기 다 했는데요.”
“다시 이 자리에서 해 주세요.”
“동생이 일 나가는 어머니를 배웅했어요. 방에 있는데 밖에서 ‘악’하는 동생의 비명소리와 동시에 퍽하고 쓰러지는 소리가 났어요. 며칠 전에 강철윤이 동생을 아파트 앞 호프집 지하로 끌고 가서 목을 조르면서 죽인다고 했고 앞으로 조심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늘 동생을 지키고 있었어요. 소리를 듣고 뛰어나가 보니까 동생이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었어요.”

“비명소리를 듣고 뛰어나 간 시간은 몇 초 정도 걸렸어요?”
“한 30초나 1분 정도 사이였을 거예요.”
몇 미터 되는 거린데 너무 시간이 길었다. 정확하지 못한 여자였다.
“아파트 문은 어떤 상태였어요?”
“약간 열려있었어요.”
“범인을 목격했나요?”
“보지는 못하고 쓰러져 있는 동생한테 그 새끼가 와서 이랬느냐고 물어보니까 동생이 뭐라고 입술을 움직이는데 말이 되어 나오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순간적으로 앞으로 뛰어가 봤는데 아무도 없었어요. ‘누가 범인을 못 봤느냐’고 울부짖었죠.”

갑자기 “흐윽”하면서 그녀가 오열했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 그녀가 진정하면서 말을 계속했다.
“사실은 말이죠, 며칠 전부터 동생이 죽을 것 같아서 우리 둘이 경찰서에 가서 신변보호요청을 했었어요. 그런데도 경찰이 들어주지 않았어요. 으으으.”
그녀가 절규했다. 강철윤은 그녀가 철저히 꾸미고 연기한다고 말했었다. 어느 부분에서는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자매가 그에게 공포심을 느꼈던 건 사실인 것 같았다.
“신변보호요청을 한 건 강철윤이 해칠까봐 그런 겁니까?”
“예….”
그녀가 울면서 대답했다. 

“아파트 4층에 사는 여자가 범인을 봤다고 그랬죠?”
“그랬어요.”
“뭐라고 그러던가요?”
“뒷모습만 봤는데 머리가 짧았다고 했어요.”
“그래서 바로 강철윤이라고 단정했군요?”
“네 강철윤은 머리가 빡빡 이었거든요.”
다시 다른 가능성을 짚어보고 싶었다. 원한을 가진 전남편이 강철윤에게 혐의를 덮어씌우면서 살인을 했을 가능성 말이다.

“동생이 전남편과 이혼 하자고 할 때 싸운 적이 없어요?”
내가 물었다. 부부사이였다면 그래야 맞다.
“그런 적 없어요. 동생 전남편은 자기가 잘해주지 못해서 동생이 나간 것으로 생각해서 저를 붙잡고 미안하다면서 오히려 사죄하기도 했어요.”
그것도 정상을 벗어난 행동이었다. 또 다른 가능성을 물었다.
“동생 전남편의 친구 중에서 스포츠 머리를 한 사람이 있었죠? 자주 만난 적이 있다고 하는데 누굽니까?”
강철윤이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고 내게 말했었다.

“동생은 부부생활까지도 저에게 말을 다 했기 때문에 숨기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건 모르겠습니다.”
“온가족이 모여서 강철윤의 비닐하우스로 간 적이 있지요?”
내가 수사 기록에서 본 걸 떠올리면서 물었다.
“동생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그 남자가 너무 때리고 못살게 군다고 해서 남동생들을 데리고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전남편도 함께 갔다고 하던데?”
“같이 갔어요.”
“이혼을 했는데도 전남편이 같이 갔나요?”
“그 사람은 워낙 착해서 동생이 떠나간 후에도 우리하고는 마찬가지로 친하게 지냈어요.”

“그때 집으로 돌아온 동생은 전남편하고 다시 살았나요?”
“어머니하고 저하고 같이 살았어요.”
“그 무렵 전남편한테서 전화가 오거나 한 적이 있어요?”
“없습니다.”
“같이 강철윤의 비닐하우스에 가서 동생을 데려올 정도인데 전화 한 번 안 왔나요?”
“그런 적 없어요”
전남편의 행동이 이상했다.

(계속)

 

 

“남편이 혹시 강철윤보다 아내였던 죽은 송양숙에게
더 분노와 배신감을 가졌던 건 아닌가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워낙 착한 사람이라 행복하게 살라고 그랬습니다.”

[ 2011-11-04, 10:3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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