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하는 증인, 자신 없는 약한 증인
嚴相益 연재소설 ‘환상(幻想)살인’ <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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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대에서 죽은 여자의 언니는 공포에 떨고 있었다. 강철윤이 살인범이라고 생각하고 겁을 먹고 있는 것이다. 한밤중에 고무호수 조각을 뱀으로 알고 밟으면 그의 인식 속에서 그건 진짜 뱀이 된다. 낮이 되어 그걸 보고 만져 확인하기 전에는 인식을 바꾸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녀의 말은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모호했다. 배석판사가 재판장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의문이 나는 걸 직접 물어보려고 상의하는 것 같았다. 바뀐 재판장보다는 주심인 그가 상황을 많이 알고 있었다. 이윽고 배석판사가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증인은 뒤에 있는 강철윤한테서 동생에게 편지가 많이 온 걸 알죠?”
“예?? 아악!!”
그녀가 갑자기 소스라치며 뒤로 넘어질 듯 휘청거렸다.
“왜 그래요?”
재판장이 깜짝 놀라 물었다.
“뒤에 그 사람이 있었어요?”
그녀가 얼굴이 사색이 된 채 돌아보지도 못하고 물었다.
“아니요 없어요.”
배석판사가 대답했다. 그녀가 얼른 고개를 돌려 피고인석을 봤다. 아무도 없는 허공이었다.

“뒤에 그 놈이 있다고 판사님이 말하니까 내가 놀랐잖아요?”
그녀가 배석판사에게 항의했다.
“판사님이 조금 전에 뭐라고 물었어요?”
그녀가 안정을 하고 배석판사에게 다시 확인했다.
“강철윤한테서 죽은 동생에게 협박편지가 많이 왔냐고요?”
“엄청 많이 받았어요. 처음에는 동생하고 같이 읽었는데 나중에는 하도 많이 와서 보지도 않았어요.”

“편지 중에 도끼로 찍어죽이겠다는 말이 있던가요?”
“그런 내용은 못 봤어요.”
배석판사가 질문을 끝냈다.
“증인 수고했습니다. 돌아가세요.”
재판장이 말했다. 죽은 여자 언니의 공포를 보면서 나는 강철윤의 한 부분을 본 것 같았다. 그녀가 증언석에서 일어나 법정 밖으로 나갔다. 다음 증인이 증언 석으로 올라왔다. 유일한 목격자인 가정주부였다. 재판장이 앞에 있는 교도관에게 명령했다.
“강철윤을 데려다 뒤통수를 증인이 볼 수 있도록 세우세요.”
잠시 후 교도관들이 강철윤을 끌고나와 뒤로 돌려 세웠다.

“피고인은 시선을 뒤로 돌리지 말아요.”
재판장이 강철윤에게 명령했다. 재판장이 증인으로 나온 주부에게 물었다.
“지금 뒷모습이 보이죠?”
증인으로 나온 가정주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강철윤의 뒤통수를 보았다. 그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관찰하고 있었다. 잠시 후 재판장이 강철윤에게 명령했다.
“자 피고인은 다시 대기실에 들어가 있어요.”
교도관들이 뒤를 돌아다보지 못하게 하면서 그를 이끌고 사라졌다.  증인으로 나온 목격자인 가정주부는 사십대 초쯤으로 선량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녀가 호소했다.

“재판장님, 남편은 운전수고 저는 파출부로 일 나가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요. 경찰에, 검찰에, 법원에 그리고 이번에는 고등법원에 재판 때마다 불려오고 있는데 정말 다시는 안 오게 해 주세요.”
유일한 목격자가 되어버린 그녀도 힘들 것 같았다. 정확하지 않은 기억 한 장면을 가지고 자꾸만 다그치는 셈이다. 재판장이 그녀를 달랬다.
“힘든 점은 압니다. 법원으로서도 혹시나 무고한 사람을 살인범으로 만들지도 모르고 또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려다보니까 이렇게 오시도록 한 겁니다. 범인을 정확히 판단해서 올바르게 판결하려는 재판부의 고충도 이해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재판장의 겸손한 말에 그녀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검사의 신문은 없었다. 변호사인 내가 묻기 시작했다.
“지금도 창문에서 봤던 남자의 기억이 생생하십니까?”
“어느 정도는 납니다.”
“정확히 어떤 모습을 기억하시죠?”
“얼굴은 보지 못하고 멀리서 뒷모습만 봤죠.”
“모자를 쓰고 있던가요?”
“안 쓰고 있었어요.”
강철윤의 평소 버릇이라면 모자를 쓰고 있어야 맞다. 범죄를 계획했다면 빡빡머리를 감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조서를 보면 머리가 짧은 것 같다고 진술했는데 좀 더 세밀하게 말씀해 주시죠. 빡빡이였나요 스포츠머리였나요, 아니면 위와 옆이 밤송이 같이 수북했다고 느꼈나요?”
스포츠라고 하면 범인이 아니고 밤송이 같다고 하면 재판장이 오해할 수도 있었다. 공식적으로 이발소에서 깍은 지 한 달가량이 지났기 때문이다. 하루 전에 봤던 후배는 나에게 빡빡머리에서 뱀 껍질 같은 비듬 한 조각까지 봤다고 진실을 얘기해 줬다.
“내가 본 건 빡빡머리는 아니고 스포츠형에 가까웠습니다. 아까 본 그 사람 머리는 사건당시 내가 본 남자 머리보다 많이 짧은 것 같아요.”

그렇다면 목격자가 본 남자는 확실히 강철윤이 아니었다. 정확히 한 달 전에 머리를 빡빡 깎게 하고 나서 지금 목격자에게 보게 한 것이다. 그래도 자기가 본 것 보다 머리가 짧다는 것이다. 나는 다음 질문으로 들어갔다.
“당시 본 남자의 입고 있던 옷이 티셔츠였어요, 아니면 남방입니까? 그리고 색깔은 어땠어요?”
경찰의 조서에는 그 남자의 키와 입은 바지 등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강철윤의 옷장에서 적당히 고른 옷을 보고 유도했을 수도 있다. 그걸 깨기 위한 것이다.
“멀리서 봤기 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파출소 경찰관이 작성한 첫 번째 진술조서를 그녀에게 보이면서 물었다.
“증인은 사건당일 범인을 다시 봐도 모를 것 같다고 파출소에서 진술했던데 기억납니까?”
난 그렇게 적혀 있는 부분을 구체적으로 그녀에게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 동네 파출소에 가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본서에서 형사가 와서 사진을 보이면서 이 사람 맞느냐고 물으니까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사실인가요?”
“그랬습니다.”

“그날 다시 봐도 모르겠다고 대답하셨는데 며칠 후에 뒤통수 사진만 가지고 와서 형사가 보였는데 그렇게 말한 이유는 뭐죠?”
“예감이라는 게 있잖아요? 느낌이 비슷했습니다.”
“단순한 느낌이었다, 그겁니까?”
“그렇습니다.”
“증인은 경찰에서는 그 남자의 얼굴을 봤다는 얘기가 전혀 없다가 검사에게는 그 남자가 흘낏 뒤를 돌아다 본 것 같다고 다르게 진술하셨는데 왜 그랬습니까?”
“경찰에서 물어보지 않아서 대답하지 않았죠. 검사가 묻기에 약간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어요.”

나는 그녀가 미세한 차이를 기억하고 있는지 한 번 테스트해 보기로 했다.
“증인이 경찰에서 진술한 걸 보면 119에 먼저 신고하고 쓰러져 있는 여자를 보러 내려갔다고 적혀 있어요. 반면에 검찰에서의 진술을 보면 먼저 죽은 여자를 보고 그 다음에 신고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어떤 게 사실입니까?”
“그 여자가 쓰러져 있는 걸 보고 제가 119에 신고하니 이미 다른 사람이 신고하여 접수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려가니 몇몇 사람이 모여 있었습니다.”
“증인은 검사에게 불려갔을 때 목격한 남자의 머리가 어떻다고 했어요?”
“스포츠 보다 긴 편이라고 했습니다.”

그녀가 처음 말한 건 짧은 머리였다. 다음은 스포츠 머리였다. 그 다음은 스포츠 보다 긴 편이라고 했다. 그 어느 말도 정확하지 않았다.
“증인은 일심에서 증언한 적이 있지요? 그때는 뭐라고 하셨어요?”
난 당시 기록을 보면서 그녀에게 확인했다. 기록에는 전경 스타일로 앞은 조금길고 뒷머리는 스포츠형이고 옆모습은 못 봤다고 써 있었다. 나는 그 부분을 그녀에게 읽어주었다.
“저는 증인으로 나가서 그런 말은 하지 않았는데요.”
그녀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마지막 질문을 했다.

“증인보다 먼저 119에 신고한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이 범인을 목격했다는 진술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신고한 증인이 범인을 봤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는데 어떻습니까?”
내가 물었다.
“…”
그녀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재판장님 저도 몇 개만 질문하겠습니다.”
공판검사가 재판장에게 요청했다. 검사가 물었다.
“아까 본 사람이 당시 봤던 뒷모습과 다른 점이 있어요?”
“그 당시 본 건 지금보다 머리가 길었어요.”
“체격은 어떤가요?”
“그때 보다 살이 찐 것 같습니다.”
“키는 어떤가요?”
“그때는 컸던 것 같습니다.”

목격자의 증언은 강철윤이 범인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재판장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증인이 본 남자의 머리모습을 최종 정리하면 어떤 거죠?”
“스포츠보다 긴 상태였습니다.”
“증인이 목격한 그 사람이 강철윤인가요?”
“모르겠습니다.”


(계속)

 

“사건당일 범인을 다시 봐도 모를 것 같다고 진술했던데 기억납니까?
그런데 한참 후 사진만 가지고 와서 형사가 보였는데
범인이라고 한 이유는 뭐죠?”

“예감이라는 게 있잖아요.”

[ 2011-11-07, 16:1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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