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들이 쓰는 삼류 조서문학
嚴相益 연재소설 ‘환상(幻想)살인’<1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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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알전구 빛이 어둠침침하게 비치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사료가게 여자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까 그 남자가 전화기를 들고 너털웃음을 웃으며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 말이야, 우리 친목회 말이지….”
그 남자는 우리를 힐끗 보고도 계속 수다를 떨었다. 그는 강철윤의 동생을 불편해 하는 것 같았다. 내가 강철윤의 동생을 보고 말했다.
“마을 가게에 가서 주스라도 한 박스 사오시죠.”

동생이 없어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내 뜻을 알아채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구석 의자에 가서 앉았다. 남자의 수다에서 그의 과시와 거들먹거림이 느껴졌다. 이런 종류의 인간은 살인사건 얘기만 들어도 혼자 입으로 범인까지 만들어 내곤 했다. 사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가게로 들어왔다. 흰색 티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여자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못마땅한 듯 내뱉었다. 

“형사들이 와서 못살게 굴더니 이번엔 변호사까지 그러네. 형사들이 자기네들한테 조서를 받으면 절대로 법원에 가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안 가도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법원에서 오라고 연락이 왔기에 못 간다고 했죠. 그런데 이번에는 변호사가 왔어요?”
증인이 법정에 나타나지 않는 데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법원에서 소환하면 끌고 가야 할 경찰이 오히려 반대로 못 나가게 하는 것이다. 판사들이 한 쪽 눈을 가리고 수사기관의 조서만을 보게 하는 공정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공판기록에는 심장병으로 입원해서 법원에 못 나온다는 사유서가 붙어 있었다. 난 물러날 수 없었다.

“와보니 심장병이 아닌 것 같네요?”
내가 그녀의 거짓말을 지적했다. 그녀가 움찔하는 눈치였다.
“아무튼 법정엔 절대로 나가지 않을 거예요.”
그 여자는 단호히 못 박았다.
“그래서 변호사가 이렇게 온 게 아닙니까. 형사가 진실을 썼는지 입맛에 맞는 얘기만 적어갔는지 알아야겠습니다.”
“그러면 변호사도 입맛에 맞는 진술서를 쓰세요. 내가 도장 팍 팍 찍어 줄 테니까.”
그녀가 말했다. 내가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먼저 진상을 정직하게 말씀 해 주셨으면 합니다. 유리하게 해달라는 부탁이 아니라 사실이 뭐냐는 겁니다.”
“그 은행원이라는 동생한테 말해 줬는데요.”
“그래도 저한테 다시 얘기해 주세요. 그 사람은 동생이고 저는 변호사라 입장이 다릅니다.”
“별거 없어요. 봄에 강철윤이라는 그 남자가 젊은 부인하고 와서 병아리를 사가고 나서 며칠 후 부터는 병아리를 도로 가져갈 수 없느냐고 전화로 여러 번 그랬어요. 제가 좀 키워 놓으면 가서 도로 사던지 아니면 살 사람을 소개시켜 준다고 그랬죠.”
그때 남편인 옆의 남자가 듣고 있다가 끼어들었다.

“야 이 병신아, 왜 꼭 꼬투리 잡힐 말을 하니? 같이 온 그 여자가 부인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남자는 아내에게 눈을 부라렸다. 여자가 남편이 윽박지르는 바람에 순간 기가 죽었다. 나는 귀중한 진실을 발견했다. 병아리를 사간 후 며칠 후에 도로 무르고 싶다고 말했다면 도피자금과는 무관했다. 형사들의 조작이었다. 그녀가 말을 계속했다.
“얼마 후에 형사들이 사진을 가지고 와서 저에게 병아리를 사러온 강철윤이 맞느냐고 확인을 했어요. 맞다고 했죠. 그리고 아까 한 얘기 그대로 했어요. 형사들이 그 말을 듣고 조서를 만들더니 손도장 찍으라고 했어요. 난 무슨 내용인지 보지도 않았었는데. 하여튼 법정에서 오라고 해도 가지 말라고 했어요.”

나는 이 모략에 대해 어떻게 반증(反證)자료를 만들까 속으로 고심했다. 너무 많이 요구하면 옆에서 남편이 결사적으로 방해할게 틀림없었다. 그들은 경찰 편이었다.
“병아리를 사가고 며칠 안 있어 도로 병아리를 가져가라고 한 거 그것만 진술서로 써주시면 안될까요?”
그 정도면 거절하기 힘들 것 같았다. 
“그건 사실 이예요. 형사들에게 그것도 말했었는데 왜 또 써달라고 하지?”
여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형사들이 그 반대로 썼네요. 여기 보시죠.”

내가 가방에서 그녀의 조서를 꺼내 보여주었다. 조서에는 강철윤이 몇 달이 흘러 여름이 된 7월4일 갑자기 닭들을 급하게 처분 한 것으로 만들었다. 도피자금의 냄새가 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가방에서 백지 한 장과 볼펜을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지금 하신 그 말만 백지에 쓰시고 도장을 찍어주세요.”
그 여자는 볼펜을 들고 적으면서 다시 확인했다.
“사실대로만 쓰면 법원에 안가도 되는 거죠? 제가 하루 법원에 가서 장사를 못하면 그 손해가 얼마예요?”

“손해도 손해겠지만 생사람을 살인범으로 만드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닙니까? 비닐하우스에서 살던 사람이 돈이 많아 변호사를 이렇게 보냈겠습니까? 저도 좋은 일 한번 하려고 온 거니까 도와주세요. 사실대로만 쓰시면 됩니다.”
그녀의 얼굴에서 동정의 표정이 일었다. 그 여자는 진술서를 다 쓰고 목도장에 인주를 묻혀 꾹 찍었다. 남편이 옆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경계하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입회한 남편께서 보시고 확인 하시죠.”
내가 진술서를 받아 남편에게 주었다. 그래야 안심할 것 같았다. 남편이 그걸 받으면서 아내에게 주의를 주었다.
“법정으로 다시 가서 확인 받을 꼬투리는 절대로 적지 마.”

그는 진술서를 한 자 한 자 세심하게 살폈다.
“여기 보면 ‘어떤 사정인지는 몰라도 며칠 후 그 사람이 병아리를 도로 가져가라고 했다’고 썼잖아? 이거 지워. 법원에서 보면 어떤 사정이더냐고 궁금해서 너를 또 부를 위험이 있잖아.”
남편의 지적에 두 번째 진술서가 작성됐다.
“이번에는 이의 없으십니까?”
내가 남편에게 확인시켰다.
“됐어요, 다신 부르지 마쇼.”
 남편의 시큰둥한 대답이었다.

어느새 경계하던 그들 부부의 얼굴이 풀어졌다. 한밤중에 찾아와 기다린 변호사의 성의를 나쁘게 만은 생각지 않는 것 같았다. 궁금해서 물어 보았다.
“사료를 파시는데 짐승 키우는 사람들 심성이 어때요?”
“짐승 키우는 사람 치고 악한 사람 없어요. 다 착해요. 강철윤 씨도 돈 때문에 병아리를 되판 게 아니에요. 자기가 사정 때문에 병아리를 키울 수 없을 것 같은데 짐승을 굶겨 죽일 수는 없지 않느냐고 그랬어요. 그러니 어서 가져가라는 거였어요. 짐승을 키우는 사람들은 살인이나 그런 범죄를 하지 못해요.”
여자가 말했다. 옆에서 남편이 또 못마땅한 듯 덧붙였다.
“넌 어떻게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니. 내가 보면 짐승 키우는 사람 중에 내성적인 사람도 많더라. 그런 사람들이 욱하면 더 무서울지 어떻게 아니?”
잠시 후 가게를 나왔다. 검은 하늘에서 별이 반짝였다. 뭔가 실마리가 잡히는 것 같았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샤워를 하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수사기록을 뒤적였다. 형사와 검사가 작성한 조서를 그대로 믿을 수 없었다. 하나하나 직접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법정에서의 확인은 반토막짜리였다. 증인들이 검사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판사들도 마음대로 묻지 못하게 제한을 했다. 김항식이라는 군대후배의 진술도 직접 만나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는 제대 후 강철윤의 하는 조경 일을 한 달간 도와준 사실이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강철윤을 잘 아는 인물이었다.

형사가 작성한 조서에 나타난 김항식의 진술내용은 이랬다. 강철윤은 입대 전 무당으로 지내다가 군인이 됐다. 그러다 몇 년 전 다시 신이 내렸다고 했다. 강철윤은  다혈질이고 욱하는 성질이다. 강철윤에게는 은행원인 남동생이 있는데 사이가 좋지 않아 연락조차 하지 않고 산다. 작년 늦여름인가 초가을쯤 강철윤이 침놓는 사람을 데리러 오라고 했다. 그래서 그가 송양숙을 몇 차례 강철윤의 비닐하우스에 데려다 줬다. 송양숙을 데려다 주면서 그곳이 좀 외진 곳이라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비닐하우스 안에 남자와 여자 단 둘이 있으면 강철윤이 강간을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얼마 후 보니까 강철윤이 송양숙을 데리고 살고 있었다. 나이차이도 많고 돈도 없는 남잔데 이상했다. 송양숙은 침울한 얼굴이었다. 강철윤은 도박을 좋아했다. 송양숙도 도박 때문에 얼마 살지 못하고 헤어졌다. 강철윤 옆에는 도박꾼들만 있고 친구는 한 사람도 없다. 그게 형사가 작성한 조서의 내용이었다. 동생이 조서의 내용을 보고 “너무하다”고 한탄했다. 동생의 얼굴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형제사이는 끔찍하게 좋은 것 같았다. 형사의 악의적인 조작 같았다. 조서를 보면 강철윤은 항상 범죄의 음험한 분위기가 서려 있는 괴물처럼 묘사하고 있었다. 이 수사기록은 형사가 쓴 저질의 삼류 소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도 진술을 한 본인을 찾아가 직접 확인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계속)


 

형사의 악의적인 조작 같았다.
조서를 보면 강철윤은 항상 범죄의 음험한 분위기가 서려 있는
괴물처럼 묘사하고 있었다.

[ 2011-11-21, 09:5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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