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적인 모략
嚴相益 연재소설 ‘환상(幻想)살인’<1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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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식이라는 인물에게서는 신뢰감이 느껴졌다. 그는 말을 아끼는 성격이었다. 자신의 판단이나 추측을 조심했다. 강철윤의 편을 들지도 않고 비난도 하지 않았다. 신중한 성격이었다. 그런 경우 그의 말은 진실에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강철윤이 체포되고 경찰서 유치장에 있을 때 제일 먼저 면회한 사람이 김항식 씨죠?”
내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가 짧게 대답했다.
“처음 봤을 때 강철윤이 무슨 말을 합디까?”
그런 순간 튀어나오는 말이 진짜일 가능성이 높다.
“딸이나 동생이 알면 놀라니까 아무에게도 경찰서에 있는 걸 알리지 말라고 했어요. 그리고 딸한테는 아빠가 잠깐 어디 여행을 갔다가 온다고 전해달라고 했어요.”
그 말을 분석해 보면 강철윤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석방될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사건 내용에 대해서는 얘기를 하지 않던가요?”
“살인사건인데 자기는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나중에 구치소로 옮겨졌을 때도 만나러 갔었죠?”
“네, 또 가서 만났습니다.”
“시간이 흘렀는데 거기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절대로 죽이지 않았으니까 변호사를 구해달라고 했어요.”

강철윤이 덫에 걸려 살인범이 된 게 맞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곳곳에서 악의적인 조작이 보였다. 증오를 담은 거짓 진술이 있었다. 검거 실적을 올려야 하는 경찰이 있었고 유죄를 만들어야 하는 검사의 공명심이 잠재해 있었다. 그 쌓인 악의들의 틈바구니에서 현실적으로 변호사의 역할에 한계가 느껴졌다.

강철윤에게 유리한 진실은 수사기록에는 없었다. 변호사가 관련된 인물들을 만나 간신히 구한 진실 들은 공중으로 올라가는 연기같이 잡아서 법이란 그릇에 담을 수가 없었다. 동의를 얻어 녹음하려고 하면 모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경직될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확인해 들어갈수록 수사 기록 속에서 떠들어 대는 사람들의 말들은 가짜였다. 군대 후배 황정식은 사건 당일 강철윤에게 온라인으로 송금했는데 그게 도피자금 같았다고 진술했었다. 그 점을 또 다른 군대 후배인 김항식에게 크로스 체크하기 위해 물었다. 

“황정식이 사건이 일어난 날 도피자금을 보냈다던데요?”
“그건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황정식 그 사기꾼 놈이 강철윤에게 활동비 명목으로 뜯어간 돈도 있고 꿔달라고 해서 가져 간 돈도 만만치 않았죠. 화가 난 강철윤이 정초부터 황정식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다그쳤죠. 황정식은 매번 거짓말을 하면서 미꾸라지 같이 빠져 나갔어요. 그놈을 상대로 나도 사기죄로 고소하고 싶은데 강철윤 형은 오죽했겠어요?”
그렇다면 도피자금이란 진술은 정말 악의적인 모략이었다.

“강철윤이 정말 살인을 할 수 있는 성질이라고 봅니까? 군(軍) 시절부터 옆에서 오래 함께 생활을 하셨다기에 묻는 겁니다.”
내가 물었다.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제 인상을 보고는 공수부대 하사관 생활을 오래 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 하겠다고들 합니다. 전 길에서 남하고 싸운 적도 없어요. 모두들 색시 같다고 해요. 그런데도 저는 각종 칼을 모으는 게 취미인걸요. 저도 이런 다중적인 인격을 가지고 있는데 남을 어떻게 단정하겠습니까.”

독특한 뉘앙스가 풍기는 독특한 답변이었다. 다중인격이란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잔인한 내가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문득 강철윤의 비닐하우스에서 본 신당(神堂)이 떠올랐다. 살인사건과 그들의 배경에서 느껴지는 귀신들의 움직임과 원인모를 어떤 관계가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강철윤씨가 죽은 송양숙을 사랑했습니까?”
내가 물었다. 혼자 사는 그에게 송양숙은 구원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송양숙은 아닐 수도 있었다.

“한 번은 나한테 전동 타자기로 3억 원이라고 친 가짜 통장을 보여주더라고요. 제가 인쇄업자인데 한 번만 보면 무슨 글씨체인지 당장 알죠. 강철윤이라는 사람에 대해 실망감이 들더라고요. 그 여자를 알고 난 후에는 눈이 확 돌았어요. 어느 날 그 여자가 가 버렸어요. 그 무렵 자기가 하면 받지를 않으니까 저보고 대신 그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조르기도 했어요. 하도 그래서 대신 전화를 걸어 송양숙과 통화를 한 적도 있어요. 그때 송양숙이 저에게 ‘그 사람이 시켜서 할 수 없이 전화를 건 거죠?’하고 묻더라고요. 그러면서 자기는 다시 비닐하우스로 돌아갈 의사가 없다고 전하랬어요.”

강철윤의 내면에는 여자를 잡아두기 위한 돈에 대한 갈망이 강했을 게 틀림없었다. 또 확인할 게 있었다. 
“은행에 다니는 동생하고 사이가 나쁘다는 말을 형사들한테 한 적이 있어요?”
김항식이 그렇게 진술한 것으로 조서에 기록되어 있었다.
“네? 그런 적이 없는데요? 다만 동생은 제대로 자리 잡고 살기 때문에 미안해서 동생 집에 잘 가지 않는다는 정도죠.”
형사의 조작이 틀림없었다. 그것도 또 다른 천박한 욕망의 표현이었다.

“지금까지 말한 걸 증언해 줄 수 없어요?”
그는 내게 결정적 증인이었다.
“그건 아무래도 좀….”
그가 거북한 표정으로 우회해서 거절했다. 이럴 때 변호사는 무기력하다. 법 규정에는 그를 구인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걸 집행할 검찰과 경찰은 법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그와 헤어지고 아쉬운 마음으로 사무실로 돌아 왔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날씨가 잔뜩 찌푸린 금요일 오전 10시경이었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바람이 불더니 가느다란 빗줄기가 떨어졌다. 법정으로 향했다. 검찰은 악의적인 거짓말을 하는 황정식을 법정증인으로 신청했다. 그에 대한 백신 같은 역학을 할 사람은 김항식 뿐이었다. 나는 계속 김항식에게 증언을 해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를 증인으로 불러달라고 재판장에게 신청을 했었다. 그의 마음이 조금은 움직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나마 실낱같은 기대를 그에게 걸 수밖에 없었다. 강철윤의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김항식이 오늘 증언을 못 하겠대요. 오늘 사업상 중요한 계약이 있다는 거예요.”
그가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핑계였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강철윤의 동생이 전화 저쪽에서 안타까운 어조로 말했다.
“본인이 의도적으로 피하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게 재판의 현실이었다.
“어떻게 된 게 진실을 아는 김항식은 못 나오겠다고 하고 검사 편에서 거짓말을 하는 황정식은 굳이 나온다는 겁니다. 이런 세상도 있습니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변호사인 나는 그 말을 들어도 무기력했다. 돈이라도 주면 없는 말들도 해주었다. 조직 폭력배들은 원색의 근육으로 증인들을 조종했다. 검사는 겁을 주어 말 듣게 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진실을 구하기도 힘들었다. 국민의 증언의무를 규정한 법은 장식일 뿐이었다. 난 강철윤의 동생에게 그걸 말해줄 수는 없었다.

법정이 열렸다. 판사들이 나와 자리에 앉았다. 강철윤도 피고인석에 나와 앉았다. 방청석에는 황정식이 양복을 단정하게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보고 듣고 느낀 걸 상세히 묘사해서 재판장에게 써 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내가 황정식의 이중성을 묘사한 글을 통해 판사들이 이면의 거짓들을 알아채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황정식이 증언대로 와서 손을 들고 선서문을 읽었다.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말하고 만약 거짓이 있을 때는 위증의 벌을 받을 것을 맹세 합니다.”

얼마 전 나와 커피숍에서 만났을 때의 빙글거리던 표정과는 딴판이었다. 꾸며진 공손한 얼굴이었다. 검사의 신문이 시작됐다. 그는 화답이라도 한 듯이 앞서가면서 대답했다. 변호사인 내가 신문할 차례가 왔다.
그는 나를 보면서 ‘어디 한번 해보시지’하는 눈빛이었다.
“증인은 건축업자신가요?”
내가 직업을 물었다. 공사를 따 준다고 사기 친 인물이었다.
“건축업자는 아니고 크리스천 선교회에서 사회복지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진짜 같이 보이기 위한 위장 같은 말이다.

“검찰에서 작성하신 조서를 보면 직업이 상가 건축을 한다고 진술 했는데 어떤가요?”
내가 조서를 그의 앞에 내놓으며 말했다. 그의 표정이 흔들렸다.
“저는 검찰에 가서 조서를 작성한 기억이 없는데요.”
그가 정색을 하면서 거짓말을 했다. 정말 강심장을 가진 인간이었다. 뻔한 사실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법정에서 또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때 재판장이 서기에게 조서가 들어있는 수사기록을 내려주면서 말했다.
“여기 기록 중에 황정식의 진술조서가 있으니까 그 뒤에 서명하고 무인(拇印)한 부분을 증인에게 보여주세요.”

서기가 기록을 들고 황정식의 앞으로 가서 펼쳐놓았다. 황정식이 처음 보는 듯한 표정으로  자기의 서명과 도장이 찍힌 부분을 보았다. 재판장이 그를 유심히 살피면서 물었다.
“거기 서명하고 도장 찍은 거 맞아요?”
“글쎄요 기억이 안 나는데요.”
“서명이 본인이 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아니면 기억이 안 난다는 거예요?”
재판장이 힐난조로 다시 물었다.
“기억이 안 납니다.”
“만날 가는 장소도 아니고 검찰청에 갔다 온 일이 기억이 안나다니, 증인 그게 말이 됩니까?”
재판장이 쏘아 붙였다.

(계속)


“어떻게 된 게 진실을 아는 김항식은 못 나오겠다고 하고
검사 편에서 거짓말을 하는 황정식은 굳이 나온다는 겁니다.
이런 세상도 있습니까?”

[ 2011-12-13, 13:0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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