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인들을 찾아가 확인하는 변호사
嚴相益 연재소설 ‘환상(幻想)살인’<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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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일요일 저녁이다. 나는 김포의 들판을 가로지르는 택시에 앉아 차창 밖을 보고 있었다. 옆에는 나의 조수격이 되어 버린 강철윤의 동생이 앉아 있었다. 땅거미가 내리면서 길가의 모텔들이 현란한 빛들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검찰에서 참고인으로 진술했던 사료가게 주인을 직접 찾아 나섰다. 수사가 조작된 느낌이 들었다. 강철윤을 일단 살인범으로 찍고 나서  주변사람을 이용해 정황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 같았다. 그게 수사기관의 현실이었다. 강력반 형사들은 살인범을 검거하면 인사평정에서 몇 십 점을 받는다. 검사역시 살인범을 기소해서 유죄판결을 받아내면 공명심(功名心)이 충족된다. 판사들 역시 그대로 유죄판결을 내버리면 일이 쉽다. 판결문도 기계적인 양식의 빈칸만 채워 넣으면 되는 셈이다.

반면 무죄판결을 선고하려면 심리와 판결문 작성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검찰과의 관계도 껄끄러워진다. 마음 한 구석에는 검찰이 어련히 알아서 수사를 했겠지 하는 선입견도 있다. 정의가 실종된 그런 사각지대에서 누명이 씌워지기도 했다. 나쁜 형사는 조작의 주체인 경우가 많다. 검사를 믿을 수 없었다. 현장을 확인하는 검사를 별로 보지 못했다. 하나하나를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사료가게 주인을 찾아갔다가 박살날 뻔 했어요.”
 옆에 앉은 강철윤의 동생이 말했다. 나는 참고인 진술을 한 사료가게 여자를 만나보라고 했었다. 수사기록을 보면 도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강철윤이 급하게 닭을 사료가게에 처분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가 계속했다.
“전화를 했더니 사료가게 여자 남편이 받았어요. 제가 형 문제 때문에 그런다고 했더니 자기네는 아무 할 말이 없다면서 전화를 딱 끊어버리는 거예요.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또 끊어요. 그러면서 자기도 수사계통에서 일했는데 자꾸 귀찮게 굴면 가만 놔두지 않겠다고 겁을 주더라고요.”

참고인을 따로 만나 확인하기란 힘들었다. 그가 덧붙였다.
“제가 다시 전화를 걸어 경찰에 말해준 내용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렇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자기네는 경찰에 가서 써준 거 없다면서 또 끊어버리는 거예요. 계속 전화를 걸다가 직접 그 가게를 찾아갔죠. 오십대 초쯤 될까 납작하게 얼굴이 생긴 남자가 나를 보더니 자기 집사람이 이 사건 때문에 몸이 아프고 할 말이 없으니 가라면서 내쫓더라고요. 제가 다니는 은행에 결근계를 내고 왔다고 사정사정했죠. 그랬더니 안 가면 파출소에 신고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더라고요. 제가 악이 나서 그럼 마음대로 신고를 하라고 했죠. 그랬더니 그 남자가 조금 수그러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남자에게 이 사건 기록 중 그 부인이 진술한 조서를 보여줬어요. 그걸 본 남자는 ‘병신 같은 년이 혼자 똑똑한 체 하더니 이런 건 왜 써주는 거야? 나한테는 써 준 적 없다더니’라고 내뱉었어요. 그러면서 가게 밖으로 나가 버리는 거예요. 제가 졸졸 따라 나갔죠.

그러면서 성함이라도 알려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 남자가 자기 이름은 왜 알려고 하느냐면서 저를 쫓아냈어요.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찾아갔죠. 이번에는 여자 두 명이 앉아 있었어요. 저는 복사한 조서를 보여주면서 ‘정말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틀리는지 봐주기나 하세요’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한 여자가 ‘나가요’하고 앙칼지게 쏘아붙이는 거예요. 그때 다른 여자가 언니 같았는데 ‘가만 있어봐’라고 하면서 그 조서를 봤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법원에 안 가게 해준다고 해서 그랬는데 정말 골치 아프네’라고 하면서 밖에 세워둔 봉고차 쪽으로 갔어요. 따라갔더니 그 차를 타고 도망가듯 가버리는 거예요. 정말 은행원 생활만 27년 했던 저는 ‘이런 세상도 있구나’하고 답답했어요. 변호사님이 시킨 대로 제가 독하게 계속 또 찾아갔죠. 그랬더니 어제 비로소 내가 아니고 변호사가 오면 말은 해줄 수 있다는 허락을 받은 거예요.”

택시 안에서 나는 다시 사료가게 여자의 진술조서를 꺼내 확인했다. 내용은 대충 이랬다. 지난 봄 강철윤이 함께 사는 여자와 함께 그녀가 하는 사료가게에 왔다. 사료가게에서는 병아리도 팔았다. 두 번인가 사료를 비닐하우스로 가져다 준 적이 있기 때문에 강철윤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강철윤은 비닐하우스에서 한여름 백숙을 만들어 팔기 위해 병아리들을 사러 왔다. 두 달쯤 흐른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강철윤이 전화를 걸어 병아리들을 다시 사가라고 했다. 당뇨가 있어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번 판 병아리는 다시 사지 않는데 워낙 협박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그렇게 했다.

닭이 다 된 병아리들을 가져오려고 찾아갔더니 강철윤이 비닐하우스에 없었다. 할 수 없이 그 닭들을 가져오고 돈을 보내려고 핸드폰을 했더니 번호도 바뀌어 통화가 되지 않았다. 사료를 가져다 줄 당시 강철윤의 머리 형태는 상고머리였다. 그게 형사가 작성한 사료가게 여자의 진술의 요지였다. 어설픈 조작의 냄새가 났다. 강철윤의 머리는 봤다면 빡빡이어야 맞다. 상고머리가 아니었다. 형사들은 그 여자를 이용해서 살인범과 강철윤을 동일시 한 것이다. 갑자기 닭을 다시 사가라고 한 날도 살인사건이 발생한 일자에 맞추었다.

택시는 계속 해가 저물어가는 김포 평야를 달리고 있었다. 도로 옆으로 펼쳐진 거뭇한 논들 중간 중간에 중기대여업소, 고물상들의 간판이 보였다. 사료가게는 강화로 들어가기 직전 길가에 있었다. 그곳은 시골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었다. 방앗간, 떡집, 한약방이 문을 닫은 채 적막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어둠침침한 밤길을 걸었다. 잠시 후 ‘가축농산’이라고 양철 위에 페인트로 쓴 간판이 보였다. 문에 걸어놓은 알전구가 어둠속에서 반짝였다. 안으로 들어섰다. 시멘트 바닥위에 사료포대가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뒤쪽 구석방에서 오십대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미닫이문을 열고 나왔다.

“변호삽니다. 강철윤 사건을 맡은….”
나는 겸손하게 말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 남자는 아래위로 힐끗 나를 쳐다봤다.
“변호사? 집사람 성당 갔어요. 오려면 한 시간 반 정도 있어야 할 텐데.”
그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내뱉었다.
“그럼 기다리다가 다시 오겠습니다.”
 나는 밖으로 나왔다. 기다리고 있던 강철윤의 동생과 함께 어두운 마을길을 걸었다. 십 여분 걸으니까 시골다방의 간판이 보였다. 낡은 이층 건물이었다. 지하로 통하는 구멍 같은 계단을 내려갔다. 곰팡이 냄새가 났다. 베니어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방 내부는 30년 전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싸구려 비닐소파,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짜 수초가 들어있는 어항, 탁자 위의 통성냥들이 그것이었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구석의 텔레비전의 화면 속에서는 출연자들의 수다가 한창이었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카운터 뒤에서 무료한 표정을 짓고 있던 레지가 다가왔다.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사이다 한 병 주세요.”
앞에 앉은 강철윤의 동생이 주문하고 씁쓸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주위 사람의 도움을 얻기가 이렇게 힘든걸 보면 우리 형이 평소 얼마나 처신을 잘못하고 인덕을 쌓지 못 했나 느껴집니다.”
그랬다. 강철윤의 주위에는 악연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형과 사업을 했던 군대후배들이 왜 등을 돌리죠?”
그 정도가 아니라 그들은 이 기회에 강철윤이 파멸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형이 그 사람들에게 돈을 꿔 준 일이 많았어요. 그 사람들은 형이 무기징역을 받으니까 그것만 생각하는 거예요. 정말 세상인심이 야박해요. 형이 나오면 돈을 갚아야 하고 무기징역이 확정되면 그 사람들은 돈을 안 갚아도 되거든요. 차라리 돈을 꿔주지 않았으면 그 사람들이 도왔을 거예요.”
원망스런 어조였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제가 국민학교 4학년 때였어요. 아버지가 추석날 제 바지하고 티셔츠를 사왔어요. 형 것은 없고 제 것만 아버지가 사 준 거예요. 아버지는 동생인 저를 특히 편애하셨거든요. 형하고 나하고 두 살 차이밖에 되지 않는데 형은 어린 마음에 얼마나 가슴에 그게 맺히고 슬펐겠어요? 한 번은 아버지가 운동화도 제 것만 사다 준 적이 있어요. 이상하게 막내인 저만 예뻐하고 형은 냉대했어요. 그때 어린 나도 형이 안돼서 아버지가 사다준 옷 중 바지는 내가 입고 티셔츠는 형을 줬어요. 다른 형제들 같으면 아버지가 없을 때 나에게 화를 내거나 괴롭힐 텐데 형은 어려도 전혀 그런 티를 낸 적이 없어요. 그걸 보면 의외로 속이 넓은 사람이에요. 누가 섭섭하게 했다고 해서 마음에 품고 있다가 해코지 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그런 성격이라면 화가 나도 함께 살던 송양숙을 죽일 리가 없었다. 강철윤은 도망간 아내에게도 복수를 한 적이 없었다. 동생이 말을 계속했다.
“형이 유치장에 들어갔을 때도 참 바보처럼 사람들을 무조건 믿었어요. 죽은 여자의 언니를 자기편으로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한동안은 둘이 무척 친했거든요. 죽은 여자의 언니가 형사들에게 할 말 안 할 말 다해서 형을 살인범으로 만든 조서를 나중에 보고서야 자기편이 아니란 걸 형은 알았어요. 그리고 주위의 군대후배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형은 그 사람들이 자기편이라 잘 말해주면 곧 무혐의로 나갈 거로 확신을 했었죠.”

(계속)


의외로 속이 넓은 사람이에요.
누가 섭섭하게 했다고 해서 마음에 품고 있다가
해코지 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사람들을 무조건 믿었어요.
죽은 여자의 언니를 자기편으로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 2011-11-18, 13:3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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